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회 코믹콘 서울이 8월 초 열린다. 작년 1회 행사 전까지 “한국에서 코믹콘이 될까?”라는 우려가 있었지만, 3일 간 약 3만 명이 행사장을 찾으며 성공을 거뒀다. 올해도 에즈라 밀러, 마이클 루커 등 해외 게스트와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공개하며 다시 한번 팬들의 마음을 두근거리게 만들고 있다.

 

한국의 코믹콘은 이제 2회를 맞았지만, 좋아하는 작품과 캐릭터를 함께 나누는 행사는 훨씬 더 오래전 시작됐다. 1942년에서야 이런 행사에 팬 컨벤션(Fan Convention)이란 용어를 붙였고, 이는 곧 ‘콘(Con)’이라는 줄임말로 통하게 된다. 콘은 영화, TV, 만화, 배우, 장르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루지만, 그중 만화와 그와 관련한 예술품을 중심으로 교류하는 코믹북 컨벤션이 가장 활발히 열린다. 코믹북 컨벤션이 점점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갖추고 그 규모도 점점 커지면서 ‘코믹콘’이라는 말이 가장 널리 쓰이게 됐다.

 

이 글에서는 세계의 다양한 콘 중 영화와 TV 시리즈를 중심으로 한 콘들을 모아봤다. 덕후라면 꼭 가봐야 하는 행사부터 팬들이 직접 꾸리는 이벤트까지 다양하다.

 

 

1. 샌디에이고 코믹콘 (Comic-con International, San Diego Comic-con)

출처: Comic-con International 페이스북

미국에서 ‘코믹콘’이라고 하면 바로 샌디에이고 코믹콘을 의미할 만큼 유구한 역사와 영향력을 자랑하는 행사다. 1970년 코믹스 팬들이 개최한 작은 팬 컨벤션으로 시작해 지금은 만화뿐 아니라 SF, 판타지, 공포 등 팝컬처의 중요 미디어 이벤트로 자리 잡았다. “덕후가 죽기 전에 반드시 가야 할” 행사로 꼽히는데, 그만큼 크고 분위기는 시끌벅적하며 무엇보다 티켓 구하기는 하늘의 별따기다. 최근 몇 년간 참가자는 13만 명 내외를 꾸준히 유지했으며 행사의 경제적 영향력은 1억 4천만 달러에 달한다.

 

샌디에이고 코믹콘은 목요일부터 일요일까지 4일간 부스 전시, 패널 행사, 전문가 대담, 팬과 배우와의 만남 등 다양한 행사를 연다. 행사장 샌디에이고 컨벤션 센터뿐 아니라 인근 장소에서도 관련 단체가 전시와 행사를 개최한다. 또한 코믹콘만을 위한 ‘독점’ 상품도 판매된다. 수집가들에겐 평소에 구할 수 없는 독특한 굿즈를 손에 넣을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다.

 

영화와 TV 팬들이 가장 주목하는 곳은 행사 장소 중 가장 넓은 H 홀(Hall H)이다. 이곳에선 그해 각 영화사와 방송사가 푸시하는 대형 영화 및 드라마의 패널이 열린다. 감독, 배우, 제작자 등이 참여해 약 1시간 동안 작품 관련한 인터뷰와 팬들과의 질의응답 시간을 가진다. 영화만을 위한 맞춤 이벤트를 하기도 하고, 영화 트레일러나 이 행사를 위해 특별히 준비한 영상을 공개하기도 한다. 그래서 앞자리에 앉으려고 행사 전날부터 밤을 새우는 팬들이 있을 만큼 호응이 뜨겁다. 지난 주 열린 올해 코믹콘에서는 [아쿠아맨], [신비한 동물사전 2], [베놈] 등 올 하반기 개봉을 앞둔 영화들의 배우, 감독이 팬들과 인사를 나눴다.

 

 

2. 뉴욕 코믹콘 (New York Comic Con)

출처: New York Comic Con 페이스북

뉴욕 코믹콘은 코믹콘 서울을 주최하는 리드팝(ReedPOP) 사가 주관하며, 10월 초중순에 열린다. 샌디에이고 코믹콘이 서부 최대라면, 뉴욕 코믹콘은 동부 최대 코믹콘이라 할 수 있다. 2006년 맨해튼 서쪽 제이컵 K. 재비츠 컨벤션 센터에서 처음 열렸는데, 당시 행사장 수용 규모보다 훨씬 많은 사람이 참여하는 바람에 반나절 동안 행사장을 폐쇄하는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후 12년 간 행사 규모는 더욱 커지고 참가자 수도 그만큼 늘어났다. 2016년 기준으로 18만 명 이상이 다녀가며 현재 미국에서 가장 큰 코믹콘이 되었다. 뉴욕 코믹콘이 샌디에이고 코믹콘과 경쟁한다는 농담이 있는데, 참가자 수만 놓고 보면 뉴욕 코믹콘은 이미 샌디에이고 코믹콘을 이긴 셈이다. 뉴욕 코믹콘도 영화, TV 관련 패널 행사가 있으나 샌디에이고 코믹콘만큼 그 규모가 크진 않다. 대신 참여 셀럽과 팬들은 패널 행사뿐 아니라 사진 촬영과 사인 행사로 좀 더 친밀하고 가까운 거리에서 교류할 수 있다.

 

 

3. 플랫폼/기업 주최 팬 컨벤션

샌디에이고나 뉴욕 코믹콘 행사는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하기엔 좋은 행사이지만, 이때 얻은 반응이 실제 영화 관람이나 TV쇼 시청으로 이어지는지는 확신하기 어렵다. 그래서 최근 TV 채널이나 스트리밍 플랫폼은 자사의 콘텐츠에 집중한 작은 행사로 실제 쇼를 보거나 볼 만한 팬들과 접촉하려 한다. 올해만 해도 프리폼, AMC가 ‘서밋(Summit)’이란 이름으로 자사 시리즈의 제작자, 배우들과 팬들이 만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했다. 넷플릭스는 5월 초 에미상 캠페인 전시를 팬들이 참가할 수 있는 행사로 바꾸기도 했다.

 

‘기업만의 팬 컨벤션’을 빠른 시일 내에 확립한 기업은 디즈니다. 디즈니는 2007년부터 D23이라는 팬클럽을 운영하며, 2009년부터 2년마다 회원만 참가 가능한 D23 엑스포를 개최한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 디즈니랜드 맞은편에 위치한 애너하임 컨벤션 센터에서 디즈니와 그 산하 기업이 만드는 콘텐츠와 상품을 모두 만날 수 있다. 싱얼롱 상영회 같은 팬 참여 이벤트도 활발하다. 하지만 D23 엑스포의 하이라이트는 월트 디즈니 영화, 애니메이션, 애니메이션 시리즈의 임원과 제작진, 배우가 팬들에게 곧 공개될 작품을 직접 소개하는 자리로, 행사장을 가득 메운 팬들의 함성은 영상으로만 접해도 어마어마하다. 애너하임까지 장거리 여행이 곤란하다면 일본에서 열리는 D23 엑스포를 고려해 보자. 도쿄 디즈니월드에서 미국과 마찬가지로 격년으로 진행되는데, 미국 행사만큼 규모가 크진 않아도 프로그램은 알차고 디즈니 감성으로 가득하다고 평가받는다.

 

 

4. 팬이 만드는 콘

출처: 유튜브 KellyVision

 

특정 작품 팬들을 위한 컨벤션 행사도 많지만, 팬이 주축이 되어 행사를 주최하는 경우도 있다. 최근 몇 년간 가장 활발하게 진행된 ‘팬에 의한, 팬들에 의한 콘’의 대표 행사는 [워킹데드]의 워커 스토커 콘(Walker Stalker Con)이다. 미국 전역과 해외에서도 열리지만, [워킹데드] 촬영이 진행되는 애틀랜타 콘의 규모가 가장 크다. 할로윈이 임박한 10월 말 3일간 개최되며, 팬과 배우들과의 만남, 코스플레이 콘테스트, 팬들 간 교류, 스크리닝 등 다양한 행사가 열린다. (특히 애틀랜타 콘에는 전세계에서 팬들이 몰려오는데, 드라마 주연 앤드류 링컨이 애틀랜타 행사에만 참여하기 때문이다.) 그 외 [왕좌의 게임]의 ‘왕좌의 콘’, [원스 어폰 어 타임]의 ‘페어리테일 콘’ 등도 팬이 직접 기획, 진행했다.

 

영화와 드라마를 보면서 공통된 문제의식을 가진 팬들이 주최한 컨벤션도 있다. 2017년 첫 행사를 연 ‘클렉사콘’의 이름은 드라마 [원 헌드레드]에서 팬들의 사랑을 받은 ‘클락 & 렉사’ 커플의 커플 이름에서 나왔다. 클렉사콘은 2016년 렉사를 비롯한 TV 시리즈의 레즈비언 캐릭터가 “드라마틱한 스토리를 위해” 죽는 경향에 반기를 들며 기획됐고, 영화, 드라마, 소설, 코믹스 등 다양한 장르에 걸쳐 LGBTQ 여성을 긍정적으로 묘사하자는 메시지를 전파한다. 영화와 TV 시리즈에서 성소수자 역할을 한 여성 배우와 팬들이 만나는 행사와 함께 미디어 속 성소수자의 재현을 논의하는 학회, 영화, TV, 웹시리즈 창작자들의 교육과 네트워킹 프로그램도 진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