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필과 장르 마니아를 위한 이번주 개봉작”

 

매주 새로운 영화가 물밀듯이 극장가를 찾아오지만 모든 개봉작을 보기에는 시간도 없고 지갑 사정도 여의치 않다. 영화를 사랑하는 관객에게는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시간과 여유가 있어도 보고 싶은 영화가 근처 극장에서 상영하지 않는 참사를 겪으면서 VOD 출시만 애타게 기다리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런 이들을 위해 준비했다. 씨네필 혹은 특정 장르를 사랑하는 마니아들의 이목을 사로잡을 만한 이번 주 개봉작들을 소개한다.

 

 

모털 엔진 (Mortal Engines): “독특한 세계관의 시작”

이미지: UPI 코리아

에디터 Amy: 스팀펑크 세계관을 거대하고 웅장하게 그려낸 SF 판타지 영화. 보통 새로운 시리즈의 시작을 알리는 영화는 세계관을 설명하는 데 공을 들이다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데, 대서사의 시작을 늘어지지 않고 속도감 있게 그려낸다. 톱니바퀴와 증기 기관들로 구성된 거대한 도시가 삭막한 땅을 가로지르며 달리는 모습을 생동감 있게 표현해내어 독특한 세계관을 선호하는 마니아들의 가슴을 설레게 만든다. 다만 아쉬운 점은 참신한 소재에 반해 서사는 많이 본 방식으로 흘러간다는 것이다. 야망을 품은 발렌타인은 권력을 차지해 장벽을 넘어 정착 도시를 집어삼키려 하고, 주인공 헤스터 쇼는 그를 향한 복수에서 시작하여 저항 세력과 함께 이를 저지하려 한다. 이 과정에서 헤스터 쇼와 톰 내츠워디의 활약이 두드러지지 않고 매력도 상대적으로 덜하다. 하지만 부족한 부분을 안나 역을 맡은 배우 지혜가 선보이는 연기와 액션으로 채운다.

 

 

호두까기 인형과 4개의 왕국 (The Nutcracker and the Four Realms): “한 편의 아름다운 동화”

이미지: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에디터 Amy: 동화에서 막 튀어나온 듯한 비주얼을 자랑하며, 이야기도 동화처럼 흘러간다. 가장 유명한 발레 공연 중 하나인 호두까기 인형을 원작으로 했다는 것을 말해주듯이 익숙한 음악이 끊임없이 흐르며 심지어는 네 왕국의 배경을 발레 공연을 통해 설명한다. 슬픔에 빠진 클라라가 엄마가 남겨준 유품을 열 열쇠를 찾기 위해 네 왕국으로 가면서 신비한 모험을 겪고 자신을 찾게 되는 과정을 그린다. 우리에게 익숙한 동화적 서사로 흘러가며, 이야기는 착하고 단순하지만 그것을 그려내는 영상미가 황홀할 정도로 대단하다. 저택의 화려한 파티장부터 신비로운 네 왕국의 묘사, 드레스와 크리스마스 장식, 장난감으로 만들어진 인물들의 분장과 의상까지 눈이 정말 즐거운 영화다. 눈이 소복하게 쌓인 겨울과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느끼며 가족들과 함께 극장에서 보기 좋을 듯하다.

 

 

도어락 (Door Lock): “혼자 살면 더욱 공감되는 현실 공포”

이미지: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에디터 Jacinta: [도어락]은 스페인 영화를 리메이크하면서 주인공의 시점을 가해자에서 피해자로 옮겼다. 1인 가구가 늘면서 혼술, 혼밥 등의 풍경이 더 이상 낯설지 않은 현실을 반영해 주인공이 일상에서 느끼는 두려움과 불안에 설득력을 부여한다. 1차적으로는 안심할 수 없는 집의 위화감을 조성하고, 뒤이어 허술한 사회 안전망과 타인에게 무심한 현실을 사실적으로 그려낸다. 영화는 현실에 기반을 둔 불안감을 스릴러 장르에 부합되는 예측불허의 긴박한 상황으로 옮겨내면서 긴장과 공포를 한껏 끌어올린다. 쉴 틈을 주지 않는 팽팽한 연출은 혼신의 힘을 다하는 공효진의 연기 덕분에 영화 내내 강한 집중을 유지한다. 다만 후반 들어 극단적인 상황으로 돌변하면서 페이스를 잃는 점은 아쉽다. 또한 범죄에 맞서는 주체적인 캐릭터를 기대했다면 아쉬움은 더 진하게 남을지도.

 

 

헌터 킬러 (Hunter Killer): “밀덕 가슴을 뛰게 할 진 모르겠지만”

이미지: 씨네그루(주)키다리이엔티

에디터 겨울달: [헌터 킬러]는 20~30년 전 나왔다고 해도 믿을 만큼 향수를 자극하는(?) 밀리터리 액션 영화다. 미군은 세계 문제의 해결사, 러시아는 이번에도 빌런이다. 세계 평화가 위기에 처하는 건 개인의 일탈이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정의로운 사람들이 목숨을 버린다. [헌터 킬러]가 대단한 건 이 길의 시작과 끝이 어디인지, 어느 지점이 황당하고 우스꽝스러울지 관객도 다 알고 있음을 인정하고 그렇게 되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잠수함의 운용과 특수부대 작전 진행 모습을 최대한 사실적으로 살렸다고 자부하는 만큼, 영화가 밀덕의 심장을 바운스하게 만드는 뭔가를 품고 있다. 현대 군과 무기에 관심 있다면 정말 재미있게 보겠지만, 아쉽게도 에디터는 해당 사항이 없다. 그래도 늦은 밤 케이블 채널에서 이 영화가 나온다면 아버지와 맥주를 마시며 재미있게 볼 것 같다.

 

 

리벤져 (Revenger): “브루스 칸이 아니라 브루스 리가 왔어도…”

이미지: 리틀빅픽처스

에디터 띵양: 악마를 잡기 위해 악마가 된 남자의 이야기. 죽은 아내와 딸의 복수를 위해 사형수들의 섬 ‘수라도’에 직접 발을 들인 전직 특수경찰 율(브루스 칸)의 선혈 낭자한 액션극이다. 호쾌하고 잔혹한 액션으로 호평받았던 [레이드] 제작진이 참여했다기에 ‘볼거리는 충분하겠구나’ 싶었으나 오산이었다. [리벤져]는 액션을 제외한 모든 요소가 몰입을 방해하고 재미를 반감시킨다. 우연으로 가득한 개연성, 도리어 분위기를 싸하게 만드는 억지 유머 그리고 감정이입은 커녕 헛웃음이 나오는 감정과잉까지. ‘액션 영화’라서 허용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 아드레날린 뿜어대는 액션의 매력까지 집어삼켜버리고 말았다. 브루스 칸의 액션과 짧지만 강렬했던 박희순의 퍼포먼스는 분명 빛났으나 단지 이것만을 보기 위해 소중한 시간과 돈을 사용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안개 속 소녀 (The Girl in the Fog): “반전의 묘미가 있는 정통 미스터리”

이미지: 영화사 마그나

에디터 Jacinta: 어느 한쪽의 편도 들 수 없는 형사와 용의자의 대결 구도로 흥미로운 긴장을 자아내는 영화. [안개 속 소녀]는 이른 새벽 사라진 소녀의 실종사건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범죄의 사회적 현상과 어둡고 양면적인 본성에 주목한다. 목적에 압도당한 형사는 미디어를 선동하고 진실을 조작하는데, 마녀사냥을 당하듯 하루아침에 범죄자의 낙인이 찍힌 용의자는 이상하게도 냉정을 잃지 않는다. 형사와 용의자의 심리게임을 밀도 있는 서사로 구현하며, 요즘 보기 드문 정통 미스터리의 즐거움을 선사한다. 다만 액자 형식을 취해 반전을 강조하는 과정이 다소 작위적이고 전개에 탄력이 붙기까지 느슨하게 느껴진다.

 

 

다영씨 (Hello Dayoung): “찰리 채플린이 로맨스를 찍었다면 이런 느낌일까”

이미지: (주)인디스토리

에디터 띵양: 고봉수 감독이 ‘고봉수’ 한 작품. [튼튼이의 모험], [델타 보이즈]로 주목받은 그의 흑백 무성 코믹 로맨스. [다영씨]는 짝사랑하는 다영(이호정)을 돕기 위해 회사에 입사하는 퀵서비스 기사 민재(신민재)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60분이라는 간결한 러닝타임도 마음에 들었지만, 무엇보다 그 시간 안에 유머와 날카로운 풍자, 사랑의 위대함과 진정한 가치를 대사 한마디 없이 표정 연기만으로 알차게 표현했다는 점이 놀랍다. 조금 오버하자면 찰리 채플린의 작품들이 떠오를 정도다. 굳이 아쉬운 점을 꼽자면 신선했던 초반부에 비해 중반부에는 큰 변화 없이 패턴이 반복되어 보는 이에 따라 단조롭고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는 점이지만, 영화를 보는 데에 지장이 있을 정도는 전혀 아니다.

 

 

리틀 이태리 (Little Italy): “피자 소스 향기를 타고 피어나는 사랑”

이미지: 드림팩트엔터테인먼트

에디터 겨울달: 오랜만에 만난 소소하고 전형적인 로맨틱 코미디. 친구에서 연인이 되는 두 주인공의 사랑, 피자를 두고 벌이는 집안 간 오해와 경쟁, 화해를 향한 전개와 꽉 닫힌 결말까지 로코 공식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않는다. 영화 속 좌충우돌 사건은 웃음을, 주인공들이 어릴 적 뛰놀았던 리틀 이태리의 정다운 풍경은 따뜻함을 더한다. 러닝타임 101분 동안 현실은 잠깐 잊고, 영화가 끝난 후엔 미소 가득한 얼굴과 훈훈한 마음을 품고 상영관을 나서면 되겠다. 주연 배우의 연기 밸런스가 안 맞은 점은 아쉽다. 헤이든 크리스텐슨이 (과할 만큼) 진한 이탈리아 억양을 쓸 때, 엠마 로버츠는 평소 말투로 대사를 말한다. 니키가 타지 생활을 많이 했다는 설정이 있다고 해도, 고향과 가족의 억양을 모두 잊은 듯한 대사 연기는 다소 아쉽다.

 

 

인생 후르츠 (Life is Fruity):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인간다운 삶”

이미지: (주)엣나인필름

에디터 Jacinta: 혼자 산 날보다 함께 산 날이 더 긴 노부부의 삶과 인생철학을 담아낸 다큐멘터리. 90세 할아버지와 87세 할머니의 소박한 일상은 각박한 도시의 삶과 대비되어 보는 것만으로도 정화되는 듯한 편안한 기분을 안긴다. 노부부는 오래된 나무와 정성 들여 가꾼 텃밭으로 둘러싸인 단층집에 살며 자연과 공존하고 온정을 베푸는 삶을 실천한다. 영화는 단순히 절로 미소가 피어나는 일상을 비추는데 그치지 않고, 건축가였던 할아버지의 이상적인 가치관을 통해 오로지 기능적인 목적에만 충실한 도시의 형태에도 의문을 던진다. 키키 키린의 연륜이 베어난 내레이션이 더해져 노부부의 삶은 더욱 정겹고 잔잔한 여운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