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나 공을 들였지만, 넷플릭스가 중국 본토에 직접 진출하는 것은 결국 불가능했다. 외국 기업에겐 너무나 철옹성 같은 중국 시장에 발을 담그기 위해서 넷플릭스는 간접 진출을 결정했고, 중국 동영상 사이트 아이치이(iQiyi)와 파트너십을 맺었다. 아이치이는 바이두의 스트리밍 사업 부문으로, ‘동영상=광고 포함 무료’ 공식이 자리 잡은 시장에 유료 모델을 도입해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중국판 ‘넷플릭스’라 불리는 곳과 손잡으면서 넷플릭스는 세계에서 가장 큰 시장에 콘텐츠를 판매할 수 있게 됐다. 반대로, 중국 영화나 드라마가 ‘넷플릭스’라는 채널 하나로 콘텐츠를 공급하는 것도 가능해졌다. 각 국가의 ‘로컬’ 배급사와 계약을 체결하는 대신 넷플릭스로 전 세계 시청자들을 만날 수 있게 됐다.
넷플릭스가 중화권 콘텐츠 수급을 늘리고 있지만, 대만이 아닌 중국 본토 콘텐츠를 오리지널(주로 중국 제외 전 세계 라이선스 배급)로 유통한 사례는 많지 않다. 그중에서도 [천성장가]는 특이 케이스다. (가상이지만) 중국 사극이고, 에피소드 개수도 다른 시리즈에 비해 월등히 많다. 웹 시리즈가 아닌 방송용 드라마를 최초로 공급하게 됐다. 이래저래 주목할 수밖에 없는 작품인데, 과연 ‘처음’이라는 수식어에 걸맞을 만큼 재미있을까?

[천성장가]는 가상 국가를 배경으로 한 권력 암투, 복수, 사랑의 이야기다. [황권]이라는 소설이 원작이며, [화피] 진곤과 [진링의 13소녀] 니니가 주연을 맡았다. 중국에선 호남위시, 망고TV(호남위시 웹플랫폼), 아이치이에서 서비스했다. 1회차 러닝타임은 45분 내외에 총 70회차다. 중국에선 하루에 2편씩, 8월 14일부터 9월 16일까지 방영했다.
부패한 전 왕조를 무너뜨리고 건국된 천성국, 여섯째 왕자 영혁은 역모 사건에 휘말려 8년 간 감금됐다. 아버지 황제의 배려로 사면 받은 그는 두 가지 목표를 위해 움직인다. 하나는 8년 전 셋째 형을 죽인 정적들을 물리치고 진실을 밝히는 것, 그리고 18년 전 자신의 어머니를 죽인 범인을 단죄하는 것이다. 또 다른 주인공 봉지미는 아버지를 잃고 외숙인 천성국 도독 추상기의 집에 얹혀살며 핍박당한다. 억울한 모함을 받고 도망자 신세가 되자 스스로 남장을 하고, 혼담을 연을 맺은 영혁의 일을 돕게 된다. 지미는 남자 ‘위지’가 되어 영혁의 명령으로 청명서원(천성국의 성균관)에 들어가고, 그곳에서 뛰어난 능력을 뽐내며 관료로 발탁돼 황제의 신임을 얻는다. 영혁과는 마음이 맞는 동지이자, 친구이자, 서로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이 된다. 하지만 지미는 자신이 전 왕조의 마지막 핏줄임을 알게 되고, 사랑하는 가족을 모두 죽인 자들에 복수하고자 한다.

권력 암투를 다룬 사극 드라마는 언제나 많았고, 중국 드라마도 예외는 아니다. 최근 몇 년간 [후궁견환전]이나 [랑야방] 등 권력 암투를 다룬 중드가 한국에서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래서 처음 [천성장가]를 시작할 때도 그렇게 특별할 게 있겠는가 싶었다. [랑야방]을 정말 좋아했기 때문에 이를 넘어설 만한 드라마가 있을까 생각하기도 했다. 그런데 넷플릭스가 들어가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이렇게 긴 중국 드라마가 넷플릭스 ‘몰아보기’ 시스템에 너무나 적합한 드라마일 줄이야. 원래 이런 궁중암투물이 한 번 훅 빠져들면 다음 회차 기다리는 게 피마를 정도인데, 넷플릭스의 다음 회차 자동 재생 기능에 얹어가니 몇 시간 동안 계속 보게 된다.
[천성장가]의 매력은 역시 두 주연 캐릭터와 이를 연기하는 배우다. 영혁은 목표를 위해 자신의 본모습을 감추고 권모술수를 일삼지만 이를 자랑스러워하진 않는다. 그래서 자신의 껍질 속 모습을 꿰뚫어보는 지미에 관심을 두고 아낀다. 진곤의 나른한 표정과 청초한 모습 (이 드라마에서 가장 섹시한 룩을 선보인다)은 비밀이 많은 캐릭터 영혁을 잘 드러내 보인다. 지미처럼 심지가 굳고 똑똑한 여성 캐릭터나 남장여자는 중국 사극에 정말 많이 등장하지만, 지미처럼 살기 위해 개인의 능력을 발휘하는 환경은 잘 주어지지 않는다. 위지가 됨으로써 지미는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는 자유를 얻는다. 무엇보다도 니니가 지미를 정말 열심히 연기한다는 점이 가장 돋보인다. 위지일 때는 화장기도 거의 없고 눈썹도 입술색도 거의 없다. 여장했을 때, 여자임이 드러난 후 남장했을 때는 또 다르다. 이 정도도 구분한 작품이 많지 않기 때문에, 위지의 얼굴을 클로즈업할 때마다 가끔씩 감격하기도 했다.

[천성장가]의 미술이나 의상도 공들인 티가 난다. 가상 국가가 배경인 만큼 복식은 다양한 시대를 섞은 듯한데, 특히 남성 캐릭터 의상의 디자인과 무늬가 여타 중국 드라마와 스타일이 다른 게 눈에 띈다. 거대하고 화려한 황궁 세트는 와이드 샷으로 잡을 때 공간의 압도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중드를 많이 봐 온 팬들에게 인상적인 요소라면 바로 배우들의 ‘목소리’인데, 후시녹음을 많이 쓰는 다른 드라마와 달리 [천성장가]는 동시녹음을 적극 활용한다. 중국 드라마의 후시녹음, 특히 성우의 더빙은 적응하기 힘들었는데, 영혁과 지미가 속삭이듯 말하는 장면을 배우들의 감정이 섞인 목소리로 들으니 색다른 맛이 있다.
다크호스가 최후의 승자가 된다는 스토리나, 가상 국가의 황궁이 배경이라는 점, 사랑과 우정, 복수의 경계에서 갈등한다는 건 그다지 신선하지 않을 수 있다. 어딘가 닮은 점이 많은 [랑야방]이 자꾸 떠오르는 것도 단점일 수 있다. 그렇지만 긴 회차 동안 이야기를 끌고 가는 힘이나 두 배우의 케미스트리 덕분에 [천성장가]는 한 번쯤은 시도해 볼 만하다. 알아서 다음 편을 재생하는 넷플릭스와 함께 중국 드라마를 제대로 달려보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