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일러콘텐츠은 ‘벌쳐’와 리프린트 계약을 맺고, 독자 여러분께 추천할 만한 콘텐츠를 번역합니다

 

미드에 퍼지고 있는 ‘쩍벌’ 현상, 이대로 괜찮은가?

 

written by. 캐서린 반아렌돈크

translated by. Tomato92

 

 

이미지 : HBO

 

[웨스트월드] 시즌 2 첫 번째 에피소드 러닝타임은 69분이다. 물론, 이렇게 유달리 긴 에피소드가 시즌에 한 번씩 나오는 것은 상당히 평범한 일이다. 하지만 앞으로 방영될 네 번째 에피소드는 무려 1시간 11분이며, 두 번째 시즌에서 1시간 넘는 마지막 에피소드가 되진 않을 것이다. 시즌 1을 돌아보면, 마지막 에피소드 러닝타임은 90분을 꽉 채웠다.

 

[웨스트월드] 각 에피소드, 특히 1시간을 넘는 에피소드를 보지 않기란 어려우면서도 동시에 어떤 죄책감도 갖지 않고 드라마를 엄청난 분량으로 부풀리는 것에 일말의 실망감이 든다. 정말 드문 경우지만 60분이라는 시간이 정말 필요해서 그렇게 만들 경우에는 기꺼이 내 시간을 투자할 의향이 있다. 하지만 계속해서 반복되는 지나치게 긴 TV 에피소드는 작품의 서사보다 오만함을 뽐내거나 혹은 스케일을 과시하고자 제작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제작진은 서사 공간을 이야기와 거리가 먼 지루한 요소로 채우며 당신의 귀중한 시간을 업신여긴다. 긴 에피소드는 그들이 그만한 공간을 누릴 자격이 있음을 은연중에 풍기며, 결국 특별하고 완성도 높은 작품으로 대우받는다. 시간이 길면 길수록 더 훌륭한 작품이 되는 것이다.

 

이제는 이처럼 과시하길 즐기며 무의식적으로 확장을 일삼는 행태에 경종을 울릴 때가 왔다. 끝없이 계속되는 TV 에피소드는 스토리텔링의 ‘쩍벌남’스러운 행위라 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 말해 어떤 사람이 지하철 좌석에 앉아 다리를 최대로 벌리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와 같이 에피소드를 질질 끄는 경향은 ‘크기가 모든 것을 좌우한다’는 개념을 시청자들에게 강제로 주입하며 부담을 준다.

 

불필요한 분량이 증가하는 현상은 [웨스트월드]에서 분명히 보인다. 이 쇼의 강점은 부정할 수 없이 아름다운 미학과 갑작스럽고 예상치 못한 한방의 순간들이다. 하지만 사소한 원인에서 발발한 폭력으로 모든 것이 마무리되는 여정을 반복하면서 점점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이 말은 즉 스토리텔링 요소가 사라져 간다는 뜻이다. 감정을 자극하는 기반과 줄거리의 토대가 없는 장시간의 총격전은 특유의 스펙터클함으로 시청자들에게 먹혀들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장면은 드라마에서 실제 중요한 부분을 희석하며, 최악은 점점 고조되는 작품 분위기에 제동을 건다는 점이다. 시즌 1 내내 쇼의 중요한 서사는 테마파크 밖에서 벌어지는 일이라고 해놓고서 도대체 내가 왜 에드 해리스가 맡은 ‘검은 옷의 사나이’가 종일 다른 사람 뒤쫓는 모습을 봐야 하는가? 과하게 긴 에피소드를 보며 이런 부분에 실망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과잉을 없앤다면 더 나은 작품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이미지: FX

 

이는 비단 [웨스트월드]만의 문제는 아니다. 이런 행태는 상업 작품에 할당되는 쥐꼬리만한 43분보다 보통 1시간의 러닝타임으로 방영되는 HBO와 같은 케이블에서 시작됐다. 이런 경향은 HBO에서 FX로 흘러갔고 [닙 턱], [쉴드]를 시작으로 [썬즈 오브 아나키]에서는 정점을 찍는다. [썬즈 오브 아나키]는 작품 중반부에 접어들며 1시간도 모자라 1시간 30분짜리 에피소드를 습관적으로 만들기 시작했고, 더불어 중간 광고까지 늘렸다. 버라이어티는 이 시리즈의 독특한 현상에 관해 ‘프리미엄 케이블에서 자행되는 장시간 러닝타임’을 주제로 기사를 쓰기도 했다. FX CEO 존 랜드그라프는 시간을 더 늘리는 것은 해당 방송사가 HBO와 쇼타임의 창의력을 따라갈 기회를 제공한다고 언급했다. 에피소드 러닝타임이 창의력과 비례할 뿐 아니라 작품의 성공에 중요하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말한 것과 다름없다.

 

문제는 이 같은 개념이 사회 풍토로 번지고 있다는 것이다. FX [리전] 시즌 1 최장 러닝타임 에피소드는 50분이었으나 시즌 2 첫 화 러닝타임은 61분이나 된다. 이는 노아 홀리의 또 다른 FX 시리즈 [파고]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아메리칸즈]도 마찬가지지만, 이 작품은 그만한 분량 증가가 타당하게 느껴지는 몇 안 되는 쇼 중 하나다. USA 방송국 [미스터 로봇] 시즌 3의 마지막화는 57분이며,  TNT [에일리어니스트]나 [애니멀 킹덤]에서도 같은 상황이 벌어진다. HBO의 경우 앞서 언급한 방송국보다 더 심각하다. [웨스트월드]와 [왕좌의 게임]은 물론이고, 별다른 주목도 못 받고 사라진 신작 [히어 앤 나우]는 60분을 살짝 넘는다. [바이닐 : 응답하라 락앤롤] 파일럿은 두 시간을 꽉 채웠다.

 

‘길수록 더 훌륭한 작품이다’라는 인식은 스트리밍으로 옮겨가 기본 운영 방침으로 뿌리내리고 있다. 대부분의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는 지나치게 길다. 정도를 지나치고 있는 작품이 쏟아지는 상황에서 [아메리칸 반달]처럼 단비 같은 작품이 등장하기도 한다. 스트리밍 서비스 작품의 스토리텔링 문제가 특히 복잡한 이유는 성공의 척도가 작품 자체의 퀄리티보다 시청자의 시간을 얼마나 잡아먹느냐에 달렸기 때문이다. [제시카 존스]나 [더 크라운]같은 작품도 시즌이 지남에 따라 더 길어지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 65분으로 만들 수 있음에도 50분으로 만들라는 기업 차원의 압박은 아마 없을 것이며, 사실상 정반대 양상으로 흘러가고 있다. 넷플릭스 CEO가 해당 서비스의 가장 큰 적은 타스트리밍 서비스가 아닌 ‘잠’이라고 말한 일화는 유명하다. 넷플릭스 비즈니스 모델은 시청자들의 남는 시간을 모두 잡아먹는 것이고, 따라서 모든 작품의 러닝타임이 늘어난 것은 전혀 놀랄 일이 아니다.

 

말하지 않아도 알겠지만, 문제는 드라마 장르에 한정되지 않는다. [마스터 오브 제로]나 [애틀랜타], [걸스]처럼 광고 포함 30분 분량의 전통 코미디 작품도 러닝타임이 종종 35분까지 늘어난다. 하지만 코미디 작품의 경우 ‘예술적인 유동성’이 필요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애틀랜타]는 가장 좋은 예다. 시즌 2 6화 ‘테디 퍼킨스’는 엄청난 역량을 뽐내며 많은 이들에게 찬사를 받았다. 물론 편집에 신경을 써야 하는 코미디 작품도 많지만, 드라마 장르에 만연한 오만함은 잘 보이지 않는다.

 

 

이미지: Sky 2, 넷플릭스

 

러닝타임을 굳이 늘릴 필요는 없다. 사람들은 HBO의 1시간짜리 에피소드에 너무 길들여진 나머지 40분가량의 러닝타임으로도 [제인 더 버진], [크레이지 엑스 걸프렌드]와 같은 훌륭한 작품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린 듯하다. 올해 내가 본 최고의 드라마는 독일 드라마 [바빌론 베를린]이다. 이 작품은 미국 프리미엄 케이블 작품만큼이나 복합적이고 몰입력이 높으며, 미적으로 독창적이다. 무엇보다 모든 에피소드 러닝타임이 50분 미만이다.

 

이제 좋은 이야기를 전하는 데 불필요하고 심지어 가끔 해롭기까지 한 이 ‘쩍벌’ 현상에 관심을 가질 때다. 많은 방송국에서 드라마를 쏟아내고 있는 현재, 몸집을 키우는 데 만 급급한 그들에게 ‘시간은 금이다’라는 격언을 상기시켜 주고 싶다. 이는 내 귀중한 시간을 호소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웨스트월드] 같은 작품이 불필요한 분량만 없앤다면 더 효과적이고, 더 양질의 스토리텔링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말한다.

 

 

This article originally appeared on Vulture: Overly Long Episodes Are the Manspreading of TV

© 2018 All rights reserved. Distributed by Tribune Content Agency

 

저작권자 ©테일러콘텐츠,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