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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시카 존스’가 이해한 여성 분노

 

written by. 안젤리카 제이드 바스티앙

translated by. 띵양

 

이미지: 넷플릭스

 

내가 어릴 적 배운 교훈 중 하나는 바로 분노가 여성에게 단순히 감정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여기에는 역사적인 맥락과 급진적인 잠재력이 기저에 깔려 있다. 분노는 반드시 파괴적일 필요는 없지만, 그 속에 세상에 변화를 줄 만한 힘이 있어야 한다. 이 교훈은 어릴 적 봤던 열정적인 여성들이 남편이나 직장을 잃은 이후, 혹은 가정 폭력에 시달릴 때 분노를 연료 삼아 극복하는 모습을 통해 배운 것이다. 그러나 여성이 분노라는 감정을 표출할 때 사회적으로 지탄받을 수 있다는 사실 역시 잊지 않았다. 그래서 [제시카 존스] 시즌 2가 유독 매력적인가 보다.

 

13개 에피소드로 이루어진 [제시카 존스] 두 번째 시즌에서 가장 강렬하게 다가온 부분은 메인 악역으로 등장하는 앨리사 존스(자넷 맥티어 분)가 다섯 번째 에피소드 ‘문어(The Octopus)’에서 한 남성을 살해한 후 직접 지핀 불을 말없이 지켜보는 장면이다. 그녀는 제시카가 모아둔 조사 자료, 종이 뭉치, 자신의 옷을 태우면서 잔혹함마저 느껴지는 단호한 표정을 짓는다. 이 장면은 올해 [제시카 존스]를 관통하는 주제의식인 “크나큰 트라우마에 따른 여성 분노의 복잡한 현실”이 함축된 장면이라 봐도 무방할 정도로 신화적이고 강렬한 무언가가 있다.

 

물론 [제시카 존스] 시즌 2는 아쉬운 점도 있다. 이번 시즌은 강력한 악역이 주는 추진력과 에너지가 꽤나 부족하다. 지난 시즌 피날레에서 제시카의 손에 죽기는 했어도 이야기를 이끌 에너지를 가졌던 불쾌한 수다쟁이 정신 지배자 킬그레이브(데이비드 테넌트 분)와 같은 악역이 이번 시즌에는 없다. 대신 알코올 중독에 빠진 채 스스로 무너지는 사립 탐정 제시카 존스(크리스틴 리터 분)가 자신의 과거와 교통사고 이후 혼자 남은 자신에게 불법 인체 실험을 감행한 기업 IGH를 추적하면서 그녀의 기원을 담아낸다. 시즌 2는 한 명의 핵심 악역을 두는 대신 여러 개의 이야기를 풀어나가기로 선택하면서 지난 시즌보다 다소 산만해졌다. 가장 결정적인 증거는 주요 인물의 이야기에 그려지는 ‘여성의 분노’를 대하는 시선이다. 자신의 삶의 의미를 끊임없이 고민하는 제시카, 힘으로 트라우마를 극복할 수 있다 믿으면서 스스로 힘을 가지는 것을 갈망하는 제시카의 절친 트리시 워커(레이첼 테일러 분), 성격이 불안정하고 제시카보다 강한 힘을 가진 앨리사 존스의 이야기를 통해서 말이다.

 

이미지: 넷플릭스

 

이런 시도는 여러모로 제시카 존스를 현재 우리의 역사적인 순간을 대변하는 완벽한 슈퍼히어로로 보이게 한다. 이번 시즌 각본은 하비 와인스타인의 몰락과 #미투 운동 이전에 썼지만, 최근 수면 위로 오른 현실의 격렬한 논쟁과 재평가되는 이슈 – 직장 내 성추행, 성적 트라우마, 강간을 포함해 여성이 주도권을 가지기 힘들었던 이야기 – 을 다룬다. 현재 TV에서는 분노를 삶의 원동력으로 사용하는 여성들을 다룬 몇몇 시리즈 – [Good Girls], [The Good Fight], [UnReal] – 가 방영되고 있다. 아리엘 번스타인은 가디언지에 “TV 시리즈 속 분노 가득한 자매애는 ‘분노로 불평등과 맞서 싸우고 여성의 진정한 해방을 위해 성차별에 분노하는’ 페미니스트 지식층의 목소리에 가세했다”라고 썼다. [제시카 존스]는 언뜻 보기에 이 주장의 좋은 출발점이라 할 수 있다. 여성의 분노가 항상 정당하거나 옳지 않다는 사실을 밝히는 데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이다. 여성의 분노는 특히 현시대에 토론할 가치가 높은 주제다.

 

이 같은 이유는 페미니스트로 보이지도 않으며 애매한 도덕성을 가진 제시카 존스를 어떤 슈퍼히어로보다 현재에 걸맞은 슈퍼히어로가 될 수 있게 했다. 엔터테인먼트 위클리는 헤드라인 기사에서 제시카를 “#미투 운동을 대표하는 슈퍼히어로”라고 지칭하기도 했다. 롤링스톤의 한 기사는 “제시카 존스 시즌 1이 내면의 트라우마로부터 생존하기 위한 투쟁을 담았다면, 시즌 2는 그 이후의 분노에 관한 이야기다. 로젠버그는 페미니스트적인 분노를 제시카 존스와 그녀 주변의 다른 여성들을 통해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보려 한다”라고 말했다. 나는 그동안 어떠한 팝 컬처도 페미니즘처럼 예민하고 복잡한 정치 이슈를 다룰 수 없다고 종종 말해왔다. 그리고 이 시리즈에서 페미니즘의 본질을 파헤칠수록 그 근간이 흔들린다고 생각한다. 제시카 존스 시리즈를 발 묶는 가장 큰 요인은 인물들의 분노가 전적으로 물리적 폭력과 자멸에 달려있고, 여성의 삶이 특히 트라우마와 연관되었다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모이라 도네간이 뉴요커지에서 밝혔듯이 [제시카 존스] 시즌 2는 “제시카 존스가 자신의 분노에 위축되고 겁에 질린 모습을 통해 ‘여성의 격렬한 분노’를 투영한 시즌”이다. 제시카는 킬그레이브를 죽이면서 고통에서 해방되기는커녕 도리어 시달렸다. 그녀는 매일 술과 하룻밤 잠자리로 자신의 고통을 잊으려 노력했다. 제시카는 분노에 휩싸이면 유리창을 부수고 시비를 걸거나 자신의 능력을 상대할 수 없는 사람 – 대표적으로는 제시카를 괴물로 여기고 업계에서 손을 떼길 원하는 거대 법률사무소의 대표 프라이스 챙 – 들에게 폭력을 행사한다. 제시카의 분노 가득한 몸부림은 그녀가 살면서 겪었던 다수의 트라우마 – 부모의 죽음, 남들과 다른 능력, 킬그레이브에게 놀아난 경험, 자신이 저지르는 폭력, 자신의 인생을 규정짓는 의문을 해결하려는 본능 – 에서 비롯된다. 쇼러너 멜리사 로젠버그와 분노로 가득한 제시카의 여정에 대해 대화를 나누었을 때, 그녀는 이 이야기가 제시카가 자신의 정체성에 품는 의문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밝혔다. “나는 누구인가? 킬그레이브가 원했던 살인자일까? 대중들이 보는 ‘자경단 활동을 하는 슈퍼히어로 킬러’인가? 아니면 그저 괴물일까?”하는 질문들 말이다.

 

이미지: 넷플릭스

 

제시카와 분노의 관계는 그녀가 IGH와 연관된 능력자들을 죽인 범인 – 알고 보니 아빠와 남동생을 죽인 교통사고에서 생존한 그녀의 어머니 앨리사 – 을 발견했을 때 전환점을 맞이한다. (혼수상태에 빠졌던 앨리사는 칼 박사(칼룸 키스 레니 분)의 인체실험으로 제시카와 같은 능력을 얻었지만, 칼은 제시카에게 진실을 알려주기보단 그녀의 가족이 모두 죽었다고 믿게 만들었다.) 제시카는 앨리사를 통해 자신의 미래가 될 법한 모습을 보게 된다. 앨리사는 원치 않은 삶을 살아서 분노에 사로잡힌 인물이다. 그녀는 남편을 내조하고 가사를 전담하기 위해 수학자의 꿈을 포기했다. 앨리사의 분노는 수년 동안 여러 사건 – 본인이 죽었다고 믿는 딸과 이별, 주체성을 빼앗은 실험, 끔찍한 악몽, 이전 결혼 생활 – 을 통해 쌓여왔고, 그 결과 행복과 평화를 위협하는 무언가를 죽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로젠버그는 “앨리사는 초능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스스로 원했던 사람이 될 수 없었다. 제시카는 이번 시즌에서 그 사실을 마음속에 새겼다”라고 이야기했다.

 

시즌 여덟 번째 에피소드 ‘우리 함께(Ain’t We Got Fun)’에서 제시카는 어머니의 모습을 통해 자신의 분노에 대한 생각을 달리하게 된다. 앨리사는 여러모로 제시카에게 어머니처럼 될 수 있다는 경고와 같은 인물이다. 제시카와 앨리사가 서로를 대하는 태도는 시즌에 가시 돋친 모녀관계 이야기를 더했지만, 복잡한 여성 분노에 대한 이야기를 빼앗기도 했다. 두 사람은 분노를 폭력이나 가장 처절한 자멸로밖에 표출하지 못한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이 이 분노는 트라우마에서 비롯된 것이다. 맥티어와 리터는 굉장한 배우이며, 그들이 연기한 수많은 장면이 뚜렷한 동경과 놀라운 취약성으로 빛난다. 그러나 그들의 노력은 이야기가 표출하는 주제가 “여성의 삶이 트라우마와 폭력을 근간으로 둔다”라는 사실 때문에 아쉬움이 남는다.

 

이미지: 넷플릭스

 

트리쉬 이야기 역시 트라우마가 여성의 분노를 불지펴서 폭력으로 향하게 하고, 그들을 집어삼킬 위협에 처하게 한다는 제시카의 여정과 같은 방향으로 향한다. 트리시도 제시카처럼 자신의 트라우마 가득한 과거를 만들어낸 인물 – 두 번째 에피소드 “기이한 사고(Freak Accident)”에서 연기 인생을 막 시작하던 청소년 시절, 어머니의 권유로 본인을 성적으로 착취한 추잡한 연출가 맥스 테이텀(제임스 맥카프리 분) – 와 마주한다. 트리시는 제시카의 베일에 싸인 과거와 IGH 정보를 캐내기 위해 위험한 상황에 발을 들이는데, 이는 맥스가 모든 일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병원에 많은 기부금을 내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트리시는 맥스와 조우했을 때 자신이 쌓아온 모든 것을 서서히 잃어가는 모습을 보인다. 이 장면이 더욱 긴장감 넘치고 참혹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트리시가 맥스를 협박하는 상황에도 그가 여전히 우위를 점하고 있는 것 같다. 마치 트리시가 자신이 학대한 15살 소녀였을 때처럼 말이다.

 

트리시는 제시카가 곁을 지켜주는 상황에서 맥스와 두 번째로 조우한다. 제시카는 완력으로 맥스를 차 본넷 위로 밀치고 위협한다. “넌 도대체 정체가 뭐야?”라고 맥스가 묻자 제시카는 쿨하게 “화나 있는 상태야”라고 대답한다. 이 장면은 너무나도 강렬해서 시즌 전체를 아우르는 명장면으로 꼽을 수 있다. 트리시가 힘을 구원으로 여기는 이유가 이해된다. 제시카는 트리시의 과거 괴물을 내리깔아보면서 그를 두려움에 떨게 했다. 시즌 후반부로 갈수록 트리시는 힘을 얻기 위해 선을 넘는 행동 – 마약 중독, 자신에게 제시카와 똑같은 실험을 하도록 칼 박사를 협박하는 모습 – 을 보인다. 로젠버그는 “트리시는 모든 것을 가졌다. 재능과 성공, 유명세를 가진 동시에 사회적으로 동경받는 인물이다. 그녀는 힘을 제외한 모든 것을 가지고 있다. 제시카는 그녀가 가지지 못한 단 한 가지를 가지고 있다. 그 한 가지는 트리시가 어릴 적 어머니의 강요로 연예계 생활을 하면서 폭력의 대상이 되었기 때문에 가장 원하는 것이다. 그녀는 이 세상에서 불안과 공포에 떨며 사는 것이 무엇인지 너무나 잘 알고 있으며, 타인이 그 감정을 느끼지 않길 원한다. 힘은 그 공포를 바로잡을 수 있다.”라고 말했다

 

트리시의 분노 역시 트라우마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러나 시리즈에서 다루지 않는 더 위험한 것에서부터 파생되었는데, 그것은 바로 아주 근시안적이며 모든 것을 가지려 하는 특권이다. 앨리사와 마찬가지로, 필자는 트리시의 ‘숭고한 척’을 싫어한다. 트리시가 남의 삶을 짓밟는 데 사용한 분노는 남성우월주의가 팽배한 집단과 그를 지지하는 남성들을 향한 ‘정당한 여성의 분노’가 아닌, 백인 여성이 가질 수 있는 환경적 특권으로 그들이 상징하는 체제를 전복시키는 것보다 그들의 권력을 휘어잡으려 하는 것에 더 관심이 있는 분노이기 때문이다. [제시카 존스] 작가진이 백인과 특혜를 다루려 하지 않아 이 시리즈가 여성의 삶을 좀먹는 이슈와 분노를 동시에 다룰 수 있는 가능성을 낮추어 버렸다.

 

이미지: 넷플릭스

 

궁극적으로, [제시카 존스]는 여성의 분노를 예상 밖의 인물로부터 탐구하려 한다. 바로 권력을 움켜쥔 표독스러운 변호사이자 레즈비언 제리 호가스다. 제리는 굉장히 약삭빠르고, 공정하지 않으며, 위험하고 이기적인 인물이다. 그녀는 제시카나 대니 랜드와 같은 히어로들을 자신의 이득이 있을 때만 돕는다. 그녀의 분노는 한때 자신의 어시스턴트였던 전부인을 포함해 자신보다 아래인 사람들에게 주로 향해 있다. 제리의 성생활과 연애 생활의 권력관계는 이번 시즌에서 아주 잘 다루어졌지만, 트리시의 특권만큼이나 다뤄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제리가 밑바닥부터 올라오고 ALS – 어떤 권력이나 재력으로부터 보호받지 못하는 – 를 진단받았다는 사실은 그녀의 이야기에 다채로움을 더한다. 로젠버그는 “제리 호가스는 그녀의 인생을 권력과 재력, 통제권을 축적하는데 쏟았다. 그러나 현실은 통제권이라는 것이 없다는 것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ALS 진단은 제리를 자신의 날카로운 계산, 본능을 이용하지 않고 이네즈 그린 – IGH에서 근무했던 간호사, 제리에게 치료 능력을 가진 셰인 라이백을 소개해준 인물 – 을 신뢰하게 했다.

 

제리의 믿음은 그릇되었다. 그녀가 자신의 ‘한때’ 비싸 보였던 아파트로 돌아왔을 때, 그곳이 이네즈와 셰인에게 도둑맞았다는 사실을 알아차린다. 셰인의 치유능력과 이네즈가 쌓은 신뢰와 희망은 계산된 사기였으며, 단순히 그들이 제리의 삶에 파고든 이후 도둑질을 하기 위한 계획에 불과했다. 제리의 병은 빈틈을 제공했고, 그녀는 가장 절망스러운 시기에 속고 만다. 그러나 트리시, 제시카, 앨리사와 달리 제리는 폭력에 능하지 않다. 그녀는 피를 쏟지도, 악당을 때리지도 않는다. 대신 그녀는 사람들의 욕망을 이용해 속이고 자신이 이득을 취하기 위해 피를 보게끔 하는 것에 능하다. 이 방식은 굉장히 무자비하다. 그녀의 분노는 제시카 존스에 등장하는 다른 여성들의 분노와는 달리 다소 복잡하고 정의하기 어렵게 터져 나온다. 자신의 병이 치료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차린 제리는 이네즈와 셰인을 찾는 것에 무자비할 정도로 체계적이다. 이네즈를 속여 셰인을 죽이며, 복수를 지켜보는 게 짜릿하면서도 동시에 끔찍한 사실임을 알아채게 된다. 제리의 이야기는 시리즈에 가장 복잡한 여성 분노 –성적 트라우마에 얽히지 않으나 더 음울하며, 계급사회와 다루기 힘든 욕망, 그리고 권력의 한계 – 를 중립적인 도덕성의 경계에서 다룬다.

 

TV 시리즈에서 여성의 분노를 다루는 새로운 탐구에 활기가 생기면서, 개인적으로 [제시카 존스]가 여기서부터 어떤 방향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갈지 궁금하다. 극중 인물들은 자신들의 출발점에서 굉장히 다른 곳에 와있고, 특히 그녀들의 분노를 말하자면 더욱 그렇다. [제시카 존스]의 두 번째 시즌이 현실에서 해답을 찾을 수 없는 주제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은 흥미로운 동시에 지독했고, 실망스러웠다. 이 시리즈가 분노의 파괴적인 측면을 계속 다룰 예정이라면, 여성 분노의 가장 중요한 잠재적 가치인 “단순히 우리의 삶을 부수는 것이 아니라 재창조한다”는 것을 용감하게 말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This article originally appeared on Vulture: What Jessica Jones Understands About Female R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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