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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Jen Chaney
Translated by 겨울달

출처: HBO

HBO 코미디 시리즈 [배리 (Barry)]의 첫 에피소드는 시작 후 살인 사건을, 적어도 사건 직후를 묘사하는 데 채 1분도 걸리지 않았다. 첫 장면에 배리(빌 헤이더)는 호텔 방 안에 서 있고, 그 옆엔 이마 중앙에 큰 상처를 입고 피를 철철 흘리는 대머리 남자의 시체가 있다. 배리는 분명히 조금 전 그 남자를 죽였겠지만, 그의 얼굴을 채운 불만 가득한 표정은 살인 자체가 페덱스 직원이 종이 걸림을 고치는 것마냥 일상적인 일임을 보여준다. 총에서 소음기를 제거한 후, 그는 떠난다.

이 오프닝 장면에 명백하게 ‘웃긴’ 건 없지만, 배리가 이 모든 일을 심드렁하게 여긴다는 것 자체는 음울한 재미를 자아낸다. 노골적으로 비꼬는 내용이 가득한 다른 장면이나, 올해 에미상 코미디시리즈 최우수 작품상 등 여러 부문에서 후보로 지명받은 것을 보면, [배리]는 당연히 코미디다. 그것도 매우 특정한 타입, 바로 살인 코미디다.

살인 코미디는 가장 기본적으로 2가지 요소를 포함한다. 하나는 유머를 시도하는 것, 다른 하나는 캐릭터(주로 주인공)가 다른 사람을 의도적으로나 사고로 죽이는 것이다. 사람이 많이 죽는 살인 미스터리, 범죄 수사, 누아르 스릴러 등 다른 장르의 요소를 빌릴 수 있다. 하지만 어떤 순간엔 정극과 비슷한 방향으로 비틀 수 있어도, 이 장르의 핵심은 시청자를 웃기는 것이다. 설사 조용히, 사악하게 낄낄대며 웃는 것이라도 말이다.

출처: NBC

지난 2년간 TV에서 살인 코미디 시리즈가 많아졌다. 커리어의 변화를 갈구하는 청부살인업자가 주인공인 [배리]는 요즘 나오는 살인 코미디의 가장 명확한 예시다. NBC [트라이얼 앤 에러 (Trial & Error)] 은 실화 범죄 풍자물이지만, 살인 혐의로 기소될 멍청한 용의자를 변호해야 하는 상황에서 유머를 짜내기 때문에 살인 코미디라고 할 수 있다. TBS [서치 파티 (Search Party)]는 실종된 젊은 여성을 수색하는 것으로 시작하는 미스터리 코미디이지만, 시즌 2에서 누군가 사고로 죽고 이를 덮으려 하면서 살인 코미디 영역으로 옮겨간다. [파고 (Fargo)]는 앤솔로지 또는 드라마 시리즈로 분류되지만, 유머가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특히 다른 사람의 죽음에 연루된 걸 감추려는 무능한 시골뜨기들의 활약(?)은 살인사건 코미디의 자격 요건을 충족한다.

그리고 살인사건 코미디에 ‘가까운’ 작품으로 넷플릭스 [산타 클라리타 다이어트 (Santa Clarita Diet)가 있다. 엄밀히 말하면 좀비가 나오는 ‘좀비 코미디’이지만, 살인 코미디로 분류할 만큼 주검이 많이 나온다. NBC [굿 걸스 (Good Girls)]는 정통 코미디보다는 드라메디에 가깝지만, 시즌 1이 끝날 즈음 온갖 나쁜 일들을 다 해낸다. 아직 살인은 하지 않았지만, 시즌 1을 베스(크리스티나 헨드릭스)가 손에 총을 들고 있는 클리프행어로 끝내는 것은 시리즈가 시즌 2에 살인 코미디 영역으로 나아갈 것임을 시사한다. [애틀랜타 (Atlanda)]에서 가장 화제가 된 에피소드 “테디 퍼킨스”는 언제든지 살인 코미디로 변할 것처럼 굴다가, 거의 그렇게 끝내버린다.

왜 지금 많은 코미디가 죽음과 유머에 몰려드는 것일까? 원인 중 하나로 코미디 장르의 정의가 확장된 것이라 볼 수 있다. 실험적 접근과 깊은 캐릭터 연구는 판을 깔고 농담을 던지는 것만큼 흔하다. 보다 냉소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크리에이터나 스튜디오 임원들이 두 콘셉트를 결합하는 데서 매력을 찾았다는 것도 이유가 될 수 있다. 미국인들은 살인을 다룬 TV 프로그램을 좋아하고, 웃는 것도 좋아한다. 따로 먹어도 맛있는 두 가지를 합쳐서 맛있게 먹는 것이다! 살인 코미디는 결국 텔레비전 장르의 리세스 피넛버터 컵(피넛버터+초콜렛)인 셈이다.

출처: Fox

범죄와 코미디는 이전에도 TV 시리즈 안에 공존했으니, 엄밀히 말해 새로운 경향이 아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두 장르가 겹치는 부분은 주인공이 경찰 또는 형사라는 점이다. 착한 자들이 범죄를 해결하지, 나쁜 놈들이 범죄를 저지르는 게 아니다. 그런 시리즈 몇 개쯤은 머리에 바로 떠올릴 수 있다. [총알탄 사나이 (Police Squad!)], [블루문 특급 (Moonlighting)]이 있고, [푸싱 데이지스 (Pushing Daisies)], [리노 911 (Reno 911)], [브루클린 나인 나인 (Brooklyn Nine Nine)]도 있다. 이 작품들은 어두운 면으로 빠져들어간 인물에게 공감하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하지만 살인 코미디는 그러라고 한다.

살인 코미디의 등장은 우리가 TV를 보는 방식의 진화를 보여준다. 경계를 나누고 선을 긋는 것이 이전보다 덜 중요해졌다는 의미다. 지금은 어느 시간에 어떤 작품이 방영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좋아하는 프로그램은 DVR이나 VOD로 다시 보거나, 훌루에서 스트리밍으로 볼 수 있다. 넷플릭스에서 NBC 프로그램인지 CW 시리즈인지 알지 못한 채 드라마를 본다. 장르를 막힘없이 오가는 프로그램에도 완전히 익숙하다. 코미디가 우리가 사랑하는 드라마나 스릴러와 비슷한 점이 있다면 그것도 좋다.

사실상 ‘토니 소프라노’가 이런 태도를 만든 것과 마찬가지다. 소위 “어려운 남자”, 즉 안티 히어로(Anti-hero)에 초점을 맞춘 TV 시리즈 덕분에 시청자들은 주요 인물의 행동을 굳이 용납하지 않아도 [소프라노스(Sopranos)], [브레이킹 배드(Breaking Bad], [더 와이어(The Wire)], [매드 맨(Mad Men)], [디 아메리칸스(The Americans)]를 즐겨왔다. [매드 맨]이 2015년 종영했을 때, 안티 히어로 드라마의 지배적 힘은 다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안티 히어로는 사라지지 않았다. 대신 TV는 우리에게 그들을 향해 더 웃어 보라고 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코미디에서 더 극단적인 안티 히어로를 만나게 됐다. 이를테면 먹고 살기 위해 사람을 죽이는 킬러 말이다. 그러나 이는 시청자에게 그렇게 큰 도약은 아니다. 이미 몇 년 동안 그런 주인공들을 애정하면서도 미워하는 것에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출처: NBC

누군가는 살인 코미디가 폭력에 우리가 얼마나 둔감해졌는지 보여주는 증거라 주장하기도 한다. 아마 일부는 사실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살인 코미디는 가장 암울한 상황에서도 웃음을 찾는 인간의 능력을 보여주며, 그것이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생존 기술이라 생각한다. 실제로, 유명한 상속녀가 동생을 죽이고 감옥에서 빠져나오는 사건이 웃기진 않겠지만, [트라이얼 & 에러: 레이디 킬러 (Trial & Error: Lady Killer)]에서는 크리스틴 체노웨스가 가짜 콧수염을 달고 살인을 저지르기 때문에 웃음이 터진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람을 죽이는 걸로 먹고사는 사람을 다정하게 보지 않겠지만, 빌 헤이더의 ‘배리’처럼 그 일에 너무 깊게 빠져들어 말 그대로, 또는 심리적으로 빠져나올 수 없는 상태인 사람에겐 동정을 느낀다. 그런 식으로 [배리] 같은 살인 코미디도 감정 이입이 가능하다. 슬프게도, 가끔은 실제 사람보다 도덕적으로 비난받을 만한 가상의 인물과 공통점을 찾는 게 더 쉽기 때문일 것이다.

비참한 죽음은 현실 세계에서 매일 일어난다. 살인 코미디는 현실 상황을 덜 위협적인 방식으로 생각하는 해방구의 기능을 한다. 이런 TV 시리즈를 본다고 우리가 죽진 않는다. 다른 사람들이 죽어가는 걸 보며 우리가 살아있음을 아는 것. 그게 범죄 코미디와 드라마의 매력이다. 비극적이고 끔찍한 사건에 크게 웃는 것, 아니면 가볍게 낄낄대는 것 자체는 우리를 더욱 강하게 만든다. 최소한 30분 동안은 말이다.

This article originally appeared on Vulture: The Rise of the Murd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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