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Jacinta

 

지난 13일, 한해 미국 드라마를 정리하는 제70회 에미상 후보가 발표됐다. 매년 후보를 발표할 때마다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깜짝 후보가 나오거나 혹은 기대와 달리 지명받지 못해 아쉬움을 남기기 마련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이 같은 풍경이 반복됐다. 단순히 후보 지명을 둘러싼 이변을 넘어 달라지는 방송 산업을 반영하는 결과가 나왔다는 점에서 오는 9월 열리는 시상식 결과 여부에도 관심이 쏠린다. 바로 스트리밍 서비스의 달라진 위상이다. 이미 지난해 훌루의 [핸드메이즈 테일]이 예상을 넘은 수상으로 놀라게 한 바 있지만, 올해는 후보 지명부터 부동의 1위 HBO를 넘어섰다. HBO는 [왕좌의 게임]이 복귀했음에도 지난해보다 줄어든 108개 부문에 후보 지명을 받는데 그쳐 112개 부문 후보에 오른 넷플릭스에 선두를 물려주게 됐다. 넷플릭스는 2016년 54개 부문, 2017년 91개 부문에 후보 지명을 받은데 이어 올해는 더 많은 후보를 배출하며 달라진 위상을 드러냈다. 넷플릭스의 어떤 작품들이 미국의 TV 아카데미라 불리는 에미상 후보에 올랐을까? 더불어 좋은 평가에도 선택받지 못한 작품도 있을까?

 

 

 

더 크라운(The Crown)

 

이미지: 넷플릭스

 

‘드라마 시리즈’ 작품상/여우주연상(클레어 포이)/여우조연상(바네사 커비)/남우조연상(맷 스미스)/게스트 남자 연기상(매튜 구드)/감독상(스티븐 달드리)/각본상(피터 모건) 외

엘리자베스 2세를 중심으로 영국의 현대사를 풀어낸 [더 크라운]은 2016년 선보인 이후 평론가들에게 극찬을 받는 드라마다. 영국 왕실의 내밀한 이야기를 기품 있게 다루면서 왕실과 정부의 주요한 사건을 함께 되짚는다. 젊은 시절 여왕을 연기한 클레어 포이는 뛰어난 연기로 배우로서 역량을 주목받는 계기를 마련했다. 지난해 에미상에서는 강력한 경쟁작 [핸드메이드 테일]에 밀려 처칠을 연기한 존 리스고의 수상에 만족해야 했지만, 올해 결과는 어떠할까. 또 내년에는 올리비아 콜먼이 이어받을 영국 여왕의 이야기가 여전히 좋은 평가를 받을 지도 궁금하다.

 

 

 

기묘한 이야기(Stranger Things)

 

이미지: 넷플릭스

 

‘드라마 시리즈’ 작품상/여우조연상(밀리 바비 브라운)/남우조연상(데이빗 하버)/감독상(더퍼 형제)/각본상(더버 형제)

넷플릭스 인기작 [기묘한 이야기] 시즌 2는 작년보다 대폭 줄어든 4개 부문에 후보로 올랐다. 1980년대 미국 정부의 비밀 실험으로 다른 차원과 이어지는 문이 열리면서 벌어지는 사건을 아이들을 중심으로 그려낸 드라마다. 첫 시즌은 공개와 동시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는데, 2017년 에미상에서 무려 18개 부문 후보로 올라 5개 부문에서 수상을 차지할 정도였다. 시즌 2는 지난해 할로윈 시즌에 맞춰 공개됐으며, 친구들을 구하고자 스스로를 희생한 엘이 사라진 1년 후의 이야기를 다뤘다.

 

 

 

그 땅에는 신이 없다(Godless)

 

이미지: 넷플릭스

 

‘리미티드 시리즈’ 작품상/여우주연상(미셸 도커리)/여우조연상(메릿 위버)/남우조연상(제프 다니엘스)/감독상(스콧 프랭크)/각본상(스콧 프랭크)

1880년대 뉴멕시코 광산마을을 배경으로 악명 높은 범죄자 ‘프랭크 그리핀’이 조직을 배반한 로이 굿을 추격하는 내용을 그린 드라마다. 스티븐 소더버그가 제작에 참여하고, [로건]의 각본을 쓴 스콧 프랭크가 연출과 각본을 맡았다. 드라마는 얼핏 서부극의 외형을 갖추고 있지만, 이러한 장르에서 홀대받은 여성 캐릭터를 전면에 배치해 보다 다양한 인간군상의 이야기를 담아내며 좋은 평가를 받았다. 인디언 남편을 잃은 미망인을 연기한 미셸 도커리와 무자비한 범죄자로 출연했던 제프 다니엘스의 탁월한 연기도 드라마의 감상을 풍부하게 한다.

 

 

 

오자크(Ozark)

 

이미지: 넷플릭스

 

‘드라마 시리즈’ 남우주연상(제이슨 베이트먼)/감독상(제이슨 베이트먼, 다니엘 색하임)

마약조직의 돈에 손을 댄 재무 설계사가 그의 가족들과 외딴 휴양지 마을 오자크로 도피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평단의 반응은 조금 인색했지만, 가족을 지키고자 고군분투하는 가장의 이야기는 공개된 지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다음 시즌을 확정하게 할 정도로 시청자를 사로잡았다. 그리고 8월 31일 두 번째 시즌을 앞두고, 제이슨 베이트먼이 남우주연상과 감독상 후보에 동시에 올라 다시 한번 깜짝 놀라게 했다.

 

 

 

글로우(GLOW)

 

이미지: 넷플릭스

 

‘코미디’ 작품상/코미디 여우조연상(베티 길핀)/감독상(제시 페레츠)

1980년대 반짝 인기를 모았던 여성 레슬링 TV 쇼에 모티브를 얻어 난생처음 레슬링에 도전하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유쾌하게 그린 드라마다. 최근 공개된 시즌 2는 #미투운동을 연상시키는 에피소드를 비롯해 링 위에 올라선 여성들의 이야기를 진취적인 시선에서 그려내 찬사를 받았다. 올해 에미상에서 코미디 작품상과 여우조연상 후보에 올랐지만, 드라마에서 온몸을 내던지며 열연한 알리슨 브리가 빠져 다소 아쉬움을 남긴다.

 

 

 

블랙 미러: USS 칼리스터(Black Mirror: USS Callister), 블랙 뮤지엄(Black Museum)

 

이미지: 넷플릭스

 

‘TV 영화’ 작품상/남우주연상(제시 플레멘스)/여우조연상(레티티아 라이트)/각본상(윌리엄 브릿지, 찰리 브루커) 외

다크 앤솔로지 드라마 [블랙 미러]는 매 에피소드마다 기술 발전과 진화가 가져온 사회의 병폐를 어두운 상상력으로 풀어낸다. 총 6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된 시즌 4 중에서 가상현실 게임을 소재로 한 ‘USS 칼리스터’와 어느 여행자의 이야기를 그린 ‘블랙 뮤지엄’이 올해 에미상 TV 영화 부문 후보로 지명됐다. ‘USS 칼리스터’가 [블랙 미러]의 후보 대부분을 차지한 가운데, ‘블랙 뮤지엄’에 출연한 [블랙 팬서]의 레티티아 라이트가 후보에 올라 깜짝 놀라움을 선사한다.

 

 

 

언브레이커블 키미 슈미트(Unbreakable Kimmy Schmidt)

 

이미지: 넷플릭스

 

‘코미디’ 작품상

넷플릭스 정주행 추천작 목록에 어김없이 들어가는 작품이다. 사이비 교주에게 납치당해 15년 동안 지하에 갇혀 지낸 초긍정녀 키미의 유쾌한 뉴욕 적응기라 할 수 있다. 드라마는 밝고 명랑한 캐릭터 키미와 개성 넘치는 주변 캐릭터들을 통해 성담론을 포함한 현대사회의 다양한 문제를 포착해 위트 있게 응수한다. 얼마 전 시즌 4 전반부가 공개됐으며, 기술 스타트업 회사에서 일하는 키미의 직장인 적응기를 담아냈다. 아쉽게도 내년 1월 시즌 4 후반부 공개 이후 종영한다고 한다.

 

 

 

그레이스 앤 프랭키(Grace and Frankie)

 

이미지: 넷플릭스

 

‘코미디’ 여우주연상(릴리 톰린)

[그레이스 앤 프랭키]는 한국 드라마에서 잘 다루지 않는 노년의 이야기를 다룬다. 인생의 황혼기를 맞이한 여성이 주인공이지만, 설정도 진행도 남다르다. 뒤늦게 동성애 사실을 커밍아웃한 남편들과 헤어지고 싱글 라이프를 시작한 두 여성의 우정과 일상이 주요 이야기다. 제인 폰다가 고상한 그레이스를, 올해 에미상 후보에 오른 릴리 톰린이 괴짜 보헤미안 프랭키를 연기한다.

 

 

 

7초(Seven Seconds)

 

이미지: 넷플릭스

 

‘리미티드/TV영화’ 여우주연상(레지나 킹)

넷플릭스는 계속해서 새로운 드라마를 소개하면서도 그만큼 종영에도 가차 없다. 뉴저지 흑인 사회와 백인 경찰들의 이야기를 담은 <7초>는 평단의 호의적인 반응에도 다소 느린 전개 탓인지 시청자들을 완전히 사로잡는데 실패하며 한 시즌만에 캔슬됐다. 그것도 공개된 지 오래 지나지 않아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졌다. 하지만 놀랍게도 이번 에미상에서 주연 배우 레지나 킹이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라 유종의 미를 거두게 되었다.

 

 

 

마인드헌터(Mindhunter)

 

이미지: 넷플릭스

 

게스트 남자 연기상(카메론 브리튼)

올해 에미상은 유명 감독의 드라마에 관심을 주지 않았다. 데이비드 린치의 [트윈 픽스]와 데이빗 핀처의 [마인드헌터]가 바로 그렇다. 그래도 [트윈 픽스]는 각본상과 감독상 후보라도 올랐지만, [마인드헌터]는 연쇄살인마로 출연해 섬뜩한 인상을 남긴 카메론 브리튼이 게스트 연기상 후보에 오른 게 전부다. 에미상이 몰라준 [마인드헌터]는 지독하게 정밀한 프로파일링의 세계를 직조하는 드라마다. 연쇄살인범이 저지른 잔혹한 사건을 재현하는 대신 실존 인물을 토대로 핀처만의 예리하고 정교한 범죄 수사의 세계를 구현해 높은 흡인력을 선사한다.

 

 

 

친애하는 백인 여러분(Dear White People)

 

이미지: 넷플릭스

 

아이비리그에 속한 가상 대학에서 벌어지는 인종차별 이슈를 유쾌하고 신랄하게 풍자하며 비평가들로부터 찬사를 받은 드라마다. 올봄 공개된 두 번째 시즌은 보다 뜨거운 찬사를 받았지만, 인종차별이라는 소재를 불편해하는 시청자들도 많은 편이다. 이 드라마는 유독 비평가와 시청자의 반응이 갈리는데, 그 이유로 인종차별을 역으로 공격하며 평점 테러를 자행하는 일부 백인 시청자들 때문이다. 그럼에도 드라마는 순항하며 세 번째 시즌이 확정됐다. 하지만 에미상 후보에 단 한 군데도 오르지 못했다.

 

 

 

오렌지 이즈 더 뉴 블랙(Orange Is the New Black)

 

이미지: 넷플릭스

 

[오.뉴.블] 팬들은 2018 에미상 후보 리스트를 보고 실망했을지 모른다. 그동안 꾸준히 에미상 후보에 올랐지만, 올해는 후보 리스트에서 제외됐기 때문이다. 물론 그만큼 다른 좋은 작품이 새롭게 나오기 때문이겠지만, [하우스 오브 카드]와 함께 넷플릭스 대표작으로 평가받는 [오렌지 이즈 더 뉴 블랙]이 에미상 후보로 지명받지 못하니 섭섭한 마음도 든다. 내년을 기약하며 곧 공개될 시즌 6을 기다리는 것도 좋겠다.

 

 

 

그레이스(Alias Grace)

 

이미지: 넷플릭스

 

실화에 모티브를 얻은 마가렛 애트우드의 소설을 원작으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살인사건의 범인을 지목된 여성에 관한 드라마다. 어린 나이에 살인범으로 몰린 그레이스는 시대의 희생양일까? 아니면 냉정한 살인마일까? 19세기 초반 남성 중심 사회에서 펼쳐지는 한 살인범의 이야기는 미스터리를 넘어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봐도 흥미롭다. 또한 사라 가돈의 놀랍도록 우아하고 섬세한 연기는 그레이스에게 점차 빠져들던 조던 박사처럼 강한 흡인력을 발휘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에미상은 이 드라마의 존재 여부를 잊고 있었던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