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필과 장르 마니아를 위한 이번주 개봉작”
매주 새로운 영화가 물밀듯이 극장가를 찾아오지만 모든 개봉작을 보기에는 시간도 없고 지갑 사정도 여의치 않다. 영화를 사랑하는 관객에게는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시간과 여유가 있어도 보고 싶은 영화가 근처 극장에서 상영하지 않는 참사를 겪으면서 VOD 출시만 애타게 기다리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런 이들을 위해 준비했다. 씨네필 혹은 특정 장르를 사랑하는 마니아들의 이목을 사로잡을 만한 이번 주 개봉작들을 소개한다.
1. 베일리 어게인 (A Dog’s Purpose): “그래도 강아지는 옳다”

에디터 띵양: 강아지가 네 번의 환생을 통해 삶의 목적을 깨닫는 이야기. [베일리 어게인]은 모든 ‘동물 영화’가 그렇듯 따뜻하고 무해한 영화다. 관객은 다른 생각을 하지 않고 작은 강아지의 모습을 보며 귀여워서 어쩔 줄 몰라하고, 주인과 교감을 나누는 장면에서는 웃고 감동을 느끼고, 마지막 순간에는 이별의 슬픔이 담긴 눈물을 흘리면 된다. 문제는 [베일리 어게인]은 이를 무려 네 번이나 반복한다는 것이다. 다른 주인공과 다른 개(결국 모두 베일리지만)의 이야기지만 똑같은 패턴이다 보니 금세 지루해진다는 단점이 생겨버린다. ‘네 번의 환생을 통해 자신이 가장 행복했던 순간으로 돌아간다’라는 기적으로 영화를 마무리하겠다는 의도는 좋았으나 과정과 결과가 아쉽다. 물론 이야기마다 등장하는 강아지들의 존재감과 귀여움은 상상을 초월하니, 다른 것 다 제쳐두고 “강아지가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완벽한 작품이 될 것이다.
2. 성난황소 (Unstoppable): “마동석 액션의 정수”

에디터 겨울달: 마동석의 피지컬과 이미지를 잘 살린 액션을 꾹꾹 눌러 담았다. 서브 스토리라인이 많지만 결국은 주인공이 납치된 아내를 구하기 위해 뛰어다니는 과정과 적과 마주쳤을 때 펼쳐지는 격투 장면이 핵심이다. 마동석이 누군가를 구하는 마동석 시네마틱 유니버스 영화가 최근 많이 선보였는데, 그중 [성난 황소]는 우직함과 임팩트 있는 액션 디자인 덕에 다른 영화에 비해 조금 더 돋보인다. 마동석에게 마동석다운 액션을 허락하는 격투는 화끈한 한방을 기대한 관객에게는 만족을 줄 것이다. 하지만 그 외의 요소는 특별히 돋보이지 않는다. 김성오의 악역 연기는 인상 깊지만 그 외 캐릭터의 활약은 크지 않고, 감초 조연의 코믹 릴리프는 ‘굳이? 여기서?’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송지효의 분량이 적고 그 쓰임이 다소 도구적인 점도 아쉽다.
3. 택시 5 (Taxi 5): “이제는 시리즈를 끝내야 할 때”

에디터 Amy: 때때로 추억은 추억으로 남겨놓아야 할 때가 더 아름다운 법이다. 11년 만에 시리즈 후속작으로 돌아온 [택시 5]의 슈퍼 택시는 기계와 로봇에 대한 환상이 쏟아지는데, 더 이상 참신하지도 흥미롭지도 않다. 스피드를 즐기는 경찰 실벵 마로는 마르세유로 좌천된 후, 슈퍼카로 범죄를 일삼는 이탈리아 갱을 소탕하면 스왓 팀으로 승진시켜 준다는 제안을 받고 전설의 택시를 찾게 된다. 서사는 가볍고 허술한 데다 전매특허여야 할 카체이싱 장면도 강렬한 인상을 주지 못한다. 지저분한 화장실용 조크와 성차별, 인종차별적 농담이 곳곳에 등장하는 코미디 영화에서 이제는 관객의 웃음을 잡기 어려워 보인다.
4. 영주 (Young-ju): “어른아이가 되어버린 영주의 가슴 아픈 성장 드라마”

에디터 Amy: 사고로 부모님을 잃고 어린 나이에 가장이 된 영주의 가슴 아픈 성장을 그린 영화. 아직 스무 살도 채 되지 않은 영주 곁에는 보호해줄 어른도, 도움을 청할 사람도 없다. 설상가상으로 하나뿐인 남동생 영인이 연거푸 보여주는 엇나간 모습은 안타까움을 넘어서 속 답답한 분노를 자아낸다. 부모를 죽인 상문과 향숙에게서 부모 이상의 애정을 받으며 잠시나마 행복했던 영주는 결국 마주하게 된 현실에서 아픈 성장통을 겪는다. 차갑고 현실적인 상황에서 상문의 메마르고 죄책감 서린 모습과 향숙의 비현실적일 만큼 애정 충만한 어머니의 모습이 대비되면서 영주의 감정이 변화하는 과정을 더욱 선명하게 보여 준다. 김향기의 훌륭한 연기가 돋보인다.
5. 뷰티풀 데이즈 (Beautiful Days): “이나영의 복귀는 반갑지만…”

에디터 Jacinta: 윤재호 감독의 전작 [마담 B]에서 출발한 영화. 과거와 현재를 아우르며 굴곡진 삶을 살아온 탈북 여성의 이야기를 14년 만에 재회한 아들의 시선에서 그려낸다. 이나영의 섬세한 감정 연기는 단편적으로 열거되는 10대부터 30대까지 파란만장한 역경을 감내한 여인의 삶에 잔잔한 여운을 싣는데 힘을 발휘한다. 다만 아쉽게도 한 여성의 모진 삶이 아들의 시선에서 투영되는 탓에 기나긴 세월을 버텨온 원동력이 주춤거린다. 화합의 메시지를 전하려는 의도는 알겠지만, 북한-중국-한국으로 이어지는 여인의 일대기를 당사자가 직접 목소리를 내게 하면 어땠을까 아쉬움이 든다. 탈북 여성의 치열했던 삶이 편향된 시선에 갇히면서 모성애로 손쉽게 마무리되어 씁쓸하다.
6. 28세 미성년 (Suddenly Seventeen): “로맨스를 가장한 성장 드라마”

에디터 Jacinta: [28세 미성년]은 홀대받던 주인공이 우연을 계기로 가치를 인정받고 성공한다는 전형적인 신데렐라 공식을 따른다. 다른 게 있다면, 누군가의 도움을 받지 않고 자신의 힘으로 해낸다는 사실이다. 오직 사랑에만 매달렸던 량시아가 우연히 회춘 초콜릿을 먹고 17세의 자아로 돌아가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처음에는 가치관이 두 자아가 각자 좋아하는 상대방을 두고 신경전을 펼치는 로맨틱 코미디의 흐름을 이어간다면, 점차 현재의 주인공이 과거의 자신을 통해 잃어버린 자아를 깨달으면서 본래의 모습을 되찾기 위해 두 자아가 교감하는 드라마로 전환된다. 영화는 로맨스의 완성보다는 주인공의 내적 성숙에 초점을 맞추는데, 니니의 상큼한 매력이 이를 경쾌하게 받쳐준다. 하지만 판타지 타임슬립을 감안해도 헐거운 서사와 부족한 개연성은 아쉽다.
7. 툴리 (Tully): “어머니의 위대함은 정말…”

에디터 띵양: 세 아이를 키우느라 몸도 마음도 지친 주인공이 야간 보모와의 만남을 통해 삶의 활력을 되찾는 이야기. [툴리]는 육아의 고충, 특히 ‘엄마만이 느낄 수 있는’ 괴로움과 무기력함을 상당히 현실적으로 그린다. 결혼과 육아 때문에 포기해야 했던 꿈과 삶에 대한 그리움, 본인이 낳았지만 때때론 너무나도 힘들게 하는 아이를 바라보는 마를로의 눈빛만 봐도 울컥하는 관객도 분명 있을 것이다. 마를로는 툴리의 도움으로 ‘엄마의 삶’과 ‘본인의 삶’의 균형을 이루기 시작한다.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가 된 둘이지만 툴리는 일을 그만둔다고 선언한다. 그리고 영화는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는데, 진실이 밝혀지는 결말에는 숙연함과 경외감, 그리고 안타까움이 뒤섞인 감정의 소용돌이에 휘말린다. 이 모든 것을 가능케 한 샤를리즈 테론의 엄청난 연기력에 박수를 보낸다.
8. 하나식당: “밥 한 공기에서 오는 감동. 그런데 인스턴트 밥이네?”

에디터 띵양: 우울한 나날을 보내던 세희가 우연히 하나가 운영하는 식당의 일손을 도우며 벌어지는 이야기. [하나식당]은 오키나와의 여유롭고 느릿한 풍경과 두 주인공이 정성스레 만든 음식을 관객에게 보여준다. ‘음식’과 ‘힐링’을 다루는 작품이니만큼 잠시나마 각박한 삶에서 벗어난 기분이 느껴지지만, 아쉽게도 이 기분은 오래가지 않는다. [하나식당]은 필연적으로 [리틀 포레스트]나 [심야식당] 등 같은 장르 작품과 비교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다른 ‘음식 힐링 영화’에 비해 이 작품은 음식을 만드는 과정이나 비중, 그리고 인물들의 사연과 감정선이 제대로 그려내지 못한다. 영화의 깊이가 얕다는 것이 아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잠시라도 삶의 여유를 되찾고 싶다면, 나쁘지 않은 선택이 될 것이다.
9. 인 디 아일 (In the Aisles): “일상과 노동에 대한 따뜻하면서도 쓸쓸한 이야기”

에디터 겨울달: 창고형 대형 마트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일상을 연민의 마음을 담아 그린 영화. 수줍음 많은 크리스티안은 사수 브루노의 자상한 보살핌 아래 조금씩 마트의 일상에 적응해 간다.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서로의 지친 마음을 위로하며 살아간다. 지게차 운전법 특강, 마트 직원들만의 크리스마스 파티 등 힘들고 따분한 일에서도 즐거움과 기쁨을 찾아간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온 순간 이들을 파편처럼 흩어져 각자의 고독과 고통을 혼자서 감당한다. 낡은 아파트에서 외롭게 살아가는 크리스티안은 물론이고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마리온, 도로 위를 달리던 자유를 그리는 브루노가 그렇다. 이들에게서 나뿐 아니라 수많은 직장인의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아파온다. “산 사람은 살아야지.”라는 말이 눈물 날 만큼 가슴을 치고 간다.
10. 새벽의 약속 (Promise at Dawn): “어머니의 사랑과 헌신에 바치는 아들의 사모곡”

에디터 겨울달: 자식을 위대한 인물로 만들기 위해 생을 바친 어머니, 그리고 어머니의 사랑에 저항하고 순응하며 프랑스의 대문호가 된 아들 로맹 가리의 이야기. 모성과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담은 자서전을 영화화했지만 분위기는 항상 뭉클하지도 않고, 어머니의 사랑과 헌신이 언제나 감동적이지도 않다. 웃음이 터지는 순간과 얼굴이 찌푸려지는 장면도 번갈아 나온다. 어머니의 과도한 집착처럼 느껴져 내 이야기가 아닌데도 숨이 막힐 것 같았다. 하지만 프랑스 역사에 족적을 남긴 로맹 가리의 삶이 증명하듯, 영화는 어머니의 사랑이 위대한 인물의 밑거름이 될지, 인생을 망치는 이유가 될지 결정하는 건 사랑을 받은 이가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달려 있음을 보여준다.
11.미스터 앤 미스터 대디 (Ideal Home): “진정한 가족의 의미를 유쾌하게 그린 영화”

에디터 Amy: 게이 부부와 손자가 그리는 유쾌한 가족 영화. 날마다 파티를 벌이며 여러 사람과 실없는 농담에 둘러싸인 삶을 사는 부자 커플 폴과 에라스무스에게, 어느 날 갑자기 에라스무스의 손자가 찾아오면서 벌어지는 사건을 그린다. 폴 러드와 스티브 쿠건의 독보적인 코미디 연기가 유쾌함을 더하고, 철딱서니 없으면서도 권태기까지 드리운 10년지기 커플을 자연스럽게 묘사한다. 아이를 떠맡기 싫어서 툴툴대지만 정작 소매를 걷어붙이고 빌을 챙기는 폴과 철없고 무책임했으나 손자 빌과 아들 보우를 통해 자신의 과오를 깨닫는 에라스무스, 그리고 가정의 안락함을 제대로 느껴보지 못했던 빌이 점점 그들을 받아들이는 모습을 통해 진정한 가족이란 무엇인가를 유쾌하게 보여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