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빈상자

 

 

이미지: CJ 엔터테인먼트, 롯데컬처웍스(주)롯데엔터테인먼트, (주)NEW

 

쌍 천만 영화가 터진 대박 뉴스에도 올해 한국 영화는 전반적으로 고전을 면치 못했다. 이러한 분위기는 북미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올드보이]나 [살인의 추억]을 잇는 대작을 바라던 기다림이 길어지면서 북미에 있는 한국 영화팬들도 이제 슬슬 기대치를 낮추며 작지만 쏠쏠한 재미를 찾는데 집중하고 있는 모양새다. 그나마 정통 첩보 스릴러나 역사물, 애니메이션의 실사화와 좀비 사극 등으로 장르를 다양화하고 끊임없이 새로운 시도를 하는 움직임에 응원을 보내며 호기심을 유지하는 정도다.

 

할리우드에서 슈퍼히어로와 프랜차이즈 영화에 대한 집중도가 점점 더 심해지며 피로도가 쌓이고, 스트리밍 서비스의 강세로 한국 영화를 비롯한 외국어 영화에 대한 접근성이 좋아진 것은 북미에서 한국 영화 팬을 늘릴 수 있는 가능성에 유리하게 작용한다. 다만, 할리우드처럼 한국 영화도 점점 소재 고갈로 리메이크 영화가 늘고 자본 집약적인 영화에 의존도가 커지고 있어 이에 대한 쓴소리는 새겨들어야 할 것 같다.

 

 

 

공작, The Spy Gone North

 

이미지: CJ 엔터테인먼트

 

할리우드의 단골 메뉴 ‘첩보 스릴러’가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나 [본] 시리즈처럼 액션이 강조되는 경향이 짙어지면서 [공작]과 같은 정통 첩보 스릴러가 오히려 신선하게 느껴진 듯하다. 많은 해외 비평가들은 주먹다짐과 추격전이 아닌 심리전과 이야기에 집중하는 점을 [공작]의 장점으로 꼽았다.

 

“액션-판타지 [강철비] 만큼 관객을 즐겁게 해 주지는 않지만, 속임수의 정치와 첩보기관 사이의 얽히고설킨 게임은 볼만하다.” – 버라이어티

 

한 민족이라고 외치고 두 손을 맞잡으면서도 서로를 끝까지 의심해야 하는 것은 영화를 넘어서 현실의 우리에게 늘 존재하는 본능과도 같은 감각이다. 하지만, 문화콘텐츠로 [공작]을 소비하는 외국인에게는 영화의 긴장감을 끝까지 이어가는 훌륭한 장치로 인식되었다.

북미에서 [공작]을 찾아본 관객 중에는 윤종빈 감독의 전작 [범죄와의 전쟁]을 본 관객이 많았고, 자연스럽게 이야기는 두 작품의 비교로 이어졌다. 관객들 사이에 어떤 영화가 더 좋았는지 의견이 분분했지만, 북미에서 인지도가 높은 배우 최민식보다 비교적 덜 알려진 황정민의 연기를 높게 평가하는 의견이 많았다. 하지만, [공작]에서 북미 관객에게 가장 눈에 뜨인 배우는 단연 이성민이었다.

 

“[공작]에서는 물론 [목격자]에서도 뛰어난 연기를 보여주는 이성민 배우가 해외에도 알려지는 계기가 될 것이다.” – Pieces of Work(유튜버)

 

 

 

신과 함께-인과 연, Along with the Gods: The Last 49 Days

 

이미지: 롯데컬처웍스(주)롯데엔터테인먼트

 

한국에서 쌍 천만 흥행 기록을 세운 [신과함께]는 북미에서도 압도적으로 2018년 최고의 수익을 올린 한국 영화다. 북미 배급사 ‘웰 고 USA’의 개봉관이 교민이 많은 북미 대도시에 집중된 데다 한국에서 흥행 소식이 교민 사이에서도 화제가 되면서 많은 한인들을 극장으로 부를 수 있었다. 한국 영화 중에 드문 ‘온 가족 영화’라는 점도 장점이 되었다. 하지만, 교민을 제외한다면 해외 관객들 사이에서 영화에 대한 평은 대체로 우호적이지 않았다.

 

“중세 판타지, 감상적인 멜로드라마, 그리고 슈퍼히어로 어드벤처가 정신없이 교차한다.” – 로스앤젤레스타임스

 

국내에서 [신과함께]의 최대 성과라고 평가받았던 CGI는 여전히 할리우드 영화에 익숙한 미국인을 만족시키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점수를 받았다. 한국 관객에게도 버거운 신파에 어색해 했던 관객도 많았고, 지나치게 복잡하고 누르고 눌러도 차고 넘치는 이야기 구조에 빠져 진짜 헬을 구경했다는 증언도 있었다.

 

“굉장한 한국형 블록버스터지만 클리쉐와 신파가 너무 많다.” – Toonch-64127 (IMDB유저)

 

 

 

안시성, The Great Battle

 

이미지: (주)NEW

 

[안시성]이 국내 관객에게 가장 크게 어필했던 지점은 역사와 애국심이다. ‘안시성 싸움’은 중국을 상대로 거둔 흔치 않은 대승으로 학교 다닐 때 수없이 들어왔던 역사전 사건이다. 그렇다면 한국사를 전혀 아는 바도 없고 국산 애국심으로 아무리 찔러봐야 눈 한 번 깜빡할 리 없는 북미 관객은 [안시성]을 어떻게 봤을까?

북미 평론가들은 [안시성]을 본 후, 주로 전투에 관해서는 [왕좌의 게임]이나 [킹덤 오브 헤븐] 등을, 전쟁영웅과 애국심에 의지한 점에서는 [브레이브하트]와 [패트리어트:늪 속의 여우] 등을 떠올렸다. 예상대로 오늘도 평화로운 유튜브 댓글창에서는 중국인과 한국인 사이의 역사적 사실에 대한 논쟁이 뜨거웠다. 국내에서도 고증과 사실에 대한 논란이 있었지만, 최소 북미 관객은 그러한 논쟁과 논란에서 자유롭게 영화를 즐겼다.

 

“백발백중인 양만춘 실력이라면 프레데터도 이길 수 있을 것 같다.” – 휴스턴크로니클

 

많은 북미 관객에게 중국의 수많은 사극/전쟁영화와 [안시성]을 구분하는 일은 쉽지 않다. 그래도 한국 영화에 조금이라도 익숙한 관객들은 한국 영화가 보다 사실적인 액션을 보여준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양만춘이 당 태종을 향해 날린 활처럼 한국 관객마저 현실성을 의심하게 하는 장면들은 영화가 역사를 바탕으로 했다는 정보를 다시 확인하게 만들었다. 그러한 이유에서 [안시성]을 보면서 판타지 영화 [반지의 제왕]을 떠올렸다는 북미 관객을 탓하기는 어렵다.

 

“[안시성]은 CGI가 업그레이드된 아시아 버전의 [반지의 제왕]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 EonTalk (개인블로거)

 

한편, 국내에서는 조인성의 목소리가 성주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얘기가 주로 많았지만, 북미에서는 그보다는 박성웅의 중국어가 귀를 괴롭힌 듯하다. 중국계는 물론 중국어를 모르는 눈치 빠른 북미 관객은 그의 중국어가 어딘가 수상하다는 점을 놓치지 않았다. 이는 한국 영화에 나오는 영어 대사 대부분이 엉망진창이었던 지난날의 모든 경험까지 불러일으키는 안타까운 계기가 되고 말았다.

 

 

 

인랑, Illang: The Wolf Brigade

 

이미지: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오시이 마모루가 각본을 쓴 유명한 일본 애니메이션의 실사 영화는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많은 관심을 모았다. 더구나 할리우드에서 만든 [라스트 스탠드]를 비롯해 [장화, 홍련], [달콤한 인생], [악마를 보았다] 그리고 [밀정]까지, 북미에서도 인지도가 높은 영화를 연출한 김지운 감독이라는 점에서도 더 그랬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들에게도 [인랑]은 김지운 감독의 최악의 영화로 남게 될 것 같다.

원작과 비교는 북미에서도 피할 수 없었다. 시대와 배경을 무리하게 바꾸면서 이야기가 복잡해졌고, 임중경(강동원)과 이윤희(한효주)의 러브스토리는 영화 전체와 잘 어울리지 않고 과하다는 평가가 많았다. 그나마 원작을 잘 아는 관객들이 원작에서부터 존재했던 플롯의 결함을 함께 지적하는 것이 위로처럼 들렸다. 북미 관객도 아시아 영화를 할리우드에서 리메이크할 때마다 걱정을 하기는 마찬가진데, [인랑]은 김지운 감독만의 색깔이 빠진 할리우드식 리메이크와 다를 바 없다며 아쉬워했다.

 

“요란하기만 하고 결정적인 것이 없다” – 게임스팟

 

원작을 모르는 혹은 보지 않은 관객은 기대치가 높았던 원작 팬들의 실망에 비하면 평가가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 특히 스타일리시한 영상과 액션에 만족했다. 다만, 원작을 본 관객과 원작을 보지 않은 관객이 공통적으로 가장 많이 지적한 것은 영화의 결말이었다. 원작과 가장 많은 거리를 두고 있는 데다 원작은 물론 실사판 영화 전체도 망치고 있다고 보았다.

해외 관객 대부분은 넷플릭스를 통해 [인랑]을 봤다. 넷플릭스는 국내에서 개봉도 하기 전에 한국을 제외한 지역의 판권을 구매했는데, 처음 이 소식이 전해졌을 때 해외 관객은 극장에서 볼 수 없는 사실에 대해 투덜거렸지만, 나중에는 오히려 극장에서 따로 돈을 지불하고 보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겼다고들 한다.

 

“이로써 ‘인랑’ 관련 콘텐츠가 다시 나올 가능성은 죽어버렸다” – Frog-CT (Reddit유저)

 

 

 

창궐, Rampant

 

이미지: (주)NEW

 

북미 관객 중에서도 [부산행]을 잘 본 관객이 많았기에 한국에서 온 사극 좀비 영화 [창궐]에 대한 기대는 컸다. 좀비는 할리우드의 창조물인 데다 할리우드가 양산한 수많은 좀비 영화들 틈새에서 도드라지기는 처음부터 쉬워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북미 관객들은 [부산행]을 보면서 할리우드보다 더 잘 만든 좀비 영화는 아니라도 할리우드와 다른 좀비 영화라며 반겼다. 그러니 한 발 더 나아가 사극으로 확장한 좀비 영화에 궁금해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부산행]과 [창궐]의 공통점은 김의성이 두 번 다 좀비가 된다는 것뿐이었다.

 

“[부산행]은 내러티브가 집중되어 있는 반면, [창궐]은 사방팔방으로 튄다.” – 할리우드리포터

 

좀비 장르에서 좀비는 느리게 걷기도 하고 빠르게 뛰기도 하고, 감염 속도나 증상도 영화마다 조금씩 차이를 보인다. 그래도 각 영화마다 나름의 규칙을 정해놓고 그 설정의 테두리 안에서 움직인다. [창궐]도 ‘야귀’에 관련된 자신들만의 규칙들을 열심히 설명하지만, 이는 곧 무너지고 제멋대로 튀기 시작한다. 한 평론가는 이를 ‘용서할 수 없는 장르 범죄’라고까지 말했다.

 

“좀비엔 관심이 없고 [부산행]도 힘겨웠지만, 한국 사극이라면 환영” – DeaconOrlov (Reddit유저)

 

이와 같이 [창궐]은 좀비 장르 팬은 물론 사극 장르 팬도 가세했었다. 하지만 [창궐]의 결과물이 실망스럽게 나오면서 한국형 좀비와 사극의 결합에 대한 기대는 빠르게 넷플릭스의 [킹덤]으로 옮겨가고 있다. [킹덤]의 입장에서는 [창궐]이 못 돼서도 부담, 잘 됐어도 부담이었겠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킹덤]까지 실패한다면 한동안 한국산 좀비 사극 장르를 다시 보기는 힘들어질 듯하다.

 

 

 

버닝, Burning

 

이미지: CGV아트하우스

 

오늘 거론하는 한국 영화 중에서 북미에서는 단연 [버닝]에 대한 관심과 얘기가 가장 많았다. 한국 영화에 익숙한 관객이라면 감독 이창동과 함께 배우 유아인도 잘 알고 있지만, 아무래도 가장 큰 이유는 역시 [워킹 데드]의 스타 스티븐 연의 존재다. 배우에 대한 관심이 스티븐 연이 모두 한국어로 연기하는 영화로 이어진 것이다.

 

“스티븐 연 보러 갔다가, 영화 전체에 빠지고 말았어” – gloomswarm(Reddit 유저)

 

하지만 유아인을 알던 모르던 연기에 대한 칭찬은 유아인을 향한 것이 많았다. 도무지 그 속을 헤아리기 어려운 벤을 완성한 스티븐 연의 건조하면서도 중성적인 연기도 인상적이었지만, 열등감과 패배감으로 똘똘 뭉쳐서 허무주의 사이로 억압된 폭력성을 드러내는 종수라는 캐릭터를 연기한 유아인은 많은 관객을 홀렸다.

상징과 은유로 무장한 채 끝까지 가르쳐 주지 않는 게 많은 [버닝]의 의도된 모호함과 열린 구조는 해외에서도 다양한 추측과 해석을 낳았다. 영화의 은유는 어디서 시작해 어디서 끝나고, 벤이 정말 연쇄살인범인지, 우물과 고양이의 실존 여부 등 북미 관객도 똑같이 그들에게 남겨진 의문점들 주변을 맴돌았다.

이야기의 전개 속도는 느리고 인물들의 감정도 억눌리다 마지막 순간이 되어서 폭발하는 [버닝]을 두고 불에 디는 줄도 모를 정도로 천천히 타 들어간 상처를 나중에야 발견하고 한참이나 바라보고 있는 듯하다는 한 관객의 평은 영화만큼이나 시적이다.

 

“영화에 대해 몇 시간씩 떠든 후에도 여전히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는 영화” – 엔터테인먼트위클리

 

해외 관객이 한국 영화를 보면서 우리와 공감하는 지점이 같을 때에는 인지상정과 보편성에 오는 반가움이 있다. 하지만 분명 그들이 온전히 이해하고 느낄 수 없는 지점도 존재하기 마련인데 그러한 지점을 확인하는 과정이 또 즐거울 때도 있다.

벤, 종수, 해미가 파주에 모두 모인 가운데 음악, 춤, 풍경이 아름다우면서도 기묘한 꿈처럼 펼쳐지는 장면이 북한의 대남방송과 앞뒤로 충돌하면서 느끼는 미세한 감정의 변화와 반응은 온전히 한국 관객만의 것이다. 이러한 때에는 마치 우리끼리만 알고 있는 비밀을 발견한 듯한 쾌감이 있다. 그리고 그 쾌감은 영화가 좋을수록 더욱 증폭된다. 그래서 좋은 한국영화가 더 많이 나와서 더 많은 해외 관객들을 만났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미국에서 흥행 성공한 한국영화는? http://tailorcontents.com/movies1808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