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빈상자

 

지난 6월, 이란의 최고지도자 하메네이는 이스라엘을 비난하며 ‘제거해야 할 암’이라는 트윗을 남겼다. 이에 미국의 이스라엘 대사관 트위터는 긴 반박글 대신 영화 대사가 담긴 움짤 하나로 응대했다. “넌 왜 그렇게 나한테 집착하니?(Why are you so obsessed with me?)”

 

이미지: 이스라엘미국대사관

 

[퀸카로 살아남는 법(이하 ‘퀸카’)]에서 레지나(레이첼 맥아담스)가 한 대사였다. [퀸카]는 그 외에도 수많은 유행어와 밈을 남겼고, 시간이 흐르면서 이제는 문화현상 자체가 영화의 존재감을 넘어서는 정도가 되어버렸다. 결국 이는 14년이 지나도록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이 영화를 거론하고 또 찾아보는 이유 중의 하나가 되었다.

[퀸카]는 미국 시카고 근교의 노스쇼어 고등학교를 배경으로 ‘여자 아이들의 세계(Girl World)’를 다룬 코미디인데, 그 장르답게 상황과 등장인물들이 단순화되고 과장된 것이 많다. 그런데 비평가로부터는 몰라도 당사자들인 십대나 학창 시절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로부터는 적지 않은 공감을 얻었다.

 

이미지: 파라마운트 픽쳐스

 

이스라엘 대사관에서 인용한 대사의 레이첼이라는 캐릭터는 이 영화에서는 악역이다. 무엇보다 이제 아프리카에서 막 전학을 와서 순진무구한 케이티, 그리고 (당시만 해도) 디즈니 채널을 통해 십대들의 스타로 성장한 린제이 로한에 대비되는 캐릭터였다. 부유한 집안 출신의 예쁜 여학생들 패거리인 ‘플라스틱’의 리더이면서 항상 자신감과 우월감을 다른 사람들에게 무례하게 휘두른다. 주변의 모든 사람들을 자신의 일벌로 만드는 여왕벌로 군림하면서 많은 학생들의 원망의 대상이면서 또 동시에 선망의 대상이기도 하다. 영화의 원제 ‘못된 소녀들(Mean Girls)’ 중에서도 가장 못된 탓에 못된 캐릭터의 대명사가 되어버리기도 했다.

 

이미지: 파라마운트 픽쳐스 

하지만 십여 년 전에 보았던 흐린 기억을 복원하기 위해 영화를 다시 보니 [퀸카]에서 가장 못된 소녀는 레지나가 아니라 주인공 케이티(린제이 로한)였다. 무조건 주인공에게로 향하는 감정이입의 자석 원칙을 피하고, 이제 린제이 로한에 대한 팬심도 무너져 버리고 나니 그 점이 너무 분명하게 드러났다. (린제이 로한의 시대가 가고 레이첼 맥아담스의 시대가 왔다!)

 

이미지: 파라마운트 픽쳐스

 

우선 레지나는 케이티에게 장난을 걸던 남학생을 쫓아내고 바로 플라스틱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준다. 전학 온 후 겨우 둘째 날이었고 어제만 해도 화장실에서 밥을 먹었는데 말이다. 각 파벌끼리만 모여서 점심을 먹는 배타적인 분위기를 고려하면 플라스틱은 학교에서 가장 포용력이 좋은 그룹인 셈이다.

 

이미지: 파라마운트 픽쳐스 

플라스틱만큼이나 포용력이 좋은 이들이 있다면, 케이티에게 제일 먼저 친절을 베푼 재니스와 데미언이다. 그런데 먼저 친구가 된 재니스와 데미안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그들에게 양해를 구하지도 않고 레지나의 제안에 케이티는 바로 플라스틱과 자리를 함께 한다.

 

이미지: 파라마운트 픽쳐스

 

케이티가 플라스틱의 레지나, 그레첸, 캐런과 가까이하게 되는 이유는 더 고약하다. 차라리 그들처럼 선망의 대상이 되고 싶었다고 솔직히 말한다면 모를까, 거짓 친구가 돼서 그들을 뒷담화를 하기 위해서라니. (제발 재니스와 데미언 핑계는 대지 말자)

 

이미지: 파라마운트 픽쳐스

 

영화는 케이티가 레지나에게 일련의 못된 짓을 연속적으로 행하면서 속도를 타는데, 케이티가 복수를 시작하는 계기는 케이티가 좋아하는 남학생 애런을 레지나가 사귀면서다. 하지만, 레지나가 케이티의 남자친구를 뺏은 것도 아니고, 레지나와 애런은 이미 사귄 전력이 있었으므로 정확히 따지자면 레지나에게 우선권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미지: 파라마운트 픽쳐스

 

아무튼 이를 계기로 순진한 표정과 형편없는 패션에 가려져 있던 케이티가 본성을 드러내고 레지나에 대한 악행을 이어가지 시작한다. 먼저 레지나에게 페이스크림 대신에 발에 바르는 보습제 건내주기.

 

이미지: 파라마운트 픽쳐스

 

레지나 옷에 테러하기.

 

이미지: 파라마운트 픽쳐스

 

그리고 몸무게에 민감한 레지나에게 스웨덴산 다이어트용 영양바라고 속이며 살찌는 에너지바를 먹인다.

 

이미지: 파라마운트 픽쳐스

 

하다못해 학교 축제인 스프링 플링의 선거를 조작하고..

 

이미지: 파라마운트 픽쳐스

 

이미 레지나의 남친이 된 애런을 꼬시기 위해 안간힘을 쏟는다.

 

이미지: 파라마운트 픽쳐스

 

그중에서도 가장 못된 것은 친구들 사이를 이간질해서 결국 레지나를 친구들과 멀어지게 한다. 그 과정에서 케이티는 실제로는 플라스틱 친구들을 싫어하면서도 친구인 척하는 이중성과 철저함을 보인다. 또한 친구 재니스와 데미언은 물론 노베리 선생님까지 주변 사람들이 자신을 신뢰하고 한 말들을 퍼뜨리며 험담과 모함을 한다.

 

이미지: 파라마운트 픽쳐스

 

그리고 이 모든 복수에 친구 재니스와 데미안을 철저하게 이용하고선 끝에 가서는 그 둘과 거리를 두고 외면한다. 결국 재니스의 지적처럼 케이티는 더 이상 플라스틱인 척하는 것이 아니라 완벽한 플라스틱이 된다. 그것도 레지나보다 더하면 더했지 절대 덜하지 않은 ‘비아취’로.

 

이미지: 파라마운트 픽쳐스

 

그래도 여전히 케이티를 변호하고 싶은 사람들은 영화가 말미에서 결국 케이티가 잘못을 뉘우치면서 교훈을 준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시종일관 사람 죽이기를 즐기도록 고안된 비디오게임이 휴머니즘의 껍데기를 쓰고 있는 꼴이다.

 

이미지: 파라마운트 픽쳐스

 

결국 관객들이 영화를 보는 동안 가장 즐겼고, 그 이후로 지금까지 기억하는 것은 말미의 교훈이 아니라 케이티의 못된 짓을 지켜보며 느꼈던 쾌감이지 않았을까? [퀸카]를 보고 사람들이 따라 했던 패션도 케이티의 순진했던 시절의 허름한 바지가 아니라 플라스틱의 핑크였다.

 

이미지: 파라마운트 픽쳐스

 

학창 시절이 지나면 그것이 성장이든 위선이든 사회에서 우리는 말을 가리는 법을 조금씩 배워간다. 그런 사회적 합의에 조금 지쳤다고 느낄 때쯤 다른 사람의 기분 따위는 그다지 배려하지 않는 듯 내뱉는 못된 소녀들의 직설적인 화법은 일면 통쾌하기도 하다. 물론 영화 속에서 즐기는 것을 넘어서 현실에서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따르겠지만 말이다. 그러한 때에 밈은 못된 말도 다소 너그러이 용서받을 수 있는 소셜 미디어만의 문화로 빛을 발한다.

 

이미지: 파라마운트 픽쳐스

 

[퀸카]는 결과적으로 케이티는 물론 레지나도 구원한다. 죽거나 끝까지 응징당하는 캐릭터는 없다. 못된 소녀들은 많아도 사악한 소녀는 없다. 사실은 우리 모두 누군가에 대한 못된 짓을 (마음속으로라도) 즐기고 있으니까 서로를 서로를 용서하기로 합의하는 거다. [퀸카]는 결국 못된 말과 행동도 너그럽게 용서하는 2시간짜리 움짤이다. 얄궂지만 밉지는 않은.

 

이미지: 파라마운트 픽쳐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