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Tomato92

 

 

무엇이든 단 한차례의 시도로 100%를 이끌어내기는 불가능하다. 영화 제작도 예외는 아니다. 원석을 꾸준히 다듬어야 보석이 나오는 것처럼 작품의 완성을 위해서는 거듭된 수정 과정이 필요하다. 영화의 좁은 빈틈을 메우려는 재촬영은 어느덧 흔한 일이 됐다. 하지만 기사로 나올 정도로 대규모 수정 작업에 돌입하면 관객들은 무언가 큰 문제가 있음을 직감하고, 이 슬픈 예감은 대부분 안타까운 결과로 이어진다. 반면 장면을 삭제하고 덧붙이는 과정이 좋은 결과로 이어진 작품도 더러 있다. 재촬영 결정이 어떤 영화에서 구세주가 되었는지 살펴본다.

 

 

 

1. 죠스

 

이미지: Universal Pictures

 

스티븐 스필버그는 [죠스]를 찍으며 크고 작은 문제를 겪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난항은 기계 상어를 최대한 현실적으로 만드는 작업이었다. 영화의 초반 각본 작업에는 이 괴물 상어의 출연 횟수가 훨씬 많았다. 하지만 제아무리 유려한 연출력을 가진 명장이라 한들 기술적 한계를 넘어 그럴듯한 장면을 많이 뽑기는 힘들었다. 완벽하지 않은 장면을 그대로 내보낼 경우 영화 전체가 우습게 보일 위험도 있었다. 1차 편집본 완성 후 다 같이 모여 영화를 감상한 스필버그와 제작진은 상어를 최대한 적게 노출하는 대신 서스펜스를 극대화하여 긴장감을 유도하는 방식으로 바꾸기로 했다. 이후 테스트 스크리닝에서 관객이 놀라는 지점을 정확히 파악하여 그들의 비명 횟수를 늘리겠다는 일념 하에 재촬영을 시작했다.

 

그 당시 할리우드에서는 남의 돈에 무신경한 감독이 예산을 개인적인 유흥에 쓰는 일이 빈번했기 때문에 제작사는 하릴없이 늘어나는 촬영 예산과 기한 때문에 불안해했다. 지금이야 명감독이지만 당시에는 이렇다 할 경력이 없었기에 오해는 점점 커졌고, 결국 제작사 중역들은 영화를 중단시킬 목적으로 스필버그와 미팅을 주선했다. 하지만 그와 직접 대면한 제작진은 감독의 열정과 예산을 허투루 쓰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재촬영에 필요한 모든 자원을 지원하기로 했다. 그 후 스필버그의 완벽주의적인 성격으로 제작진과 잡음은 있었을지언정 무사히 완성될 수 있었다. 그렇게 탄생한 [죠스]는 괴수 영화의 클리셰를 벗어난 명작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엄청난 흥행 성적을 거두었고 ‘여름 블록버스터’의 원조가 되었다.

 

 

 

2. 빽 투 더 퓨처

 

이미지: Universal Pictures

 

오락영화의 거장 로버트 저메키스의 위상을 널리 알린 [빽 투 더 퓨처]는 재촬영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면 아마 지금만큼의 문화적 파급력을 미치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도 그럴게 재촬영 과정에서 영화의 주인공이 교체됐기 때문이다. 감독 저메키스와 제작자 밥 게일은 작품의 초기 제작 과정 당시 NBC 시트콤 [패밀리 타이즈]를 촬영 중이던 마이클 J. 폭스를 주인공으로 점찍었다. 하지만 폭스의 스케줄 문제로 결국 촬영에 임할 수 없게 되면서 제작진은 [마스크]에 출연했던 에릭 스톨츠를 주연으로 캐스팅했다.

 

애초에 폭스를 주연으로 염두에 두고 있었던 제작진에게 스톨츠가 눈에 찰 리 없었다. 연기력은 출중했지만 결정적으로 ‘마티 맥플라이’라는 캐릭터가 반드시 갖춰야 할 코믹함의 부재로 역할에서 잘렸다. 폭스는 여전히 시트콤을 촬영하고 있었지만, 제작진의 간절한 설득 끝에 낮에는 시트콤, 밤에는 영화를 찍는다는 조건으로 스케줄 문제를 해결했고, 영화의 낮 장면은 주말에 찍었다. 주연이 바뀐 만큼 모든 걸 갈아엎어야 했기 때문에 재촬영 과정에서 초기 예산의 4분의 1 수준인 300만 달러가 추가로 집행됐지만, 개봉 후 전 세계 성적이 4억 달러에 가까웠던 걸 감안하면 그 이상의 값어치를 톡톡히 한 셈이다.

 

 

 

3. 슈퍼맨 2

 

이미지: Warner Bros.

 

크립톤의 마지막 아들에 관한 [슈퍼맨]은 대중과 비평가들의 사랑을 받았고, 리처드 레스터가 만든 속편 또한 훌륭한 영화로 회자되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까지 좋은 평가를 받기 전, 두 영화가 만들어지는 과정은 다소 험난했다. 원래 [슈퍼맨] 1, 2편은 제작을 동시에 진행했으며, 1편의 마지막에서 슈퍼맨이 맞는 위기는 2편에서 해결되는 식으로 전개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예산에 영화가 이대로 망하지 않을까 겁을 먹은 제작사 중역들은 회의를 열어 2편 제작은 취소하고 1편에만 집중하기로 결정했다. 이런 이유로 미리 찍은 [슈퍼맨 2]의 결말은 전개상 허점을 메우기 위해 1편에 추가됐다.

 

1편 개봉 후 영화가 엄청난 성공을 거두자 제작사는 속편 제작을 결정했다. 하지만 감독 리처드 도너가 시리즈에서 하차한 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주연 진 해크먼과 말론 브란도가 추가 촬영을 거부하자 비상이 걸렸다. 이후 [비틀스: 하드 데이즈 나이트]의 리처드 레스터 감독이 영화를 마무리하기 위해 급히 프로젝트에 합류했고, 해크먼의 대역을 쓰거나 브란도의 대사를 다른 배우에게 주는 등의 방법을 동원해서 전개상의 빈 틈을 메웠다. 또한 작품의 감독 크레디트를 합법적으로 바꾸기 위해 제작사는 막대한 돈을 투자해 도너가 절반 정도 찍은 촬영분을 장면 하나 바꾸지 않고 똑같이 촬영하기도 했다. 이처럼 복잡한 내부 잡음에도 영화의 흥행을 성공시킨 레스터는 그 공을 인정받아 3편의 감독을 맡았다. 2편 개봉 후 거의 26년이 지난 2006년, [슈퍼맨] 1, 2편의 편집권을 되찾은 도너는 본인의 개성을 살린 [슈퍼맨 2: 리처드 도너 편집판]을 따로 만들었고, 이는 DVD와 블루레이 등으로 출시됐다.

 

 

 

4. 앵커맨

 

이미지: DreamWorks Pictures

 

[앵커맨]은 [빅쇼트]로 아카데미 각색상을 수상한 아담 맥케이의 장편 연출 데뷔작이다. 당시 그와 SNL에서 함께 일하며 절친한 사이가 된 윌 페럴이 각본 및 주연을 맡았다. 영화는 페럴뿐 아니라 스티브 카렐, 폴 러드, 세스 로겐 등 코미디 영역에서 날고 기는 배우들이 대거 등장하여 개봉 전부터 많은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영화의 초기 완성본을 테스트 스크리닝 했을 당시 관객들의 반응은 냉담하기 그지없었다. 이에 당황한 제작사 측은 맥케이와 제작자 주드 아패토우에게 무엇이 잘못됐는지 파악한 후 재촬영할 것을 요구했다.

 

문제점은 여러 차례 스크리닝을 진행하면서 분명해졌다. 극중 마야 루돌프, 에이미 포엘러의 캐릭터가 포함된 급진적 히피 집단이 여주인공 베로니카를 납치하는 서브플롯이 있었는데, 관객들은 모두 약속이라도 한 듯 이 장면에서 웃음기를 싹 거두었다. 맥케이는 이 부분이 영화 전체의 흐름을 깨고 조연 캐릭터들의 매력을 퇴색시킨다는 사실을 깨닫고서 해당 서브플롯을 완전히 삭제했다. 재촬영 당시 SNL 배우들의 전문이라 할 수 있는 애드리브를 적극 권장하여 분량을 채우기도 했다. 그 결과 스크리닝 반응은 눈에 띄게 달라졌고, 개봉 후 북미에서 흥행에 성공한 동시에 ‘B급 병맛 영화’ 반열에 당당히 올랐다.

 

 

 

5. 월드워Z

 

이미지: 롯데엔터테인먼트

 

끔찍한 수준의 초기 제작 과정으로 각본 수정을 수차례 거쳤음에도 거의 무너져 가던 작품을 재촬영을 통해 극적으로 회복한 사례다. 이미 2012년 상반기에 모든 촬영을 끝냈으나 마크 포스터 감독의 초기 완성본을 본 파라마운트의 임원 마크 에반스는 앞뒤 전개가 자연스럽지 않아 결말이 붕 뜨는 느낌을 받고 후반부를 집중적으로 재촬영하기로 결정했다. 재촬영 스케줄은 총 7주로 잡혔고, 기존 촬영 예정지였던 러시아에서 부다페스트로 장소를 옮겼다. 이후 각본 작업을 위해 [로스트]의 데이몬 린들로프를 고용했지만 당시 [프로메테우스]와 [스타트렉 다크니스] 작업으로 바빴기 때문에 [캐빈 인 더 우즈]의 드류 고다드에게 넘어갔다.

 

기존 완성본의 전개가 너무 뚝뚝 끊긴 나머지 개연성을 만들기 위해 30~40분 정도의 분량을 추가적으로 다시 찍을 수밖에 없었는데, 추가 분량이 생긴 만큼 삭제된 장면도 다수 있었다. 대표적으로 영화의 정치적 암시를 줄이고 ‘여름 영화’다운 분위기를 내고 싶다는 이유로 러시아 붉은 광장에서의 좀비 난투 신을 편집했고다. 영화 초반부의 주인공은 가정적인데 반해 후반부에 갑자기 ‘전쟁 영웅’이 되어 캐릭터 붕괴가 일어난다는 이유로 러시아에서 펼쳐지는 12분간의 대규모 좀비 전투 신도 통째로 들어냈다. 이 과정에서 예산은 1억 2,500만 달러에서 1억 9,000만 달러까지 치솟았고, 에반스는 제작비의 반이 추가로 늘어났던 당시의 상황을 ‘악몽’이라 표현했다. 개봉 후에는 비록 대놓고 상업성을 노린 클리셰 범벅 블록버스터라며 비판하는 이들도 꽤 있었지만, 쉽고 빠른 전개로 좀비 장르의 접근성을 높인 제작진의 과감한 결정이 ‘신의 한 수’가 되어 폭발적인 사랑을 받았고, 내년 6월에 속편 촬영이 시작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