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빈상자

 

 

5월 19일 오후 7시, 프랑스 칸 뤼미에르 대극장에서 열린 폐막식을 끝으로 제71회 칸국제영화제(이하 ‘칸영화제’)가 막을 내렸다. 칸영화제 최고의 영예인 황금종려상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만비키 가족(万引き家族)]에 돌아갔다. 심사위원 대상은 스파이크 리 감독의 [블랙클랜스맨(BlacKkKlansman)]이 수상했다. 한편 상영 직후 최고의 평점을 받으며 수상이 기대되었던 이창동 감독의 [버닝]은 폐막식과는 별도의 행사에서 국제영화비평가연맹상을 수상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시작 전부터 폐막 후까지, 올해 칸영화제를 둘러싼 주요 이슈들을 돌아봤다.

 

 

 

1. 논란의 연속, 라스 폰 트리에의 귀환

 

이미지: 2018년 칸국제영화제

 

2000년 [어둠 속의 댄서]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던 덴마크의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이 7년 만에 칸영화제에 돌아왔다. 라스 폰 트리에는 2011년 칸영화제에서 [멜랑콜리아]를 선보이기 앞선 기자간담회에서 “나는 나치다”, 그리고 “히틀러를 이해한다”는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켰다. 그 이후 라스 폰 트리에는 지금까지 칸영화제 ‘기피인물(persona non grata)’로 남아 있었다.

 

 

이미지: 2011년 칸국제영화제

 

그의 영화가 그렇듯이 평소에도 도발적이고 즉흥적인 언행으로 유명한 라스 폰 트리에는 당시 기자간담회 말미에 한 기자로부터 독일계 혈통에 관한 질문을 받았다. 이에 긴 대답을 이끌어가던 그는 귀찮은 듯 “그래, 나는 나치다”, 이이서 “벙커에서 혼자 죽은 히틀러가 안됐기도 하다”라고 말했다. 논란이 되자 직접 사과도 하고 [멜랑콜리아] 출연 배우들까지 감독 변호에 나섰지만, 유럽에서 금기 중의 금기를 건드린 대가는 컸다.

결국 칸영화제가 사랑했던 라스 폰 트리에가 영화제로 돌아오는 데는 7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이번에도 그의 귀환은 쉽지 않았다. 2011년의 그의 ‘나치 옹호 발언’의 여파가 아직까지도 있는 데다 작년에는 그에 대한 성추문 폭로까지 있었다. 고발자는 바로 그에게 황금종려상을 안겼던 [어둠 속의 댄서]의 주인공, 배우 겸 가수 비요크였다.

 

 

이미지: (주)엣나인필름

 

7년 만에 라스 폰 트리에가 칸영화제에 가져온 영화 [더 하우스 댓 잭 빌트(The House That Jack Built)]도 논란이 된 그의 복귀에 도움이 되지 못했다. 영화는 과도한 잔혹성과 폭력 묘사로 큰 논란을 일으켰다. 연쇄살인범의 유년기와 12년 간에 걸친 살인 행적을 담은 영화를 상영하는 도중에 관객 100여 명이 영화의 잔혹한 장면을 견디지 못하고 퇴장했다. 또한 영화 속에서 동물에 대한 어린 배우의 잔혹한 행위가 논란이 되기도 했다. 이에 대해서는 동물보호단체 페타(PETA)가 촬영 중 동물에 대한 학대는 없었다고 해명하기도 했으나 관객들의 불편함 마음은 쉽게 걷히지 않았다.

 

 

 

2. 빈 손으로 와서 (거의) 빈 손으로 간 넷플릭스

 

하지만 올해 칸영화제를 시작하기 앞서 가장 큰 주목을 받은 이슈는 라스 폰 트리에도 황금종려상 유력 후보작도 아닌, 칸영화제와 넷플릭스 사이의 갈등이었다. 작년에 있었던 온라인 영화의 경쟁부문 초청에 대한 논란은 올해 칸영화제가 경쟁부문에 온라인 영화의 초청을 중단하는 조치로 이어졌다. 이에 넷플릭스는 경쟁부문뿐만 아니라 모든 부문에서 자사 영화를 거둬들이며 강경하게 대응했다.

지난 4월 넷플릭스의 ‘철수’ 결정이 나온 이후로도 칸영화제의 티에리 프레모 집행위원장은 여전히 넷플릭스 영화를 칸영화제에서 보고 싶다며 대화의 여지를 열어놓았다. 이에 영화제가 시작하기 전 극적 타결이나 협상이 나올 수도 있다는 희망이 있었지만, 결국 넷플릭스는 결정을 번복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로마], 폴 그린그래스 감독의 [노르웨이], 무엇보다 마침내 완성된 오손 웰스의 미공개 유작 [바람의 저편]을 칸영화제에서 볼 수 있었던 기회는 사라졌다.

 

 

이미지: 2018년 칸국제영화제

 

다만 자신들이 제작한 영화를 모두 거둬들인 넷플릭스가 대형 배급사의 역할까지 포기한 것은 아니다. 넷플릭스는 최근 어느 영화제에서든 가장 큰 돈가방을 들고 필름마켓에 나타나는 배급사 중 하나다. 이번에도 26명의 직원들을 보내 기대작들의 배급권 확보에 나섰다. 하지만, 이번 칸영화제에서 넷플릭스가 아무리 두꺼운 봉투를 흔들어도 많은 제작사들의 마음을 흔드는 데는 실패한 듯하다.

 

 

이미지: 포커스피쳐스

 

영화제 시작 전부터 관심을 받은 [버즈 오브 패시지(Birds of Passage)], [에브리바디 노우즈(Everybody Knows)], [아크틱(Arctic)]과 같은 기대작들이 모두 넷플릭스의 거액을 거절하고 상대적으로 더 작은 배급사의 손을 들어주었다. 영화제에서 공개된 영화 프로젝트 [355] 역시 넷플릭스의 손길을 거절했다. 모든 권한을 넘기고 극장 개봉을 (거의) 포기하는 것보다 제작사들은 자신들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작은 배급사들을 선호하는 경향이 짙었다. 결국 넷플릭스는 단 한 편, 애니메이션 [넥스트 젠(Next Gen)]의 배급권을 3천만 달러에 구매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3. 이제 때가 되었다, 타임스업

 

막상 칸영화제가 시작되자 넷플릭스 이슈는 빠르게 잊혔다. 대신 전 세계 미투운동의 진앙지가 영화계였던 만큼 칸영화제에서도 미투운동과 여성 영화인에 대한 차별개선이 뜨거운 이슈가 되었다. 변화에 적응하려는 듯 칸영화제도 고민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우선 이번 영화제 심사위원 9명 중 과반수 이상인 5명을 여성이었고, 심사위원장 자리도 호주 출신의 배우 케이트 블란쳇에게 맡겼다. 케이트 블란쳇에게 심사위원단의 ‘다양성’을 약속했던 칸영화제는 성범죄 신고 전용 핫라인도 신설했다. 하지만 칸영화제가 작년 성추행 논란이 있었던 라스 본 트리에 감독의 복귀를 허용하고, 5월 초 미국 아카데미위원회가 제명한 로만 폴란스키 감독에 대해 미적지근한 태도를 취하면서 칸영화제의 진정한 변화에 의구심을 거둬들이지는 못했다.

 

 

이미지: 2018년 칸국제영화제

 

결국 이번 칸영화제에서 미투운동과 성평등에 관해 가장 의미 있는 장면은 영화제 자체보다 심사위원장인 케이트 블란쳇의 주도로 완성되었다. 케이트 블란쳇은 레드카펫 행사장에 제인 폰다, 아녜스 바르다, 셀마 헤이엑, 크리스틴 스튜어트, 패티 젠킨스를 포함한 82명의 여성 영화인들과 함께 등장했다. 82명은 71년 칸영화제 역사 중에 경쟁부문에 초청되었던 82명의 여성 감독을 상징한다. 같은 기간 경쟁부문에 초청된 남성 감독의 수는 1,688명에 이르며, 이번에도 경쟁부문 21편의 영화 중에서 여성 감독의 영화는 3편에 불과하다. 그리고 칸영화제 최고의 영예인 황금종려상을 받은 여성 감독은 1993년 [피아노]의 제인 캠피온이 유일하다.

 

 

이미지: 2018년 칸국제영화제

 

폐막식에서는 깜짝 미투 고발도 있었다. 이탈리아의 감독 겸 배우인 아시아 아르젠토는 자신이 21살이었던 1997년 바로 여기 칸에서 하비 와인스타인에게 강간당했다는 충격적인 고백을 했다. 또한 지금 폐막식에 자리한 사람 중에도 이 자리와 영화계에 있을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 있다며 강하고 직설적인 메시지를 던졌다.

 

 

 

4. 아시아 영화의 선전, 그리고 여전한 장벽

 

올해 칸영화제에서는 특히 아시아 영화가 강세를 보였다. 결국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만비키 가족(万引き家族)]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외에도 경쟁부문에는 칸영화제와 이미 좋은 인연을 맺고 있는 감독들이 많았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칸영화제 경쟁부문에만 5차례 초청을 받았다. 칸영화제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로 심사위원상을, [아무도 모른다]로는 당시 14세 소년에게 남우주연상을 안기기도 했다.

 

 

이미지: CGV아트하우스

 

이창동 감독의 [버닝]에 기대가 모아졌던 이유도 그의 이전 영화들의 칸영화제와의 화려한 전적 때문이기도 했다. 그의 전작 [시]는 각본상을 수상하고 [밀양]으로는 전도연이 여우주연상을 받으면서 연속으로 경쟁부문에 진출하고 상을 거두기도 했다. 이에 3회 연속 수상에 대한 기대가 높아졌던 것도 사실이다.

경쟁부문에는 이외에도 지아 장커 감독의 [강호아녀(江湖兒女)],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아사코 I&II(寝ても覚めても)], 이란의 자파르 파나히 감독의 [쓰리 페이스(Three Faces)], 레바논의 나딘 라바키 감독의 [가버나움(Capernaum)], 그리고 카자흐스탄의 세르게이 드보르체보이의 [마이 리틀 원(Ayka)]이 포함됐었다. 경쟁부문 21편 중 무려 8편이 아시아에서 온 영화였다. 이중 [만비키 가족]의 황금종려상 외에도, [가버나움]이 심사위원상을, [쓰리 페이스]가 각본상을, 그리고 [마이 리틀 원]의 사말 예슬리야모바가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이미지: 아오이

 

하지만 아시아 영화들에게 칸영화제의 높은 장벽은 여전히 존재한다. 21세기 들어 아시아 영화가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경우는 이번 [만비키 가족]과 2010년 태국 아피찻퐁 위라세타쿤 감독의 [엉클 분미]가 유일하다. 일본영화가 황금종려상을 받은 것도 1997년의 [우나기] 이후 21년 만이며, 아직 한국영화는 황금종려상과의 인연을 맺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