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김옥돌
그 수는 많지 않지만 영화 촬영 현장에서 아름다운 영상을 만들어내는 여성 촬영감독이 있다. 꼭꼭 숨어 있어 미처 알아차라지 못했던 여성 촬영감독들의 작품을 소개한다.
해빙 – 감독 : 이수연, 촬영 : 엄혜정

한때 연쇄살인사건으로 유명했던 지역에 들어선 경기도 신도시, 병원 도산 후 이혼하고 선배 병원에 취직한 내과의사 승훈(조진웅)은 치매를 앓는 아버지 정노인(신구)을 모시고 정육식당을 운영하는 성근(김대명)의 건물 원룸에 세를 든다. 감독은 미스터리 심리스릴러 [해빙]을 통해 한국 사회의 불안을 포착하고, 그로 인해 마주하는 인간의 본성을 다룬다.
영화 [해빙]의 연출과 촬영감독은 모두 여성이다. 이수연 감독은 끝까지 퍼즐과 의문을 풀어가는 장르영화를 만들고자 촬영감독 엄혜정과 팀을 이루어 조진웅이 등장하는 인상적인 롱테이크 신을 탄생시켰다. 엄혜정 촬영 감독은 원래 다른 전공이었으나 유학을 준비하던 중 영상원에 입학해 촬영을 전공한 케이스로, 영화 현장에서 여성이 촬영에 더 유리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이터널 선샤인 – 감독 : 미셸 공드리, 촬영 : 엘렌 커라스

다시 봐도 아름다운 영화 [이터널 선샤인]은 DIY 초현실주의 감독 미셸 공드리와 작가 찰리 카우프만이 의기투합하고 엘렌 커라스가 촬영을 맡았다. 조엘(짐 캐리)은 파란 머리의 클레멘타인(케이트 윈슬렛)을 만나 본능적인 이끌림과 동시에 전에 만난 것 같은 친숙함을 느낀다. [이터널 선샤인]은 기억을 매개로 시공간을 넘나드는 여행과 사랑을 표현한다. 몬타우크 해변과 웨인스콧 저택, 브루클린 바, 매디슨 스퀘어 공원, 찰스 강, 125번가 지하철 역 등 뉴욕 명소는 모두 세트가 아닌 뉴욕에서 실제로 촬영되었다.
여성 촬영감독 엘렌 커라스(Ellen Kuras)의 하이-콘트라스트 핸드 헬드 카메라 촬영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지우는 아픈 마음을 은유하며, 방향 감각을 상실한 듯한 느낌을 전달한다. [이터널 선샤인]은 특수효과는 적게 사용하고 카메라 트릭 역시 최대한 자제했다. 클레멘타인과의 사랑이 담긴 기억을 지울 때 등장하는 조엘의 기억 속 어린 시절 부엌 테이블 장면은 CG나 카메라 트릭이 아니라 초창기 영화 촬영 기법을 응용했다. 테이블의 크기를 뒤에 위치할수록 크게 제작하고, 가구들 역시 마찬가지로 만들어 앞쪽에 있는 클레멘타인보다 조엘이 상대적으로 작아 보이도록 착시효과를 만들었다.
파라노이드 파크 – 감독: 구스 반 산트, 촬영: 레인 리, 크리스토퍼 도일

스케이트 보더 알렉스는 포틀랜드 지역의 파라노이드 파크에서 우연히 경비원을 사망에 이르게 한다. 알렉스는 복잡하고 혼란스럽다.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기로 하고, 친구와 여자친구에게 거리를 두기 시작한다. 알렉스는 부모에게 의지할 수도 없으며, 철저히 혼자가 된다. 과거의 사건과 기억의 흐름을 회상하며 일기에 감정을 표현할 뿐이다. 관객이 보는 영화는 사실 그의 일기와 같다. 촬영을 맡은 레인 리(Rain Li)와 크리스토퍼 도일은 Super 8과 35mm 카메라로 서정적이며 비범한 스케이트 장면을 유려하게 담아냈다.
피나 – 감독 : 빔 벤더스, 촬영: 엘렌 루바르

춤의 역사를 바꾼 무용가 피나 바우쉬의 독창적인 예술세계가 빔 벤더스 감독의 연출로 3D 영상으로 부활했다. 빔 벤더스 감독은 안무가 피나 바우쉬와 함께 이 프로젝트를 계획했다. 촬영 직전 피나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 작품 자체가 무산될 위기에 처하지만 감독은 피나와 약속한 영화를 완성했다.
3D에 영감을 얻은 빔 벤더스 감독은 피나 바우쉬와 탄츠테아터 부퍼탈(Tanztheater Wuppertal) 을 3D로 담아낸다. 엘렌 루바르의 카메라 렌즈를 통해 춤의 아름다움, 순수한 유쾌함이 강렬히 표현되었고, 탄츠 테아터 멤버들은 [카페 뮐러], [콘탁트 호프]와 같은 작품들의 많은 부분을 재창조해냈다.
세계 최고의 부퍼탈 무용수들은 피나의 대표작 중심으로 영화는 사랑, 자유, 슬픔, 갈망, 환희 등 인간의 다양하고 원초적 감정을 독무와 듀엣, 군무를 통해 감각적으로 표현한다. [피나]가 도입한 리얼 3D 다큐멘터리는 근육의 미세한 떨림과 땀방울은 물론 무용수들의 생생한 감정까지 잡아내며 경이로운 시각적 경험을 관객들에게 선사한다.
도쿄 소나타 – 감독 : 구로사와 기요시 촬영 : 아시자와 아키코

초등학교 6학년 켄지는 피아노를 배우고 있다. 켄지의 천재적인 재능을 발견한 선생님은 음악 학교 오디션을 권유하지만, 켄지는 아빠의 반대 때문에 몰래 피아노 학원을 다니며 계속 그 사실을 숨긴다. 그러나 켄지만 비밀을 숨겨둔 게 아니다. 회사에서 해고된 아빠, 어느 날 사라진 엄마, 미군에 지원한 형까지 가족 모두 각자의 비밀이 있다.
공포를 직조하는 감독 구로사와 키요시는 [도쿄 소나타]를 통해 독특한 가족 드라마를 그려낸다. 섬세한 구성으로 직조해낸 촬영감독 아시자와 아키코의 우아한 장시간 촬영은 음의 변화들을 담아낸다.
벨벳 골드마인 – 감독 : 토드 헤인즈, 촬영 : 마리스 알버티

1970년대 영국에서 유행하던 글램록 최고의 스타 브라이언이 월드투어 콘서트에서 암살되는 사건이 벌어진다. 그러나 이 사건은 자작극이었던 것으로 밝혀지며, 비난과 함께 사람들에게 점차 잊힌다. 10년 후 브라이언의 팬이었던 아서(크리스찬 베일)는 기자가 되어 당시의 사건을 취재한다.
[벨벳 골드 마인]은 우상화된 글램 록스타의 삶을 재구성하려는 이야기를 런던을 배경으로 담았다. 토드 헤인즈 감독과 촬영 감독 마리스 알버티(Maryse Alberti)는 가장 시각적으로 감동을 선사하는 1990년대 영화 중 하나를 만들어냈다. [벨벳 골드마인]의 감성과 음악은 지금도 많은 관객들에게 영향을 주고 있다.
홀리 모터스 – 감독 : 레오 카락스, 촬영: 카롤린 샹페띠에, 이베스 카페

[홀리 모터스]는 각기 다른 영화 십 수 편을 묶어 놓은 것처럼 보인다. 한 편의 뮤지컬을 보는 것 같다가도 암살자 에피소드에서는 서늘한 누아르로 바뀐다. [홀리 모터스]에서 레오 카락스 감독은 수많은 고전 영화를 오마주하며 영화적 형식과 장르의 다양성을 마음껏 탐구한다. 마치 자신이 좋아하는 수많은 영화의 조각들을 꿰매어 넣은 듯 보인다. 촬영을 맡은 카롤린과 이베스는 레오 카락스 감독, 그리고 배우 드니 라방과 11명의 다른 캐릭터를 표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