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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lated by. Tomato92

written by. 젠 체이니

*이 글은 ‘빅 리틀 라이즈’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미지: HBO

 

장 마크 발레가 연출한 HBO 방송국의 [빅 리틀 라이즈]는 사람을 도취시키는 살인 미스터리가 중심인 작품이다. 길리언 플린 소설을 원작으로 연출 및 편집을 맡은 HBO 신작 [몸을 긋는 소녀]도 마찬가지다.

 

두 작품은 사실 비슷한 점이 꽤 많다. 주민들이 마을의 분위기를 좌우하고 서로 파묻힌 비밀을 주고받으며, 여성들은 외모를 유지해야 한다는 압박을 느낀다. 또한 드라마의 주인공 에이미 아담스와 패트리샤 클락슨은 최소 아카데미 시상식에 후보로 오른 배우들이다. 패트리샤 클락슨은 [빅 리틀 라이즈]에서 리즈 위더스푼이 연기한 ‘매들린 마사 매킨지’의 나이 들고 어두워진 모습의 캐릭터를 선보인다. 생각해보면 매들린은 극도로 뒤틀린 테네시 윌리엄스의 연극에 나올 법한 인물이기도 하다.

 

두 작품 모두 인물을 다른 공간이나 시점으로 보낼 때 음악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몸을 긋는 소녀]를 보자마자 [빅 리틀 라이즈]를 처음 봤을 당시의 기억이 떠올랐고, 불가피하게 발레의 두 번째 시리즈에 단숨에 매료됐다. 최근 다른 드라마를 볼 때마다 [몸을 긋는 소녀]를 볼 수 있는데 굳이 왜 이걸 봐야 하나?’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이 또한 [빅 리틀 라이즈]를 몰아 봤을 때 들었던 생각이다.

 

이미지: HBO

 

하지만 [몸을 긋는 소녀]는 몬터레이 배경의 첫 작품과는 매우 다른 결의 드라마다. 우선, 분위기 자체가 매우 어둡다. [몸을 긋는 소녀]의 주 배경이 되는 남부 고딕풍의 작은 마을은 [빅 리틀 라이즈]의 밝고, 해안가에 위치한 부내나는 동네처럼 매혹적인 모습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개인적으로 [몸을 긋는 소녀]의 배경 같은 곳에서는 살고 싶지 않다. 하지만 이 작품의 토대이자 [빅 리틀 라이즈]에서도 자주 나왔던 의식의 흐름, 악몽의 미학, 비선형적인 스토리텔링과 같은 요소에 흠뻑 취할 수 있어 정말 행복하다. [몸을 긋는 소녀]와 [빅 리틀 라이즈]는 각기 다른 이유로 훌륭하지만, [몸을 긋는 소녀]가 극중 보여준 시각적 언어가 이 시리즈를 좀 더 대담해 보이게 한다. 이 작품은 사람을 취하게 만들기 위해 만든 작품은 아니지만 계속 보고 있자면 그런 기분이 든다. 이는 어쩌면 살해된 두 소녀에 대한 진실을 찾기 위해 고향인 미주리 윈드 갭을 방문하는 주인공 카밀 프리커가 거의 모든 장면에서 취해 있기 때문에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

 

카밀은 레드 제플린 혹은 엠 워드의 노래를 들으며 거리를 배회할 때, 에비앙 물통에 넣은 보드카를 홀짝거리며 익숙한 풍경에서 발현된 것들을 곱씹는다. 카메라는 그저 그녀의 주위나 눈앞에 있는 것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카밀이 마음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을 비춘다. 예전에 그녀가 손가락으로 어린 여동생을 긁었던 일, 청소 용품으로 가득한 카트, 천장에 생긴 틈 등 그녀의 기억은 온라인 슬라이드쇼처럼 휙 하고 지나간다. 그런 이미지에 대한 전후 사정이 함께 나올 때도 있고 혹은 나중에 나오기도 하는데 총괄적으로는 필요한 것들만을 전한다. 카밀의 무의식에 자리 잡은 중요한 순간들은 어떤 이유에선가 오랫동안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이미지: HBO

 

[빅 리틀 라이즈]에서도 몇 사건들에 대한 명확한 설명을 전달하기 위해 비슷한 기법을 사용했고, 이는 오드리와 엘비스 모금 행사 날 밤에 벌어진 일에서 잘 드러난다. 첫 번째 에피소드 오프닝 장면에서 경찰차의 빨갛고 파란 불빛이 티아라를 쓴 채 무언가 심각한 얼굴을 하고 있는 여성들의 얼굴을 비추는데, 이는 무언가 심각한 일이 벌어졌음을 암시한다. 시청자들은 누군가 죽었다는 걸 매우 빨리 눈치챌 수 있지만 누가, 왜 죽었는지는 알지 못한다. 발레가 [몸을 긋는 소녀]에서 좀 더 폭넓게 그랬듯, 그는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기는 하지만 그 이상의 정보는 철저히 숨기는 식으로 연출한다. 때문에 나중에는 무엇이 현실이고 무엇이 비현실인지 알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빅 리틀 라이즈] 피날레의 절정 부분에서 보니(조 크라비츠)가 중요 여성 캐릭터들과 몸싸움을 벌이던 페리(알렉산더 스카스가드)를 계단에서 밀어 죽였음이 밝혀진다. 다시 한번, 페리가 셀레스트를 때리는 걸 막는 여성들과 태평양의 파도가 해변에 몰아치는 장면이 겹치면서 펼쳐지는 이미지의 연속이 그 당시 벌어진 광란의 순간을 정확히 포착하는 동시에 세부 사항을 정확히 집어내는 것을 어렵게 만든다. 그 이전 시퀀스에 제인이 몇 년 전 자신을 강간한 사람이 페리라는 것을 깨닫고 그에게 총을 겨누는 듯한 장면은 상상과 진실 사이를 계속 오간다. 제인은 실제로 페리에게 총을 쏘거나 무기를 휘두르지는 않지만, 발레는 우리가 알기로는 실제 벌어진 일을 다루기 이전에 그녀의 머릿속에서 벌어진 일을 계속해서 묘사했다.

 

[몸을 긋는 소녀]는 상상과 현실 세계를 한두 번 오가고 끝나거나 하지 않는다.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 과거 동생이 발작을 일으켰을 때 엄마를 찾아 나선 어린 카밀(탁월한 캐스팅 ‘소피아 릴리스’)의 뒤를 현재의 카밀이 따라 방에서 나가고, 현재로 돌아오면 방이 텅 빈 것처럼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장면이 끊임없이 흘러나온다. 이 작품에서 나오는 기억, 상상, 현실의 경계는 [빅 리틀 라이즈]와 달리 구멍이 뚫린 곳이 많다. 구멍이 뚫렸다는 것의 ‘이스터에그’스러운 예시를 보고 싶다면, 카밀이 세인트루이스를 떠나 윈드 갭으로 향하는 장면을 자세히 살펴보면 된다. 고속도로에 옆에 세워진 표지판에 쓰인 ‘당신의 생각을 바꿀 수 있는 마지막 출구’라는 문구는 ‘앞으로 벌어질 일들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제기한다.

음악을 통해 전개되는 사람들의 관계는 [빅 리틀 라이즈]를 구성하는 가장 큰 부분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매들린 매켄지의 막내딸 클로이는 음악과 아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 제인은 종종 이어폰을 낀 채 조깅을 하는데, 이는 마치 음악이 힘이 되는 한 그녀를 계속 달리게 하는 원동력처럼 작용한다는 것을 암시한다. 음악을 강조하는 건 [몸을 긋는 소녀]에서도 마찬가지다. 한 에피소드에서, 카밀이 아이폰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친구와 함께 듣기 위해 이어폰을 공유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녀는 하얀색 이어폰을 귀에 꽂으며 “여기서 나가자”라고 말하는데, 카밀에게 이 사소한 행위는 장거리 여행을 나서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걸 뜻한다.

 

[몸을 긋는 소녀]에서 보여준 음악과 배경의 매치 방식은 [빅 리틀 라이즈]의 그것보다 한 단계 더 상승했다고 할 수 있다. 드라마는 이런 기법을 사용할 때 안개가 낀 듯이 흐릿한 톤으로 연출하는데, 보고 있자면 습기 많은 여름 정오의 끝자락에 있는듯한 기분 혹은 몇 시간의 음주 이후 알딸딸한 취기에 스르르 눈이 감기는 듯한 기분이 든다. 때문에 시청자는 열기와 술 때문에 살짝 제정신이 아닌 카밀의 기분으로 작품을 볼 수 있다. 이런 낌새는 카밀이 운전대를 잡고 생각을 정리하며 음악을 마구 돌려 듣는 시퀀스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카밀이 약간 으스스한 레드 제플린의 ‘In The Evening’을 들으며 윈드갭의 예스러운 집들을 지나는 장면은 아직도 뇌리에 강렬히 남아있다. 밖에 나와 노는 아이들은 단 한 명도 없고 오직 어떤 집 앞에 있는 소녀의 실루엣만 볼 수 있는데, 이런 걸 통해 이 지역이 어딘가 수상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흘러나오는 레드 제플린 음악은 공허함과 동시에 수중에 있는듯한 기분을 유발하고, 리드 보컬 로버트 플랜트가 들릴 듯 말 듯 읊조리는 ‘in the evening’이라는 가사는 다소 괴이한 향수병을 자극하면서 감정을 가라앉게 만든다. 이 장면은 기억에 남을 뿐만 아니라 무의식을 파고들어 뿌리까지 내린다.

 

이미지: HBO

 

[빅 리틀 라이즈]의 오프닝이 캘리포니아 해변을 따라 운전하는 주인공을 비추고 있다는 걸 감안했을 때, [몸을 긋는 소녀]의 여러 중요한 순간들이 에이미 아담스가 운전하는 장면에서 나오는 것은 참 흥미로운 점이다. ‘강한 공간감’은 두 시리즈의 공통점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빅 리틀 라이즈]가 때로는 재밌기도 또 어떨 때는 매우 심각하고 충격적인 감정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하는 작품이라면, [몸을 긋는 소녀]는 남부 특유의 우울감과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슬픔으로 무장되어 있다. 그런 고유한 분위기가 짙게 드러나고, 배경과 한데 뒤얽혀 있다는 점에서 두 작품은 아주 밀접하다고 할 수 있다.

 

[몸을 긋는 소녀]는 일말의 자유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광활한 해변을 비추는 대신, 같은 거리나 지역 슈퍼, 경찰서, 조각상 등 비슷한 장소만 계속해서 비춘다. 육지로 둘러싸인 이 마을에는 딱히 있는 게 없어서 길가에 서 있는 사물을 기억하는데 고작 5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는다. 카밀을 포함한 윈드 갭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이 공간에 사로잡혀 있다.

 

발레는 ‘제한된 움직임’을 상징하는 장면을 지속적으로 보여준다. 시청자는 카밀이 운전하는 장면을 조수석의 관점에서 바라보며 그녀가 차 문을 ‘쾅’하고 닫을 때는 마치 우리의 은유적인 얼굴을 강타하는 듯한 느낌까지 받는다. 카밀의 이복동생 아마와 그녀의 친구들은 제너두 시대의 스케이트를 신고 끊임없이 거리를 활보한다. 물론, 스케이트에는 바퀴가 달려있지만 금방이라도 그들을 잡을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아마는 후반 부분에 스케이트를 타고 부모님의 빅토리아풍 집 현관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는데, 마치 시간과 공간의 감옥에 갇힌 롤러 걸을 보는 것 같다.

 

지배적인 성격의 아도라 크렐린이 우두머리 위치에 있는 가정이 전체적으로 밀실 공포증을 앓고 있다는 것에 의심이 든다면, 그녀의 집을 모방한 인형의 집 복제품을 살펴보면 될 것이다. 이는 마치 하나의 커다란 마트료시카 인형을 보는 듯하다. 에피소드를 감상하다 보면 가정부 게일라가 아도라의 화장실 바닥을 닦는 장면에서 아마의 시점으로 넘어가 인형의 집 바닥에 쌓인 먼지를 치우는 장면이 있다. 이것은 그 집에 사는 것이 얼마나 답답하고 숨이 막히는지를 보여주기 위해 일부러 그렇게 편집한 여러 멋진 장면 중 하나다.

 

카밀이 가장 좋아하는 레트로 록 밴드가 레드 제플린일지 몰라도, [몸을 긋는 소녀]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보여주는 1970년대 가수는 이글스라고 생각한다. ‘호텔 캘리포니아’에는 이런 가사가 나온다. “당신이 원할 때 체크아웃 할 수 있지만, 아마 떠날 수 없을 거예요” 이것은 [빅 리틀 라이즈]의 배경인 캘리포니아의 한 호텔을 묘사한 것일지도 모르지만, 카밀과 그녀의 고향, 가족 관계와 전반적으로 최면을 거는 듯한 분위기를 만든 발레의 탁월한 연출 방식을 정확히 포착한 가사다. 이 시리즈가 음악, 시각적 상징, 스토리텔링으로 우리에게 말하고자 하는 것은 ‘윈드 갭을 떠날 수 없다’는 점이다. 이 장소가 당신의 마음에 한번 자리 잡는 순간, 그 잔상이 머리에 영원히 남아 잊는 것이 불가능해진다.

 

 

 

This article originally appeared on Vulture: Jean-Marc Vallée’s Evolution to Sharp Objects From Big Little L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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