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Jacinta

 

 

때때로 ‘내가 만약 그때 그랬더라면’이라는 자조 섞인 후회에 사로잡힐 때가 있다. [안녕, 나의 소녀]는 솔직한 마음을 외면하다 첫사랑을 잃어버린 남자 ‘정샹’의 후회에서 시작하는 영화다. 슬픔과 후회만 남은 현재에서 우연한 계기로 20년 전 과거로 돌아가 첫사랑 ‘은페이’를 지키기 위한 고군분투 속에 잃어버린 꿈과 자아를 찾아가는 성장통을 담아낸다.

 

 

이미지: 오드

 

정샹과 친구들은 은페이의 장례식에서 마주한다. 정샹은 학창 시절 모두에게 사랑받았던 은페이의 쓸쓸한 죽음이 유독 슬프다. 그의 기억엔 몇 해 전 일본 출장길에서 만난 은페이의 모습이 생생하게 남아있어 더욱 절절한 후회만 가득하다. 비통한 마음이 통하기라도 했는지 정신을 잃고 쓰러진 후 다시 눈을 뜨니 은페이의 미래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오디션을 앞둔 1997년이다.

 

달달한 청춘 로맨스일 것 같은 [안녕, 나의 소녀]는 뜻밖의 사건으로 가슴을 철렁 내리 앉히며 시작한다. 하지만 비극적인 사건 뒤에 찾아온 ‘타임슬립’은 친숙한 풍경으로 풋풋한 첫사랑과 학창 시절의 추억을 단숨에 소환한다. 어딘가 촌스러워 보이는 교복 패션과 추억의 게임이 즐비한 오락실, 90년대 막강한 인기를 누렸던 J-POP 스타 아무로 나미에, 다마구치를 손에서 놓지 않는 아이, 대형 전광판이 없는 도심은 정겨운 풍경을 연출한다. 과거는 어두운 현재를 복원하는 동시에 자칫 어둡게 흘러갈 수 있는 극의 무게를 덜어내는 역할을 한다.

 

이제 무기력하게 살아가던 30대 직장인에서 하루아침에 20년 전 고교생이 된 정샹에게 3일이라는 짧은 기간이 주어진다. 그는 아무것도 모르는 친구들 사이에서 첫사랑의 운명을 바꾸려 한다. 그렇지만 영화는 과거로 돌아가 첫사랑을 구한다는 뻔한 설정의 로맨스로 향하지 않는다. 1997년으로 돌아온 정샹의 목적은 분명하지만, 딜레마를 안고 있기 때문이다. 은페이의 미래를 구하려면, 꿈을 포기하도록 해야 한다. 촉박한 기간은 여유로운 해법을 찾을 시간을 주지 않기에 극단적인 해결책이 가장 빠른 구원책 같아 보인다. 꿈과 첫사랑 모두 구할 수 없는 정샹과 은페이, 친구들 사이에 내재된 불안한 관계는 마지막 반전으로 흘러가기까지 영화에 몰입하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이미지: 오드

 

과거와 반전을 잇는 개연성은 다소 부족해도 향수 어린 복고 감성과 운명을 바꾸려는 시도는 역시 흥미롭다. 특히 정샹이 처한 딜레마는 결말을 궁금하게 하면서도 관객을 고민에 빠뜨린다. 정샹의 행동을 두둔하자니 꿈을 향해 노력해온 은페이에게 가혹해 보이고, 그렇다고 운명을 바꾸려는 시도를 탓할 수도 없다. 영화는 어느 쪽도 마음 편히 지지할 수 없는 정샹의 시도를 꿈에 부푼 은페이의 모습과 대비해서 비추며 숨은 이야기를 꺼내 든다. 단순히 비극으로 끝날 운명을 되돌리려는 시도에 머무르지 않고, 그 시절 잃어버린 순수한 꿈을 수면 위로 끌어올린다. 정샹은 미래를 구한다는 명분 하에 미처 마음 쓰지 못했던 은페이의 꿈을 뒤늦게야 바라보며, 그 자신 역시 놓쳐버린 학창 시절의 꿈을 자각한다.

 

만약 [안녕, 나의 소녀]에서 간질간질한 로맨스 감성을 기대했다면 다소 아쉬울 수 있다. 영화는 풋풋한 첫사랑의 감정보다 친구들과의 우정과 꿈을 향한 열망에 좀 더 치우쳐 있다. ‘타임슬립’은 이어지지 못했던 첫사랑을 연결하는 매개체가 되기도 하지만, 꿈이란 인생의 소중한 가치를 돌아보게 하는 계기로 작용한다. 반전에 치우친 후반부의 허술한 전개에 아쉬움이 들다가도 마음이 가는 까닭은 인생에서 꿈이 차지하는 가치를 잘 알기 때문이 아닐까. 게다가 영화 내내 무공해 매력을 뽐내며 싱그러운 청량감을 더하는 류이호와 송운화, 두 청춘스타의 호흡과 매력도 무시할 수 없다. 아련한 마음의 공감대를 자아내는 [안녕, 나의 소녀]가 대만 청춘 영화의 계보를 이을 수 있을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