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Tomato92

 

 

40년 전 미국 전역을 공포로 몰아넣은 [할로윈] 속편의 북미 반응이 심상치 않다. 개봉 첫 주에 7,600만 달러의 박스오피스 성적을 거두며 ‘여성 주연 공포 영화 오프닝 역대 1위’, ’10월 영화 오프닝 역대 2위’, ‘할로윈 시리즈 역대 1위 오프닝’ 등 수많은 기록을 갈아치우는 중이다. 이처럼 관객들이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던 작품의 속편 제작은 이 업계에서 흔히 있는 일이다. 하지만 ‘형만 한 아우 없다’라는 말이 있듯이, 전편을 넘어서기는커녕 비슷한 수준에도 못 미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기다림이 길면 길수록 결과물에 대한 기쁨 혹은 실망의 크기 또한 커지기 마련인데, 오랜 시간이 지나서 돌아온 속편이 관객의 기대를 충족시킨 작품을 소개한다.

 

 

 

 

1. 토이 스토리 2 & 토이 스토리 3 – 11년

 

이미지: 한국소니픽쳐스릴리징브에나비스타영화㈜

 

[토이 스토리 2]는 장난감들 사이의 경쟁이라는 1편의 단순한 주제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주인에게 버림받은 장난감들의 내적 갈등과 슬픔이라는 좀 더 현실적인 문제를 작품에 녹여내며 평단의 극찬을 받았다. 디즈니만이 할 수 있는 깨알 같은 ‘스타워즈’ 패러디와 실사 영화에서 나올 법한 마지막 NG 장면에서는 제작진의 센스를 엿볼 수 있고, 많은 이들에게 명장면으로 꼽히는 제시의 구슬픈 노래는 2편의 주제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줬다. 2편은 수익 면에서도 엄청난 성공을 거뒀지만, 디즈니의 삽질로 인해 다음 편이 나오기까지 무려 11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2006년 디즈니가 픽사를 사들인 뒤 여러 우여곡절 끝에 탄생한 3편은 내부 잡음에도 높은 완성도를 보여주며 대중에게 ‘믿고 보는 픽사’라는 말을 다시금 각인시켰다. 2편의 두 배가 넘는 제작비를 투자하여 저마다 개성 넘치는 장난감들을 대폭 늘렸고, 전편과 달리 빌런 역할로 나온 ‘라쏘’의 서사에 살을 붙여 완성도를 높였다. 또한 스페인어 하는 버즈, 켄의 패션쇼, 탁아소 탈출 등 센스 있는 장면을 쏟아내듯 만들어냈다. 3편을 본 사람들이 명장면으로 꼽는 부분은 앤디가 보니에게 장난감을 물려주는 장면으로, 대학생이 된 앤디가 이웃집 소녀에게 장난감을 일일이 소개하며 건네는 모습은 영화와 함께 성장한 우리 모두의 눈시울을 붉히게 했다. 이처럼 빈틈없는 완성도로 2편과 비슷한 찬사를 받으며 ‘애니메이션 최초 전 세계 박스오피스 10억 달러 돌파’라는 쾌거를 이뤘다. 현재 내년 개봉을 목표로 4편이 제작 중이다.

 

 

 

2. 블레이드 러너 & 블레이드 러너 2049 – 35년

 

이미지: 소니 픽쳐스

 

필립 K. 딕의 소설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을 꿈꾸는가?’를 원작으로 명장 리들리 스콧의 손에서 탄생한 [블레이드 러너]는 여전히 다양한 작품에 지대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명작 SF다. 당시 CG라는 것이 없었던 때였지만, 80년대에 상상한 2019년 LA의 모습을 기발한 연출과 영상미를 담아 그렸고, ‘레플리칸트’라는 존재를 통해 인간의 정의에 관한 철학적 의문을 훌륭한 서사와 개성 넘치는 캐릭터로 풀어냈다. 비록 대중의 외면을 받고 흥행의 쓴맛을 보며 ‘저주받은 걸작’이라는 타이틀을 얻기는 했지만 마니아들 사이에서 꾸준한 사랑을 받으며, ‘데커드가 레플리칸트냐 인간이냐’에 관한 논제는 오랜 세월 꾸준한 토론거리가 되었다.

 

이후 2011년, 전작의 프로듀서였던 버드 요킨이 [블레이드 러너]의 판권을 회수하며 속편 제작이 가시화됐다. 이어 스콧 감독이 프로듀서로 빠지며 [에너미], [그을린 사랑]으로 각광받던 드니 빌뇌브가 새로운 감독으로 발탁됐다. 2시간 44분이라는 긴 러닝타임은 많은 이들을 놀라게 했지만, 결과물을 본 이들 대부분은 전작의 명맥을 훌륭하게 계승했다며 쾌재를 불렀다. 전작의 광팬임을 밝힌 빌뇌브는 영화 곳곳에 오마주를 깔아 놓으며 1편의 향수를 느끼게 했고, 전편보다 주제의 넓이를 확장하고 변주하는 동시에 시리즈를 관통하는 메시지를 진중하고 탁월하게 전달하는 데 성공했다. 또한 한스 짐머의 압도적이고 웅장한 음악과 함께 펼쳐지는 시각적 황홀경은 영화에 집중하게 만드는 일등공신이라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전작을 보지 않은 사람들에게 다소 불친절하고 지루한 영화로 느껴진 탓인지 ‘이 작품이 성공하면 3편을 만들고 싶다’고 밝힌 빌뇌브의 포부가 무색할 정도로 박스오피스에서 연이어 고배를 마셨다. 하지만 연기, 디자인, 각본, 액션 그 모든 면에서 전작 팬을 만족시켰고, 무려 13번의 아카데미 후보 지명에도 상을 받지 못한 로저 디킨스에게 최초로 트로피를 쥐여줬다는 사실만으로 의미 있는 작품이 아닐까.

 

 

 

3. 인크레더블 & 인크레더블 2 – 14년

 

이미지: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인크레더블]은 영화가 담고 있는 메시지나 디테일적인 면에서 크게 인정받은 [아이언 자이언트]의 브래드 버드가 연출한 두 번째 장편 애니메이션으로, 초능력을 가진 한 가족의 이야기를 다룬다. 영화는 [미션임파서블]을 연상시키는 오프닝의 긴박한 추격전으로 시작해 지금 봐도 신기한 발명품으로 관객들의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또한 가족의 능력을 적극 활용해 만든 재치 있는 장면과 기승전결이 완벽한 전개로 비평가들의 찬사를 받으며 박스오피스에서도 훌륭한 성적을 거뒀다. 작품의 성공 이후 당연한 수순으로 속편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으나, 감독 브래드 버드는 ‘생각하고 있는 아이디어는 있으나 아직 완전하지 않은 상태’라고 발언한 이후 영화의 구체적인 계획에 대해서 줄곧 함구했다.

 

그렇게 오랜 시간 관객을 애타게 만들며 거의 분노에 가까운 원성을 사기는 했지만, 14년 만에 개봉한 속편은 다시 한번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영화의 시점은 전편에서 바로 이어졌지만 아무래도 2004년과 2018년의 시대상이 많이 다른 만큼 현세대를 반영하려는 노력이 엿보였다. 1편이 좌절한 영웅 미스터 인크레더블의 재기 과정을 그렸다면, 2편은 엘라스티걸의 영웅적 면모와 미스터 인크레더블의 육아적 고충이라는 대비되는 요소를 번갈아 다루며 이야기를 전개했다. 바이올렛의 썸남 ‘토니’의 모습에서 분명히 알 수 있듯 전체적인 캐릭터 디자인이 한층 세련되게 바뀌었고 새로운 영웅을 대거 등장시키며 볼거리를 풍성하게 했다. 이와 더불어 굳이 전편을 보지 않아도 재미있게 볼 수 있는 내용과 한껏 화려해진 연출로 기존 관객과 새로운 관객을 모두 만족시키며 거의 두 배에 가까운 박스오피스 성적을 거두었다.

 

 

 

4. 매드 맥스 3 &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 – 30년

 

이미지: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주)

 

조지 밀러를 대표하는 시리즈, ‘매드 맥스 초기 3부작’ 중 [매드 맥스 3]는 밀러 감독이 제작 파트너 브라이언 케네디 없이 찍은 최초의 작품이다. 영화 제작이 한창 진행되던 중에 장소 헌팅을 하던 케네디가 사망하자 조지 밀러는 큰 충격을 받고 연출을 접었다. 결국 나머지 분량은 밀러와 이전에 미니시리즈에서 함께 작업했던 조지 오길비가 연출을 맡았다. 3편은 전작들과 비교해 할리우드가 본격적으로 개입해 제작비가 꽤 커진 만큼 영상 자체의 퀄리티는 좋아졌지만, 전체적으로 어딘가 성의 없는 작품이 뽑혔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시리즈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카체이싱 장면은 중반부가 넘어서야 고개를 내밀고, 특유의 어두운 분위기가 대폭 줄었을 뿐 아니라 뚝뚝 끊기는 장면 전환에 개연성마저 실종되어 집중력을 흐트러트린다. 기존 팬들은 이처럼 눈에 띄는 단점들로 인해 크게 실망했고, 그 때문인지 ‘매드 맥스’ 3부작 중 평이 가장 형편없다는 평을 받았다.

 

영화의 4편인 ‘분노의 도로’의 구상은 일찍이 1998년부터 시작되어 2001년에 제작이 시작됐지만, 9.11 테러 및 촬영장 붕괴 사고 등으로 첫 촬영은 10년이 지나서야 가능해졌다. 이후 재촬영이 거듭되면서 영화가 별로라는 불안 기류가 생겼지만, 2015년 작품을 눈으로 직접 확인한 관객과 비평가들은 일제히 환호했다. 퓨리오사를 중축으로 능동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입체적 여성 캐릭터들을 전면적으로 내세워 변화한 시대상을 부각했고, 관객들이 그토록 갈망했던 카체이싱을 화려한 연출과 폭발하는 듯한 사운드로 담아냈다. 그 결과 황폐화된 도시에서 펼쳐지는 날것 액션의 향연으로 ‘골고루 미친 영화’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또한 서사 구조가 매우 단순하면서도 포스트 아포칼립스 설정 안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집어넣어 영화적 재미를 한층 더 끌어올렸다. [분노의 도로]는 단연코 2015년 한 해를 대표하는 액션 영화였고,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편집, 음향, 음향편집 등 기술 부문에서 가져갈 수 있는 모든 트로피를 휩쓸며 다시금 영화의 위상을 높였다.

 

 

 

5. 비포 선라이즈 & 비포 선셋 – 9년

 

이미지: THE 픽쳐스, 명보아트시네마

 

비포 시리즈의 첫 발을 뗀 [비포 선라이즈]는 20대 미국인 남성과 프랑스 여성이 기차에서 만나 사랑의 감정을 느낀다는, 영화가 아니면 불가능에 가까운 이야기를 한 폭의 명화 같은 배경에서 그 어떤 로맨스보다 현실적으로 풀어낸 작품이다. 두 남녀가 처음 만나는 자리라면 늘 따라오는 나이, 이름, 가족, 취미와 같은 상투적인 질문 대신 서로의 본질을 꿰뚫는 질문으로 가까워지는 과정이 보는 이의 흥미를 자극했다. 곧이어 음악 감상실, 대관람차, 식당 등 장소를 옮겨감에 따라 설렘에서 사랑으로 발전하는 두 사람의 감정선이 매우 자연스러워 어느새 영화란 걸 잊고 그들의 관계에 점점 몰입하게 된다. 마지막에 다시 만날 시일을 정하고 아쉬움을 뒤로한 채 헤어지는 장면이 나온 다음에는 잔잔한 음악과 함께 그들이 거닌 장소를 비추어 여운을 더욱 짙게 했다. 영화 촬영을 모두 끝내고 난 뒤, 감독 리처드 링클레이터와 에단 호크 & 줄리 델피 세 사람 합의하에 속편 제작이 결정됐지만, 자금 조달이 늦어지면서 만들어지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렇게 2백만 달러 정도의 예산이 집행된 속편 [비포 선셋]은 ‘선라이즈’에서 약속한 6개월이 아닌 9년 후 다시 만난 두 연인의 모습을 다룬다. 다소 이상적인 주제에 관한 담화를 주고받으며 사랑을 직접 표현했던 전편과 달리, 어느덧 세월의 풍파를 겪고 30대가 되어 새로운 짝까지 생긴 속편은 씁쓸함의 정서가 지배적이다. 비록 ‘선라이즈’처럼 유럽 여행 욕구를 자극하는 그림 같은 배경이 연이어 나오거나 풋풋한 설렘이 느껴지지 않지만, 서정적인 롱테이크 씬과 함께 대사만으로 극을 이끌던 시리즈의 매력은 오히려 커진 데다 나이가 들어 한층 깊어진 두 사람의 대화 덕에 ‘선셋’을 비포 트릴로지의 걸작이라고 꼽는 이들도 많다. 전개가 끝을 향할수록 제시와 셀린느 사이의 애틋한 감정은 손에 잡힐 듯 더욱 선명해지는데, 셀린느가 두 사람의 관계를 함축적으로 담은 노래를 부르는 모습은 이 영화의 압권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