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필과 장르 마니아를 위한 이번주 개봉작”

 

세상은 넓고 볼 영화는 많다. 매주 새로운 영화들이 물밀듯이 극장가를 찾아오지만 모든 개봉작들을 보기에는 시간도 없고 지갑 사정도 여의치 않다. 영화를 사랑하는 관객에게는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시간과 여유가 있어도 보고 싶은 영화가 근처 극장에서 상영하지 않는 참사를 겪으면서 VOD 출시만 애타게 기다리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런 이들을 위해 준비했다. 씨네필 혹은 특정 장르를 사랑하는 마니아들의 이목을 사로잡을 만한 이번 주 개봉작들을 소개한다.

 

1. 핫 썸머 나이츠 (Hot Summer Nights)

이미지: (주)더쿱

 

에디터 Jacinta: [핫 썸머 나이츠]는 제목 그대로 뜨겁게 타올랐던 여름날의 백일몽 같은 영화다. 티모시 샬라메의 매혹적인 비주얼이 레트로풍의 스타일리시한 영상과 어우러져 한 편의 영상 화보집을 완성했다. 영화는 혼자만의 세계에 갇힌 다니엘이 반강제로 여름 동안 삼촌집에 머물게 되면서 파국의 포문을 연다. 휴양객과 주민들 사이에서 어중간한 이방인으로 겉돌던 다니엘은 운명처럼(?) 동네 마약상 헌터를 만난 뒤 검은 비즈니스의 세계에 빠져들고, 사랑도 우정도 비즈니스도 거침없이 흘러간다. 영화는 불완전한 주인공의 무모하고 위험천만한 여름을 한껏 멋 부린 영상과 음악으로 감각적으로 그리는데, 치기 어린 감정은 한없이 얕고 스토리와 캐릭터도 기시감이 상당하다. 물론 티모시 샬라메의 열일하는 비주얼과 연기를 보는 것으로도 만족스럽지만, 그 이상의 영화적 매력은 느껴지지 않는다. 또한 제3자의 내레이션이 굳이 필요했는지도 의문이다.

 

 

2. 액슬 (A-X-L)

이미지: (주)팝엔터테인먼트

 

에디터 Amy: 군에서 비밀리에 개발된 미래형 병기이자 인공지능 로봇개 ‘액슬’을 착한 심성을 가진 마일스와 사라가 발견한다. 망가진 몸을 수리해 주고 친구가 된 ‘액슬’을 지키기 위해 마일스와 사라는 위험천만한 모험을 시작하게 된다. 점차 마음을 열며 둘도 없는 친구가 되고, 서로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신인인 알렉스 뉴이스테터, 베키 지, 알렉스 맥니콜이 출연해 신선함을 더했고, 인간에게 호의적인 개의 습성을 그대로 물려받은 듯한 로봇개 ‘액슬’은 커다란 강아지처럼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스펙터클한 화면과 액션을 기대했다면 조금 실망스럽겠지만, 주말에 아이들과 함께 관람하기 딱 좋을 정도로 착한 가족 영화다. 영화가 끝난 후 나도 저렇게 멋지고 귀여운 로봇개가 있었으면 하는 생각을 하며 극장을 나서는 사람들이 많을 듯하다. 헤어진 ‘액슬’과의 재회를 예고하는데, 후속작이 나온다면 좀 더 긴박함이 담겨 있기를 바란다.

 

 

3. 펭귄 하이웨이 (Penguin Highway)

이미지: (주)NEW

 

에디터 Jacinta: 11살 소년 아오야마는 동네 치과에서 일하는 누나를 동경하며, 누나에 대한 순수한 호기심부터 일상의 모든 것을 빼곡하게 노트에 기록한다. 또래보다 지적인 성숙함을 뽐내며 빨리 어른이 되고 싶은 소년이 사는 동네에 펭귄이 출몰하면서 순수한 호기심과 탐구 정신은 지브리 애니메이션 속 주인공처럼 친구들과 함께 어른들은 모르는 숲의 비밀을 탐험하도록 이끈다. [펭귄 하이웨이]는 독특한 세계관으로 안내하는 모리미 토미히코 소설을 원작으로, 재치 있는 상상력과 청량감이 돋보이는 아름다운 영상미를 앞세워 애니메이션이 전할 수 있는 환상적인 모험의 세계로 초대한다. 다만, 순수함이 이끄는 모험을 그대로 즐기기에는 불편한 설정이 집중력을 흩뜨린다. 동경하는 누나를 향한 열렬한 감정은 잘 알겠는데, 그 감정을 발현하는 태도가 때때로 당혹스럽다. 동경의 감정이 특정 신체 부위의 집착으로 이어지고, 애니메이션임에도 노골적인 앵글이 난감하다. 영화가 집중하는 순수와 환상의 세계에 맞게 누나를 대하는 방식에도 신경 썼다면 보다 마음 편하게 귀여운 펭귄과 신비로운 숲의 비밀을 즐길 수 있었을 텐데 아쉬움이 남는다.

 

 

4. 호밀밭의 반항아 (Rebel in the Rye)

이미지: (주)트리플픽쳐스

 

에디터 겨울달: 20세기 걸작 [호밀밭의 파수꾼]을 남긴 J. D. 샐린저 전기 영화. 작가를 꿈꾸는 청년 제리가 전쟁과 실연, 거절과 좌절을 경험하며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지만, 점점 글 쓰는 걸 제외한 모든 것에서 자신을 단절하는 과정을 차분하게 그린다. 대학 입학부터 전쟁, 가족사의 변화, 책 출간, 은둔까지 긴 시간 동안 일어난 일을 한데 넣었는데, 그러다 보니 사건은 많고 여유가 다소 부족하다. 다만 샐린저가 전쟁 이후 외상 스트레스 증후군에 시달리는 모습과 요가를 하고 글을 쓰며 내면의 고독과 평화를 찾아가는 과정을 다른 부분보다 공들여 그린 점은 인상적이다. 샐린저가 그저 ‘은둔의 아이콘’이 아니라, 마음의 상처에 고립이라는 방식으로 대응한 것이란 점을 특별히 강조한다. 그 외에는 특별히 튀는 것도 모자란 것도 없는, 교과서적 전기 영화.

 

 

5. 마라 (Mara)

이미지: (주)스톰픽쳐스코리아

 

에디터 띵양: 있어야 할 것이 없는 영화. [마라]는 수면 중 돌연사 사건을 수사하는 도중 악령의 존재와 사건의 진실을 깨닫게 되는 범죄 심리학자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가위눌림’은 공포물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소재지만, 이를 풀어나가는 방식이 타 작품들과는 다른 것이 [마라]만의 매력이다. 거기에 올가 쿠릴렌코의 인상적인 연기가 더해지면서 [마라]는 흔한 듯하면서도 참신한 작품으로 탈바꿈하는데, 딱 거기까지다. [마라]에는 호러 영화라면 당연히 있어야 할 쫄깃함이나 공포가 부족하다. 하비에르 보텟은 이번 작품에서도 특유의 이중 관절을 선보이며 악령 ‘마라’로 분했지만, 이미 여러 작품에서 접한 그의 모습에서 괴이함보다는 친밀감이 먼저 느껴진다. 공포와 긴장감을 느껴야 할 장면들은 지나치게 느린 테이크 때문에 그 맛이 덜하다. 장르적 요소가 부족해지니 [마라]는 공포 영화라기보다는 자기반성 혹은 자아성찰 영화에 가까워진다. 참신함은 좋았으나, 그를 뒷받침할 수 있는 공포 영화로서의 매력이 있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