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예하

 

 

우리는 모든 걸 알고 있다. 촬영장을 나서는 배우의 파파라치 사진에서 기밀로 유지되던 블록버스터 영화의 주인공을 알아내고, 대형 프랜차이즈에서 갑자기 죽어버린 주인공이 온갖 기가 막힌 변명을 대며 다시 살아날 것을 확신한다. 제작사의 공식 발표에 따라 혹은 한 유니버스의 기존 서사에 따라 몇 년 뒤의 내가 스크린에서 누구의 전투 장면을 보고 있을지도 알고 있다. 히어로, 시리즈, 프랜차이즈의 시대에 우리는 더 이상 천지가 개벽할 충격적인 서사를 기대하며 극장에 가지 않는다. 다만 마치 게임을 하듯, 미리 알고 있는 정보를 패로 쥐고 실제 영화가 어떤 플레이를 할지 기꺼운 마음으로 노려본다. 앞으로 다가올 5편의 영화와 맞붙을 포커 테이블에서 반드시 던져야 할 다섯 개의 질문을 모았다.

 

 

 

 

윈터 솔저 프리퀄을 만들 건 아니지? – 블랙 위도우

 

이미지: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모두가 몇 년이고 기다려온 바로 그 마블 히어로, [블랙 위도우]가 드디어 2020년 개봉을 목표로 작업에 착수했다. 최근 티저를 공개하고 내년 초 개봉을 앞둔 [캡틴 마블]에 이어 MCU 여성 히어로 영화의 포문을 여는 소식이니 반갑기 그지없다.

다만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건 이 영화가 블랙 위도우가 아닌 윈터 솔저의 프리퀄이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다. 코믹스에서 버키와 나타샤는 오랜 연인으로 등장하며 둘의 관계는 전체적인 서사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차지했다. 게다가 [윈터 솔저]에서 드디어 이들의 관계를 시사하는 설정들을 미미하게 숨겨놓으며 시네마틱 유니버스에도 틈입하기 시작했기에, 외려 버키 반즈가 본격적으로 영화를 다 잡아먹는 건 아닐까 싶은 것이다.

물론 이 모든 게 다 노파심이길 바란다. 나타샤 로마노프가 그렇게 호락호락한 여자는 아니니까.

 

 

호러 히어로물의 도래일까? – 아쿠아맨

 

이미지: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내달 개봉할 실사판 [아쿠아맨]은 승승장구하는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의 작품에 비해 고전을 거듭하던 DC 확장 유니버스(DCEU)를 되살릴 구원투수로 주목받고 있다. 예고편 공개가 거듭될수록 호평이 이어지는 이 영화의 메가폰을 잡은 것은 제임스 완. 그렇다. [쏘우]로 전 세계의 공포영화 판도를 바꾸어 놓은 바로 그 감독 얘기다.

[아쿠아맨]은 블록버스터는 물론이고 호러가 아닌 제임스 완의 첫 번째 영화다.

다소 파격적인 선택으로 느껴지지만, 태생적으로 어두운 세계인 DCEU에서 어두운 심연의 호러 히어로물의 도래를 볼지도 모르겠다. 예고편에 문득 등장하는 러브크래프트의 소설들처럼, 제임스 완이 두족류나 촉수에 대한 서구권의 근원적인 공포를 건드릴 가장 좋은 기회를 잡은 것만은 틀림없다. 프랜차이즈를 되살릴 대중성과 자신의 특기 사이에서 가장 멋진 곡예를 펼쳤기를 바란다.

 

 

근데 그 사람 죽은 거 아니었어? – ‘워킹 데드’ 극장판

 

이미지: AMC

 

참 오랜 세월을 왔다. 릭 그라임스가 텅 빈 병원에서 눈을 떠 좀비들을 피해 다니다 죽(었다고 추정)을 때까지. 올해로 아홉 번째 시즌, 전설적인 좀비 시리즈 [워킹 데드]의 팬층은 많이 줄었고 그마저도 ‘의리로 본다’는 사람들이 많지만 그렇다고 해서 인간 군상을 치열하게 그려낸 이 쇼의 위대함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하지만 갑자기 2018년에 극장판을 만들겠다고 나선 건 확실히 좀 이상한 일이다. 게다가 이 영화와 시리즈를 엮어 ‘워킹 데드 유니버스’를 만들겠다고 선언하니 “어, 뭐라고?” 소리가 첫 번째 질문인 게 당연하다. 거기에 더해 제작사 AMC는 이 영화의 주인공이 바로 앤드류 링컨, 즉 릭 그라임스가 될 것임을 매우 자랑스럽게 공표했다. 그런데 그 사람 죽은 거 아니었어요?

요즘 프랜차이즈에서 사람을 두 번 죽였다 세 번 살렸다 하는 게 아무리 예삿일이긴 해도, 그리고 숨이 끊어졌는지는 늘 모른다고 해도, 그럴 때마다 꼭 켕기고 뒤끝이 시원찮은 게 사실이다. 이제 남은 건 이 극장판 영화가 매우 훌륭하길 간절히 비는 것뿐인데, 글쎄, 두고 볼 일이다.

 

 

충무로 여성 원톱의 바람을 이어갈 수 있을까? – 언니

 

이미지: TCO(주)더콘텐츠온, ㈜제이앤씨미디어그룹

 

2018년은 한국 여배우들에게 잊을 수 없는 한 해였다. [소공녀]나 [허스토리]를 포함해 수많은 시도와 쟁취와 발언과 성취가 교차했다. 그 가운데서도 여성 감독, 여우 주연 원탑의 [미쓰백]이 2018년 청룡영화상을 받으며 이 흐름이 실재함을 굳건히 못 박았다.

얼마 남지 않은 이 해, 또 하나의 여우 주연 원탑 영화가 개봉을 앞두고 있다. 임경태 감독의 [언니]는 여동생을 찾기 위해 필사의 사투를 벌이는 전직 경호원 언니에 대한 영화다. [테이큰]과 [아저씨]를 포함하여 언뜻 떠오르는 이름들이 적지 않고 여러모로 조금 의심스러운 면이 많지만, 이 조금 확신 없는 영화를 기대하게 만드는 건 주연 이시영의 액션이다. 잘 알려진 대로 실제 복싱 선수 생활을 한 배우가 짧은 예고편에서 보여주는 액션은 충격적이리만치 정확하고, 전문적이고, 통쾌하다. ‘좋은 영화’일지야 누가 알겠냐마는, 맨손으로 악당들을 때려눕히는 여자를 보기 위해 극장을 찾을 의향은 기꺼이 있다.

 

 

DCEU 밖의 DC 빌런? – 조커

 

이미지: Warner Bros.

 

사실 DC와 관련되어 말할 것 같으면, 모두가 가장 기다리는 단 하나의 예정작은 따로 있다. 바로 [조커]. [다크나이트]에서 전 세계인의 뇌리에 상처를 남긴 바로 그 빌런의 단독 영화다. 그 조커도 맞고, 브루스 웨인도 나오고, 제작도 분명 DC에서 하지만 독특하게도 이 영화는 기존의 실사 [배트맨] 시리즈와도, 심지어 DCEU와도 별개인 진짜 ‘단독’ 영화다.

호아킨 피닉스와 로버트 드 니로를 아우르는 캐스트의 어두운 본편 자체도 더없이 궁금하지만, 좀 더 짓궂은 궁금증은 이 영화가 야기할 세계관의 혼란이다. 이미 ‘혹성탈출’ 시리즈를 만든 맷 리브스가 차기 배트맨 영화의 각본을 스튜디오에 제출한 가운데 DCEU에서 자체적인 조커 단독 영화를 만들겠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으니, 이 족보가 돌아가는 모습을 기대해도 좋겠다.

 

 

질문은 없다. 영원한 포커페이스 -어벤져스 4

 

이미지: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만들어지기도 전에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영화, 세계인이 어떻게든 훔쳐보려고 갖은 애를 쓰는 영화, [어벤져스 4]는 지금 지구에서 가장 핫한 영화다. 관객들이 갖은 애를 쓰는 만큼 마블의 대응도 기상천외하다. 각종 토크쇼에 나가 어떠한 힌트도 흘릴 수 없도록 배우들을 ‘훈련’시키는 건 유명한 일이고 한 발 더 나가 말도 안 되는 스포를 흘리게 한다는 얘기도 있다. 본편에 들어가지 않을 촬영을 돌려 어떠한 관련도 없는 현장 사진이 유출되기도 한다. 그 나름의 즐거운 농담 같기도 하고 사실 어떨 땐 좀 미친 것 같기도 한 플레이다. 어쨌든 그 덕에 우리가 [어벤져스 4]에 대해 알고 있는 건 거의 없다. MCU의 전체적인 개봉 예정 스케줄과 아주 드문 공식 캐스트를 바탕으로 누가 살아 있을지, 혹은 누가 살아날 지를 간신히 내다볼 뿐이다. 이 영화 앞에 내놓을 질문이라면 수도 없겠지만, 솔직하게 말하자면 내게는 단 하나의 질문이 있다. 여러분은 대체 이 영화에서 무엇을 기대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