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소니 픽쳐스, (주)쇼박스

 

어느덧 10월이다. ‘천고마비’의 계절이라 불리는 가을에 본격적으로 들어서니, 가을 간식만큼이나 매력적인 영화들이 국내 극장에 줄지어 개봉하기 시작했다. 몸도, 눈도, 마음도 풍성한 가을이 될 것만 같다. 10월 첫 주에는 개봉 전부터 시끌시끌했던  두 작품이 관객들과 인사를 나눴다. 마블 코믹스에서 가장 사랑받는 잔인무도한 안티 히어로/빌런인 ‘베놈’의 탄생기를 그린 [베놈]과 아무도 모르는 살인 사건들을 저질렀다고 자수한 범죄자와 이를 쫓는 형사의 숨 막히는 심리전을 그린 [암수살인]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두 작품 중 어느 것을 볼지 고민이라면, 테일러콘텐츠 에디터들의 의견을 참고해보자.

 

이미지: 소니 픽쳐스

 

에디터 Jacinta: ‘영웅인가, 악당인가’라는 정체성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해 평범한 킬링타임에 그쳤다. 전반과 후반 극명하게 갈리는 전개 속도는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베놈과 에디가 공생 관계로 나아가는 과정을 긴밀하고 설득력 있게 다루는데 실패한다. 그나마 캐릭터에 밀착한 톰 하디의 온몸을 던진 연기 덕분에 가볍고 엉성한 스토리의 부재가 메워지긴 해도, 최근 MCU 영화로 한껏 눈 높아진 관객들을 만족시킬지는 의문이다. 또한 할리우드의 핫한 배우 리즈 아메드를 일차원적인 빌런으로 표현한 점도 아쉽다. 좀 더 서늘하고 섹시한 빌런이 될 수 있었는데 말이다.

 

에디터 겨울달: 톰 하디의 거칠고 섹시한 얼굴과 베놈의 징그러운(?) 비주얼이 교차하는 포스터를 보고 기대를 품었다면 일단 내려놓자. 이 영화는 고어함이나 폭력이 메인이 아니다. 오히려 몇 년 동안 터프하고 강한 역할만 했던 톰 하디의 ‘말랑말랑한’ 모습을 오랜만에 볼 수 있다. 베놈 또한 ‘빌런’이라는 이름표와 달리 귀엽고 찌질한 매력이 있다. 영화를 보는 순간만큼은 웃음도 나오고 재미있기도 하다. 거기까지인 게 문제다. 누군가는 슈퍼히어로 영화의 ‘다음’을 고민하는 2018년에 이렇게 없어 보이는 슈퍼히어로 영화가 나온 게 신기할 따름이다. 누군가는 호들갑이라 그럴지 모르겠지만, [베놈]의 방향부터 뭔가 잘못 잡은 것 같은 상황에서 소니가 설계(?)한 시네마틱 유니버스는 제대로 설 지 모르겠다. 스파이디만 고생하는 게 아닌가 걱정된다.

 

에디터 Amy: 여러모로 아쉬운 영화다. 그간 빌런으로 접했던 베놈을 북미 13세 이용가에 맞추어 욱여넣었다. 공포스러운 비주얼이 아까울 정도로, 한계선을 그어놓고 뭉텅뭉텅 잘라낸 것처럼 베놈의 특성을 충분히 살리지 못했다. 악당이었던 베놈이 영웅으로 변모해가는 과정도 개연성이 부족하다. 지구를 침략해 인간들을 집어삼키려던 심비오트가 에디 브룩의 어떤 면모를 보고 지구를 지키려고 마음을 바꾸게 되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톰 하디와 리즈 아메드의 멋진 비주얼만이 남은 영화였다. 쿠키 영상은 1개로, 새로운 캐릭터를 소개하며 후속작을 예고하는데 극장에서 다시 만나게 된다면 더 발전한 모습을 기대하고 싶다.

 

이미지: (주)쇼박스

 

에디터 Jacinta: 관객의 불안 심리를 자극하는 스릴러보다 호기심을 유도하는 추리물에 가까운 영화. 형사를 교란시키는 의도가 다분한 자백을 통해 흩어진 단서를 확보하고 실체를 추적하는 과정은 범죄 영화에서 흔한 자극적인 폭력의 전시 없이도 충분한 재미를 준다. 김윤석과 주지훈의 빼어난 연기로 탄생한 캐릭터의 변주도 흥미롭다. 거칠고 남성적이며 감정이 넘치는 형사가 아닌 차분하고 성실한 모습으로 신념을 보여주는 김형민 형사와 극악무도한 인물인 동시에 실패하고 흔들릴 수 있는 평범한 면을 동시에 갖는 강태오는 신선하고, 이 둘의 팽팽한 맞대결은 영화를 더욱 흥미롭게 한다. [암수살인]이 이후 나올 한국 범죄영화에 새로운 길을 열어주길 바란다. 다만, 실화를 소재로 하는 경우 제작진의 사려 깊음이 필요해 보인다.

 

에디터 띵양: 최근 개봉한 범죄 스릴러 중 가장 무미건조한 작품이다. 그래서 좋았다. [공작]의 톤과 비슷하달까? [암수살인]의 가장 큰 장점은 영화가 철저하게 ‘왜?’에 집중한다는 것이다.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내용으로만 가득하고 정작 인물들의 ‘목적과 이유’를 배제했던 최근 국내 범죄 스릴러들과는 달리, “왜 김형민(김윤석)이 암수사건에 집착하는지”, “왜 강태오(주지훈)가 살인과 과시에 집착하는지”를 천천히, 알기 쉽게 관객들에게 전달한다. 거기에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에도 충실할 뿐만 아니라 배우들의 연기도 두말할 것도 없이 훌륭하니, 영화적으로는 참 괜찮은 작품임에는 분명하다. 유가족의 동의를 구하지 않고 영화를 제작한 점은 분명 잘못된 일이고 큰 실수다. 그러나 유가족들이 제작사의 사과를 받아들이고, 또 상영을 통해 범죄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웠으면 좋겠다고 입장을 밝힌 만큼 많은 이들이 이 영화를 관람했으면 좋겠다.

 

에디터 Amy: 범죄를 다루면서도 자극적인 묘사 없이 차분한 톤으로 이야기를 전달한다. 굉장히 덤덤하고 가라앉아 보이지만 충분한 긴장감을 주며, 늘어지지 않고 속도감 있는 진행 덕에 지루할 틈이 없다. 김윤석과 주지훈의 훌륭한 연기도 스릴을 가미하는 데 한몫 제대로 한다. 두 배우의 치열한 합이 영화의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올해 만난 국내 범죄 영화 중 가장 흥미로웠다. 한 가지 치명적인 단점이라면, 실화를 기반으로 작품을 만들 때 먼저 피해자의 동의를 구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 점이 영화의 완성도를 가리는 가장 큰 오점으로 남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