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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불황이 오자,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가 탄생했다

 

Written By. 에이브러햄 리에즈만 (Abraham Riesman)

Translated By. 띵양

 

 

이미지: 한국소니픽쳐스릴리징브에나비스타영화㈜

 

토니 스타크가 막차를 제대로 탔다. [아이언맨]이 개봉한 2008년 5월은 전 세계가 경제 대침체에 빠진 지 6개월에 접어들던 시기였다. 그러나 위기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상황이었고, 일반 관객들은 전 세계 경제가 불안하게 쌓인 ‘젠가’ 탑처럼 흔들리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니 누구도 ‘돈자랑밖에 모르는 억만장자 플레이보이가 나오는 영화’를 거리낌 없이 볼 수 있었을 것이다. [아이언맨]은 마블 스튜디오에 영웅적인 변화와 함께 영화 역사상 가장 대담한 상업적 도전을 할 수 있는 용기를 주었다. 그 도전은 바로 모두 이어져 있으며 끝없이 확장해나가는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이하 MCU)다.

 

만일 [아이언맨]이 12월에 개봉했더라면, 현금을 꽁꽁 숨겨둔 채 크리스마스를 보내는 관객들이 ‘허영심 가득한 부호’를 그린 영화에 열광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사실은 누구라도 쉽게 예상할 수 있다. 디즈니 CEO 밥 아이거와 마블 스튜디오 대표 케빈 파이기에게 운이 따랐는지, 전 세계는 ‘초갑부’로 사는 게 가장 멋진 일이 아닐 뻔하기 직전에 등장한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슈퍼히어로와 사랑에 빠졌고, 우리는 지금 그러한 시대를 살고 있다. 토니 스타크는 지금 돈이 되는 미소를 지으며 광활한 하늘을 활보하는 중이다. “MCU 제국에 해는 지지 않는다”라고 자신하면서 말이다. 할리우드의 모든 이들은 원작과 열린 결말을 가진 메가 프랜차이즈를 갈망하고 있고, 또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가 20억 달러 흥행이 별 것 아닌 양 달성하는 모습을 보면서 질투심에 주먹을 불끈 쥔 상황이다.

 

“MCU가 지금의 할리우드를 만들었다면, 무엇이 MCU를 만들었을까?”라는 의문을 가질 법한 시기다. 물론 이 질문에 하나의 답만 존재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대부분의 답은 전문가들이 이미 면밀히 분석을 마치기도 했다. 1998년 [블레이드]부터 시작된 MCU 이전의 작품들로 인해 지난 십 년 간 슈퍼히어로 영화 시장에 탄력이 붙은 상태였다. 또 [매트릭스]와 [스타워즈 에피소드 1 – 보이지 않는 위협]을 기점으로 특수효과 기술 역시도 굉장한 발전을 이루었다. 모두가 시기하지만 절대로 따라가지 못하는 케빈 파이기의 창의적이고 비즈니스적인 기발함도 있었다. 1960년대의 마블 코믹스를 읽으면서 자랐던 영화 거물들이 성장한 시기였고, 스탠 리, 잭 커비, 스티브 딧코가 탄생시킨 코믹스 캐릭터들의 기반이 튼튼했다는 점도 함께 작용했다.

 

그러나 시기적으로 봤을 때 가장 중요하고 분명한 요인이 보이지 않는다. 바로 ‘경제 대침체와 그 이전의 경제 버블이 이끈 연쇄 작용’이다. 경제적으로, 그리고 사회적으로 빈곤했던 지난 십 년은 마블의 부흥과 시기적으로 일치하며, 둘 사이에는 긴밀한 상관관계가 존재한다.

 

처절할 정도로 저조했던 경제 침체 이후의 열광적인 트렌드가 없었다면, 우리는 MCU를 보지 못했을 수도 있다. 부동산 버블이 한창이었고 담보 대출이 마치 파티장에서 나눠 피는 대마초처럼 끝없이 퍼진 시기였다. 이 시기에 대형 은행들은 상당히 이색적인 시도를 했는데, 바로 할리우드에 투자를 시작했다는 것이다. 당시 마블 스튜디오(디즈니에 인수되기 이전)는 대형 스튜디오들에게 자신의 캐릭터를 영화화하라고 권유하고, 제작자와 스토리를 제공하는 라이선스 회사에 가까웠다. [스파이더맨]과 [엑스맨] 시리즈 같은 성공작과 [헐크], [퍼니셔]로 대표되는 실패작, 그리고 사장된 프로젝트(‘네이머’를 다룬 영화)들도 있었는데, 마블 스튜디오에서 자체적으로 만든 작품은 단 한 편도 없었다.

 

그러던 중 2003년, 영화 프로듀서 데이빗 메이즐은 당시 마블 스튜디오 대표 아비 아라드와 부대표 케빈 파이기에게 “직접 영화를 만들어보는 것은 어떻냐”라고 의견을 제시했고, 곧바로 마블 스튜디오의 임원으로 합류했다. 이후 메이즐은 2년의 사투 끝에 증권사 메릴린치로부터 영화 제작비로 5,250만 달러 상당의 대출을 받아내는 데 성공했다. 메릴린치의 도박은 당시 유행했던 ‘카지노 바람’에 영향을 받은 결과물인데, 사실 그 투자는 위험하기 짝이 없었다. 가장 인기가 좋은 마블 캐릭터 ‘엑스맨’과 ‘스파이더맨’ 판권은 폭스와 소니가 가지고 있는 상황인지라 마블 스튜디오는 네임밸류로 따지면 B급이나 C급 정도 되는 히어로들을 활용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메릴린치는 판돈을 걸었다. 그 결과 마블 스튜디오의 리더들은 과감한 도박수를 걸면서 2008년 여름 [아이언맨]과 [인크레더블 헐크]를 모두 데뷔시켰다. 그리고 몇 달 뒤, 세계의 경제는 무너져 내렸다. 마블 스튜디오가 몇 년만 꾸물거렸더라면, 메릴린치의 도움은 꿈도 꿀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이들은 발 빠르게 움직이면서 경제 위기가 강타했을 때 돈을 안전하게 지켜낼 수 있었다.

 

그 이후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비단 마블 영화를 보기 위해서가 아니더라도 사람들이 계속해서 극장을 찾는 것이었다. 리먼 브러더스가 파산한 시기에도 영화 산업은 승승장구했다. 산업의 흥망성쇠 요인을 단정 짓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지만, 아마도 할리우드가 버틸 수 있었던 이유는 영화 스튜디오들이 중규모 제작비가 들어가는 영화 제작을 포기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불확실함과 감축을 마주하면서, 아주 적은 돈으로 영화 제작이 가능하거나 사람들이 무조건 볼 수밖에 없는 큰 스케일의 블록버스터를 만드는 것만이 생존의 방법임이 분명해진 상황이었다. ([아바타]의 개봉과 함께 떠오른 3D 상영으로 티켓 값을 더 벌 수 있기도 했다)

 

대침체는 스튜디오들을 안전지향적으로 변하게 만들었고, 이들은 굳이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성공적인 텐트폴 영화를 간절히 찾고 있었다. 마블은 붕괴되었던 영화계에서 살아남기에 완벽한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직접 영화를 제작하기 이전으로 돌아가더라도, 이들에게는 ‘흥행 보증수표’가 있기 때문이다. 그보다 더욱 중요한 사실은, 이들이 ‘관객들이 편하게 볼 수 있고, 앞으로도 볼만한’ 프랜차이즈를 막 시작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오리지널 코믹스가 워낙 뛰어났고, 또 슈퍼히어로 영화들이 시리즈로 개봉하는 전통에 힘입어, 마블 스튜디오는 태양이 사라지는 날까지 끊임없이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게 되었다. 월트 디즈니 컴퍼니가 2009년에 마블을 인수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더 이야기하자면, MCU는 2008년 당시 경제적으로 허덕이고 사회적으로 불안한 관객들이 세상 무엇보다 원하는 ‘탈출구’를 제공해주었다. 미국 극장협회 ‘NATO’(National Association of Theater Owners)에 따르면, 지난 여덟 번의 경제 위기 중 여섯 차례 극장가에 활기가 돌았다고 한다. 협회원 패트릭 코코란은 [토르], [퍼스트 어벤져]가 극장가를 강타했던 지난 2011년, 매체 엔터테인먼트 위클리에 “대중들은 직면한 문제를 잊기 위해 안식을 찾는다. 그래서 여가활동 중에서 가장 저렴한 영화를 택하는 것이다”라고 밝힌 바 있다. 그는 이어서 허황된 이야기를 담은 영화가 인기를 끄는 동안에는 현실을 직시하는 작품들에 대한 관심도가 상당히 낮았다는 중요한 포인트를 집었다.

 

그리고 MCU는 탄생 직후부터 계속해서 대중들에게 가장 허황되면서도 수요도가 높은 탈출구를 제공했다. 우리는 이 작품들이 효과적으로 고통을 덜어줄 때에 스스로를 정당화하면서 보지만, 사실 마블 프랜차이즈가 문화를 가리지 않고 통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이 영화들은 화려한 편집을 통해 눈을 어디다 두어야 할지 모르는 시각효과로 가득하고, 각 계층을 대표하는 대사를 읊는 이해하기 쉬운 캐릭터들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관객들은 그들이 일분일초라도 빨리 평상복을 벗고 멋진 코스튬을 입은 모습을 보기를 원하는 것이다. 인간을 지배하에 두려는 국제적인 음모가 도사리는 MCU에서 캡틴 아메리카는 공모자들을 마음껏 두들겨 팰 수 있고, 그렇다고 이들은 두둑한 보상금을 받지도 못한다. 무엇보다 MCU 작품들은 관객들을 현재로부터 벗어나게 돕는다. 슈퍼히어로들은 보기 위해 자전거를 타며 만화책방으로 향했던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촉매제 역할을 하는 것이다. 친절하고 포근한 MCU의 테두리 안에서는, 걱정도 없을뿐더러 또 모든 일이 괜찮을 것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극장 밖 세상에서는 무엇 하나 제대로 돌아가는 것이 없다. 비록 지금은 공식적으로 대침체에서 벗어나고 주식과 취업이 흥하는 세상이지만, 우리가 매번 은행 잔고를 확인할 때마다 불안한 데는 이유가 있다. 2008년 경제적 타격을 입었던 일반인들이 아직까지 회복하지 못했다는 것이 여러 지표를 통해 증명되었다. 이는 할리우드에게 대단히 심각한 문제다. 넷플릭스로 한 달에 여섯 편씩 영화를 관람하면 한 편당 2달러만 내도 되는 마당에, 특별한 셀링포인트가 없는 이상 대중을 극장으로 불러와 영화 한 편에 16달러를 지불하라고 설득하는 일이 날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는 상황이다. 불안정한 사업 모델인 무비패스가 이토록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역자 주: 무비패스는 재정적 어려움을 겪으면서 올해 초부터 지속적으로 서비스를 축소하고 있다)

 

사람들을 극장으로 이끄는 영화는 대체로 ‘이벤트’ 같은 느낌이 드는 작품들이다. 비밀이 밝혀지고,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고, 새로운 유행어가 탄생하고, 늦게 보면 틀림없이 스포일러를 당하는 불상사가 일어나는 그런 작품 말이다. 관객이 극중 등장인물과 세계관에 근거 없는 애착을 느껴서, 이들을 만날 수 있는 ‘영화 데이트’를 놓치고 싶지 않아하는 마음이 든다면 더 도움이 된다. 모든 “다음 편에 계속…”은 한창 사랑을 나누는 도중에 갑자기 끊는 기분이 들게 하니, 광팬이 아니더라도 수백 달러씩 들여가면서 ‘언제 절정에 도달할지 모르는’ MCU 작품을 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만일 당신이 부모라면? 아이들의 ‘슈퍼히어로 광란’을 막기 위해선 신의 도움을 바랄 수밖에 없다. 다른 영화 스튜디오들도 MCU가 누리는 ‘공유 세계관의 성공’을 맛보기 위해 시도 중이고 노력 중이다. 워너 브러더스는 DCEU로 힘겨운 발걸음을 이어가고 있고, 유니버설 스튜디오는 현재까지 실패작으로 치부되는 다크 유니버스를 시작하려 했다. 이외에도 수많은 이들이 성공의 비결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지만, 그 누구도 레시피를 완벽하게 숙지하지 못한 상황이다. 몇 년 전 세상을 떠난 영화 평론가 로저 이버트는 “영화는 공감을 이끌기 위해 만들어진 기계와 같다”라고 자주 이야기하곤 했는데, 마블 영화들은 마치 집착을 이끌어내기 위해 제조된 기계 같은 느낌이다.

 

이 ‘집착’은 거진 세계적인 현상이다. MCU는 영화산업에서 흔히 말하는 ‘4분면’ 프랜차이즈인데, 이는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모두가 즐기는 시리즈라는 뜻이다. 더욱 중요한 사실은, MCU가 사회-정치적인 경계를 넘나드는 시리즈라는 점이다. 이 부분이 대침체와 마블의 승승장구를 잇는 가장 중요한 연결고리다. 내년이면 [어벤져스 4]의 포스터가 민주당, 공화당 가정을 가리지 않고 어디에나 붙어있을 것이다. 트럼프 지지자, 反트럼프 지지자들은 정치 성향과 상관없이 [캡틴 마블]과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 그리고 MCU의 네 번째 페이즈에 공개될 작품들을 보기 위해 극장으로 달려갈 것이다. 한걸음 물러서서 생각하면, 정말 충격적인 일이다. 동료들의 이야기처럼, 현재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퀄터캄프(문화투쟁)’는 2008년 9월부터 시작되었다. 그리고 NFL부터 독립 선언까지, 소위 ‘미국을 대표하는 무언가’를 둘러싸고 치열한 혈투가 지금까지 이어진 것이다.

 

그 누구도 이러한 기류 속에서 다시금 ‘통합된 사회’에 사는 듯한 기분이 들게 하는 무언가에 애착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영화의 재미 여부를 떠나서, MCU 작품을 본 모든 관객들은 극장을 나선 이후부터 삼삼오오 모여 마치 예배 이후 성경공부를 하듯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어떠한 정당을 지지하더라도 ‘타노스 농담’을 할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이 MCU에서 가능한 이유는, [블랙 팬서]를 제외한 모든 작품들이 현실의 정치와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에서는 무분별한 감시체제에 대한 모호한 비판이 있지만, 해당 범죄를 꾸민 사람들은 실제 정치인이 아니다. 헬라는 [토르: 라그나로크]에서 대학살과 비슷한 일을 꾸미지만, 판타지 사이에 깊숙이 박혀있어서 큰 신경을 쓸 필요도 없다. 영화의 99%는 선한 사람들이 엉뚱함 가득한 세상을 현실성이 0에 가까운 위기상황으로부터 지켜내는 이야기다. 우리의 두 번째로 최악인 대통령님의 말을 인용하자면, “MCU는 화합을 도모하지, 분열을 조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이 마냥 좋은 일일까? 같은 소비를 한 사람들과 동질감을 느끼는 현상은 좋지만, 이 동질감이 마약과 같은 것이라면? 나아가 현실이 불안정한 상황에서 영화의 주제가 ‘세상 지키기, 혹은 현 상황 유지’라면, 이 또한 얼마나 잘못된 일인가? ‘탈출의 시대’의 종지부를 찍어야 할 시기가 왔다. 혹은 ‘영화적 불안감’이 필요한 시기일 수도 있다. [블랙 팬서]를 MCU 중 수작으로 꼽는 이유가 바로 이 영화가 인종 간 구조적 불평등의 실태를 드러내기 때문이다. 이 실태는 버블 시대에 은행들이 흑인 채무자들을 집중적으로 노렸다는 사실이 밝혀진 이후, ‘경제 대침체’를 이야기할 때 가장 핵심적인 사항이기도 하다. 물론 [블랙 팬서]도 돈의 개념을 모르는 ‘스판덱스 숭배자’들과 시간을 보내는 부유한 왕의 이야기를 다루긴 했지만 말이다.

 

MCU는 할리우드에 혁명을 불러일으켰다. 그와 동시에 대중에게 자극이 필요한 시기에 혁명의 의지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작품이기도 하다. 대침체 이후, 현실의 토니 스타크들을 향해 매서운 바람이 불고 있다. 언젠가는 ‘토니 스타크’로 대변되는 인물들이 ‘상위 1%가 과거 10년 동안 저질렀던 일들에 대한 심판을 받는’ 시기의 유물로 남을 수도 있다. 과연 리펄서빔이 단두대를 이겨낼 수 있을까?

 

 

This article originally appeared on Vulture: As the Financial World Crashed, the Marvel Cinematic Universe took Sha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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