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를 보면서 ‘스탠드 업 코미디’를 알게 됐다. 수많은 코미디언들이 시상식에서 말 하나로 청중을 울고 웃기는 능력을 어디에서 키웠나 궁금했는데, 그에 대한 수많은 답 중 하나를 찾은 듯했다. 개그 프로그램은 좋아하지만 한국의 콩트와 슬랩스틱 중심의 스타일과 20년 가까이 발전이라곤 1도 없는 내용에 지쳤던 내게 1인극 같은 스탠드업 코미디는 반가운 대안이었다. 이제는 밥 먹을 때나 잠자기 전, 무겁고 어두운 내용을 피하고 싶을 땐 자연스럽게 스탠드업 코미디 공연을 틀어놓는다.
농담과 개그에도 “취향”이 있어서 넷플릭스에 있는 모든 공연을 재미있게 보는 건 아니고, 특별히 좋아하는 공연은 여러 번 돌려본다. [존 멀레이니: 컴백 키드]나 일라이자 슐레이징어의 공연들, 트레버 노아의 엄청난 성대모사, 한국 이용자들이 입을 모아 추천하는 앨리 웡과 젠 커크먼도 재미있게 봤다. “아직도 이걸 안 봤냐?” 소리가 나올 만큼 화제가 됐던 [해나 개즈비: 나의 이야기]는 침대에 누워서 보다가 일어나서 기립박수를 칠 정도였다. 하지만 오늘은 에디터에게 최애 코미디언을 선사한 이 공연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하산 미나즈는 인도계 미국인이다. 백인이 대부분인 캘리포니아 주 데이비스에서 이민자의 아들로 태어나 자랐다. UC 데이비스에서 정치학을 전공한 그는 크리스 록의 공연을 보고 코미디언의 꿈을 키웠으며, 작은 공연과 TV 출연을 전전하다 2014년 존 스튜어트의 [데일리 쇼]에 특파원으로 기용됐다. 아는 사람들은 잘 아는 코미디언이었던 그가 미국 너머 사람들의 눈에 띈 것은 2017년 도널드 트럼프가 보이콧한 백악관 출입기자 만찬에서 이민자이자 무슬림으로서 트럼프의 인종차별을 강도 높게 비판하면서부터다. 그 사이에 “코미디 센트럴은 넷플릭스를 위한 인턴십이다.”라고 농담한 게 실현되듯, 넷플릭스는 그에게 스탠드업 코미디 스페셜을 제안했고, 미나즈는 자신의 오프 브로드웨이와 투어에서 했던 공연을 다듬어 선보인다. [하산 미나즈의 금의환향(이하 금의환향)]은 2017년 모교 UC 데이비스에서 녹화됐고, 2018년 피바디상을 수상했다.
미나즈는 [금의환향]에서 우리가 그에게 기대한 스토리 그 이상을 들려준다.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부모님의 결혼부터 아버지와 단둘이 데이비스에서 살아야 했던 경험, 여동생의 등장과 뒤늦은 질투 등 어린 시절의 이야기부터 진솔하게 털어놓는다. 그에게 있는 ‘인도계’와 ‘미국인’이라는 두 정체성의 충돌은 일상에서 다양한 형태로 드러난다. 생김새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을 끝없이 괴롭혔던 학교 애들만큼 인종 차별을 “기회의 땅에서 살아가는 대가”라는 아버지를 이해할 수 없었다고 고백한다. 이슬람교도인 그가 힌두교 여자 친구와 결혼하겠다고 했을 때, “남들이 뭐라고 생각하겠니?”라며 주저하는 부모에게 결혼을 밀어붙인 여동생에게 “오빠여서 정말 자랑스럽다.”라 말하기도 했다.
그중 가장 인상적인 내용은 첫사랑 이야기였다. 고등학생 하산은 네브래스카에서 전학 온 백인 소녀와 서로 좋아하게 되고, 각자의 가족에겐 말할 수 없는 진정한 꿈과 비밀 같은 첫 키스도 공유했다. 하지만 소녀는 어머니 때문에 졸업 파티는 그가 아닌 백인 남자아이와 갔고, 미나즈의 첫사랑은 인종 차별과 남들의 눈을 신경 쓰는 어른의 잘못된 선택 때문에 끝나고 말았다. 이후 두 사람은 서로 연락이 닿아 다시 만나게 되고, 그때의 상처를 딛고 어른이 된 서로의 앞날을 응원해 줬다.

[금의환향]의 모든 이야기가 특별하게 느껴지는 건 전달 방식도 한몫한다. 무대부터 넷플릭스에서 보던 스탠드업 코미디와는 다르다. 물론 작은 의자도, 물병도 있지만, 뒤에는 큰 스크린 세계가 설치돼 있고 화면에는 그의 말과 맞춰 그래픽이 쉴 새 없이 돌아간다. 그래픽은 그의 말을 보조하는 파워포인트 프레젠테이션도 됐다가, 그의 1인극이 벌어지는 배경도 된다. 미나즈는 그 사이에서 1인극을 하듯 열정적인 표정과 몸짓으로 자신의 경험을 재연한다. 보고 있으면 어느 순간 그의 이야기에 빠져 들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크게 웃으며 박수를 치다가 마음이 찡해서 훌쩍거리기도 했다. 미나즈는 평범한 듯 특별했던 삶을 큰 제스처와 믿음이 가는 목소리로 전한다. 표정을 클로즈업할 때마다, 그가 누군가를 웃기기 위한 코미디가 아니라 열정적인 연설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렇게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믿음직스럽게 열정적으로 하는 사람에게서 더 많은 이야기를 듣고 싶다. 그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은 어떤 모습인지 기꺼이 들어줄 용의가 있다. 미나즈에게서 성공 가능성을 확인했던 걸까. 넷플릭스는 그에게 시사 코미디 쇼를 맡긴다. 매주 일요일 2~30분,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슈를 가져와 사람들에게 이야기할 기회를 줬다. 바로 [하산 미나즈 쇼: 이런 앵글(이하 이런 앵글)]이다. [금의환향] 이후 더 핫한, 아니 힙한 코미디언이 된 그가 자신의 방식대로 쇼를 기획하고 만든다.

[이런 앵글]의 무대는 [금의환향]과 비슷하다. 대형 스크린에선 역시나 그래픽이 돌아가고, 미나즈는 20분 간 중요한 이슈를 농담과 강력한 한방을 뒤섞어가며 전달한다. 정치 코미디, 시사 코미디는 역사와 전통이 오래되고 요즘도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하니까 특별하지 않을 수 있다. 쇼에서도 미나즈의 모든 농담이 다 먹히는 게 아니고 본인도 “네 명만 알아듣는 조크를 합니다.”라고 말하며 웃기도 한다. 기존 시사 토크쇼 진행자에게서 느낀 중량감이 없는 것도 다르다고 느껴진다.
[이런 앵글]이 두 가지 이유로 새로운 형태의 정치 코미디 쇼가 성장할 기반을 만든다고 본다. 하나는 역시 전달 방식이다. 미나즈의 프레젠테이션은 스티븐 콜베어, 지미 키멜 등의 심야 토크쇼 오프닝 세그먼트나 존 올리버, 트레버 노아 등의 뉴스룸 형태와는 다르다. 오히려 기술기업의 신제품 프레젠테이션 스타일은 2018년의 “힙함”을 모든 곳에서 보여준다. 깔끔하고 멋진 무대 위에서 댄디한 스타일에 운동화와 힙합에 열광하는 너드 코미디언은 유려한 말솜씨로 자신의 아이디어를 전한다. 처음에 시선이 머무르는 곳도 바로 그 부분이다.
[이런 앵글]에 더 주목하게 되는 건 젊은 세대를 타깃으로 한 정치 코미디 쇼가 어떻게 이슈를 선택하고 접근해야 하는지를 보여준다는 점이다. [이런 앵글]이 가장 먼저 선택한 이슈는 도널드 트럼프가 아니라 대학 입시 문제였다. 교육열 높은 동양인 부모들의 소수자 우대 정책 반발로 시작해, 논란에 불을 지피는 보수 운동가의 활동을 언급하면서 마이너리티 간 싸움으로 번질 듯한 이 문제로 정작 비판해야 할 대상이 누구인지 상기시킨다. ‘대학 입시’라는 이슈는 입시를 겪었고 겪게 될 모든 이들에게 공감을 살 만한 주제이고, 아시아인으로 시작해 보수 백인, 아이비리그 대학교까지 모두 까기를 시전 하는 접근법은 현상 뒤에 숨은 이데올로기를 극적으로 드러낸다. 아마존의 상거래 시장 지배로 보는 독점의 폐해나 ‘슈프림’ 브랜드의 유행 뒤에서 과시 소비의 단물만 빨아먹는 투자회사 행태 등 어렵지 않은 소재로 시작해서 하고 싶은 이야기는 다 하는 뚜렷한 접근 방식은 메시지 전달에 굉장히 효과적이다.
미나즈의 새로운 시도는 이제 겨우 첫발을 내디뎠다. 아직 그가 할 말도, 우리가 평가할 이야기도 많이 남아 있다. 그래도 당장은 “심야 토크쇼의 형태를 바꿔야 한다.”는 그의 호기로운 말이 완전히 불가능해 보이지는 않는다. 오랫동안 지금과 같다면 그의 이야기에 좀 더 귀 기울이고 싶다. 당분간은 일요일 밤은 [이런 앵글]을 챙겨보는 맛에 지낼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