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밍밍

 

 

개봉하는 영화들을 살펴보면 이상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남성 중심의 영화는 무척 많은데, 여성 중심의 영화 혹은 여성이 감독한 영화를 찾기가 어렵다. 그래서 찾아봤다. 영화에 등장하는 여성 캐릭터가 비슷비슷한 역할을 반복하는데 질렸거나 현실과 동떨어진 환상에 가까운 여성 캐릭터가 등장하는 영화를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은 사람들을 위해서. 마냥 착하지도, 상냥하지도, 예쁘고 귀엽지도 않은 여성 캐릭터들이 나오는 영화를 준비했다. 오히려 그래서 더욱 매력적이며, 주도적인 여성 캐릭터가 등장하는 영화 5편을 소개한다.

 

 

 

 

오만과 편견 – 엘리자베스 베넷

 

이미지: UPI코리아

 

영국의 소설가 제인 오스틴의 장편 소설 ‘오만과 편견’을 영화화했다. 사실 너무 유명한 작품이기에 이미 영화나 드라마로 빈번하게 만들어졌다. ‘오만과 편견’에는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사랑받은 캐릭터는 단연코 베넷 가의 둘째 딸 엘리자베스다. 결혼을 하는데 신분과 재산이 가장 중요했던 당시의 유럽 사회에서 엘리자베스는 마냥 순종적이지 않고,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 행동하며 매력을 선사한다. 더군다나 똑똑하고, 위트 넘치고, 쾌활하기까지 하다. 2005년 워킹 타이틀이 제작한 [오만과 편견]에서는 키이라 나이틀리가 엘리자베스 역을 맡아 이 당찬 여성을 흡인력 있는 연기로 보여준다. 여성을 향한 차별과 사회적 구속이 훨씬 심했던 18세기 유럽,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겠다고 주장하며 자신의 목소리를 온전하게 낼 줄 알았던 엘리자베스는 21세기에 만나도 여전히 매력적이다.

 

 

 

쓰리빌보드 – 밀드레드 헤이스

 

이미지: 이십세기폭스코리아㈜

 

딸의 살인 사건에 대한 수사가 지지부진하자 경찰을 비판하는 도발적인 문구의 거대한 세 개의 광고판을 설치하는 엄마. 바로 영화 [쓰리 빌보드]의 주인공, 밀드레드 헤이스다. “Raped While Dying” (죽어가는 동안 강간을 당했는데), “And Still No Arrests?” (아직도 범인을 못 잡았네요?), “How Come, Chief Willoughby?” (윌러비 서장,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요?). 이렇듯 밀드레드가 마을에서 명망 높았던 윌러비 서장을 비난하는 광고판을 게시하자 주변 이웃들도 등을 돌리고 광고판을 내릴 것을 요구한다. 그렇지만 밀드레드는 포기하지 않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범인을 잡기 위한 싸움을 이어 나간다. 각본 및 연출을 담당했던 감독 ‘마틴 맥도나’는 밀드레드가 서부극의 존 웨인이나 존 포드 같은 비정하고 거친 캐릭터들의 영향을 받았다고 밝혔다. 그 결과 지금껏 보지 못했던 분노와 욕설, 폭력을 표출하는 강인한 여성 주인공이 등장하게 되었다. 밀드레드 헤이스를 연기한 프랜시스 맥도먼드는 이 영화로 아카데미 여우 주연상을 수상했는데, 각 부문에 오른 여성 후보자들이 함께 일어나 준다면 영광일 것이라는 수상 소감을 밝혀 시상식의 모든 여성들이 기립하는 뭉클한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다.

 

 

 

에린 브로코비치 – 에린 브로코비치

 

이미지: 컬럼비아 픽처스

 

2번의 이혼 경력과 통장 잔고에는 16달러밖에 남지 않았던 에린이 거대 기업 공장에서 중금속 크롬이 유출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소송을 벌이는 과정을 그려낸 영화. 실화 바탕의 영화 [에린 브로코비치]에서 단연 돋보이는 것은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줄리아 로버츠가 연기한 ‘에린’이다. 변호사도 아니었고 생계를 꾸려 나가는 것조차도 어려웠던 에린이 발로 뛰어다니며 증거를 모은 끝에 절대 불가능해 보였던 대기업 PG&E로부터 승소하고 막대한 보상금을 받아내는 줄거리는 다소 뻔하다고 느껴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매사에 열정적이고 당찬 데다 통쾌한 말도 서슴없이 날리는 주인공 ‘에린’의 매력에 빠져 영화를 보면 두 시간이 훅 지나갈 게 분명하다.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은 “이 영화는 법적인 소송에 관한 영화가 아니다. 남들 눈에 어떻게 보이든 있는 그대로의 자기 자신을 드러내는 한 여자의 이야기다”라고 밝혔을 정도로,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가장 아름다운 에린이 돋보였던 영화다. 줄리아 로버츠는 이 영화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로맨틱 코미디에서만 자신의 진가가 빛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입증했다.

 

 

 

레이디 버드 – 크리스틴 ‘레이디 버드’ 맥퍼슨

 

이미지: UPI코리아

 

부모님이 지어 준 이름 대신, 자신이 직접 선택한 ‘레이디 버드’라는 이름으로 불리기 바라며, 특별한 존재가 되고 싶은 17살. 영화 [레이디 버드]는 가족과 싸우고, 친구를 질투하고, 미래를 꿈꾸고, 사랑 앞에 설레고 좌절하는 10대의 성장기를 유쾌하게 그려낸 영화다. 그중에서도 가장 돋보이는 것은 서로 너무나 사랑하면서도 사사건건 부딪치는 모녀 관계다. 많은 10대 성장 영화가 잘생긴 학급 남학생과의 서툴지만 설레는 연애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 [레이디 버드]가 초점을 맞춘 사랑 이야기는 엄마와 딸의 관계라는 점에서 보다 특별하게 다가온다. 또한 그레타 거윅의 첫 장편 연출작으로, 여성 감독이 자전적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든 성장 영화인 만큼 청소년기를 보낸 여성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장면이 곳곳에 가득하다. 그레타 거윅 감독이 ‘시얼샤 로넌의 연기를 보고 나서야 레이디 버드를 알게 된 것 같다’고 인터뷰했을 정도로 현실적인 ‘레이디 버드’라는 캐릭터를 더욱 생생하게 살려낸 ‘시얼샤 로넌’의 연기도 돋보인다.

 

 

 

미스 슬로운 – 엘리자베스 슬로운

 

이미지: ㈜메인타이틀 픽쳐스

 

승률 100% 최고의 로비스트 슬로운이, 자신의 신념에 따라 치열한 정치 로비 싸움을 펼쳐나가는 과정을 담은 영화. 복잡한 정치 세계를 다룬 할리우드 영화나 드라마는 이전에도 많았지만, 그러한 작품에서 여성은 조력자나 스캔들의 희생양 역할에 그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슬로운은 유능하다. 남성이 대다수인 로비스트 세계에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강한 승부욕을 발휘하며 싸움을 이끌어간다. 많은 전문 용어가 속사포처럼 쏟아지고 총기 규제라는 민감한 사안을 다루고 있지만, 지루할 틈 없이 몰입할 수 있는 이유는 극중 슬로운 역을 맡은 제시카 차스테인의 압도적인 연기력 덕분이다. 제시카 차스테인은 냉철하면서 동시에 열정적인 로비스트 역을 완벽하게 소화하기 위해 실제 11명의 로비스트를 만나는 등의 노력을 기울였다고 한다. 사실 흥행 성적이 썩 좋았던 영화는 아니었으나 제시카 차스테인이 골든 글로브 여우주연상에 노미네이트되는 등 압도적인 연기력을 인정받으며 여성 정치 스릴러도 충분히 재미있을 수 있다는 점을 입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