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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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킹데드(The Walking Dead)]의 일등공신 릭 그라임스가 시즌 9 – 5화를 끝으로 시청자들과 이별을 고했다. 그동안 여러 정든 캐릭터와 원치 않는 이별을 경험했지만, 생존자 그룹뿐 아니라 시청률을 견인했던 중심 캐릭터였기에 릭의 하차는 단순한 아쉬움을 넘어선다. 릭이 떠난 <워킹데드>는 시간대를 훌쩍 건너뛰어 야무지게 성장한 주디스의 모습을 보여주며 새로운 이야기를 예고했지만, 하락세를 타고 있는 드라마를 끌어올릴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아울러 제작진은 열린 결말로 하차한 릭을 주인공으로 스핀오프 영화를 기획 중이라고 전했는데, 제작진은 어떨지 몰라도 드라마를 애정 어린 시선으로 지켜봤던 시청자들은 꽤나 복잡한 심경일 것이다. 이제 드라마에서 볼 수 없는 릭의 추억을 곱씹으며, 그의 여정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던 에피소드를 돌아본다.

 

 

 

시즌 1 – 1: Days Gone By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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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 아포칼립스의 포문을 연 파일럿 에피소드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총상으로 부상을 입은 릭이 깨어난 세상은 혼란스러움 그 자체였다. 아무런 영문을 모르는 릭이 버려진 병원 복도와 텅 빈 거리를 지나치며 마주친 스산한 풍경은 무력한 두려움을 안겼다. 드라마는 절망의 순간을 피해 갔던 주인공에게 뒤늦게 참혹하게 변해버린 세상을 보여주고, 뜻밖의 조력자 모건을 통해 생존 방법을 알려주며, 앞으로 이 세계에 어떤 일이 닥칠지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무서울 정도로 고요한 도로를 지나면 좀비로 가득한 애틀랜타 도심이 펼쳐져 앞으로 다가올 험난한 여정을 예고했다.

 

 

 

 

시즌 1 – 2: Gu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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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에피소드가 좀비 아포칼립스를 실감하게 했다면, 두 번째 에피소드는 이 절망적인 세상을 헤쳐나가야 할 릭의 리더십을 보여줬다. 릭은 글렌의 도움으로 위기의 순간을 벗어나 생존자 그룹과 만나게 되는데, 바로 여기서 자신 때문에 궁지에 몰린 사람들을 위해 기지를 발휘하며 향후 활약을 암시했다. 그의 적응력은 얼마나 빠른지 좀비로 둘러싼 건물을 빠져나가기 위해 역겨운 수고를 감수하는 등 매 순간 빠른 판단으로 사람들을 이끌어 결국 탈출에 성공한다.

 

 

 

 

시즌 2 – 7: Pretty Much Dead Alrea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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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셸의 농장에 머물던 생존자 그룹은 글렌을 통해 뜻밖의 비밀을 알게 된다. 바로 농장 헛간에 죽은 자들이 모여 있다는 사실이다. 허셸의 가족은 릭과 생존자 그룹과 다르게 죽은 자를 바라봤는데, 이는 데일과 셰인의 갈등이 더해지면서 마침내 폭발하고 만다. 셰인의 돌발 행동으로 헛간에 갇혔던 죽은 자들이 밖으로 나오면서 아수라장이 된 그곳에 마지막으로 캐럴이 그토록 찾고자 했던 딸 소피아가 모습을 드러낸다. 모두들 숨 죽인 채 멈춘 그 순간, 릭이 어려운 결정을 한다. 방아쇠를 당긴 것이다.

 

 

 

시즌 2-12: Better Ang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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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인은 변해버린 세상에서 릭의 자리를 대신했다. 하지만 릭이 돌아오면서 모든 게 제자리로 돌아갔다. 로리는 셰인을 밀쳐냈고, 그룹 내에서도 입지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릭과 셰인은 표면적으로는 친구 관계를 유지했지만, 갈등의 씨앗을 완전히 제거하지 못했다. 특히 로리의 임신은 갈수록 변해가는 셰인을 결정적으로 흔들었다. 릭은 한때는 든든한 파트너이자 믿음직한 친구였지만, 갈수록 사람들을 위협하고 이제 자신마저 노리는 셰인을 직접 처리해야 하는 고통스러운 순간에 당도한다. 그날 밤 릭만 혼란스러운 게 아니었다. 릭과 셰인을 지켜보던 칼이 본능적으로 냉혹한 생존 법칙을 이행한 것이다.

 

 

 

시즌 3 – 1: Se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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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자 그룹은 농장을 떠나 수개월째 힘겨운 생활을 이어가던 중 버려진 교도소를 발견한다. 워커 무리가 점령하고 있지만, 정착지로 삼기에 안성맞춤이다. 게다가 로리의 출산일도 다가온다. 그들은 이내 교도소를 터전으로 삼아 내부에 정착하고 물품을 찾기 위해 내부를 탐색하던 중 워커 무리와 마주치기 되는데, 이때 탈출 과정에서 허셸이 다리를 물리고 만다. 모두들 멘붕에 빠진 긴박한 상황에서 릭이 또다시 재빠르게 움직인다. 물린 다리를 절단하기로 한 것이다. 절체절명의 순간마다 빛나는 릭의 판단력이 다시 한번 진가를 발휘한다.

 

 

 

시즌 3 – 4: Killer With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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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수상태에서 깨어난 이후 두 번째로 정착한 교도소에서 릭은 절망과 환희를 동시에 경험한다. 로리가 위험천만한 상황에서 어렵게 주디스를 출산하고 죽은 것이다. 릭은 주디스를 안고 걸어 나오는 매기를 보고 자신에게 닥친 비극을 깨닫는데, 이때 앤드류 링컨의 비통에 빠진 연기는 너무나 사실적이어서 보는 이들 모두 슬픔에 젖어들게 한다. [워킹데드]가 단순한 좀비 드라마가 아닌 인간의 내면을 파헤치며 희로애락을 얼마나 잘 담아내고 있는지 방증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시즌 4-16: 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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릭의 잔혹한 본성이 폭발했다. 가버너가 교도소를 쑥대밭으로 만든 바람에 뿔뿔이 흩어졌던 사람들은 시즌 4 후반 들어 다시 조우하게 되는데, 종착역을 향하던 릭과 칼, 미숀은 한밤중 대릴이 속해 있던 패거리에게 습격을 당한다. 패거리 중 한 명이 칼을 겁탈하려 하자 릭은 걷잡을 수 없는 분노에 사로잡히면서 그 어느 때보다 야만적인 행동을 한다. 릭을 저지하려는 조의 목을 물어뜯고, 칼을 폭행하려던 남자까지 잔인하게 죽인 것이다. 자신의 가족과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릭이 어디까지 행동할 수 있는지 과감하게 보여주며 충격을 안겼다.

 

 

 

시즌 5 – 3: Four Walls and a Roo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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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 4 마지막 에피소드에서 생존을 위해 동물적인 본능을 아낌없이 보여줬던 릭은 가레스가 이끄는 식인 집단에 한 치의 자비도 베풀지 않는다. 시즌 5 세 번째 에피소드는 야만성의 절정을 찍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릭은 밥의 다리를 해치운 집단을 벌하고자 위장 전술을 펼치는데, 교회 안으로 유인해 거의 도살에 가까운 복수를 펼친다. 사샤가 밥의 복수를 위해 릭의 광기 어린 복수에 동참한다.

 

 

 

시즌 5 – 15: 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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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정이 거듭될수록 릭은 생존 본능에 충실해지며 이성적인 판단 능력을 잃어간다. 외부와 단절된 환경에서 체제를 유지하는 알렉산드리아는 얼핏 인간성이 실현되는 곳 같지만, 속내는 그렇지 않다. 릭은 가정폭력을 당하는 제시를 지켜주고자 디아나에게 남편 피트를 추방할 것을 주장하지만, 그의 요구는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릭은 제시를 찾아가 설득하던 중 피트와 마주치고 이내 두 사람은 육탄전을 벌이게 된다. 릭의 감정은 극한으로 치닫으며 상황을 수습하러 온 디아나에게 총구를 겨누고 만다. 세상의 변화를 수용하라는 릭이 옳은 것일까. 그의 극단적인 행동은 미숀의 의해 제지당한다.

 

 

 

시즌 6 – 10: The Next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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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킹데드] 시청자들을 깜짝 놀라게 한 에피소드. 로리의 죽음 이후 알렉산드리아에서 제시와 썸을 탔던 릭이 새로운 사랑을 찾았다. 바로 칼과 끈끈한 유대관계를 나누고 있고, 릭 못지않게 생존 본능과 전투력이 강한 미숀이다. 릭이 대릴과 나선 외출에서 지저스를 생포하고 돌아온 날, 소파에 나란히 앉아 소소한 대화를 주고받으며 하루를 마무리하던 두 사람 사이에 묘한 기류가 형성된다. 당시에는 어색하고 당황스럽긴 했지만 팬들 사이에서 ‘Richonne’이란 애칭을 얻었다.

 

 

 

시즌 7-16: The First Day of the Rest of Your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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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렌과 아브라함의 죽음으로 포문을 열었던 시즌 7은 모두에게 충격을 안겼고, 네간과 구원자 앞에서 무릎을 꿇었던 굴욕이 시즌 내내 답답하게 자리했다. 깊은 상실감에 빠졌던 릭은 새로운 공동체와 함께 반격을 모색하며 무력했던 모습에서 점차 벗어나는데, 마지막 에피소드에서 달라진 모습을 확연하게 드러낸다. 비록 네간을 제거하려던 계획은 자디스의 배신으로 좌절되고 릭은 칼과 함께 사로잡히지만, 자신을 위협하는 네간에게 절대 밀리지 않는다. 오히려 반드시 복수를 하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내비친다. 다시 본래의 강인한 생존 본능으로 돌아온 릭의 변화에 화답이라도 하는 걸까. 위기의 순간에서 킹덤과 힐탑 사람들이 나타나 시원하게 일격을 가한다.

 

 

 

시즌 8 – 9: Hon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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릭은 로리에 이어 다시 가족을 잃는다. 사람들 몰래 외부인 시디크를 도왔던 칼이 허망하게도 좀비에 물렸기 때문이다. 죽어가는 칼은 예전의 모습을 잃고 난폭한 본능을 위태롭게 오가는 릭에게 마지막 작별 인사와 당부를 건네는데, 칼의 죽음은 오직 생존과 복수를 위해 달려왔던 릭의 심경에 변화를 일으킨다. 드라마에서 칼을 하차시킨 제작진의 처사는 괘씸하지만, 죽음을 앞두고 모처럼 애끓는 부정을 나누는 릭과 칼의 모습은 눈물을 글썽이게 한다.

 

 

 

시즌 8 – 16: Wra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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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그토록 원했던 복수가 실현된다. 알렉산드리아, 킹덤, 힐탑, 오션사이드 사람들은 유진의 배신이라는 미처 예상 못했던 행운을 만나 네간과 구원자 무리에 통쾌한 반격을 가한다. 하지만 릭은 오랜 시간을 함께 했던 사람들의 바람을 들어주지 못한다. 네간과 혈전을 벌이던 릭은 그의 목숨을 제거할 기회를 얻지만, 결정적인 순간 분노보다 이성을 택한다. 칼의 죽음 이후 잃어버린 인간성을 회복한 릭은 다시 새로운 세상이 올 수 있을 거라 믿고, 자신이 그렇게 만들 거라 다짐한다. 안타깝게도 대다수의 사람들은 릭의 선택에 동의하지 못한다. 특히 글렌의 처절한 죽음을 지켜본 매기는 가장 크게 분노하며 갈등을 예고한다.

 

결국 시즌 9에서 공동체의 화합을 도모했던 릭은 떠난다. 좀비 떼가 몰려오고 내분으로 혼돈에 빠진 상황에서 대의를 위해 희생을 택한다. 물론 드라마는 앞으로 제작된 영화를 염두해 그의 죽음으로 매듭짓지 않는다. 우리는 영화로 돌아올 릭을 기다려야 할까. 일단은 드라마에서 그의 모습을 볼 수 없다는 게 허전하고 아쉬운 기분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