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최근 들어 영화가 시리즈, 혹은 삼부작으로 제작되는 트렌드가 유달리 돋보인다. 물론 슈퍼히어로 영화와 같이 후속편이나 공유된 세계관이 필요한 장르도 있지만, 그럴 필요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이야기를 이어나가려는 작품이 종종 보이는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다. 그러나 세상만사 모두 그렇듯, 원대한 삼부작 계획이 뜻대로 진행되지 않은 경우가 상당히 많다. 제작진이 어떠한 문제에 연루될 수도 있고, 혹은 전작이 흥행에 참패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관객들이 아무리 원하더라도 결코 삼부작의 완결을 볼 수 없게 된 비운의 작품들을 소개해본다.

 

 

‘헬보이’ 시리즈 (Hellboy)

이미지: UPI 코리아

 

기예르모 델 토로는 모두가 인정하는 ‘괴물 덕후’다. 그런 그가 지옥에서 온 악마 히어로 영화를 만든다? 그를 아는 사람이라면 퀄리티만큼은 보장한다고 말할 것이다. 그렇게 탄생한 작품이 바로 [헬보이] 시리즈다. 두 작품 모두 비평가와 관객에게 상당히 좋은 평가를 받았다. 델 토로 특유의 ‘동화적이지만 어두운’ 분위기가 잘 나타났을뿐더러, 론 펄만의 헬보이가 원작에서 튀어나온 듯한 엄청난 싱크로율을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헬보이] 시리즈는 손익분기점에 한참 못 미치는 수익을 거두면서 흥행에는 실패했다. 델 토로 영화의 성격을 고려한다면 나쁘지 않은 성적이었지만, 유니버설 픽쳐스 입장에서는 돈이 안 되는 영화를 굳이 만들 필요는 없었기에 선뜻 3편 제작을 권유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었다. 결국 2017년 초, 기예르모 델 토로는 “[헬보이 3]은 없다”라고 공식적으로 발표하면서 [헬보이] 삼부작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됐다. 그래도 [헬보이] 팬들에게 희소식이라면 닐 마샬 연출, 데이빗 하버와 밀라 요보비치 주연의 리부트 [헬보이]가 2019년 1월에 북미에서 개봉할 예정이다. 물론 기예르모 델 토로는 여기에 참여하지 않지만 말이다.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시리즈 (The Amazing Spider-Man)

이미지: 한국소니픽쳐스릴리징브에나비스타영화(주)

 

2007년 개봉한 [스파이더맨 3]는 혹평을 면치 못했지만, 적어도 토비 맥과이어는 ‘친절한 이웃’의 여정을 마무리할 수라도 있었다. 반면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의 앤드류 가필드는 애석하게도 그럴 기회조차 없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우리는 더 이상 앤드류 가필드의 ‘사랑꾼 피터 파커’를 볼 수 없게 된 것일까?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2] 개봉 전까지만 해도, 소니 픽쳐스에서는 무섭게 성장하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에 대항하기 위한 별도의 ‘스파이더맨 세계관’을 계획하고 있었다. 그렇다.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시리즈가 흥행했더라면 올 10월 [베놈]으로 시작되는 소니 픽쳐스의 ‘스파이더버스’를 몇 년은 일찍 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두 편 모두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이 기대 이하의 성적을 거두면서 소니 픽쳐스에서 마블 스튜디오에 ‘스파이더맨’ 판권 공유를 허락하고 말았다. 2014년 있었던 해킹 사건 때문에 자금난에 시달렸던 소니가 판권을 넘겨주었다는 풍문도 있다. 이유가 어찌 되었건 우리는 앞으로 앤드류 가필드가 스판덱스를 입고 뉴욕을 활보하는 모습을 다시는 볼 수 없게 됐다. 대신 귀여운 톰 홀랜드를 얻었지만 말이다.

 

 

‘내셔널 트레져’ 시리즈 (National Treasure)

이미지: 한국소니픽쳐스릴리징브에나비스타영화(주)

 

“그래서 도대체 ‘비밀의 책’ 47쪽에 뭐가 있는데?” 지난 2007년 개봉한 [내셔널 트레져: 비밀의 책]은 속편을 강하게 암시하는 결말을 남긴 채 막을 내렸다. 그리고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그 비밀은 아직까지 풀리지 않았다. 아쉽게도 美 대통령(브루스 그린우드)이 남긴 이 거대한 떡밥은 앞으로도 풀리지 않을 예정이다. 월트 디즈니에서 [내셔널 트레져 3] 제작에 굉장히 회의적이기 때문이다.

 

[내셔널 트레져]는 평단의 혹평에도 흥행에서는 대단히 성공적인 시리즈였다. 두 작품 합쳐서 전 세계 박스오피스에서 8억 달러 가까운 수익을 거두었기에, 삼부작을 넘어서 ‘내셔널 트레져 유니버스’가 만들어지지 않을 이유는 없었다. 그렇다면 왜 월트 디즈니 스튜디오는 [내셔널 트레져] 시리즈를 더 이상 만들지 않게 된 것일까? 실제로 2008년까지만 해도 디즈니는 세 번째 [내셔널 트레져]를 진지하게 염두에 두고 있었다. 그러나 2006년 픽사 인수를 시작으로 2009년 마블, 2012년 루카스 필름, 그리고 현재 이십세기폭스까지도 품에 안게 된 디즈니의 입장에서 10년도 더 되어 기억에서 사라진, 그것도 주연배우(니콜라스 케이지)의 티켓 파워가 예전만 못한 프랜차이즈를 부활시킬 이유가 전혀 없는 상황이다.

 

 

’28일 후’ 시리즈 (28 Days Later…)

이미지: 이십세기폭스필름코퍼레이션

 

엄밀히 따지면 좀비 장르는 아니다. 그럼에도 [28일 후] 시리즈는 [워킹 데드] 이전까지 [새벽의 저주]와 더불어 많은 이들에게 ’21세기 좀비물 중 가장 인상적인 작품’으로 꼽혔다. 전통적인 좀비들과는 달리 [28일 후] 시리즈의 ‘분노 바이러스 감염자’들은 한시도 쉬지 않고 달렸기 때문이다. 거기에 긴장감 넘치는 음악까지 더해지니, 살벌하기 그지없었다. [28일 후] 개봉 이후 [28주 후]가 나오기까지 5년이 걸렸다. 그러나 [28주 후] 이후 11년이 지나도록 삼부작을 마무리할 마지막 작품이 나오지 않았다. 속편을 암시하는 큰 떡밥을 뿌렸음에도 말이다.

 

[28주 후]가 개봉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1편의 연출과 2편의 제작을 맡았던 대니 보일은 [28개월 후](가제) 제작 계획이 있음을 밝혔다. 그러나 시리즈의 판권 문제와 투자자 사이의 이해관계 충돌 등이 연달아 벌어지면서 기획 자체가 어려워지고 말았다. 3편 연출 의사를 밝혔던 대니 보일은 “기초적인 각본이 있는 상황이다”라며 여러 차례 밝혔지만, “아이디어를 발설하면 [워킹 데드] 시리즈에 나올까 두렵다”라고 농담하며 언급 자체를 삼가기도 했다. 두 작품에서 각본과 기획을 한 차례씩 맡았던 알렉스 갈랜드 역시 “마지막 [28일 후] 시리즈가 안 나오는 이유는 듣기만 해도 지루해지는 복잡한 사연들이 마구 얽혀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작될 가능성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지만, 이 또한 3년 전이다. 이쯤 되면 파리로 넘어갔던 감염자들이 인간뿐 아니라 속편 제작의 뜻까지도 모조리 집어삼킨 것은 아닐까?

 

 

‘킬 빌’ 시리즈 (Kill Bill)

이미지: CJ 엔터테인먼트

 

최근 여러 논란에 휩싸였지만, 영화적인 측면에서만큼은 쿠엔틴 타란티노가 독특하고 빼어난 감독임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저수지의 개들], [펄프 픽션], [장고: 분노의 추적자], 그리고 [킬 빌] 시리즈가 이를 증명한다. 타란티노는 ‘속편 제작’을 좋아하지 않는 대표적인 감독이다. 그러나 [킬 빌]이 개봉하기 몇 개월 전, 제작사 미라맥스와 그는 네 시간 가까이 되는 [킬 빌]을 두 편으로 나누기로 결정했고, 그렇게 탄생한 것이 [킬 빌]과 [킬 빌 2]다. 두 작품은 쿠엔틴 타란티노의 작품 중에서 아주 빼어나게 흥행에 성공하지는 못했으나, 컬트적인 인기를 끌면서 이후 많은 작품들에 영향을 주었다. 오마주로 가득한 영화가 다른 작품에서 오마주 된 셈이다.

 

[킬 빌 2]의 엔딩 장면은 속편을 암시하는 내용이 없다. 영화 제목처럼 빌은 죽었고, 베아트릭스와 B.B.는 떠났다. 그러나 타란티노는 [킬 빌 2] 개봉 이후 “베아트릭스에게 당한 암살자들이 복수에 나서는 내용으로 그릴 예정이다. 우마 서먼의 ‘베아트릭스’를 다시 볼 수 있을 것”이라며 속편 제작 계획이 있음을 밝혔다. 문제는 시기였다. 타란티노는 당시 “아마도 15년쯤 뒤에 만들 예정이다”라고 이야기해 속절없이 기다리게 만들더니, 2012년에는 “속편을 만들 계획이 없다”라며 여태까지 기다려온 팬들을 제대로 물 먹인 것이다. 거기에 지난 2월, 우마 서먼이 [킬 빌 2] 촬영 당시 타란티노의 고집으로 인해 촬영 도중 큰 부상을 입은 사실까지 밝혀지면서 [킬 빌 3]가 사실상 제작되지 않을 것임을 못 박아버렸다. 과연 누가 자신을 죽게 할 뻔한 감독과 다시 일하고 싶을까? 아무도 없을 테니, 이제는 [킬 빌 3]을 놓아줄 때가 온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