by. 김옥돌

 

찰랑찰랑한 긴 머리는 매력적이다. 하지만 짧은 머리로도 얼마든지 작품에 깊은 인상을 남길 수 있다. 짧은 헤어스타일로 영화 속 캐릭터를 한층 더 잘 표현한 배우를 모아보았다.

 

 

 

김혜수 – 미옥

 

이미지: 씨네그루 (주)키다리이엔티

영화 [미옥]은 범죄조직을 재계 유력 기업으로 키워낸 2인자 나현정과 조직의 해결사 역할을 하는 임상훈 그리고 출세를 앞에 두고 궁지에 몰린 최대식의 전쟁을 그린 영화다.

그동안 여러 영화에서 연기는 물론 스타일을 자유자재로 선보인 김혜수는 영화를 위해 반 삭발에 은발 탈색을 하는 파격적인 헤어스타일을 선보였다. 실제로 배우 본인이 헤어스타일을 제안했고, 파격적인 만큼 어려움도 따랐다. 7일~10일에 한 번 정도 탈색하며 스타일을 유지했는데, 삭발한 우측 두피와 얼굴 가장자리에 약품으로 화상을 입기도 했다. 작품을 향한 열정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화상은 다행히도 작품을 마치고 난 뒤 자연스럽게 회복되었다. 뿐만 아니라 조직의 2인자 역할을 맡아 장총을 다루는 등 이전보다 강렬한 카리스마를 발산하며 깊은 인상을 남겼다. 아쉽게도 영화는 흥행과 비평에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고, 강렬한 비주얼의 김혜수만 남았다.

 

 

 

배두나 – 클라우드 아틀라스

 

이미지: NEW

데뷔 당시, 배두나는 단발머리였다. 이후 지금까지도 여러 영화와 드라마에서 주로 단발머리로 등장해왔다. 하지만 배두나의 단발머리는 길이만 비슷할 뿐 맡은 캐릭터에 따라 다른 스타일링으로 변화를 꾀했다.

영화 [클라우드 아틀라스]에서 배두나는 1인 다역을 맡아 같은 사람으로 구별하기 힘들 정도로 다른 외모를 선보였다. 먼저 2144년, 미래 국제도시 네오 서울에서 인간의 필요에 따라 착취당하는 복제인간 손미 451역을 맡아 날카로운 선의 귀밑까지 오는 짧은 단발머리로 등장한다. 색상은 차갑고 짙은 블랙 컬러를 선택했다. 다소 특이한 이 헤어스타일은 사이보그 느낌이 물씬하다. 영화에 등장하는 복제인간은 모두 같은 머리 모양을 하고 있지만 그중 손미 451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배두나와 단발머리는 이제 떼어놓고 상상하기 어렵다. 실제로 배두나는 한 매거진과 인터뷰에서 “긴 생머리는 가질 수 없는 로망”이라며, “작품 안 하고 쉴 때 공들여 머리를 길러놓으면 이상하게도 작품 들어갈 때 꼭 자르라고 한다”라고 토로한 적이 있다. 차기작 [킹덤]과 [마약왕]에서 어떤 헤어스타일을 선보일지 궁금하다.

 

 

임수정 – 각설탕

 

이미지: CJ엔터테인먼트

임수정의 숏컷을 보고 싶다면, 영화 [각설탕]을 추천한다. [각설탕]은 임수정의 매력을 새로운 방식으로 보여준다. 임수정은 머리를 짧게 자르고, 제주도 푸른 목장에서 태어나고 자란 소년 같은 이미지의 시은을 연기했다. 임수정은 짧은 헤어스타일을 선보여 어릴 적부터 말 천둥이와 함께 성장한 해맑은 시은의 느낌을 보다 잘 표현할 수 있었다.

실제로 촬영 당시, 말과 교감하고 근사한 제복을 입고 연기하는 모습을 보고, 제작진은 동화 속 어린 왕자 같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엄마를 잃고 외롭게 자랐어도 씩씩하게 앞으로 나아가는 캔디 같은 시은의 성격은 보이시한 느낌의 짧은 헤어스타일에서 잘 묻어난다. 흰색의 차이나 칼라 제복과 검은색 승마바지를 입은 색다른 모습을 볼 수 있다. 덧붙여 2003년작 […ing]에서는 풋풋한 단발머리 여고생으로 분한 임수정을 볼 수 있다.

 

 

히로세 스즈 – 선생님! 좋아해도 될까요?

 

이미지: (주)스마일이엔티

한국에 단발머리 배두나가 있다면, 일본엔 히로세 스즈가 있다. 이미 [바닷마을 다이어리], [세 번째 살인] 등 여러 작품에서 학창 시절 특유의 단발머리를 선보인데 이어 또 학생 역을 맡았다. 단발머리 여고생 전문 배우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히로세 스즈는 최근 개봉한 영화 [선생님, 좋아해도 될까요]에서 길이가 짧고, 가볍게 층을 내어 보다 성숙해 보이는 단발머리 스타일로 등장한다.

세계사를 가르치는 이토 선생님을 짝사랑하는 내성적인 고등학생 히비키를 연기했다. 이토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엄격하고 무뚝뚝해 보이지만, 방과 후 혼자 남은 히비키의 과제를 도와주는 다정한 면도 있다. 히비키는 이토 선생님의 미소와 따뜻한 모습에 첫사랑의 감정을 느끼고 수줍은 마음을 고백한다. [나는 내일, 어제의 너와 만난다]를 연출한 미키 타카히로가 감독을 맡았다.

 

 

 

틸다 스윈튼 – 아이 엠 러브

 

이미지: Mikado Film

틸다 스윈튼의 긴 머리를 볼 수 있는 영화는 그리 많지 않다. [아이 엠 러브]는 상반된 헤어스타일을 한 번에 볼 수 있는 흔치 않은 작품이다. 틸타 스윈튼은 이탈리아 재벌가 며느리 엠마를 연기한다. 엠마는 이탈리아의 부유한 상류층 남자를 만나 원래의 이름도 잊어버리고 남편이 지어준 이름으로 살아오다 아들의 친구 안토니오를 만나 조금씩 달라지는 인물이다. 엠마는 안토니오를 만나면서 차츰 활력을 얻고, 그동안 잊고 살았던 자신의 정체성을 깨닫는다. 엠마의 심리상태는 외모 변화로 드러난다. 안토니오를 만나기 전, 엠마는 고급 브랜드의 기품 있는 스타일의 원피스를 입고, 어깨까지 오는 깔끔한 헤어스타일은 흐트러짐 없다.

안토니오는 진짜 엠마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일깨워주고, 그녀의 머리를 숏컷으로 잘라준다. 엠마는 점차 단정한 원피스를 벗고 캐주얼룩을 선보인다. [아이 엠 러브]에서 틸다 스윈튼은 안토니오를 만나기 전과 상반된 짧은 머리를 통해 엠마의 심리, 그리고 행동의 변화를 잘 드러낼 수 있었다.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의 ‘욕망의 3부작’ 중 첫 번째 영화다.

 

 

스칼렛 요한슨 – 공각기동대

 

이미지: 파라마운트 픽쳐스

[공각기동대: 고스트 인 더 쉘]은 동명 일본 애니메이션을 원작으로 인간과 로봇의 경계가 무너진 미래 세계를 그린 SF영화다. 특수부대를 이끄는 미라 킬리언 소령이 세계를 위협하는 테러 조직을 쫓던 중 자신의 과거에 의심을 품으면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그린다.

금발의 스칼렛 요한슨이 소령 역으로 캐스팅되자 화이트워싱 논란이 발생했다. 요한슨은 원작 캐릭터에 이입하고 싱크로율을 높이고자 외적인 변화에도 공을 들였다. 원작의 쿠사나기 소령과 비슷한 분위기를 연출하기 위해 검은 헤어로 염색하고, 짧은 보브컷으로 헤어스타일을 과감히 바꾸었다. 과거와 정체성을 의심하고 고민하는 캐릭터에 어울리는 진지한 연기는 외모 변화에 설득력을 주었다. 다만 기대에 못 미치는 완성도로 요한슨의 노력은 아쉬움만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