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Jacinta

 

 

할리우드 스타들의 TV 진출이 반가운 요즘, 좀 더 이색적인 행보로 눈길을 끄는 배우들이 있다. 긴 호흡으로 끌고 가는 드라마에서 스크린에서 미처 보여주지 못한 매력을 아낌없이 보여주며 시청자들을 사로잡고 있는 것이다. 기존 작품과 조금씩 결을 달리하는 작품은 배우들의 무르익은 연기력을 만나 흥미로운 긴장을 자아내며 호평을 받았다. 최근 드라마에서 독특한 캐릭터를 연기해 깊은 인상을 남긴 배우들을 모아봤다. (*방영 예정 포함)

 

 

 

에이미 아담스 – 몸을 긋는 소녀

 

이미지: HBO

 

에이미 아담스는 캐릭터의 미묘한 감정을 표현하는데 탁월한 재능이 있다. 그녀의 섬세한 내면 연기는 작품에 생생한 숨결을 불어넣으며, 어떤 캐릭터든 제옷을 입은 듯 소화해냈다. 연기 스펙트럼도 풍부해 사랑스러운 지젤(‘마법에 걸린 사랑’)부터 믿음과 불신 사이에서 흔들리는 수녀(‘다우트’), 두려움과 혼란, 절실함이 뒤섞인 루이스(‘컨택트’) 등 인상 깊은 캐릭터를 창조해왔다.

이처럼 매 작품마다 유연한 연기로 사로잡아온 그녀가 [오피스] 이후 모처럼 드라마에 나섰다. 바로 [빅 리틀 라이즈]로 대박을 터뜨린 장 마크 발레가 연출을 맡은 또 다른 HBO 드라마 [몸을 긋는 소녀]다. 길리언 플린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에서 에이미 아담스는 어린 시절의 불행한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기자 카밀을 연기한다. 아마 그녀가 지금껏 출연한 작품 중에서 카밀처럼 어둡고 우울한 인물이 또 있었을까. 카밀은 수시로 몸을 자해하고, 투명한 보틀병에 보드카를 채워 물처럼 마시며, 스스로를 자학의 세계로 밀어 넣는 인물이다. 파도처럼 끝없이 흔들리는 심리를 포착한 특유의 세심한 연기는 보는 이마저 인물의 고통을 통감하게 한다. 드라마는 공개 후 좋은 평가를 받고 있지만, 후속 시즌 계획이 없다고 한다. 에이미 아담스가 몰입하기에는 너무 힘든 인물이기 때문이다.

 

 

 

휴 그랜트 – 베리 잉글리시 스캔들

 

이미지: BBC One

 

90년대와 2000년대 로맨스 장인 휴 그랜트. 부드럽고 젠틀한 귀공자풍 외모에 매력적인 영국식 악센트가 더해져 한때 전 세계 여성들에게 선망의 대상이었다. 말 많은 사생활은 제쳐두고라도 작품 속에서 보이는 모습은 흠뻑 빠질 수밖에 없었다. 로맨스의 대명사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그가 주름이 깊어지기 시작하면서 흥미로운 커리어를 보여주고 있다. 올해 초 개봉한 [패딩턴 2]에서 속물근성 뚜렷한 사기꾼으로 등장하더니 얼마 전 공개된 BBC 드라마에서는 스캔들에 휘말린 정치인으로 변신했다.

제목도 참 수상한 [베리 잉글리시 스캔들]이란 드라마로 1970년대 영국 사회를 발칵 뒤집은 정치인 스캔들을 옮긴 작품이다. 휴 그랜트는 동성애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던 시대에 야망을 실현하고자 성 정체성을 숨긴 채 이중생활을 했던 정치인 제레미 소프로 분했다. 그가 맡은 제레미 소프는 과거 연인 사이였던 노먼이 끊임없이 협박하자 청부살인을 계획하지만, 실패로 돌아가고 모든 사실이 폭로되면서 정치 인생을 마감한 인물이다. 드라마는 믿기 어려운 실화를 풍자와 위트를 담아 경쾌한 진행으로 흥미롭게 풀어냈다. 배우들의 노련한 연기가 돋보이는 가운데, 위선적인 정치인으로 분한 휴 그랜트의 존재감은 단연 최고다.

 

 

베네딕트 컴버배치 – 패트릭 멜로즈

 

이미지: Showtime

 

얼마 전 충격적인 대머리 근황을 공개했던 베네딕트 컴버배치는 매 작품마다 캐릭터에 녹아드는 연기로 팬들을 사로잡고 있다. 드라마 [셜록]으로 세계적인 유명세를 얻으며 스크린에서 자주 볼 수 있게 됐지만, 일 욕심 많은 그는 경계에 국한되지 않고 다양한 장르를 소화하며 종횡무진한다. 베네딕트 컴버배치는 최근 미국의 TV 아카데미라 불리는 에미상 후보에 이름을 올렸다.

그를 후보에 올린 드라마는 에드워드 세인트 오빈의 자전적 실화를 담아낸 소설을 각색한 [패트릭 멜로즈]란 작품이다. 상류층 자제로 태어났지만 위압적인 아버지에게 끔찍한 학대를 받아 젊은 시절의 대부분을 피폐하게 보냈던 주인공이 고통스러운 기억을 딛고 서기까지의 이야기다. 오랜 기간 고통의 시간을 보냈던 패트릭 멜로즈로 분한 그의 연기는 놀랍다 못해 눈부실 정도다. 스스로를 학대하듯 술과 마약에 중독된 나날을 보내며 파괴된 내면에 갇혔던 인물은 베네딕트 컴버배치의 빈틈없는 연기를 만나 보는 이마저 불안하고 혼란스러운 세계로 밀어 넣는다.

 

 

 

제시카 비엘 – 더 시너

 

이미지: USANetwork

 

제시카 비엘은 한때 할리우드 유망주로 거론됐지만, 커리어 쌓기에 실패하면서 배우로서 존재감이 퇴색했다. 하지만 배우로서 커리어가 거의 끝났다고 여길 때쯤 전혀 뜻밖의 모습으로 나타났다. 계속 고전했던 스크린을 벗어나 TV 시리즈를 선택한 것이다.

넷플릭스에는 [죄인]이란 제목으로 공개된 [더 시너]란 드라마로, 휴일 오후 사람들로 붐비는 공원에서 처음 보는 남성을 잔인하게 살해한 코라 역을 맡았다. 드라마는 처음부터 사건을 과감하게 보여주며, 왜 평범한 여성이 낯선 남자를 살해했는지 동기를 추적한다. 제시카 비엘은 스스로도 알 수 없는 이유로 살인을 저지르고 괴로워하며 혼란스러운 과거에 서서히 다가서는 인물의 불안한 심리를 밀도 있는 연기로 선보였다. 극에 몰입감을 더하는 비엘의 섬세한 연기는 평단의 호평을 받으며 배우로서 부활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골든 글로브와 에미상에서 당당히 후보에 이름을 올렸고, 최근 공개된 시즌 2에서는 제작자로 참여했다.

 

 

J. K. 시몬스 – 카운터파트

 

이미지: Starz

 

TV 드라마로 얼굴을 알리기 시작한 중견 배우 J. K. 시몬스에게 세계적인 유명세를 안겨준 건 다미엔 차젤레의 [위플래쉬]었을 것이다. J. K. 시몬스는 폭군 플렛처를 맡아 완벽한 음악을 추구하기 위해서라면 제자들에게 온갖 폭언과 모욕, 질타를 아끼지 않는 광기 어린 연기를 선보이며 스크린을 집어삼켰다. 그의 미친 제자 앤드류를 거세게 밀어붙이던 플렛처는 두고두고 잊을 수 없는 캐릭터로 남아 J. K. 시몬스를 떠올리면 [위플래쉬]의 악독한 선생이 가장 먼저 생각나게 됐다. 하지만 그는 다른 작품에서는 부드럽고 다정한 모습도 선보인 관록 있는 배우다.

천의 얼굴을 가진 J. K. 시몬스의 다양한 모습을 한 작품에서 보고 싶다면, 1인 2역을 소화한 드라마 [카운터파트]를 보면 된다. 드라마는 정보기관의 하급 요원이 평행 세계가 공존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다. J. K. 시몬스는 두 세계의 상반된 성향을 가진 요원 하워드 실크를 맡아 부드러움과 차가움이 대비되는 두 인물을 감쪽 같이 그려냈다. 그의 농밀한 감정 연기는 소심하고 내향적인 하워드와 차갑고 냉정한 하워드를 같은 공간에 머물게 해도 위화감이 들지 않을 만큼 뚜렷하게 구분해낸다. 찬사가 나올 수밖에 없는 연기에도 올해 에미상 후보로 지명되지 않아 아쉬움을 남겼다.

 

 

디에고 루나 & 마이클 페나 – 나르코스

 

이미지: 넷플릭스

 

[로그 원: 스타워즈 스토리]의 디에고 루나와 [앤트맨과 와스프]의 마이클 페나가 넷플릭스의 인기 드라마 [나르코스]에서 함께 한다. 두 배우는 카르텔 실화를 사실적인 연출로 각색해 호평을 받는 드라마에서 뚜렷한 발자취를 남긴 실제 인물에 도전해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 예정이다. 마이클 페나와 디에고 루나는 각각 1980년대 미국-멕시코 마약전쟁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인 미국 마약단속국 비밀요원 키키 카마레나와 멕시코를 주름잡았던 마약왕 미겔 앙헬 펠릭스 가야르도를 연기한다.

마이클 페나는 최근 [앤트맨과 와스프]에서 스캇 랭의 친구 루이스 역을 맡아 강력한 웃음을 선사했지만, 여러 작품에서 다양한 존재감을 드러내 왔던 배우다. 이번 작품에서는 미국의 마약 조직 소탕작전에 변화의 계기를 마련한 비밀요원을 맡아 색다른 모습을 보여줄 것으로 기대된다. 멕시코 범죄조직의 거물을 맡은 디에고 루나는 제국의 폭정에 반대하는 반란군 카시안과 다른 냉철한 카리스마를 선보일 예정이다. 특히 조금만 검색하면 알 수 있는 극악무도한 행위를 저질렀던 실제 인물을 얼마나 가깝게 재현했을지 궁금증을 자아낸다.

 

 

엠마 스톤 & 조나 힐 – 매니악

 

이미지: 넷플릭스

 

마지막 주자는 최근 예고편이 공개된 드라마 [매니악]에 출연한 엠마 스톤과 조나 힐이다. [매니악]은 마음의 상처를 치료하고자 의문의 임상시험에 참여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블랙코미디 드라마로 [트루 디텍티드]의 캐리 후쿠나가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두 배우는 이 드라마에서 이전과 다른 연기색을 보여줄 예정이다.

엠마 스톤은 [라라랜드]의 사랑스러운 미아와 전혀 다른 캐릭터인 인생의 뚜렷한 목표 없이 모든 것이 불평불만 투성인 애니를, 주로 유쾌한 캐릭터를 맡아오며 코믹 연기의 진수를 보여준 조나 힐은 평생 조현병을 앓아온 부유층 자제 오웬을 연기한다. 캐릭터의 성향뿐 아니라 외모에서 풍기는 분위기도 이전과 다르다. 엠마 스톤은 빨간 머리 대신 원래의 금발로 돌아와 기존의 밝고 사랑스러운 이미지에서 탈피해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내고, 조나 힐 역시 속내를 짐작할 수 없는 묘한 표정의 수척해진 모습으로 호기심을 끌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