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말부터 9월 중순까지 약 3주간 이탈리아 베니스, 미국 텔룰라이드, 캐나다 토론토에서 영화제가 잇달아 열린다. 올해 아카데미를 겨냥한 영화들이 한꺼번에 공개되는 자리이기 때문에 영화를 사랑하는 전 세계 관객의 눈이 쏠린다. 올해도 역시 관객들을 즐겁게 할 좋은 작품들이 많이 나왔고, 벌써부터 ‘어떤 작품이 오스카를 탈 만한가’로 설왕설래가 오고 간다. 빨리 한국에서 만나볼 수 있길 바라며, 영화제에서 호평받은 화제작들을 정리했다.

감독의 귀환

이미지: UPI코리아

올해 9월 영화제엔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구축한 젊은 감독들이 컴백했다. 아카데미 최연소 감독상 수상자 데이미언 셔젤은 달 착륙 미션을 재조명한 [퍼스트맨]을 선보였다. 인류 역사에 가장 중요한 사건을 ‘닐 암스트롱’이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한 시각으로 바라본다. 셔젤과 오스카상을 두고 경쟁한 배리 젠킨스 감독은 [이프 빌 스트리트 쿠드 토크]를 공개했다. 억울하게 수감된 약혼자를 구하려는 여성의 이야기를 담았다. 원작인 제임스 볼드윈의 소설에 충실하면서 이야기와 영상 모두 뛰어나다는 평을 받았다.

이미지: 이십세기폭스코리아

[노예 12년] 스티브 매퀸은 역대 가장 ‘대중적’이라 평가받는 스릴러 [위도우즈]로 돌아왔다. 범죄를 저지르던 중 사고로 사망한 남편들을 대신해 거액의 돈을 훔치려는 여자들의 이야기로, 부패한 시카고 정치판과 미국 사회의 문제점을 함께 그려냈다.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더 페이버릿]은 영국 앤 여왕 시기 여왕의 총애를 탐내던 두 사촌의 이야기로, 1700년대 영국 배경 시대극이라도 감독 특유의 기이하고 독특한 느낌은 여전하다.

이미지: Alcatraz Films

씨네필에게 사랑받는 프랑스 감독 두 사람은 영어 영화에 도전했다.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자 자크 오디아드 감독은 첫 할리우드 영화 [시스터스 브라더스]로 영화제를 찾았다. 서부영화의 관습을 비트는 전개와 주연배우들의 연기가 호평받았다. 클레어 드니는 우주 배경 SF 스릴러 [하이 라이프]를 공개했다. 로버트 패틴슨, 줄리엣 비노쉬 등이 출연하며, 무서울만큼 뒤틀린 이야기에 묘한 매력이 있어 여러 번 보고 싶게 만든다는 평가다.

배우에 주목하라

이미지: Riverstone Pictures

올해도 배우들은 놀라운 연기를 선보였다. 앞서 소개한 [더 페이보릿]의 레이첼 와이즈, 엠마 스톤, 올리비아 콜먼의 퍼포먼스가 극찬을 받았으며, 콜먼은 베니스영화제 여자연기상을 수상했다. 남자연기상은 [앳 이터너티스 게이트(영원의 문에서)] 윌렘 다포가 수상했다. 빈센트 반 고흐의 말년을 그린 영화에서 다포는 배우 인생 최고의 연기를 선보였다. 나탈리 포트먼은 브래드 코벗 감독의 [복스 럭스]에서 세계적 팝스타로 변신했다. 커리어는 위기에 처하고 10대 딸은 마음대로 되지 않아 괴로운 ‘셀레스트’는 [블랙 스완] 이후 가장 강렬한 캐릭터라 평가받았다.

출처: Anonymous Content

[보이 이레이즈드]는 동성애 전환 치료를 받는 소년의 이야기를 통해 종교의 폭력적인 면과 가족의 모습을 그린다. 주연 루카스 헷지스뿐 아니라 소년의 부모 역을 맡은 러셀 크로우, 니콜 키드먼의 연기가 호평받았다. 마약중독자 아들을 지켜봐야 하는 아버지가 주인공인 [뷰티풀 보이]는 마약 중독과 그 영향을 매우 솔직하게 그린다. 영화 자체에 단점이 없지 않으나 부자를 연기한 스티브 카렐과 티모시 샬라메는 커리어 최고의 연기라는 찬사를 받았다.

관객의 마음을 훔치다

이미지: 워너브라더스코리아

베니스와 토론토에서 화제를 몰고 다닌 [스타 이즈 본]은 동명 영화의 세 번째 리메이크다. 올해 초부터 명작이 나왔다는 소문이 돌았고, 공개 후엔 레이디 가가의 퍼포먼스뿐 아니라 첫 장편영화를 연출한 브래들리 쿠퍼의 연출, 연기도 극찬을 받았다. 그러나 [스타 이즈 본]을 제치고 관객의 선택을 받은 작품이 나왔다. [덤 앤 더머] 피터 팰렐리 감독의 신작 [그린 북]이다. 1960년대 남부를 함께 여행하며 인종과 계급을 뛰어넘는 우정을 나눈 두 남자의 이야기로 비고 모텐슨, 마허샬라 알리의 케미가 영화를 견인한다는 평가를 받으며 토론토영화제 관객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로마’

이미지: 넷플릭스

[로마]는 기대 이상의 화제성과 그 화제성을 뛰어넘는 작품성으로 일찌감치 시상식 시즌 프론트러너로 자리매김했다. [로마]는 [그래비티] 알폰소 쿠아론 감독이 [그래비티] 이후 5년만에 선보인 영화다. 쿠아론 자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바탕을, 한 가족의 갈등을 통해 격변하는 1970년대 멕시코 사회를 그려냈다. 쿠아론이 직접 촬영까지 맡아 만든 “완벽한 비주얼 스토리텔링”과, 감정의 힘으로 관객의 공감과 감동을 이끌어낸다는 찬사를 받았다.

[로마]는 극장이 아닌 넷플릭스에서 서비스된다는 점 때문에 주목받았다. 지난 5월 칸 영화제에서 공개 예정이었지만 넷플릭스가 참가를 보이콧하며 상영은 불발됐다.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 수상에 힘입어 [로마]는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멕시코 후보로 출품 결정됐고, 넷플릭스 또한 작품상 출품을 위해 미국 극장 개봉을 추진하고 있다. 과연 [로마]는 아카데미 시상식이 열리는 내년 2월까지 변함없는 사랑과 지지를 받을 수 있을까?

기대만큼 아쉬운

이미지: 엣나인필름

기대를 뛰어넘는 영화가 나오듯 그렇지 못한 작품도 있다. 이번 9월 영화제 화제작 중 몇몇도 높은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스코틀랜드 역사를 다룬 [아웃로 킹]은 영화의 규모와 아름다운 비주얼은 빛나지만 이를 끌어가는 서사는 빈약하다는 평을 받았다. 토론토영화제 공개 당시 비평가, 관객 모두 크리스 파인의 전라 노출만 이야기하면서 영화에 대한 논의는 거의 보이지 않았다. 천재 감독 자비에 돌란의 첫 영어 영화 [존 F. 도노반의 죽음과 삶] 또한 혹평을 면치 못했다. 영상 면에선 훌륭하지만 전반적으로 아이디어나 이야기의 완성도가 부족하며, 돌란이 지금까지 한 이야기의 나쁜 동어반복이라는 평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