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예하

 

아이맥스와 블루레이의 시대, 사람들은 캡처를 위해, 확인을 위해, 또는 그냥 좋아서 프레임 단위로 영화를 분해한다. 물론 개봉작 IMDB 페이지마다 ‘옥에 티’ 페이지가 만들어지는 지금도 1985년의 사무실에 2011년형 람보르기니 포스터가 붙고(‘달라스 바이어스 클럽’), 딸을 구하러 올라가야 할 엄마는 내려가는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른다(‘해운대’). 하지만 눈과 머릿속 지식에만 의존해 지난 세기 블록버스터들의 옥에 티를 발견하는 데에는 어딘가 비밀스럽고 수수께끼 같은 구석이 있다. 누군가의 눈에서 전설로 박제된 할리우드 영화 속 오류 네 가지를 소개한다.

 

 

 

 

1. 3000명의 승객 중 한 사람의 명예 – 타이타닉(1997)

 

이미지: 씨네힐

 

최근 영국의 한 선박회사에서 ‘타이타닉’호를 똑같이 다시 만들어, 침몰 110주기가 되는 2022년에 똑같은 수의 사람을 태우고 똑같은 항로로 띄울 예정이라는 기괴한(그런데 ‘진짜’다.) 뉴스가 나왔다. 침몰한 타이타닉호에 낭만을 가진 사람들은 여전히 많은 모양이지만, 영화 [타이타닉]이 실제 사건을 얼마나 상세히 스크린에 옮기고 있는지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사실 제임스 카메론은 거의 결벽적으로 당시 상황을 묘사했다. 배의 설계도면부터 가구까지 모두 실제와 똑같이 만들었고, 인물도 마찬가지였다. 구명보트를 지휘한 생존자 몰리 브라운이나 선박과 운명을 함께한 타이타닉호의 설계자 토머스 앤드류스 등은 모두 실존 인물이다. (몰리 브라운 여사는 앞서 말한 타이타닉 2호의 첫 티켓을 살 것이라고 하는데 악취미가 비할 데 없다.) 게다가 지나가는 행인 하나, 승선객 이름 하나까지 생존자의 진술을 토대로 했다.

 

그래서 더욱 이해할 수 없는 치명적인 오류가 있다. 실수로 승선객을 쏜 뒤 권총 자살하는 일등 항해사 윌리엄 머독의 이야기는 모두 새빨간 거짓말이다. 이 인물은 실존하지만, 실제로 그는 다른 사람들의 목숨을 구하고 배와 함께 침몰했으니 이야기를 지어낸 게 아니라 오히려 명예를 훼손한 꼴이다. 결국 [타이타닉] 측은 머독 유족에 공식적으로 사과하고, 그의 모교에 고인의 이름을 딴 상을 제정하는 데 5000파운드의 기금을 내놓았다. 최근 한국에서도 영화 [암수살인]이 유족의 동의 없이 실제 사건을 묘사하여 제작사에서 뒤늦게 사과하는 사건이 있었다. 90년대 할리우드가 됐든 2018년 충무로가 됐든 남의 죽음을 팔 땐 존경의 시늉이라도 하자.

 

 

 

 

2. 공룡 그리고 공룡보다 큰 실수 – 쥬라기 공원(1993)

 

이미지: 유니버설 픽처스

 

SF영화에는 언제나 과학적 검증 논란이 따라붙기 마련이다. ‘미래산업’이라 부를만한 영역에선 기술이 영화적 상상력에 영감을 받는 경우도 많지만 고고학이라면 상황은 날이 갈수록 악화된다. 새로운 화석과 흔적이 발굴되고, 그에 따라 학설도 변하기 때문에 운이 나쁘면 영화가 날이 갈수록 ‘틀려’질 수도 있다. [쥬라기 공원]에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공룡 묘사 오류가 수두룩하다. 그보다 더 재미있는 건, 거대한 공룡보다도 치명적인 좁쌀만한 오류가 있다는 점이다.

 

쥬라기 공원에 있는 공룡은 모두 현대 생물의 유전자와 결합되어 탄생한 혼종이라는 것이 영화의 설정이지만, 그래도 공룡의 정식 학명을 따온 이름을 썼기에 너무 다른 건 좀 문제가 됐다. 가장 유명한 것이 벨로시랩터(벨로키랍토르)와 딜로포사우루스다. [쥬라기 월드]까지 살아남아 크리스 프랫과 대치 장면을 만들어낸 살인 공룡 벨로시랩터는 최근 연구에 따르면 현존하는 독수리와 크게 다르지 않게 생겼다. 딜로포사우루스 역시 화려한 목도리를 달고 독을 뿜는 것과는 거리가 먼 공룡이었다.

 

문제는 딜로포사우루스가 종래에 공격하는 [쥬라기 공원]의 (일종의) 빌런, 데니스 네드리다. 수정란을 빼돌리려다 온 섬에 공룡을 풀어놓은 메인 프로그래머 네드리가 선착장에 있는 밀수책과 대화하는 장면에서 그는 모니터에 창을 띄워놓고 실시간으로 선착장을 내려다보고 있다. 그런데 이 창 밑에 재생 버튼과 타임라인이 달린 미디어 플레이어 바가 있었던 것. 바에 따르면 네드리는 방금 이 동영상을 ‘재생’한 듯하다. 이거야말로 눈썰미 아니고선 찾을 길이 없었을 고전 중의 고전이다.

 

 

 

 

3. 고전 명작에 훼방을 놓은 엑스트라 –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1959)

 

이미지: Warner Bros. Ent.

 

서스펜스의 거장 알프레드 히치콕의 작품 가운데서도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는 그 상징적인 스틸컷과 함께 가장 유명한 영화로 꼽힌다. 뉴욕의 광고업자가 첩보원이라는 누명을 쓰고 끝없는 함정에 빠지게 되는 이야기가 말 그대로 ‘영화적으로’ 이어진다. 007을 위시한 수많은 첩보물이 이 영화의 연출이나 특정 장면을 거의 그대로 베끼고 있으며, 감독들의 헌사 역시 아직도 끝이 없다. 3D 아이맥스에서 외계인 피부의 질감을 따지는 눈으로 본다면 고전 영화에 어색한 점이 적지 않겠으나, 이 명작의 옥에 티만큼은 당대의 눈으로 봐야 알아챌 수 있을지도 모른다.

 

요즘도 심심찮게 쓰이는 방법이지만, 할리우드 스튜디오 전성기에 자동차 내부 장면은 모두 스튜디오에서 강풍기와 야외 사진 배경을 이용해 촬영되었다. 배우들은 아무런 의미 없이 핸들을 이쪽저쪽 움직이는 한편 차가 방향을 트는 대로 몸을 기울여줘야 했다. 그런데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의 주인공 쏜 힐(캐리 그란트 분)이 경매장에서 붙잡혀 경찰서로 끌려가는 장면에서, 차가 코너를 도는(것 같은)데도 옆에 앉은 엑스트라 경찰은 석상처럼 꼿꼿이 앉아 있다. ‘티’라고도 부르기 힘든 이 장면을 역사에 남긴 건 바로 주연 캐리 그랜트의 반응이었다. 짜증 섞인 표정으로 몸을 기울이라고 눈치를 주는 모습이 필름에 담긴 것이다. 히치콕이 과연 이 테이크에 오케이를 불렀을까? 왜 편집하지 않았을까? 진의는 알 수 없지만, 장난기 넘치는 대배우 캐리 그랜트가 히치콕에게 큰 장난을 당한 거라는 얘기가 있다고만 해두자.

 

 

 

 

4. 오류의 벌판, 오류의 스펙터클 -브레이브하트(1995)

 

이미지: Paramount Pictures

 

세상에 고증 오류로 가장 유명한 작품이 있다면 바로 [브레이브하트] 일 것이다. 이 영화의 오류는 정말 끝도 없어서 그냥 판타지물로 취급하고 싶을 지경이지만, 원작은 또 뚝심 있게 역사와 실화와 실존 인물을 강조한다. 영화의 주인공 윌리엄 월레스는 실제 13세기 스코틀랜드의 독립을 위해 싸웠던 영웅이다. 그러나 이 정도가 전부라고 볼 수 있다.

 

대표적인 오류를 몇 가지만 꼽아보자면, 먼저 복식 문제가 있다. 극중 인물들은 ‘스코틀랜드’하면 게으르게 연상하는 체크무늬 킬트를 입고 나오는데, 근 5세기 후에야 나타난 의상이니 트렌드세터도 이런 트렌드세터가 없다. 전장에 나갈 때 얼굴에 푸른 칠을 하는 풍습은 근 천 년 전 스코틀랜드 지역에 살던 ‘픽트족’의 것이다. 참 많은 시대가 서로 만나고 있다. 한편 월레스와 러브라인을 이루는 프랑스 공주 이사벨라 역시 실존하는 역사적 인물이지만, 이 시기에 그녀의 나이는 약 10세였으며 스코틀랜드 땅엔 발을 들인 적조차 없었다.

 

그리고 대미를 장식해도 좋을, 좀 낭만적인 오류가 있다. 사방이 말을 타고 창을 휘두르는 영화에서 하필이면 새하얀 차량이, 그것도 두 번이나 등장하는 것이다. 마치 모든 픽사 영화의 세계를 가로지르는 피자 플래닛 트럭처럼, 1300년대에 나타난 이 하얀 차에도 뭔가 멋지고 아름다운 의미가 있는 게 아닐까? 사람 생각은 다 비슷한지, 영어 웹을 뒤지면 이 차에 대한 온갖 이론과 이야기가 쏟아져 나온다고 하니 정말 할 일이 없을 때 한번 찾아보자. 생각보다 재미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