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쌀쌀해지는 가을이 온다

 

by. 김옥돌

 

 

바람의 온도가 점점 선선해진다.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에는 여러 형태의 외로움이 녹아있다. 사회에서 먼발치 떨어져 있거나 자신과의 싸움으로 스스로를 외부와 단절시키거나, 혹은 물리적으로 아주 멀리 떨어진 곳에 고립되기도 한다. 카메라는 각각의 외로운 캐릭터들이 어떻게 다른 캐릭터와 함께 반응하고 작용하는지 물끄러미 지켜본다. 지독하거나 잔잔한 외로움은 감정적인 동요와 파문을 불러일으킨다. 성큼 다가오는 가을을 맞이하며, 외로움 혹은 고립감을 훌륭하게 담아낸 영화를 살펴봤다. 어쩌면 꽤 매혹적일지도 모르는 감정을 즐겨 보길 바란다.

 

 

 

택시 드라이버(Taxi Driver)

 

이미지: 콜롬비아 픽처스

 

베트남에서 돌아온 퇴역 군인, 트래비스(로버트 드 니로)는 뉴욕에서 홀로 지내며 불면증에 시달린다. 쉽사리 잠들지 못하고, 극장을 전전하거나 TV를 보며 시간을 흘려보낸다. 트레비스는 야간 택시 운전사로 일하며, 자신이 사는 비참하고 구역질 나는 뉴욕의 풍경을 목격한다. 이 거대하고 화려한 도시는 그의 마음속 억눌린 분노를 부채질할 뿐이다. 어느 날 트래비스는 12살 아이리스(조디 포스터)를 만나 사창가에 발들인 소녀의 인생을 구하려 하지만 결국 설득하는데 실패한다. 무력감과 외로움에 빠져 망상에 잠기던 트래비스는 상원의원을 저격하려다 사창가의 악당들을 소탕한 영웅으로 대접받게 되고 다시 택시 운전을 시작한다.

영화 [택시 드라이버]는 고독과 좌절로 망상에 빠져드는 젊은 퇴역 군인의 모습을 통해 70년대 미국 사회가 앓던 후유증을 담아낸다.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명작 중 하나로 거론되는 작품으로 뉴욕의 노골적이고 더러운 풍경을 가감 없이 묘사한다. 마틴 스콜세지 감독은 [비열한 거리] 이후 로버트 드 니로와 다시 팀을 이루어, 이번에는 외로운 택시 운전사 역을 맡겼다.

 

 

세 가지 색 : 블루(Three Colors: Blue)

 

이미지: 미라맥스

 

예기치 않은 자동차 사고로 사랑하는 남편과 딸을 잃은 후, 줄리(줄리엣 비노쉬)는 과거와 단절하고 스스로 고독한 삶을 시작한다. 줄리는 가족과 함께 보낸 집과 남편의 흔적을 뒤로하고 떠나버린다. 줄리는 과거와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벗어나고, 모두에게 잊혀 조용히 살고 싶다. 스스로를 고립시키며 홀로 조용히 잊히길 원하는 그녀는 과거를 떠올리게 하는 것들을 마주하게 된다. 그녀가 자처한 유배생활은 조각나기 시작하고, 그 과정에서 줄리는 치열한 내적 갈등을 겪으며 정신적인 자유를 성취해 나간다.

[세 가지 색 : 블루]는 사무치는 이별로 감정적인 충격에 빠진 줄리를 응시한다. 드문드문 이어지는 대화와 행동만으로도 줄리엣 비노쉬의 감정을 느낄 수 있다.

 

 

라스베가스를 떠나며(Leaving Las Vegas)

 

이미지: MGM

 

할리우드의 극작가 벤(니콜라스 케이지)은 의사도 가족도 포기한 알코올 중독자다. 모든 것을 잃은 그는 좋아하는 술을 실컷 마시다 죽어버릴 마음으로 라스베이거스로 향한다. 그곳에서 세라를 만난다. 우연한 인연으로 자꾸 부딪히던 두 사람은 사랑에 빠지고,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악덕 포주의 손아귀에서 빠져나올 수 없는 세라는 일을 하고, 벤은 온갖 종류의 술을 끝없이 마시며 만남을 이어간다.

강렬하고도 음울한 사랑 이야기, [라스베가스를 떠나며]는 절망에 빠진 두 영혼의 중독, 그리고 외로움과의 싸움을 그린다. 벤은 감정의 고통과 황량한 마음을 분출한다. [라스베가스를 떠나며]는 어둡지만 위엄을 지녔고 강렬하고도 감성적이다. 니콜라스 케이지는 영화에서 실감나는 알코올 중독 연기로 골든 글로브와 아카데미의 남우주연상을 휩쓸었다. 알코올 중독 끝자락에 이른 이 암울한 남자를 다룬 묘사는 그의 연기 중 베스트로 꼽힌다.

 

 

캐스트 어웨이(Cast Away)

 

이미지: CJ엔터테인먼트

 

척 놀랜드(톰 행크스)는 페덱스에서 근무하는 꼼꼼한 분석가로 전 세계에 위치한 창고를 방문하며 바쁘게 일한다. 그는 시간에 아주 민감하고 바쁘게 사는 현대인이다. 크리스마스 여행을 가려고 탑승한 아시아행 비행기가 물속으로 추락하면서 척은 어느 무인도의 해안으로 떠밀려온다.

한 남자가 홀로 자연에서 살아남는 분투기를 그린 [캐스트 어웨이]는 인간의 고립을 그린 영화 중 단연 두각을 나타낸다. 믿고 보는 배우 톰 행크스가 원톱을 맡아 인류와 완전히 단절된 현대판 로빈슨 크루소를 연기한다. 척이 정신력의 한계와 맞닥뜨리는 힘겨운 투쟁을 보며, 우리는 당연히 여기던 일상에서 편안함과 감사를 느끼게 된다. 가상의 친구, 배구공 윌슨과 함께하는 척의 생활은 일상과 인간이 사회적 동물임을 다시금 상기시킨다. 가치 있는 고독을 다룬 영화 [캐스트 어웨이]는 한 남자의 생존 투쟁기를 그린 한 편의 초상화라 할 수 있다.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Lost in Translation)

 

이미지: Focus Features

 

도쿄의 호텔에 머무는 밥(빌 머레이)과 샬롯(스칼렛 요한슨)은 각자 매우 다른 환경에 떨어져 혼자 남았다. 같은 호텔에 머무르고 있던 밥과 샬롯은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이던 중 호텔 바에서 마주친다. 두 사람은 낯선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외로움을 느끼는 서로에게 동질감을 느끼고 이끌리게 된다. 이 둘은 도쿄 시내를 함께 구경하고 얘기를 나누면서 가까워진다. 유대 혹은 동질감을 통해 두 이방인은 서서히 감정적으로 연결된다. 그들은 특이하고도 안전함을 공유하는 유대감을 느낀다.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는 말이 통하지 않는 타국에 떨어진 두 이방인이 등장한다. 소피아 코폴라 감독의 두 번째 장편영화로 비평과 상업적인 성공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다. 멜랑꼴리함이 담긴 이 영화는 잘난 척하거나 허세를 부리지 않는다. 마치 꿈을 꾸는 듯한 느낌의 이 코미디 드라마는 별난 구석이 많다. 그들의 삶에 똬리를 튼 불확실함과 좌절 혹은 불만감이 두 사람을 하나로 모이게 만든다.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가 그려내는 가벼운 충돌은 미묘한 감정들과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인투 더 와일드(Into The Wild)

 

이미지: CJ 엔터테인먼트

 

영화는 대학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크리스가 자신의 전 재산을 모두 빈민구호단체에 기부하고, 북아메리카를 방랑하는 철학적인 여정을 따라간다. 주인공 크리스는 친구와 가족, 예전에 자신이 누렸던 삶의 모든 흔적을 뒤로하고 떠난다. 그는 산과 계곡, 바다를 모험하며 집시와 농부 등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교감을 나눈다. 산간 지역에서 길을 잃어버린 크리스는 원래 목적지 알래스카로 떠나지 못하고 발이 묶인다. 그는 거대한 자연에 묻혀 야생에서 힘겨운 생활을 시작한다

관객은 그가 홀로 진짜 자유와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 떠난 여행을 지켜보며 많은 질문들과 마주하게 된다. 단번에 마음을 사로잡을 만큼 아름답고 고독한 풍경을 담은 [인투 더 와일드]는 존 크라카우어가 쓴 동명의 논픽션을 각색해 만든 작품이며, 명배우 숀 펜이 연출을 맡았다.

 

 

우리들

 

이미지: 엣나인필름

 

어리다고 해도 친구들과 와글와글 함께 있어도 외로움은 찾아온다. 혼자 다니는 게 익숙한 외톨이 초등학교 5학년 선이는 홀로 교실에 남아있던 방학식 날, 전학생 지아를 만난다.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의 집을 왕래하며 둘은 단숨에 꼭 붙어 다니는 단짝이 된다. 선과 지아는 여름을 함께 보내며 우정을 쌓는다. 그러나 선과 지아가 단짝으로 함께 다닐 때에도 외로움은 각자를 방문한다. 영화는 그러한 순간을 섬세하게 표현해낸다.

개학 후 학교에서 만난 지아는 선이에게 차가운 얼굴을 하고서 쌀쌀맞게 대한다. 지아는 같은 학원을 다니며 가까워진 보라의 편에 서서 선을 외면한다. 선이는 지아와의 관계를 회복하려 노력하지만, 결국 지아의 비밀을 폭로해버리고 두 사람이 그간 쌓아온 우정은 어그러진다. 영화는 어린 시절 맺는 관계와 감정의 결들을 세심히 그려내 당시의 감정과 기억을 소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