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 영화 안팎에 평등은 없다

미국 흥행 영화 1,100편 속 불평등에 대하여

 

출처: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할리우드 안팎에서 여성, 성소수자, 장애인의 ‘재현(representation)’이 필요하다는 주장은 #미투, #타임즈업 운동 이전부터 꾸준히 제기됐다. 마이너리티 캐릭터가 주인공인 영화가 작품성을 인정받으며 일련의 성과를 거두는 듯하지만, 눈에 보이는 것과 달리 실제 변화는 거의 없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USC 애넌버그 포용정책연구소(Annenberg Inclusion Initiative)가 지난 11년 간 북미 박스오피스 흥행 영화 1,100편을 분석한 연구에 따르면 스크린은 여전히 백인 남성 천하였으며, 여성, 유색 인종, 성소수자, 장애인은 소수이거나 거의 보이지 않는다. 배우, 감독, 작가, 크루, 팬들까지 한 목소리로 ‘다양화’를 외쳐왔지만, 그 결실이 거의 없다는 것은 다소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영화 속 캐릭터는 여전히 남성이 여성보다 많다. 2017년 영화 100편만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대사가 있는 캐릭터 4,454명 중 남성은 68.2%, 여성은 31.8%이며 성비 비율은 2.15:1이다. 분석 대상을 11년 간 나온 1,100편으로 확대하면, 대사 있는 캐릭터 48,757명의 남녀 성비는 2.3:1이다. 남녀 성비가 균형 잡힌(대사 있는 여성 캐릭터 비율 45.1~54.9%) 영화는 전체의 13%에 불과하다. 2017년 영화 100편 중 여성 단독 주연 또는 공동 주연 영화는 33편, 그중 여성 유색 인종 주인공은 4편이며, 45세 이상 여성 캐릭터 주인공 영화는 단 5편이다. 오랫동안 영화에서 성별, 인종, 연령 차별을 없애자는 목소리를 높여왔지만 현실은 절망적일 만큼 변화가 없다.

 

액션 어드벤처와 애니메이션 장르에서 캐릭터 성비 차이는 특히 두드러진다. 액션 장르 영화의 여성 캐릭터 비중은 23.2%, 애니메이션은 27.2%로 평균치보다 적다. 캐릭터 성격 또한 스테레오타입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섹시한 옷을 입거나, 신체 노출을 하거나, 성적 매력이 있다고 언급되는 여성 캐릭터 비율은 28.4%, 25.4%, 11%이다. 여성 캐릭터 수가 절대적으로 적은데 그 중 일부는 ‘성적 욕망의 대상’으로 고정되는 것이다. 연령별 분석 결과는 더 놀라운데, 13~20세 여성 캐릭터가 섹시한 의상 착용, 신체 노출, 성적 매력이 있다고 언급되는 경우가 21~39세, 40~64세 캐릭터보다 높은 편이다. 남성의 성적 시선이 어느 연령대 여성에게 머무르는지 알 수 있는 지표다.

 

출처: UPI 코리아

카메라 앞뿐 아니라 뒤에도 남성이 절대 다수를 차지한다. 2017년 영화 100편에 참여한 1,584명 중 여성 감독은 8명, 여성 작가는 34명, 여성 제작자는 247명이다. 영화 제작에서 가장 많이 논의되는 여성 감독 기용 현황은 꽤 심각하다. 매년 100편을 만든 감독 중 여성 감독은 10명을 넘지 않으며, 지난 11년 간 기용된 여성 감독은 단 43명에 불과하다.

 

콘텐츠 크리에이터의 절대 다수가 남성인 것이 스토리텔링의 성비 불균형과 관련 있을까? 2017년 영화 100편 중 여성 감독 영화에선 여성 캐릭터 비율이 43%, 아닌 작품의 여성 캐릭터 비율은 30.9%를 기록했다. 이런 경향은 크리에이터는 자신의 성별과 그 경험에 따라 캐릭터와 스토리를 발전시키기 때문일 수도 있고, 여성 감독과 작가가 여성 주연 영화만 맡는데 그 수 자체가 적기 때문에 심각한 고용 불평등을 겪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어떤 해석이 맞든 카메라 앞, 뒤에서 여성의 자리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며, 변화가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출처: AUD

스크린과 카메라 뒤 인종, 민족 구성의 차이는 더욱 두드러진다. 2017년 영화 100편 속 캐릭터 중 백인은 70.7%인 반면, 흑인 12.1%, 히스패닉 6.2%, 아시아계 4.8%, 그 외 인종이 6.3%였다. 11년 전체를 분석한 결과, 해마다 수치 변동은 조금씩 있지만 비율의 급격한 변화는 없다. 영화 속 캐릭터 비중 차이가 현실을 반영한 것이라는 반론이 있지만, 미국 전체 인구의 17.8%를 차지하는 히스패닉 계 캐릭터는 단 6.2%인 것을 봐도 그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반면 ’15~’17 3년 간 영화 300편 중 대사 있는 흑인 여성 캐릭터가 없는 영화가 138편, 히스패닉 여성 캐릭터 없는 영화가 201편, 아시아계 여성 캐릭터 없는 영화가 201편이다. 여성 캐릭터 수가 적다는 것이 특정 인종/민족에 더 큰 영향을 미침을 알 수 있다. 또한 11년치 1,100편 영화를 만든 감독 1,223명 중 흑인 여성은 4명, 아시아계 여성은 3명뿐이다. 감독과 인종, 성별과 영화 캐릭터의 인종, 성별과 관계가 큰 만큼, 비남성, 비백인 감독 수의 부족과 캐릭터 다양성 저해는 동시에 개선해야 한다.

 

영화 속 성소수자 캐릭터의 부재는 더 심각하다. ’14~’17년도 영화 400편 중 성소수자 캐릭터의 전체 비율은 1% 내외이며, 그 중 트랜스젠더는 단 1명이다. 그 중 주연 캐릭터는 2명, 모두 양성애자였으며, 조연급 캐릭터가 전체의 50% 미만, 나머지는 ‘없어도 상관 없는’ 캐릭터로 등장할 뿐이다. 반면 2017년 영화 100편 중 성소수자 캐릭터가 없는 영화는 81편, 여성 성소수자 캐릭터가 없는 영화는 94편이었다. 장애인 캐릭터 또한 전체의 2.4~2.7%로 인구 구성에 비해 그 비율이 절대적으로 적으며, 남성이 69.6%로 여성보다 2배 이상 많이 등장한다. 어떤 기준으로 놓고 봐도 영화는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으며, 이는 지난 11년 간 변함없는 사실이다.

 

지난 몇 년 간 중요도 있는 캐릭터를 맡는 여성 및 소수자가 많아졌지만, 배역의 절대적인 수는 변함이 없고, 기회 자체는 한정되어 있다. 양적 발전이 없는 질적 개선은 파이 크기를 키우는 게 아니라 파이를 더 높은 곳에 위치시킬 뿐이다. 연구는 불평등 해소 방법으로 포용 조항 활용, 성평등 목표 설정 등 대안을 내놓으면서, 가장 간단한 해결책도 제시한다. 작은 배역이나마 대사 있는 여성 캐릭터를 영화당 5명씩 더하는 것이다. 인종, 성적 지향 구분 없이 여성 캐릭터 5명을 더 출연시킴으로써 스크린 위 다양성을 성취하고 배우에게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여성 캐릭터뿐 아니라 인종/민족, 성소수자, 장애인 캐릭터 또한 비슷한 관점으로 접근한다면, 양적 불평등을 몇 년 내에 해소하고 질적인 발전을 논의할 토대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