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alex
추석에 찾아오는 반가운 손님 중 하나는 푸짐한 특선 영화 리스트다. 이제는 스트리밍 서비스나 IPTV 결제 등으로 어떤 영화든 다시 보기가 쉽지만, 2000년대 초·중반만 해도 TV에서 공짜로 틀어주는 최신 영화는 반가운 선물이었다. 하지만 개중에는 혼자 있을 때 풀어봤어야 할 선물도 있었다. 19금 설정으로 가족과 함께 보기 민망했던 영화들과 그 외 이유로 당신을 난처하게 만들었을 추석 특선 영화들을 알아본다.
덕밍아웃 위기의 영화들

추석 특선영화로 평소 좋아하는 연예인을 온 가족에게 들켜버릴 수도 있다. [의형제]는 ‘남파 공작원’이라는 소재로 추석 안방을 사로잡으며 12.5%라는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영화 속 강동원은 서늘하고 건조하지만 자꾸 마음이 쓰이는 캐릭터를 연기했는데, 후줄근한 의상에도 감출 수 없는 그의 기럭지와 조각 같은 외모는 이를 꽉 깨물며 팬심을 숨기고 있던 이들을 ‘덕밍아웃’ 위기에 빠트렸을 것이다. [늑대소년] 또한 마찬가지다. 송중기의 청순한 외모와 아련한 눈물 연기가 돋보인 영화는 그의 팬이라면 늑대소년에서 꽃미남 소년으로 변신하는 메이크오버 장면에서 과연 폭발하는 팬심을 감추기 힘들었을 것이다.
19금 농담 가득한 조폭 코드 시리즈

2000년도 초중반은 걸쭉한 욕설이 가득한 영화 시리즈가 인기를 끌었다. 그중 추석 특선 영화 단골은 [가문의 영광] 시리즈였다. 1편 [가문의 영광]부터 [가문의 위기], [가문의 부활]이 해마다 지상파 특선 영화로 방영됐다. 김수미표 걸쭉한 농담이 가득한 이 시리즈는 거실에 모인 친지들과 함께 볼 만하지만, 특별히 보수적인 집안에서 즐겁게 시청할 만한 영화는 아니었다. 지상파에서 심한 욕설을 걷어냈다고 가정해도 조폭 코드의 선정적인 농담은 어떤 집안의 분위기를 ‘갑분싸(갑자기 분위기가 싸해지다)’하게 만들기 충분했을 것이다. [조폭 마누라] 시리즈도 1, 2편 모두 추석 특선 영화로 방영됐다. 제목만 보고 여성 보스를 필두로 한 화끈한 액션을 기대했다면 그보다 더 얼굴 화끈해지는 장면에 당황했을 것이다. 가위파 두목인 주인공이 남편감 찾기 위해 특급 비법을 전수받는 장면부터 부부관계에 전투적으로 임하는 장면까지, 지상파 편집을 감안해도 가족과 함께 보기 민망한 대목이 꽤나 즐비했을 것이다.
낮 뜨겁고 아름다운 사극 영화

머리 아픈 대형 액션 영화 대신 사극을 선택했다면 제목을 꼭 확인해야 했다. [스캔들 – 조선남녀상열지사]와 [음란서생]은 야심한 시각에 방영됐지만 믿음직한 배우진으로 추석 안방의 시청자들을 모았다. 그러나 초반부터 적나라한 음담패설이 가득한 [음란서생]과 은유적이어서 더 야릇하게 느껴지는 대사가 이어지는 [스캔들 – 조선남녀상열지사]는 친지들 사이에 어색한 기류를 만들었을 것이다.
추석 나홀로족만 사수 가능한 영화

단란하게 모인 가족단위의 시청자를 노렸다고 보기에는 노골적인 소재의 추석 특선 영화들도 있다. 20~30대의 성생활과 연애 문화를 담은 [S 다이어리]와 [작업의 정석]은 아마도 자의적으로 명절을 혼자 보내는 ‘나홀로족’을 노린 편성이었을 것이다. [S 다이어리]에 등장하는 성관계 내역을 정리한 청구서와 발칙한 복수 방법 등을 보고 함께 웃을 수 있는 가족은 적어도 한국에서는 상상하기 힘들다.
세계관 설명 지옥에 갇혀버리는 영화들

세계관이 복잡한 프랜차이즈 영화 또한 친지들과 함께 보기 어렵긴 마찬가지다. [스타워즈]와 [엑스맨] 시리즈는 추석 특선 영화의 단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리즈의 팬이 아니고선 영화의 스토리를 이해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또 자신이 시리즈의 팬이라고 해도 함께 시청 중인 어른이나 어린 조카들에게 영화의 장대한 스토리와 설정을 일일이 설명하기에는 힘들었을 것이다. [데스노트]처럼 소재 자체가 민감한 영화는 가족들의 열렬한 찬반 토론이 진행될 수도 있다. 평화로운 추석을 보내고 싶다면 정치 얘기와 민감한 소재의 영화 시청은 금지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