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즈니-폭스 합병과 마블 영화의 미래

출처: The Walt Disney Company, 20th Century Fox

 

월트 디즈니와 20세기 폭스의 인수합병은 지난 금요일 한 발짝 더 앞으로 나아갔다. 각 회사의 주주가 총회를 열어 713억 규모의 인수안을 승인한 것이다. 이미 두 회사의 합병에 허들이 될 것이라 예상됐던 미국 법무부의 승인도 떨어졌고, 디즈니의 경쟁자로 부상한 컴캐스트는 최종적으로 폭스 인수를 포기했다. 합병은 느리지만 확실하게 진행되고 있고, 이제 반독점법에 따라 미국 외에 15개 국가의 합병 승인만 받아내면 이른바 ‘메가 합병’은 결실을 맺게 된다. 이 모든 절차가 완료되면 두 회사는 현재 ‘뉴 디즈니’라 불리는 새로운 지주회사에 편입되는 형태로 재편될 가능성이 높다. 두 회사의 자산은 영화, TV, 애니메이션 제작 스튜디오와 이들이 보유한 막대한 IP, 디즈니 테마 파크, 폭스의 지역 및 국제 케이블채널, 스트리밍 서비스 훌루 등이다. 한 기업이 쉽게 운영하기 어려울 만큼 다양한 자산이 한데 모이는 셈이다.

 

디즈니와 폭스의 합병으로 막강한 프랜차이즈 IP가 한 기업에 모두 모인다. 합병이 성사되면 [에이리언], [엑스파일] 등 폭스의 대표 시리즈도 디즈니 자산이 된다. 유구한 역사만큼 소유권 문제가 복잡했던 [스타워즈] 또한 모두 디즈니 손에 들어가면서 다양한 사업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팬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지점은 마블코믹스 영화화 판권이다. 폭스는 마블코믹스에서 가장 인기 있는 IP (Intellectual Property, 지적재산)인 [엑스맨]과 [판타스틱 포]의 영화화 판권을 가지고 있다. 마블코믹스가 재정적으로 매우 어려웠던 90년대에 지금 보면 마블코믹스에 ‘굉장히 불리한’ 조건으로 판권을 획득해 갔다. 합병이 거의 코앞에 온 상황에서 예상한다면, 두 IP 모두 마블코믹스의 영화 제작을 맡는 마블 스튜디오로 이전될 것이다. 그러므로 엑스맨과 판타스틱 포가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에 들어올 가능성은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앞으로 폭스에서 활동하던 마블 슈퍼히어로는 어떻게 될까? 그리고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는 어떤 영향을 받을까? 이 글에서는 앞으로의 합병 일정과 지금까지 나온 보도를 바탕으로 조심스레 미래를 그려 본다.

 

 

[엑스맨: 다크 피닉스]와 [뉴 뮤턴트]는 개봉할까?

출처: 20th Century Fox Film Co.

 

합병 논의가 본격적으로 진행되기 전부터 폭스는 [엑스맨: 다크 피닉스]와 [뉴 뮤턴트]를 제작했다. 그러나 두 영화 모두 위기에 빠졌다는 소문이 돌았는데, 개봉이 차일피일 미뤄지는 것을 보면 소문이 어느 정도는 사실인 듯하다. 지난 주말엔 디즈니와 폭스 합병이 완료될 경우 두 영화의 개봉 자체가 취소될 것이라는 말까지 나왔으나, 이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디즈니와 폭스 양사는 2021년 전에 완전히 합병될 것으로 보고 있어, 내년 2월과 8월 개봉 예정인 두 작품은 영향을 크게 받지 않을 것이다. 이와 별개로 폭스가 합병 절차를 밟는 사이에 엑스맨 영화를 계속 만들지 않으면 폭스의 IP 소유권은 위험해질 수 있다. [판타스틱 4]의 리부트 버전이 흥행에 실패했음에도 계속 리부트 이야기가 나오는 건 일정 기간 내 영화 제작을 하지 않는 경우 마블로 판권이 반환된다는 계약 조건 때문이다. 혹자는 그 조항 때문에 엑스맨 영화 개봉을 늦춘 것이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현재 준비 중인 영화는 어떻게 될까?

출처: 이십세기폭스코리아

 

폭스는 합병이 논의되는 기간에도 ‘평소처럼’ 일을 진행해 왔고, 슈퍼히어로 영화도 1년에 3편씩 선보일 계획을 세웠다. 폭스는 기본적으로 [엑스맨] 시리즈를 계속 제작하되 그보다 덜 유명한 캐릭터를 이용한 영화도 만들려 했다. 최근 제작 또는 개발 중인 새 [엑스맨] 영화들은 제작 발표 당시 팬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었지만, 디즈니와 합병이 확실시된 지금은 미래가 무조건 밝다고 말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팬들의 반응이 가장 뜨거웠던 프로젝트는 엑스맨 캐릭터 ‘키티 프라이드’ 단독 영화로, 코믹스 작가 브라이언 마이클 벤디스가 각본을 맡고 [데드풀] 팀 밀러 감독이 메가폰을 잡기로 확정된 상태다. 키티 프라이드 영화는 코믹스 언캐니 엑스맨 143권을 바탕으로 하며, 엑스 맨션에서 크리스마스를 홀로 보내는 키티 프라이드가 악마와 힘겹게 대립한다는 내용이 될 것이다.

다른 프로젝트는 ‘멀티플 맨’ 단독 영화로, 제임스 프랭코가 제이미 매드록스/멀티플 맨으로 캐스팅됐다. 그러나 올해 초 프랭코가 여배우 및 지망생들을 성적으로 착취했다는 보도가 나온 후엔 제작 관련 최신 소식은 전해지지 않는다. 엑스맨 드라마 [리전] 제작자인 노아 홀리는 ‘판타스틱 4’ 빌런 ‘닥터 둠’ 단독 영화를 맡기로 되어 있으나, 바쁜 스케줄로 본격적인 작업이 언제 시작할지는 알 수 없다. [데드풀 2]에 등장한 ‘엑스포스’를 다룬 영화는 이미 각본까지 나왔다. [데어데블] 드류 고다드가 각본과 연출을 맡으며, 올해 하반기 촬영이 시작되고 라이언 레이놀즈와 함께 ‘도미노’ 재지 비츠, ‘케이블’ 조슈 브롤린도 출연할 예정이다. 만약 이 영화가 제작된다면 아마도 폭스에서 만드는 마지막 엑스맨 영화가 될 것으로 보인다.

 

 

디즈니는 [데드풀 3]를 제작할 수 있을까?

출처: 이십세기폭스코리아

 

라이언 레이놀즈는 [데드풀 2] 홍보 활동 중 3편이 아닌 4, 5편을 먼저 만들 것 같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물론 농담삼아 한 말이지만, 그 당시엔 데드풀 캐릭터 자체의 미래보다 데드풀이 활동하는 엑스포스 세계를 다지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의미다. 앞에서 언급했듯 [엑스포스] 영화에 데드풀이 조연급으로 등장한다면 [엑스포스]가 일종의 [데드풀 3]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와 별개로 디즈니와 폭스의 합병이 확정되면 [데드풀] 영화가 제작되지 않을 최악의 경우도 고려해야 한다. 어떤 이유에서든 마블 스튜디오는 지금껏 19금 슈퍼히어로 영화를 만든 적이 없으며, 앞으로도 ‘디즈니’라는 브랜드 가치를 해치는 결정은 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데드풀]의 ‘슈파두파’한 성공은 포기하기 어렵지만, 지금까지 쌓아놓은 캐릭터에서 19금 매력을 덜어낸다면 캐릭터 자체의 매력은 현저히 줄어들 것이다. 과연 디즈니는 데드풀의 매력을 상쇄하지 않으면서 그를 청소년 관람가 히어로로 만들 수 있을까? 만약 그렇지 않다면 디즈니는 ‘데드풀’ IP의 생명력을 어떤 방식으로 유지할 것인가?

 

 

엑스맨과 어벤져스는 언제쯤 만날 수 있을까?

출처: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울버린’뿐 아니라 ‘엑스맨’과 ‘판타스틱 4’가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에 등장하는 시점은 모든 IP 소유권이 정리되고 몇 년 후에야 가능하다. 마블 스튜디오 CEO 케빈 파이기는 합병 논의가 활발했던 4월 말에도 엑스맨과 판타스틱 4의 합류 계획을 세우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래서 법적인 문제가 해결된 때부터 작업을 시작한다 해도 영화를 완성하기까지 최소 3~4년은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즉 합병이 2021년 최종 완료된다면, ‘엑스맨’과 ‘판타스틱 4’를 MCU에서 보는 건 아무리 빨라도 2025년으로 예상된다. MCU도 2025년까지 많은 변화를 경험할 것이다. 알려진 대로 [어벤져스 4]에서 지금까지 활동한 히어로 중 다수가 하차하고 새로운 어벤져스가 탄생한다. 내년 2월 개봉할 [캡틴 마블]을 비롯해 닥터 스트레인지, 블랙 팬서 등이 새로운 어벤져스를 이끌어가며, 새로운 캐릭터도 많이 등장할 것이다. [어벤져스 4]를 이후 펼쳐질 4기에서는 새로운 식구들을 받아들이기 위해 구성과 설정에서 많이 변화할 수 있다. 양쪽에서 서로의 세계를 합치는 과정은 느리지만 꾸준하고 흥미진진하게 그려질 것이다. 그 과정을 지켜보는 것도 또 다른 재미를 줄 것으로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