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롯데엔터테인먼트, (주)엣나인필름

 

살짝 주춤했지만 여전히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가 강세를 보이는 가운데, 두 편의 뜨거운 스포츠 영화가 극장가를 강타했다. 부자간의 뜨거운 한판 승부를 담은 [레슬러]와 1980년 윔블던의 열기를 온전히 느낄 수 있는 [보리 vs 매켄로]가 그 주인공이다. 믿고 보는 유해진을 필두로 나문희, 성동일, 이성경 등이 등장해 유쾌한 웃음을 자아내는 [레슬러]와 스베리르 구드나손, 샤이아 라보프의 혼신의 연기를 볼 수 있는 [보리 vs 매켄로] 중 어떤 작품이 주말 관객들에게 선택받을지 궁금해진다. 이번 주말 어떤 영화를 볼지 고민 중이라면, 테일러콘텐츠 에디터들의 의견을 참고해보자.

 

이미지: 롯데엔터테인먼트

 

에디터 Jancita: 왜 [레슬러]란 제목을 택했는지 의문스러운 영화다. 레슬링 경기 한 장면을 비추는 오프닝만 해도 스포츠를 매개로 담아낼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에 관심이 간다. 하지만 뒤이어 일말의 기대감을 무참히 깨부수는 느닷없는 설정이 등장하면서 제목과 무관한 영화로 변해간다. 금메달리스트가 되길 바라는 아버지의 소망과 아들의 부담감이 엮어낼 갈등 요소가 충분함에도 굳이 없어도 될 삼각 로맨스를 주요 갈등 요소로 배치해 스포츠 영화의 묘미를 저해한다. 또한 어느 한 구석도 공감할 수 없는 인물들의 행보에 눈살마저 찌푸려지며, 스포츠와 여성을 소모적으로 써버린 영화에 실망만 가득 남는다.

 

에디터 띵양: 게으른 영화의 연속이다. 마동석 ‘빨’로 흥행을 바란 [챔피언]과 마찬가지로 [레슬러]는 나태하게도 유해진만을 믿고 달려가는 기차와 같은 작품이다. 문제는 유해진조차도 갈팡질팡하는 이 영화를 살리지 못했다. [레슬러]는 “부자간의 갈등”이라는 좋은 소재를 가지고 한국 현실에 맞춘 [레이디버드]가 될 수 있었다. ‘아내와의 사별 이후 자식에게 자신의 꿈을 강요하는 아버지와 원치 않는 삶을 사는 아들의 이야기’를 상식적으로 그려냈으면 좋은 작품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레슬러]가 택한 방식은 상식 밖이다. 아들과의 갈등을 위해 삽입한 요소가 ‘짝사랑하는 동네 친구가 아빠를 사랑한다’라니… 이 설정이 추가되면서 영화는 결말을 향해 달려가면서도 이야기는 쳇바퀴 돌 듯이 진전이 없다. 천하의 유해진이 살리지 못할 정도면 이 영화는 말 다했다. 사무엘 L. 잭슨의 명언이 머릿속에서 맴돈다. “오 어머니…”

 

에디터 H: 이 영화는 스포츠 영화가 아니다. 제목은 [레슬러]이지만 레슬링을 하는 장면은 절반도 채 나오지 않는다. 여느 스포츠 영화를 기대하고 본다면 실망하게 될 것이다. 이 영화는 스포츠 영화의 탈을 쓴 로맨스물에 가까운데, 그마저도 얌전하게 그려진 아침드라마처럼 이야기가 흘러간다. 넉살 좋은 아버지와 까칠한 아들의 관계를 현실적으로 그려내려고 노력했으나, 부자간이 갈등하는 이유를 묘사하는 과정에서 판타지 영화가 되어버렸다. 그래도 한 가지 좋았던 것은 성소수자를 자연스럽게 등장시켰다는 점. 그것뿐이다. 아, 그리고 쿠키 영상이 있다.

 

이미지: (주)엣나인필름

 

에디터 Jancita: [보리 vs 맥켄로]는 테니스 경기 역사상 치열했던 세기의 대결을 선택해 코트에 선 두 선수의 내면에 집중한다. 두 선수를 대표하는 얼음과 불의 이미지를 극명하게 대비하며 승리를 향한 집념이 낳은 자신과의 싸움을 치열하게 담아낸다. 실제 경기 결과와 상관없이 지키려는 자와 도전하는 자를 지배하는 불안과 중압감은 영화 내내 숨 막히는 긴장을 연출한다. 후반부 드디어 맞붙은 두 선수의 박진감 넘치는 경기는 당연 압도적이지만, 겉보기에 전혀 다른 두 선수가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냉정한 스포츠 세계에서 펼치는 외롭고 고단한 사투가 안기는 감동이 더욱 뜨겁고 단단하다. 혼을 불태우는 배우들의 연기는 말할 것도 없으며(특히 샤이아 라보프), 현재와 과거, 냉정과 격정의 상반된 온도를 침착하게 주무르는 감독의 연출 솜씨에 단 한순간도 눈을 뗄 수 없다.

 

에디터 겨울달: 스포츠 경기는 그 어떤 드라마나 영화보다 더 극적이기에, 스포츠 영화는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으로 차별화된다. [보리 vs 매켄로]는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1980년 윔블던 결승전, 비외른 보리와 존 매켄로의 경기를 스릴러로 푼다. 경기를 현장감 있게 그리는 것은 물론, 인생 최대의 경기를 앞둔 두 선수가 지금까지 무엇을 버리고 감내했는지도 긴장감 가득한 연출로 담아낸다. 절대 흔들리지 않는 ‘아이스맨’ 보리와 모든 사람들의 미움을 받는 ‘악동’ 매켄로, 표면으로는 완전히 다른 두 사람의 내면을 영화는 집요하게 파고들어, 코트의 주인공 두 사람뿐 아니라 관객들도 그들에게서 테니스를 정말 사랑하는 스포츠인의 모습을 발견한다. 배우들의 연기는 다들 훌륭하지만 샤이아 라보프는 특히 돋보인다. 영화는 보리의 이야기에 비중을 더 두지만, 라보프의 연기와 존재감은 영화를 ‘챔피언의 고뇌’가 아닌 ‘세기의 경쟁’으로 축을 옮겨놓는다.

 

에디터 띵양: 영화의 주제를 스포츠로 삼으려면 이렇게 해야 한다. [보리 vs 매켄로]는 긴장과 탄성의 연속이다. 이 영화는 관객을 1980년의 윔블던으로 데려가는 듯한 마법을 부린다. 이미 40년 전에 펼쳐진 명승부지만, 두 배우의 손 끝에서 공이 떠날 때마다 승부의 결과는 잊은 채 숨을 죽이고 지켜보게 된다. 이러한 연출만으로도 스포츠 영화가 가진 매력을 충분히 어필했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다. [보리 vs 매켄로]는 두 선수의 심리를 완벽하게 그려나가면서 이들이 어떤 심정으로 경기에 임했는지를 관객에게 고스란히 전달한다. 그렇기에 승부가 판가름 나는 순간, ‘냉철한 챔피언’ 비외른 보리가 느꼈을 안도와 기쁨, ‘불같은 도전자’ 존 매켄로의 아쉬움에 더욱 몰입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었다. 개인적으로 [당갈]과 함께 올해의 스포츠 영화라고 봐도 될 정도로 만족스러운 작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