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스트 킹덤]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이미지: 넷플릭스

넷플릭스의 콘텐츠는 형식도, 장르도, 내용도 다양하다. 책장처럼 쌓아둔 다양한 콘텐츠에서 내가 뭘 봐야 할지 고르는 것도 일이 됐다. 시놉시스, 배우, 제작자, 감독, 분위기에 관련 추천작까지 보고 나서 재생을 눌러도, 생각보다 재미없을 수도 있다. 오히려 내 취향을 벗어나 새로운 걸 시도했을 때 더 재미있고 매력적인 작품을 만날 수도 있다. 오늘은 내게 그런 매력으로 다가왔던 시리즈를 소개하고자 한다. 내게 중세 역사 드라마의 매력을 충분히 어필한 작품, [라스트 킹덤]이다.

시리즈는 역사소설가 버나드 콘웰의 베스트셀러 ‘색슨 이야기’ 시리즈를 원작으로 하며, 영국이 고대에서 중세로 넘어가는 9~10세기, ‘데인족’이라 불리는 바이킹의 침략에 대항해 잉글랜드 왕국이 태동하던 시기를 다룬다. 색슨족으로 태어났지만 데인족으로 길러진 주인공 ‘베번버그의 우트레드’가 잉글랜드 왕국 통일의 기초를 다진 웨섹스 알프레드 왕의 가신이 되어 영국 통일을 향한 여정의 선봉에 선다는 이야기. 역사에 기반하지만 픽션인 만큼 소설은 기록된 사실을 더욱 드라마틱하게 바꾸고, 드라마는 이를 더욱 압축하고 극적으로 바꿨다. 그렇지만 호전적인 북부의 전사 바이킹과 남부에서 왕국을 건설한 앵글로 색슨 족의 생활상과 반목은 그대로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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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라스트 킹덤]에서 끌린 건 우트레드라는 캐릭터 그 자체다. 그는 북부 지역 베번버그의 색슨인 영주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지만, 형이 죽으면서 형과 가문의 이름인 ‘우트레드’를 물려받는다. 부모를 잃고 삼촌의 계략으로 바이킹의 노예가 되지만, 노예보다는 아들로 키워졌다. 양아버지 라그너가 다른 바이킹의 음모로 사망하고 자신이 살인 혐의를 받게 되자, 억울함을 풀고 복수하기 위해 색슨 7왕국 중 가장 건재한 웨섹스에 몸을 의탁한다. 기독교가 모든 왕국과 지배층의 사고 방식을 지배하던 시기, 충성을 서약하면 모든 것을 바쳐야 했던 당시의 가신과 달리 우트레드는 왕에게 충성을 맹세하면서도 기독교로 개종하는 대신 ‘이교도’ 전사로 남는다.

우트레드는 그 시대 가장 격하게 충돌한 두 정체성을 모두 품은 인물이다. 색슨족 출신이기 때문에 완벽한 데인족은 될 수 없고, 그렇다고 색슨족이 되는 건 데인족으로 자란 시간과 정신이 이를 허락하지 않는다. 인생은 또 어찌나 드라마틱한지, 출생의 권리인 영지를 되찾으려는 집념은 변하지 않지만 운명의 장난처럼 그의 발걸음은 수많은 사건 때문에 북부로 향하지 못한다. 죽을 고비도 여러 번 겪었고 배신 때문에 위기에 빠진 건 더 많다. 가는 인연 오는 인연 안 막는 성격답게 여러 여인과도 인연을 맺었지만 정말 사랑했던 사람들은 그의 곁에 오래 있지 않았다. 하지만 무엇보다 그의 인생을 정의한 인연은 알프레드 왕과의 인연이다. 북부 노섬브리아 왕국에서도, 노예선에 실려 웨섹스 왕국에서 점점 멀어져 가도 그의 인생은 알프레드의 영향력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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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트레드와 알프레드의 상반된 캐릭터와 두 사람의 ‘한 마디로 정의하기 힘든’ 관계 또한 이 이야기에 깊이 빠져들게 만드는 매력이다. 우트레드는 호전적이고 투지 넘치는 전사이자 자유와 맹세를 소중히 여긴다. 알프레드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자 현명한 왕이고 원대한 꿈을 품은 지략가다. 다른 상황, 다른 작품에서라면 ‘망붕’에 빠지기 딱 좋았을 두 사람이 애초에 만난 건 살기 위해서 서로에게 서로가 필요하기 때문이었다. 필요를 위해 서로를 이용하는 관계로 시작한 두 사람이 겪는 신뢰, 배신, 의심의 사이클이 시즌 3 내내 끊임없이 이어진다. 충성은 바치지만 자신의 모든 것은 내놓지 않는 우트레드와 그의 신념과 종교까지 자신의 발밑에 두고자 했던 알프레드 사이의 팽팽한 긴장감은 드라마를 시즌 3까지 이끌어 온 가장 큰 동력이다.

어느 때보다 파국으로까지 몰린 우트레드와 알프레드의 관계가 모두 정리되는 마지막 독대는 액션 장면이 많았던 시즌 3의 하이라이트다. 죽음을 앞둔 알프레드는 처음엔 “사람들은 왕을 기억할 전사 우트레드 라그나슨을 기억하진 않을 것이다.”라며 왕의 마지막 자존심을 내세워 보지만, 우트레드는 이름이 없어도 자신의 모습은 어디에나 있다며 응수한다. 역사엔 없지만 왕이 가장 신뢰한 가신으로, 위대한 왕으로 기록되지만 이름없는 전사에 목숨과 왕국의 운명까지 맡긴 왕. 두 사람은 자신들이 이해로 맺어진 군신 관계에서 서로의 가치를 알아보고 인정한 신뢰의 관계로 바뀌었음을 인정한다. 두 사람이 과거를 반추하는 장면은 오랜 친구의 마지막 순간을 함께 하는 느낌이었는데, 드라마치고는 보는 이의 감정을 끌어올리진 않았던 시리즈라서 이 장면은 더 먹먹하고 슬펐다.

[왕좌의 게임] 같은 중세 배경 픽션 시리즈를 좋아한다면, 돈은 조금 덜 들인 것 같지만 사실적 느낌은 더 강한 [라스트 킹덤]이 눈에 들어올 것이다. [바이킹스] 같은 역사 픽션 시리즈를 좋아한다면 비슷한 시기의 다른 이야기를 풀어가는 [라스트 킹덤]을 재미있게 볼 것이다. 무엇보다도 명확한 캐릭터와 그들 간 긴장감 가득한 관계를 즐긴다면, [라스트 킹덤]의 개성 강한 인물들과 그들 간 까끌한 관계가 흥미를 돋울 것이다. [라스트 킹덤]은 작년 말 시즌 4 제작을 확정했다. 알프레드 왕이 죽고 그의 아들 에드워드가 왕위에 오른 2019년 새 시즌엔 과연 어떤 이야기를 풀어갈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