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Tomato92

 

 

영화를 선택하기 전 관객들이 고려하는 요소는 저마다 다르다. 화려한 총싸움으로 가득한 액션 블록버스터, 연애세포를 깨우는 로맨틱 코미디, 짜릿함을 주는 스릴러처럼 ‘장르’가 하나의 기준이 될 수 있다. 혹은 영화의 ‘난이도’가 기준이 되기도 한다. 아무 생각 없이도 이해가 쉬운 영화를 선호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골이 아플 정도로 두뇌를 자극하는 어려운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같은 영화라 할지라도 감독이 영화를 어떻게 만들었는지 혹은 관객의 집중력, 이해도가 어느 정도인지에 따라 그 해석의 깊이와 방향은 천차만별이다. 다양한 요인으로 관객들로 하여금 납득할만한 해답을 찾기 위해 여러 번 봐야 했던 작품을 소개한다.

 

 

 

1. 멀홀랜드 드라이브

 

이미지: Universal Pictures

 

연출과 각본을 맡은 사람이 [트윈 픽스]의 데이비드 린치라는 사실만으로도 불안감이 엄습하는 작품. 실제로 [멀홀랜드 드라이브]가 개봉했을 당시 영화를 본 많은 관객들이 혼란스러워했으며 지금까지도 수많은 해석이 오갈 만큼 이 영화를 100퍼센트 이해한 사람은 극히 드물다. 이런 혼란이 빚어진 이유에는 다양한 요인이 존재하는데, 일단 등장인물들이 다소 뜬금없고 산발적으로 등장하는 것을 꼽을 수 있다. 주인공 나오미 왓츠, 저스틴 서룩스, 로라 해링부터 중간중간 나오는 조연 및 엑스트라까지 인물에 대한 배경 설명이 거의 전무하며 편집점 또한 뚝뚝 끊기는 터라 자칫 잘못하면 이름조차 기억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특히나 초반부 저스틴 서룩스가 맡은 아담이 캐스티글리아니 형제와 만나는 회의 장면은 혼란스러움 그 자체다.

또한 연극을 보는 듯한 배우들의 오버 액팅과 개연성 없는 전개에 난해함을 느낀 관객들이 도중하차하는 일도 빈번히 발생했다. 갑자기 몰아치는 후반부에서 앞서 벌어진 일련의 사건에 대한 힌트를 주기는 하지만, 이 역시 감독의 성향을 잘 모르는 이에게는 해답이 아닌 의문을 증폭시키는 결과만 부추겼다. 이처럼 현실과 상상, 과거와 현재를 엮은 불친절한 전개에 다수의 관객들에게 ‘최악의 작품’으로 남았지만, ‘BBC 선정 21세기 최고의 영화’로 선정됐을 만큼 누군가에게는 수작 혹은 명작으로까지 불리는 영화다.

 

 

2. 프리머

 

이미지: THINKFilm, IFC Films

 

기본적으로 상당한 집중력을 요하는 타임 패러독스를 다룬 영화 중에서도 극악한 난이도의 내용으로 2번, 3번을 봐도 이해하기 어렵다는 평이 자자한 작품이다. 영화는 우연히 타임머신의 원리를 밝혀낸 두 명의 남자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사건을 다룬다. 일단 도입부에 흘러나오는 낯선 남자의 내레이션이 앞으로 무언가 흥미로운 사건이 벌어질 것임을 암시한다. 하지만 주인공들이 나와 대사를 주고받는 부분부터 집중이 흐트러진다. 일단 계속해서 불안하게 흔들리는 조악한 카메라 구도부터 시종일관 쏟아지는 ‘좌표계 이끌림’ 같은 물리, 과학 전문 용어들 때문에 영화에 대한 사전 정보가 없는 사람은 ‘대체 뭘 말하려는 거지?’라는 생각을 러닝타임 내내 할 것이다. 사실상 주인공은 두 명이지만 어려운 용어로 자기 할 말만 ‘아무말 대잔치’식으로 하기 때문에 집중이 매우 힘들다.

또한 어떻게 가까스로 이 영화가 ‘타임머신’을 다룬 작품임을 눈치챈다 해도 시간 여행이 시작되는 순간부터 새로운 문제가 등장한다. 기본적으로 5개 이상의 타임라인이 경고 표시도 없이 순차적으로 나오는 데다 장면 사이의 시점 전환 또한 확실치 않아 불친절함뿐 아니라 불쾌감까지 표한 관객들도 다수 있다. 하지만 매우 낮은 예산의 영화치고 좀처럼 볼 수 없는 참신한 전개와 흥미로운 소재라는 것을 인정받아 선댄스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얻었다. 개봉 후 이리저리 꼬인 작품을 해석하기 위해 다수의 포럼이 형성되어 활발한 토론의 장이 펼쳐지기도 했으나 ‘연출, 각본, 연기를 맡은 감독 쉐인 카루스 외에 이 작품을 완전히 이해할 사람은 없을 것’이라는 게 보편적인 의견이다.

 

 

3. 에너미

 

이미지: 영화사 진진

 

[그을린 사랑]부터 [시카리오], [콘택트]로 할리우드에서 급부상한 드니 빌뇌브와 제이크 질렌할이 [프리즈너스] 이후 두 번째로 만난 미스터리 영화다. 빌뇌브 감독이 본인 작품이라는 걸 과시라도 하듯, 영화는 금방이라도 무슨 일이든 벌어질 것 같은 뿌연 배경의 도시에서 시작된다. 이 영화를 간략히 설명하자면 대학에서 역사를 가르치는 부교수가 본인과 똑같이 생긴 남자를 영화에서 보고 난 다음의 다이내믹을 다룬 작품이다. 주인공들이 내뱉는 일상적, 현학적인 대사를 상당히 주의 깊게 들어야 하기 때문에 보통의 미스터리 영화보다 좀 더 높은 집중력을 요하고, 중간중간 등장하는 ‘거미’가 무엇을 상징하는지 끊임없이 고민하며 작품을 감상하지 않으면 마지막 장면이 다소 황당하게 느껴질 것이다.

영화 자체는 크게 어렵지 않지만 앞서 말했듯 캐릭터가 내뱉는 대사들이 서사에 담긴 미스터리를 푸는 힌트가 되기 때문에 한 번 보고 재탕하면 더욱 재미있게 감상할 수 있다. 혹은 감상 후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허구인지’, ‘저 요소는 무엇을 상징하는지’ 혼자 답을 해석해 보는 것도 영화를 즐기는 하나의 방법이다. 참고로 [눈먼 자들의 도시]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주제 사라마구의 소설 [도플갱어]가 원작이다.

 

 

4. 천년을 흐르는 사랑

 

이미지: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세기의 로맨스 영화를 연상케 하는 한국식 제목에 낚여 보러 갔다가 실망한 관객들의 원성이 자자했던 작품. ‘The Fountain’이라는 원제에 [블랙 스완]의 대런 아로노프스키가 감독을 맡은 이 작품은 로맨스라기보다는 드라마 혹은 SF에 좀 더 가깝다. 영화는 16세기 스페인, 21세기 현재, 26세기 우주 이렇게 세 파트로 나뉘어 전개되는데, 도입부 이후의 시점이 난데없기 전환되기 때문에 잠깐이라도 딴짓을 하면 ‘갑자기 대머리 휴 잭맨이 왜 나오는 거지?’라며 혼란스러워하는 관객들이 분명 나올 것이다. 영화를 천천히 감상하다 보면 눈치챌 수 있겠지만 [천년을 흐르는 사랑]을 관통하는 하나의 공통적인 요소는 ‘생명’이다. 현대 시점의 주인공 크레오 박사는 죽어가는 소설가 아내 ‘이지’를 살리기 위해 무던히 애쓰고 있으며, 이지가 쓴 소설책의 배경이 되는 스페인과 26세기 우주에는 공통적으로 ‘생명수’라는 나무가 나온다. 이처럼 함부로 다루기 힘든 소재에 아로노프스키 감독의 개인적인 종교적 해석을 버무린 뒤 액자식 구성으로 전개하여 쉬운 이야기를 도리어 어렵게 꼬아놨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관객을 당혹시킨 여러 원인 중 하나는 컴퓨터 그래픽을 거의 사용하지 않은 특수 효과다. 특히나 영화의 절정부에서 결말에 이르는 부분에 양반다리를 한 채 ‘시발바’로 향하는 주인공의 모습은 다른 의미로 압권이다. 난해함을 느끼기에 충분한 전개를 레이첼 와이즈의 눈부신 비주얼과 휴 잭맨의 걸출한 연기로 어떻게 커버하려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박스오피스에서 1,500만 달러라는 초라한 성적을 거두며 3,500만 달러 예산에 절반도 미치지 못한 채 극장에서 물러났다. 아로노프스키 감독이 직접 창작한 원작 그래픽 노블은 상당히 좋은 평을 받았지만, 영화화 결정 이후 배우 하차 및 교체로 인한 예산 절감으로 제작에 상당한 난항을 겪은 것으로 보인다.

 

 

5. 메멘토

 

이미지: (주)팝엔터테인먼트

 

크리스토퍼 놀란이 연출과 각본을 맡은 [메멘토]는 강렬한 서스펜스가 넘치는 매우 독특한 스릴러 영화다. 이 작품은 놀란 감독의 필모 중 가장 위대한 작품으로 꼽히는 동시에 전개의 특이성 때문인지 가장 어려운 작품으로도 꼽힌다. 영화는 새로운 경험을 기억하지 못하는 선행성 기억상실증에 걸린 남자가 그의 아내를 죽인 사람을 찾기 위한 과정을 그린다. 영화에서 컬러로 진행되는 부분은 시간의 역순이고 흑백 부분은 순차적으로 진행되는데, 보통의 고정관념으로 생각했을 때 반대로 알고 있는 사람이 대부분이라 여기서부터 헷갈려하는 사람이 속출했다. 또한 속도감 있는 전개와 스타일리시한 연출, ‘기억상실증에 걸린 주인공’이라는 설정으로 인해 장면이 전환될 때마다 고도의 집중력과 추리 실력이 필요하며 자칫 잠깐이라도 한눈을 팔면 중요한 암시를 놓치는 낭패를 볼 수 있다. 아마 수많은 사람들이 중후반까지 끊임없는 내적 갈등을 하며 영화를 감상하다가도 두 시점이 만나는 지점에서 짜릿한 감탄사를 내뱉었을 것이다.

영화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에 두 번, 세 번 봐도 지루하지 않다. 놀란에게는 [미행]이라는 장편 데뷔작이 따로 있지만, 그의 천재성을 전 세계에 알린 작품은 바로 [메멘토]였고, 9백만 달러라는 비교적 적은 예산으로 박스오피스에서도 소기의 성과를 내며 할리우드에서 감독으로서의 입지를 단단히 다졌다. 영화의 성공으로 출시된 DVD에는 사건을 순차적으로 해결하는 버전이 실려있다는데 본편만큼의 스릴을 주지는 못한다고 한다. 국내에는 2001년 8월에 개봉했고, 작품 및 감독의 인기에 힘입어 2014년에 약 40여 개 관에서 재개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