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일러콘텐츠은 ‘벌쳐’와 리프린트 계약을 맺고, 독자 여러분께 추천할 만한 콘텐츠를 번역합니다

 

translated by. Jude

written by. Jen Chaney

 

이미지: (주)영화사 오원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은 사랑스러운 요소들이 많은 놀랍고도 희망적인 영화다. 톰 행크스는 가장 ‘톰 행크스’다웠고, 맥 라이언의 로맨틱 코미디 파워는 정점이었으며, 사운드트랙은 달달함 그 자체다. 각본도 함께 쓴 감독 노라 애프론은 그녀만의 풍자적인 위트와 뛰어난 관찰력으로 감수성의 정점을 찍었다. 당시 아역이었던 가비 호프만은 소셜 미디어가 등장하기 이전이었음에도 SNS 시대에 알맞은 축약어를 쓰고 (예를 들어 “천생연분이다(made for each other)”라는 말을 “MFEO”라 줄여 썼다), 리타 윌슨은 자신의 감정 분출을 표현하기 위해 [어페어 투 리멤버]의 줄거리를 이야기하기도 한다.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은 정말 대단하다. 만약 이 영화가 [유브 갓 메일]보다 별로라고 한다면, 입을 다물도록 하자. 틀렸으니까.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은 1993년 6월 25일 개봉 이후 25주년을 맞이했다. 그해 최고 수익을 올린 영화 중 하나로 남아있는 영화에서 우린 가장 골칫거리이자 더불어 가장 큰 영향을 받는 캐릭터를 알아줘야만 한다. 그는 바로 월터(빌 풀먼)다. 그는 발렌타인 데이에 약혼자(맥 라이언)가 어떤 남자(톰 행크스)와의 인연을 알아보려고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꼭대기로 떠나면서 버림받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월터는 이 모든 상황에 크게 개의치 않는다.

 

이미지: (주)영화사 오원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은 애니처럼 정상적이며 실용적인 사람이 톰 행크스의 목소리만으로 사랑에 빠진다는 전개를 다소 급하게 진행한다 – [토이 스토리]에서 우디의 목소리를 듣고 그에게 반한 밀레니얼 세대도 있을 테니 어느 정도 공감은 될 것이다 – 그녀가 고전 로맨스 영화에 일생 동안 세뇌되면서 그런 웅장하고도 영화 같은 로맨스가 아니면, 그저 절충안처럼 느낀다는 점도 말이다.

 

비록 영화는 그러한 그녀의 태도를 망상이라고 말하지만 – “넌 사랑에 빠지고 싶은 게 아니야. 넌 그저 영화 같은 사랑이 하고 싶은 것뿐이야.”라고 애니의 절친 베키(로지 오도넬)가 말하듯 – 결국에는 애니가 옳았다고 증명해버린다. 고전 영화 채널에서만 볼 수 있을 것 같은 관계는 현실에서도 충분히 가능하다. 약간의 고집과 스토킹, 그리고 [어페어 투 리멤버]에 대한 병적인 집착과 볼티모어에서 온 애니를 사별한 아버지의 운명이라 확신하는 한 고집스러운 아이의 도움만 있다면 말이다.

 

또한 빌 풀먼이 안정감 있게 소화한 약혼자 월터를 망치는데 아무런 죄책감이 없어야 한다. 월터는 여자 주인공이 자신의 마음에 불을 지피는 다른 상대를 만나기 위해 버림받는 착하고 따분한 남성 캐릭터의 전형이다. (이에 해당하는 다른 캐릭터로는 [그리스]의 로렌조 라마스, [문스트럭]의 대니 아이엘로, 바즈 루어만이 연출한 [로미오와 줄리엣]의 폴 러드, [노트북]과 [슈퍼맨 리턴즈], [마법에 걸린 사랑]의 제임스 마스던이 있다. 2000년대 중반, 제임스 마스던이 차인 횟수를 보면 놀라울 정도다)

 

엄밀히 따지면, 빌 풀먼은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 이후 [당신이 잠든 사이]에서 산드라 블록을 매혹하고 피터 갤러거로부터 떼어내며 자신만의 복수를 해냈다. 그렇지만 그의 캐릭터 월터는 이후에도 마땅한 대우를 받지 못했다. 이제 25년이 지난 지금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에서 그의 관점을 한 번쯤 고려해볼 만도 하다. 단 1초라도 다시 생각해봤을 때 그를 그저 알레르기가 잔뜩 있고 애니와의 관계에 만족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캐리 그란트를 꿈꾸는 애니처럼 망상에 빠진 것이다.

 

이미지: (주)영화사 오원

 

월터는 애니의 가족들과 첫인사를 나눌 때 처음 등장한다. 크리스마스 이브 저녁, 애니는 우디 앨런 영화에서 튀어나온 듯한 백인 상류층의 딱딱한 사람들 앞에서 그들의 약혼 소식을 발표한다. 몇 초 후 애니의 아버지는 그들의 집 정원에서 식을 올리라고 주장하며, 연회식 메뉴를 줄줄이 늘어놓기 시작한다.

 

월터는 이 모든 일에 정중하면서도 한 치의 실수도 저지르지 않는다. 동시에 그는 애니의 가족 구성원 모두에게 거부감을 느끼기 시작한다. 솔직히 월터가 이 사람들, 특히 벌을 죽도록 무서워하는 애니의 친척 해롤드와 평생 동안 관계를 맺으며 살고 싶었을까? 절대 아닐 것이다. 그가 영화 [야구왕 루 게릭]에서 루 게릭의 대사를 인용했을 때 아무도 이를 이해하지 못하자 구성원 한 명 한 명 모두가 싫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럼에도 그는 좋은 사람이고 애니를 사랑하기 때문에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1993년에는 이러한 그의 장점이 평가절하됐지만, 모두가 악랄한 2018년에 이는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장점이다. 참 안타깝다. 그는 친절함이 귀한 가치가 된 시대 이전부터 친절한 사람이었다.

 

그는 사려 깊으면서도 부담스럽지 않은 선에서 로맨틱한 행동을 취하고자 노력한다. 예를 들어 발렌타인 데이 주말에 애니에게 뉴욕에서 만나자고 하며, 플라자에 머물며 함께 웨딩 접수를 하러 가자 한다. 맨하튼의 가장 좋은 호텔에 데려가고 싶어하고, 티파니에서 도자기를 쇼핑하는 걸로도 흥분하는 남자에게 “아니야, 난 그래도 라디오에서 아내와 사별했다고 말하는 그 남자가 내 짝인 것 같아.”라고 말한다고 상상해보아라.

 

월터는 완벽한 사람이 아니다. 본인도 인정할 만큼 꽤 단순한 사람이다. 게다가 어떤 이유에서든 딤섬이 무엇인지 모른다. 따지고 보면 톰 행크스가 연기한 샘 역시 티라미슈가 무엇인지 전혀 모른다. 두 남자 모두 입문용 이국 음식에 대해 아는 것이 없는 편이다. 그렇지만 월터는 언제나 애니를 위하는 사람이다. 사실 그는 생각보다 꽤 매력적이다. 영화 [클럽 싱글즈]에서 본 것처럼 그의 머리를 헝클어뜨리고 “자, 이제 조금 더 멋있어졌네요.”라고 말한다면 빌 풀먼은 갑자기 굉장히 섹시하게 변할 것이다. 애니는 그의 머리를 헝클어뜨릴 마음조차 들지 않았다.

 

한편 월터가 애니에게 충분하지 못했다는 주장도 있다. 그가 옆에 있었다면, 애니가 시애틀의 수상가옥에 사는 한 남자에게 집착하고 있음을 눈치채고, 두 사람의 사랑을 불 지피기 위한 어떤 행동이라도 취했을 거란 게 이유다. 하지만 월터는 애니에게 이상한 낌새를 눈치챘음에도 그들의 관계에 자신이 있었기 때문에 그녀를 존중해준 것이라 생각한다. “크리스마스 이후” 영화 3막에서 서로 재회했을 때, 그녀가 어딘가 산만해졌다는 것을 눈치채지만 “어딘가로 다녀왔다가 제자리로 돌아왔다”라고 인지한다. 애니는 이미 그의 프로포즈를 승낙했으니 이 단계에서 그녀에게 구애할 필요는 없었다. 만약 애니에게 의혹이 생겼다면, 월터와 의논하고 해결해 나갔어야 했다. 그러나 애니는 단 한 번도 그러지 않았다. 그녀는 월터에게 결혼에 대해 한 번이라도 불안한 적이 있는지 물어보는데 그는 “아니”라고 답한다. 월터는 어떤 일에도 흔들려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한편 월터가 애니를 만나는 시간 외에 무엇을 하는지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눈치챘는가? 내 짐작에 그는 슈퍼히어로이며, 우리는 그가 스파이더맨과 팀을 이뤄 범죄를 물리친다는 역사상 가장 야심 찬 크로스오버를 알 권한이 없었던 것뿐이다. (그게 아니라면 그가 왜 그렇게까지 뉴욕을 가고 싶어 했겠는가?)

 

어쨌든 애니는 그들의 관계를 다소 불확실하게 느끼지만, 그녀의 감정은 다 정리됐고 이제는 행복하다고 말한다. 이 시점에서 둘은 서로 너무나 잘 통해서 그들의 흉측한 도자기에 필요한 식기 세트 개수를 동시에 맞추고, 바로 티파니에 가기로 합의한다. 로맨스에 관련된 옛 속담 중에 이런 말도 있다. 당신이 결혼식 하객들에게 사라고 하고 싶은 것을 똑같이 과소비하라 하고 싶어 하는 남자가 있다면 그를 잡아야 한다. 애니는 그런 남자를 만난 것이다. 그녀는 그의 진가를 알아보지 못했다.

 

 

이미지: (주)영화사 오원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에서 가장 터무니없는 문제로 넘어가기 전, 모두가 외면하는 영화의 중요한 문제를 짚고 가려한다. 월터는 애니가 기자로 있는 ‘볼티모어 선’에서 공동 편집자로 일하고 있다. 그가 그녀의 직속 상사라는 뜻은 아니다 – 엄밀히 따지면 둘은 같은 부서에서 일하고 있지 않다 – 그렇지만 둘은 동료이며 그가 애니보다 직급이 더 높다. 애니의 동기들은 이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그녀가 특혜를 받는다고 생각할 수 있는 상황이다. 영화는 이 문제에 관해 언급하진 않지만 – 만약 그런다면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될 수도 있다 – 이는 단조로워 보이는 둘의 관계에 자극을 줄 수 있는 지점이기 때문에 짚고 넘어가야 한다. 또한 신문사의 재정 방식에 걱정하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약혼자가 기사 연구를 위해 왜 시카고(실제론 시애틀)로 파견되는지 궁금해해도 합당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비록 1990년대는 신문사가 번창할 때였지만 그럼에도 이는 꽤나 큰 사치다. 애니의 편집자이기도 한 베키는 애니가 결혼할 사람을 바람 맞히고 싶은지 아닌지 확인할 수 있도록 그녀의 출장비를 쉽게 내주니 이해관계에 있어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내 말은, 만약에 월터가 다른 타입의 남자였다면 베키를 대면했을 수도 있다. 1990년대 콘텐츠 관리 시스템을 원시적인 방법으로 파헤쳐서 애니가 어떤 기사를 준비하고 있는지, 그녀가 실제로 어디로 가는지를 알아냈을 수 있다. 이는 애니나 할 만한 행동이다. 월터는 그러지 않는다. 그는 자신과 결혼할 사람을 믿기 때문이다.

 

이제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 중 일부만 드러나는 가장 최악의 문제로 넘어가 보자. 바로 애니가 파혼을 요구하며 ‘샘’이라는, 계속 강조하자면, 단 한 번도 만나보지도 알지도 못하는 남자를 연모하고 있다고 말하는 순간이다. 이 시점에서 월터는 그녀와 결혼할 준비를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녀를 위해 티파니에서 자기 어머니의 반지 치수를 조절하고 화려한 레스토랑에서 비싼 와인을 사기도 했다. 그는 충분히 분노하며 애니의 머리에 샴페인을 붓고 주저앉아서 흐느낄 권리가 있었다.

대신에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난 너에게 그저 그렇게 만족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 다른 누구에게도 그저 만족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 결혼은 그런 낮은 기대를 안고 오지 않아도 충분히 힘든데 말이야, 그렇지?”
그는 침착했다. 그는 이성적이었다. 그는 그 누가 예상한 것보다 성숙했다.
“월터” 애니가 말한다. “당신은 내게 과분한 사람이야” 애니가 영화 내내 한 말 중 가장 정확한 말일 것이다.
월터는 웃으며 칭찬을 받아들이고는 관객이 더욱 만족할 수 있는 환경에서 [톰 행크스의 볼케이노(Joe Versus The Volcano]]의 동료 배우를 만나러 애니가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으로 달려가는 걸 허락한다.

 

그는 겉으론 괜찮다 하지만 속으론 격노하고 상심했을 것이다. 애니는 아내를 잃은 한 남자와 사랑에 빠졌을 수 있지만 자신도 모르는 사이 월터의 아내가 되겠다는 약속을 파한 것이나 다름없다. 월터가 결혼할 기회를 얻기도 전에 그를 일종의 홀아비로 만든 것이다.

 

동시에 난 그가 약간은 안심했을 거란 생각도 든다. 2달 넘게 그의 약혼자가 한밤중에 옷장에 처박혀 대형 카세트 라디오를 껴안고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그는 그 어느 때보다 서로 가깝게 느껴져야 하는 때에 서로 점점 멀어지고 있음을 알아챘다. 그는 그녀 부모님의 집에서 결혼식을 올리며 차가운 연어를 먹어야 한다는 것을 천천히 깨달았다. 그녀의 아버지가 어떤 이유 때문인지 차가운 연어는 수준 높은 결혼식에서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월터는 차가운 연어를 매우 싫어한다. 그는 또한 애니가 매일 밤 입는 볼품없는 잠옷도 싫어한다. 더 말하자면 애니는 월터가 재채기하고, 코를 골고, 온갖 제습기와 티슈를 들고 다니는데도 그의 알레르기에 대해 단 한 번도 걱정한 적이 없다. 예를 들어 “혹시 침술사를 만나볼 생각한 적 있어? 내가 좋은 분 찾을 수 있을지 알아볼게.”라고 그녀는 말했어야 했다. 하지만 애니는 한 번도 그런 적이 없다.

 

비록 애니와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은 월터를 형편없이 대했지만 ‘지구상에서 가장 운이 안 좋은’ 이 남자에게 너무 미안해하지 않아도 된다. (다시 말하듯 이는 루 게릭의 인용문이다. 월터와 내가 이에 대해 몇 번을 설명해줘야 하나?) 그는 발렌타인 데이에 화려한 레스토랑 한가운데서 자신이 그녀의 환상에 걸맞지 않는단 이유로 차였을 수 있다. 그렇지만 진실을 말한다면 그는 그녀와 결혼하지 않는 것으로 가장 큰 총알을 피한 것이다.

 

 

This article originally appeared on Vulture: Let’s Reconsider Sleepless in Seattle From Walter’s Perspective

© 2018 All rights reserved. Distributed by Tribune Content Agency

 

저작권자 ©테일러콘텐츠,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