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스토피아는 부정적인 암흑의 가상 세계관을 말한다. 이러한 세계관은 보통 음울한 미래를 그릴 때 사용되는데, 일각에서는 디스토피아 세계관을 갖춘 세기말 영화가 선혈이 낭자한 전통적인 공포 영화보다 더욱 오싹하다는 의견을 비추기도 한다. 디스토피아 세계관이 전하는 사회의 모습이 우리가 살고 있는 실제 사회의 부조리를 간접적으로 투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말이 많은 사람은 반드시 죽고, 도망가는 사람이 가장 먼저 죽는 공포영화 공식에 싫증이 느껴진다면 디스토피아 세계관을 그린 작품에 도전해보자. 즉각적으로 와닿는 무서움은 아니더라도 생각을 곱씹을수록 아득해지는 서늘함과 부조리한 현실에 대한 철학적 메시지가 계속 여운으로 맴돌 것이다. 이례적인 폭염이 기승을 부리는 지금, 가슴속 깊은 곳부터 쭈뼛대며 올라오는 소름을 찾고 있는 당신을 위한 디스토피아 세계관의 관전 포인트와 관련 작품을 소개한다.

 

 

 

관전 포인트 1. 비현실 세계관에서 사고하는 철학적 메시지

디스토피아 장르가 매력적인 이유 중 하나는 상상을 뛰어넘는 비현실적 세계관이 설정된다는 점이다. 특히 그 속에서 발견되는 인간의 가치에 대한 철학적 메시지는 디스토피아 장르 마니아들이 좋아하는 주요 포인트 중 하나다.

 

이미지: 넷플릭스

 

‘SNS 속 모습으로 당신의 모든 가치를 평가받는다면?’ 소셜미디어는 자기 생각과 감정을 공유하는 소통의 창구가 되기도 하지만, 그 작은 프레임 안에 담긴 모습으로만 한 사람을 평가한다면 무척 가식적이고 답답한 삶이라 여겨질 것이다. 앤솔로지 드라마 [블랙 미러] 시즌 3-1화 ‘추락’은 이러한 소셜미디어가 가져올 수 있는 어두운 면을 여실히 보여준다. 해당 편에서 주인공은 SNS를 통해 ‘남에게 보이기 위한’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 고군분투하지만 이내 그 속에서 비극을 맞이한다.

이처럼 영국 특유의 어두운 상상력이 가미된 [블랙 미러]는 현실에서 일어남직한 문제를 극대화해 비현실적 세계관을 구축하고 여기에 인간의 윤리적 가치를 고찰하게 하는 철학적 메시지를 던진다. [블랙 미러]의 어두운 상상력 때문에 단순히 무서운 에피소드를 엮은 시리즈물이 아닐까 생각할 수도 있지만, [블랙 미러]는 과학 발전이 가져온 피폐해진 디스토피아 세계관을 통해 철학적 화두를 던지는 작품이다. 과학 발전의 어두운 자화상을 담아 인류적 가치를 되묻는 [블랙 미러]의 이야기는 이미 인문학의 담론에서도 주목받는 소재로 채택되고 있다.

에피소드별로 담고 있는 철학적 메시지를 찾아보는 것도 [블랙 미러]를 더욱 흥미롭게 감상할 수 있는 한 가지 요소다. 총 4개 시즌까지 공개된 [블랙 미러]는 각 시즌별 6부작의 옴니버스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어 짧은 시간에 간단히 시청하기에도 좋다. 공포물을 싫어하는 이들이나 스토리 속에 등장하는 기술 발전 자체에 집중하고픈 공학 전공자, 또는 긴 호흡으로 이어지는 내러티브가 부담스럽게 여겨지는 관객이라면 4개 시리즈 중 취향에 맞는 에피소드를 골라서 시청해도 좋다.

 

 

 

관전 포인트 2. 암울한 미래가 그리는 화려한 볼거리

디스토피아 세계관을 그린 대표 영화 [블레이드 러너], [매트릭스]를 살펴봤을 때, 관객들이 단연 으뜸으로 뽑는 관전 포인트는 암울한 미래 세계를 그린 화려한 볼거리다. 특히 [매트릭스]의 사이버 세계를 연출한 장면은 아직도 여러 사람들 사이에서 명장면 중 하나로 회자될 만큼 디스토피아는 시각적 상상력을 자극한다.

 

이미지: 넷플릭스

 

최근에는 동명의 밀리언셀러 원작을 바탕으로 한 SF 미스터리 드라마 [얼터드 카본]이 시각을 사로잡는 미장센으로 명성이 자자하다. 의식을 저장하고 육체를 교환하는 것이 가능해진 300년 후의 미래를 그리고 있는 [얼터드 카본] 속 인간들은 메모리칩 하나면 영원불멸의 삶을 살 수 있다. 코티컬 스틱이라는 메모리칩에 자신의 정신, 기억, 의식을 저장하면 여러 육신을 옮겨 다니며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것이다. ‘육신’이 삶의 필수 조건이 아닌 하나의 부속품이 되는 미래 모습을 설정해 상징적으로 상품화된 인간의 육체를 보여준다든지, 여러 특수 효과와 시각 디자인으로 화려함의 극치를 더한 2384년 미래 세계 모습은 관객의 시각적 본능을 강렬하게 자극한다.

하지만 이러한 화려한 볼거리가 단순한 유희로 끝나지만은 않는다. 영원한 삶을 누릴 수 있을 만큼 과학 기술은 발전했지만, 점점 삶의 양극화는 극심해지고 그 속에서 텅 비어버린 도덕적 해이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교체 대상의 인간의 모습을 보는 순간, 마치 정육점 진열대의 포장된 고기를 떠오르게 하는 것처럼.

 

 

 

관전 포인트 3. 디스토피아 클리셰 속에서 찾는 현실 부조리

디스토피아 장르의 마니아층이 탄탄한 이유는 클리셰에 있다. 그중에서도 거대한 정부, 억압적인 독재자, 윤리성을 상실한 사회 등 사회비판적 요소가 없다면 디스토피아 세계관으로 치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또한 이러한 클리셰 덕분에 디스토피아 장르가 선사하는 스산함이 더욱 강렬하게 와닿기도 한다.

 

이미지: CJ 엔터테인먼트

 

2013년에 개봉한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는 다른 어떤 영화에서도 볼 수 없었던 강렬한 상상력으로 인간의 본질을 적나라하게 표현했다. 멸망해 버린 세계 속에서 마지막 인류는 열차 하나에 의지한 채 생존을 유지한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사회 계급은 나뉘고 폭력은 여전하다. 영화가 개봉했을 당시 [설국열차]의 세계관은 큰 센세이션으로 다가왔다. 계급 사회의 부조리를 ‘열차’라는 상징적 공간을 통해 강렬히 풀어낸 것이 관객의 마음을 깊이 관통한 것이다.

이러한 [설국열차]가 시리즈로 돌아온다. 영화에 다 담지 못했던 인간의 본능과 갈등, 사회적 부조리를 더욱 치밀하고 섬세한 스토리로 펼칠 예정이다. 시리즈로 볼 수 있을 예정인 [설국열차]에서도 원작 영화에 이어 봉준호 감독, 박찬욱 감독, 이태훈 프로듀서, 최두호 프로듀서가 제작에 함께 참여해 완성도를 높일 예정이다. ‘봉테일’ (봉준호+디테일)이라는 별명답게 영화 속에서 다 풀지 못한 [설국열차의 이야기]가 기대된다.

 

 

(제공: 넷플릭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