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김옥돌

 

 

장률 감독의 영화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가 개봉했다. 장률 감독은 지난 영화 [경주]를 비롯해 지방의 소도시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담아낸 바 있다. 소도시를 담아내는 것은 영화뿐 아니다. [알쓸신잡]을 필두로 TV 프로그램에서도 지방 소도시 곳곳을 여행하며 그곳에 얽힌 이야기를 풀어낸다. 단풍이 들고 가을의 끝자락에 서있는 요즘. 아직은 너무 춥지 않아 주말에 당일치기로 지방 소도시로 여행하기 좋은 때다. 꼭 그곳에 가지 않아도 좋다. 편안한 집에서 지방 소도시를 배경으로 한 영화로 여행을 떠나보자.

 

 

 

1.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

 

이미지: ㈜트리플픽쳐스

 

장률 감독은 그동안 몇몇 영화에서 지역을 배경으로 한 영화를 선보여왔다. 과거 영화 [경주]로 호흡을 맞춘 적 있는 장률 감독과 박해일이 이번에는 문소리와 함께 군산으로 향했다.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는 윤영(박해일)과 송현(문소리)이 군산에 도착하면서 시작한다. 선배의 아내 송현을 좋아했던 후배 윤영은 이혼했다는 소식에 은근 기뻐했고, 어쩌다 보니 즉흥적으로 여행을 떠나 군산에 도착했다. 영화는 두 사람이 군산에서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감정의 묘한 엇갈림을 경험하는 이야기를 유려하게 펼쳐 놓는다.

 

영화의 주요 무대가 되는 군산은 [8월의 크리스마스], [타짜], [남자가 사랑할 때] 등 여러 영화의 촬영 명소로 유명하다. 하지만 한국 영화에서 군산이란 도시의 정체성이 명확하게 드러나거나 사람들의 머릿속에 인식된 경우는 드물었다. 영화 촬영지 혹은 여행지로 알려진 군산은 일제강점기의 유적이 많이 남아 있는 도시다. 일본식의 옛 가옥들과 기차가 다니지 않는 철길마을 등 1930년대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장률 감독은 실제로 일제 식민지 시절의 흔적이 남아있는 도시를 찾으며 목포와 군산을 두고 저울질했다. 최종적으로 부드러운 정서가 살아있는 군산을 선택하여 과거와 현재가 어우러진 도시의 특성을 서울을 떠나온 윤영과 송현의 이야기에 녹여냈다. 영화 속 인물들은 군산을 관찰하고 탐색하며, 관객들에게 특별한 ‘군산 여행’을 슬며시 권유하는 듯하다. 영화에서 윤영과 송현이 묵었던 일본풍의 민박집은 실제로 영업 중인 게스트하우스며, 군산을 방문하면 해당 민박집에 머물렀던 주인공의 여행코스를 따라가 볼 수 있다.

 

 

 

2. 밀양

 

이미지: 시네마 서비스

 

영화 [밀양]은 제목 그대로 경상남도의 작은 소도시 밀양을 배경으로 한다. 밀양은 한자어로 빽빽할 밀(密), 볕 양(陽)을 뜻한다. 영화의 제목은 숨길 비(秘)를 써서 비밀스러운 햇빛, Secret Sunshine을 의미한다.

 

밀양 외곽의 도로에서 신애(전도연)의 차가 서버리고, 차를 수리하러 온 종찬(송강호)은 신애(전도연)를 만난다. 서른세 살, 남편을 잃은 신애(전도연)는 아들 준과 남편의 고향 밀양으로 옮겨와 이 작은 도시에서 새로운 시작을 기약한다. 종찬은 밀양이 어떤 곳이냐는 신애의 질문에 “밀양이 어떤 곳이냐구예? 아, 뭐라 케야 되노? 경기가 엉망이고, 뭐, 한나다랑 도시고, 부산 가까워서 말씨도 부산 말씨고, 인구는 뭐, 마이 줄었고…”라고 대답한다. 실제로 송강호의 연기는 정말 실제로 밀양 사람 같아 보일 정도로 100%에 가까운 싱크로율을 보여준다.

 

밀양에는 영화 개봉 이후 ‘전도연 거리’ 등이 만들어졌고, 실제 촬영 장소를 방문하면 영화 속 장면을 고스란히 떠올릴 수 있다. 또한 밀양은 한자어의 뜻처럼 실제로 일조량이 많은 지역이다. 영화가 건네는 이야기는 무겁고 먹먹하지만, 영화의 제목처럼 비밀스러운 햇빛이 종찬과 신애, 사람들, 그리고 밀양의 풍경을 감싼다. 이렇게 작은 소도시에도 사람들은 저마다의 삶을 살아내며, 볕은 묵묵히 사람들을 비춘다.

 

 

 

 

3. 경주

 

이미지: 인벤트 디

 

장률 감독은 실제 경주에서의 기억을 바탕으로 영화를 구성했다. 감독은 스스로 빠져나오지 못할 정도로 깊은 인상을 받은 공간에서 영화를 찍는다고 한다. 영화 [경주]는 제목 그대로 경주의 풍경과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을 그린다.

 

[경주]는 7년 전 경주의 어느 찻집에서 본 춘화를 찾아 떠난 최현(박해일)과 경주에서 찻집을 운영하는 주인 윤희(공윤희)의 만남을 그린다. 당연히 천년의 도시 경주가 간직한 아름다운 명소가 일상의 배경으로 등장한다. 신경주역부터 시작한 주인공 최현(박해일)의 여정은 보문호수와 경주 시내에 위치한 찻집, 그리고 고분능으로 이어지며 영화는 주변 곳곳의 풍경을 아름답게 담아낸다. 영화에서 공윤희(신민아)가 운영하는 찻집은 실제로 경주 시내 한가운데 있다.

 

경주는 155여 개의 거대한 능을 곳곳에서 마주치는 도시다. 영화에서 마주하는 고분능은 평소 마주하는 풍경과 다른 느낌이다. 최현이 경주의 이곳저곳을 누빌 때마다 거쳐가는 고분능, 늦은 밤 술기운에 취해 고분능을 오르는 주인공의 모습에서 과거와 현재, 삶과 죽음의 공존을 슬며시 전한다. 영화는 미처 알지 못했던 경주의 아름다운 모습을 은은하게 그려낸다.

 

영화를 보고 경주로 향한다면 보문호수 길을 걷고 실제 촬영 장소인 전통찻집에서 차를 마시는 것도 좋겠다. 경주 시내 곳곳을 걸으며 고분능이 어우러진 풍경을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봄이 오면 경주의 보문호수 주변에는 왕벚나무 2만여 그루에 흐드러지게 벚꽃이 피고, 여름에는 수양버들이 드리운다. 뿐만 아니라 밤에도 달빛 아래 호수를 따라 이어지는 약 8km의 산책로를 거닐 수도 있다. 영화는 고요한 밤 경주의 능을 옆에 두고 걷고 싶은 마음의 여운을 남긴다.

 

 

 

4. 땐뽀걸즈

 

이미지: KT&G 상상마당 영화사업팀 컴퍼니에스에스(주)

 

[땐뽀걸즈]는 경상도 남쪽 자락에 위치한 거제시를 배경으로 거제여상 학생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학생들 대다수는 조선소 취업을 희망하지만, 예외는 있기 마련이다. [땐뽀걸즈]의 주인공은 성적은 좋지 않지만 ‘댄스스포츠’는 잘하고 싶은 학생들이다. 수업 시간 내내 졸다가도 체육 시간만 되면 반짝이고, 방과 후 연습실에서 깨어난다.

 

댄스스포츠를 줄여 ‘땐뽀’라고 부르는 장난기 넘치는 고등학생이지만 연습할 때는 사뭇 진지하다. 취업 준비를 시작한 지현은 조선소를 희망퇴직한 아버지를 보면서도 조선소 취업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은정은 동생들을 챙기느라 연습시간이 부족해 생각만큼 춤이 늘지 않는 스스로가 답답하다. 아이들에게 춤을 가르치는 이규호 체육선생님은 땐뽀걸즈의 일상과 고민을 함께 나눈다.

 

거제시를 방문한 사람은 많지 않을지 모른다. 이곳의 경제는 조선업을 중심으로 움직인다. 하지만 세계 조선업의 수도라고 불리던 경남 거제시에 불황이 시작됐다. [땐뽀걸즈]는 불황의 바람을 맞은 거제여상에서 체육과 댄스스포츠를 가르치는 선생님과 거제여상 ‘땐뽀’ 동아리 학생들의 댄스스포츠에 대한 열정을 그려내어 잔잔한 감동을 전한다.

 

작은 다큐멘터리로 시작한 [땐뽀걸즈]는 드라마로도 제작 중이다. 2018년 12월 방영을 목표로 거제시 전역에서 촬영을 시작했다. 거제시는 거제여상 학생들의 밝고 긍정적인 모습과 거제시의 아름다운 풍경이 잘 어우러져 또 하나의 명품 드라마가 탄생하기를 바라며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했다.

 

[땐뽀걸즈]의 감독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최선을 다하면서도 그 반짝거렸던 시간을 쉽게 잊어버린다고 말하며, 다큐멘터리는 그 시간을 찬란하게 살아간 8명의 학생들과 그들을 안내한 선생님에 대한 이야기라고 말한다. 감독의 말처럼 작은 도시 거제에서 살아가는 8명의 학생들을 기억하며 찬란한 시간을 따라가는 여행을 떠나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