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 미국 개봉 연대기

 

by. 빈상자

 

 

해외에서 한국영화를 보는 것은 무언가 특별한 경험이다. 우리의 언어와 문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를 다른 언어와 문화권 사람들은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일까. 웃거나 하는 반응하는 지점이 다르다는 흥미로운 체험을 하고, 우리는 익숙해서 미처 인지하지 못하는 것들을 다른 시각을 통해 깨달을 수 있다는 점은 유익하기도 하다.

 

이미지: 빈상자

 

미국의 관객들은 전통적으로 외국 영화, 그것도 자막이 필요한 외국어 영화에 인색한 편이다. 그런데 외국 영화에 대한 특히 한국영화를 포함한 아시아 영화에 대한 미국 관객들의 인식을 크게 전환한 영화가 있었다. 이 안 감독의 [와호장룡]이다. 아쉽게도 한국영화는 아니었지만, [와호장룡] 덕분에 한국영화까지 입은 수혜를 부정할 수는 없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이후 한국영화에 대한 미국 관객들의 관심과 애정을 [와호장룡] 효과라고만 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와호장룡] 효과도 천년만년 가지 못했고, 미국 내 한국영화팬들은 중국계 영화와는 다른 한국영화의 사실적인 액션에 매료됐다. 더불어 할리우드 영화의 관습을 깨는 연출과 플롯, 다양한 사회적∙정치적 메시지로 한국영화만의 팬덤을 구축해갔다.

(*작품 소개: 영화명/북미 개봉 연도/북미 배급사)

 

 

 

 

그들은 힘겨워했다 : 창 – ‘춘향뎐’ 2000년 12월, 랏47

 

이미지: 태흥영화㈜

 

미국 대도시에서 소위 ‘예술영화’를 상영하는 소규모 극장인 아트하우스를 시작으로 한국영화가 조금씩이나마 본격적으로 개봉되기 시작한 것은 2000년 전후라고 볼 수 있다. [춘향뎐]은 초기 영화 중 하나였다. [춘향뎐]이 미국에서 개봉한 시기는 [와호장룡] 개봉 후 3주째로 [와호장룡] 효과를 누린 첫 번째 한국영화다.

미국인들은 [춘향뎐]의 이야기가 다소 전형적이라고 평가하며 특히 창을 어색해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동양의 풍경과 미를 즐기는 재미가 있었는지 79만 달러라는 작지 않은 성과를 올렸다. [춘향뎐]에 이어 [취화선]까지 임권택 감독의 영화가 미국에 소개되었는데, 다만 [취화선]은 2003년에 개봉해서 6만 4천 달러의 수익을 올리는데 그쳤다. 그럼에도 이후에 당시 미국 전국에 걸쳐 있던 대형 비디오대여점 블록버스터에서 [춘향뎐]보다 눈에 더 많이 뜨이던 [취화선]을 본 미국인들이 꽤 있었다. 그들은 [춘향뎐]과 마찬가지로 동양의 건축, 의복, 미술 등 동양미에 집중했다.

 

 

그들은 고민했다 : 성경과 다른 뱀의 상징 –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2004년, 소니 픽쳐스

 

이미지: 소니 픽쳐스

 

미국에서 처음으로 상업적인 성공을 거둔 한국영화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이후 ‘봄 여름…’으로 표기)]이었다. 당시 [나쁜 남자]로 29만 5천 명, 그리고 [해안선]으로 12만 명의 관객을 극장으로 불러들이며 김기덕 감독이 나름 최고의 상업적인 성과를 이어가던 때라는 것을 생각하면, 후속작인 [봄 여름…]의 국내 성적이 2만 8천 명이라는 수치는 굉장히 초라했다.

하지만 계절의 변화에 삶의 시간을 빗댄 전형적인 상징을 바탕으로 불교의 철학을 녹여낸 [봄 여름…]에 대한 미국 관객의 반응은 상상 이상이었다. 최대 74개 상영관에서 6개월 이상 상영하며 거둔 238만 달러라는 한국영화가 올린 최고의 흥행 수익 기록은 그 이후로 10년 동안 깨지지 않았다.

미국에서 [봄 여름…]의 흥행은 미국인들의 동양과 동양의 철학에 대한 판타지와 동경이 여전하다는 것을 증명했다. 소품과 장면 하나하나에 모두 불교를 거론하며 영화를 평하는 미국인들의 정성은 놀랍다기보다 집착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이럴 정도였으니 최근 김기덕 감독에 관한 뉴스를 접한 미국인 팬들의 실망감은 한국인들이 느끼는 것에 비하면 더하면 더했지 절대 덜하지 않다.

 

 

그들도 겪었다 : 한동안 부엌에 못 들어감 – ‘장화, 홍련’ 2004년 12월, 타탄

 

이미지: 타탄 아시아 익스트림

 

김지운 감독의 [장화, 홍련]은 미국에서 개봉한 첫 번째 한국 공포영화였다. [장화, 홍련]이 개봉할 당시 미국은 일본 공포영화 붐을 넘어 [링]과 [그루지]와 같은 할리우드 리메이크 영화에 빠져있었다. 그러면서 일본 공포영화와 많은 점을 공유하는 한국 공포영화까지 미국인들의 관심이 미치기 시작했다. 할리우드 공포영화가 유혈 낭자하고 잔혹함이 넘치는 폭력으로 가득 차 있는 반면, 아시아의 공포영화는 보다 근원적인 불안과 공포심을 좁고 깊은 송곳으로 천천히 찌르는 듯하다고 미국 관객들은 평했다.

그러한 공포영화 붐과 [장화, 홍련]에 대한 미국 평론가들의 좋은 평가에도 사실 영화는 극장에서 고전했다. 최대 9개의 상영관에서만 볼 수 있었으며 흥행 수익도 7만 2천 달러에 그쳤다. 하지만 극장에서 내려온 이후 대형 비디오대여점으로 물러난 [장화, 홍련]에 대한 소문이 으스스하게 불거지기 시작했다. 영화에 대한 괴소문을 듣고 [장화, 홍련]을 찾는 미국인들이 점차 늘어났고, 곧 [폰]과 ‘여고괴담’ 시리즈와 같은 다른 한국 공포영화들까지 공수하면서 한국 공포영화 팬덤이 생기기도 했다.

하지만, 2000년대 중반은 90년대 중반 이후부터 커지던 공포영화 붐이 미국에서도 한국에서도 이미 사그라들고 있을 때였다. 결국 한국 공포영화의 붐은 오래가지 못했지만 미국인들이 기억하는 한국 공포영화의 대명사는 지금까지도 [장화, 홍련]으로 남아있다.

 

 

그들은 놀랐다 : 생낙지 살해 사건 – ‘올드보이’ 2005년 5월, 타탄

 

이미지: Joshua Kelly

 

[장화, 홍련]을 미국에서 개봉한 배급사 타탄은 [장화, 홍련] 이후 선택한 두 번째 한국영화로 대박을 터뜨렸다. 그 영화가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다. 5개 상영관으로 시작해서 최대 28개까지 상영관을 늘린 [올드보이]는 70만 달러 수익을 올렸다. 타탄 배급 역사상 두 번째로 높은 수익을 올린 영화였다.

사실 이는 미국에서 (한동안) 최고의 상업적 성과를 거둔 [봄 여름…]에 기록에는 1/3에도 못 미치는 것이다. 하지만, 다수의 한국영화팬을 양산하고 두고두고 회자되며 할리우드 영화에도 영향을 미친 ‘전설적인’ 한국영화는 [봄 여름…]이 아니고 [올드보이]다. 그 이후로 [올드보이]는 한국영화팬들이 자주 언급하는 [달콤한 인생], [추격자], [아저씨], [악마를 보았다] 등과 같은 액션∙스릴러 영화의 계보를 마련하는데 중심이 되는 영화가 되었다.

[올드보이]를 미국에서 개봉한 타탄은 한국영화를 포함해 주로 아시아 영화를 미국과 영국에서 소개하던 참 고마운 배급사였다. [올드보이]가 성공하자마자 타탄은 [복수는 나의 것]을 같은 해 개봉했다. 다음 해 [친절한 금자씨]까지 극장에 올리며 박찬욱 복수 3부작을 완성해주었다. 미국인들 가운데에는 타탄이 배급하는 영화는 무조건 본다는 아시아 영화팬들도 나왔다. 하지만 타탄은 아쉽게도 2008년에 문을 닫고 말았다.

 

 

그들도 웃었다 : 날라서 이단옆차기 – ‘살인의 추억’ 2005년 7월, 팜

 

이미지: CJ 엔터테인먼트

 

한국에서 [올드보이]보다 먼저 개봉했던 [살인의 추억]은 미국에서는 [올드보이]가 개봉한 이후에 극장에 올려졌다. 다만, 개봉 기록은 초라했다. [올드보이]가 처음부터 미국의 매체들과 새로운 영화팬들의 관심을 집중적으로 받은 것과 달리, [살인의 추억]은 단 1개의 상영관에서 1만 5천 달러의 수익을 올리는데 그쳤다. 스타일리시한 액션과 다소 무국적의 무대를 갖춘 [올드보이]와 달리 사실적인 스타일과 다분히 한국적인 정서가 풍부한 [살인의 추억]의 미국에서의 고전은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기도 했다.

하지만, [살인의 추억]의 진짜 가치가 발견되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연쇄살인, 그리고 심각한 형사와 다소 코믹한 형사로 이루어진 듀오가 있는 [살인의 추억]의 외형은 일면 미국인들이 할리우드 영화로 다분히 익숙한 소재들이었다. 그럼에도 [살인의 추억]은 그것 빼고는 모든 것이 그들이 익숙한 영화들과 달랐다.

정신이 없다가도 진중하게 밀고 나가는 이야기, 코믹한 순간에도 쓴웃음을 짓게 하는 블랙 코미디, 완벽에 가까운 치밀하게 짜인 화면 구도와 배우들의 움직임 등 미국 관객들은 [살인의 추억] 안에 겹겹이 쌓인 수많은 레이어들을 들춰내기 위해 분석하고 또 분석했다. 우리가 [살인의 추억]을 통해 80년대가 우리와 우리 사회에 남긴 깊은 상처를 되돌아봤다면, 미국 관객들은 개개인의 본성 속으로 깊이 침투해 들어가고 연쇄살인이 드러내는 시스템의 부조리를 들여다보았다.

이후 미국에서 봉준호 감독 팬들이 늘어나면서 2007년에는 [괴물]도 개봉을 했고, 최대 115개 상영관에서 220만 달러를 기록하며 그때까지 최고 기록이었던 [봄 여름…]의 기록에 근접한 성공을 거두었다.

 

 

그들이 물었다 : 안전한 한국에서 왜 이런 영화가? – ‘악마를 보았다’ 2011년 4월, 매그놀리아

 

이미지: Sinthetic

 

2000년대 중반까지 지속적으로 늘어나던 한국영화 개봉은 2000년대 후반 들어 감소세로 돌아섰다. 그나마 영화제에선 김기덕 감독과 홍상수 감독의 영화가 꾸준히 소개되고 있고, 앞서 팬들을 확보한 박찬욱 감독과 봉준호 감독의 영화들이 꾸준히 개봉되며 관객을 모으는 정도였다. 그 가운데 김지운 감독이 [장화, 홍련]에 이은 [악마를 보았다]로 적지 않은 성과를 올리며 확실히 미국 관객들의 눈에 들게 된다.

[악마를 보았다]를 본 미국 관객이 물었다. “한국인들이 미국인들보다 더 폭력적인 사람들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무엇보다 범죄율도 낮고 훨씬 안전한 사회인데 왜 영화는 이렇게 잔인하고 폭력적인 건가요?” 글쎄, 그건 나도 궁금하다.

잔인하고 폭력적인 영화만 찾으면 미국 영화들 중에서도 많이 찾을 수 있다. 다른 점이 있다면 미국에서 그런 영화들은 주류 영화의 범위 안으로 들어오기 어렵다. 무엇보다 한국영화는 단순히 폭력과 잔인함의 강도만 높은 것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 인간의 본성을 들여다보게 한다는 것이다. 이것도 미국 관객의 말이다.

 

이미지: 구글맵

 

2010년 전후는 여러 가지 의미에서 전환점이었다. 우선 이전까지 24개사까지 다양하던 배급사가 거의 두 개의 배급사로 좁혀지게 된다. 하나는 한국에서 온 CJ 엔터테인먼트, 다른 하나는 텍사스 출신으로 아시아 영화를 주로 배급하는 독립배급사 웰 고 USA다. 사실 두 회사의 전략은 거의 비슷했다. 우선, 한국과의 개봉일 차이를 거의 없앴고, 한국인이나 아시아계가 많은 지역에서 아트하우스가 아닌 AMC와 같은 대형 극장체인들을 통해 개봉했다.

미국에서 한국영화 배급에 보다 적극적인 CJ는 2010년 6월에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한인타운에 3개의 상영관으로 구성된 CGV 멀티플렉스를 열었고, 2017년에는 또 다른 한인 밀집 거주지인 오렌지카운티의 부에나팍으로 확장했다. CJ의 목표는 아트하우스를 찾아오는 한국영화의 미국인 팬들이 아니라 미국 내 거주하는 한국인들이다.

CJ는 2014년 [명량]과 [국제시장]을 개봉해서 각각 259만 달러와 230만 달러의 수익을 올렸다. [봄, 여름…]의 오랜 기록이 10년 만에 경신되었고 지금까지도 CJ로서나 한국영화로서도 미국에서 거둔 최고의 성과이기도 하다. 웰 고 USA는 [신과 함께-죄와 벌]과 [암살]로 각각 190만 달러씩 수익을 올렸다. 하지만 이러한 외형적인 성과들을 올린 영화들과는 별개로 미국 관객들이 주로 거론하는 한국영화는 따로 있다.

 

 

 

그들은 불편했다 : 특정 인종에 대한 편견과 혐오 – ‘곡성’ 2016년 5월, 웰 고 USA

 

이미지: Slasher Movie Reviews

 

한국영화 좀 안다는 미국 관객들 사이에서는 나홍진 감독이 낯선 이름이 아니었다. [추격자]로 시야에 들어온 그는 [황해]를 통해서도 많은 팬들을 확보했다. 그리고 [살인의 추억]을 통해 봉준호 감독의 팬으로 입문한 팬들 사이에서도 그의 영화들을 좋아하는 팬들이 많다.

주인공은 항상 정의를 대변하고 승리하며 가족을 지켜내는 할리우드 영화에 익숙한 관객이라면 여기 한국영화들은 참 낯설다. [살인의 추억]은 두 시간을 열심히 수사하더니 결국 범인도 못 잡고, [악마를 보았다]는 설마 하는 기대를 저버리고 가장 가까운 가족들까지 결국엔 희생시키더니 [곡성]에서 우리의 주인공이자 아버지는 자신의 아이도 그리고 자기 자신도 지키지 못한다.

또한 [살인의 추억]이 그랬던 것처럼 일면 코믹했던 영화가 어느 순간 가장 비참해지거나 가장 무서운 영화로 바뀌는 전환도 미국 관객들에게는 낯설다. 할리우드 영화계는 보통 장르의 특정 분위기와 규칙이 보다 엄격하게 지켜지는 곳이다. 사실, 어떤 시각에서는 [곡성]의 초반 분위기가 뒤에 비해 너무 가볍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장르에 대한 관습과 기대를 벗어나는 흐름과 요소들이 장점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곡성]은 보여주었다.

 

 

그들도 인정했다 : 마동석의 핵주먹 – ‘부산행’ 2016년 7월, 웰 고 USA

 

이미지: 웰 고 USA

 

[부산행]도 장르영화의 관습과 기대를 벗어나면서 미국 관객들을 사로잡은 경우다. 할리우드 영화가 끊임없이 재생산하고 있는 좀비라는 소재를 가지고 미국 관객들 눈에 들기는 쉽지 않다. [부산행]은 웰 고 USA가 배급한 한국영화 중에 최고의 수익인 212만 달러를 기록한 영화다. 웰 고 USA가 배급한 영화 중에 [엽문3] 다음으로 두 번째로 높은 수익이다.

사실 [부산행]이 좀비 영화의 관습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졌다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미국 관객은 적어도 좀비를 죽이는 방법만은 미국 영화와 다르다는 걸 인정했다. 한국영화팬들은 한국영화의 독창성과 창의성의 원인을 총기의 부재로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얘기하기도 한다. 같은 상황에서 미국 영화들이 다 총으로 해결하는 일들을 한국영화는 총 없이 뚫고 나가야 한다. 결국 그러한 상황이 [올드보이]의 망치, [악마를 보았다]의 낚싯바늘, 그리고 [부산행]의 핵주먹을 낳게 한 이유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미지: 넷플릭스

 

확실히 2010년대 들어 CJ와 웰 고 USA를 중심으로 한국영화들이 미국에서 올린 흥행 수익 기록은 놀랍다. 하지만 이 수치에는 예전에는 개봉이 늦어지면서 극장에서 한국영화를 보지 않았던 한국인들의 수가 다수 포함되어있다. 결국 새로 늘어난 관객들은 대부분 한국인들이다.

무엇보다 미국 내 한국영화팬들 사이에는 피로감과 위기감이 퍼져있다. 아직까지 한국영화를 좋아하는 팬들은 여기 리스트가 보여주듯 그 장르가 편중되어있는 편인데 같은 장르내 한국영화들은 자기 복제를 반복하고 있고, 한국영화는 다양한 팬층을 확보하는 것도 스스로 다양성을 갖추는 일도 실패하고 있다.

또한 초기 한국영화팬들을 양산해낸 감독들, 그러니까 박찬욱, 봉준호, 김지운 같은 감독들이 이제 그들의 전성기를 지난 듯한 행보를 보내고 있다. 미국 내 팬덤이 늘어나면서 할리우드는 이들을 모두 불러들였지만 늘어난 예산과 넓어진 무대가 그들의 필모그래피에 큰 도움이 된 것 같지는 않다. 2010년대 들어 한국 영화계는 이들과 같은 스타급 후배 감독을 배출하는 데에도 실패했다.

그나마 기대를 걸 수 있는 건 역시 2010년대 들어 가장 큰 변화라고 할 수 있는 넷플릭스와 아마존 프라임 같은 스트리밍 서비스의 역할이다. 예전에는 아트하우스에서 아트필름을 많이 보는 씨네필 가운데서 한국영화팬들을 어렵게 찾아내야 했지만, 이제는 우연히 넷플릭스를 통해서 한국영화를 보게 됐다고 하는 평범한 사람들이 훨씬 더 많다. 스트리밍 서비스는 한국영화팬의 폭과 깊이를 늘릴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 물론 근본적으로 한국영화가 해외 팬들을 계속 끌어들일 수 있는 다양성과 작품성을 갖춘 이후에 가능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