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넷플릭스

 

마침내 모두가 기다려온 [킹덤]이 넷플릭스에 공개됐다. [터널]의 김성훈 감독과 [시그널]의 김은희 작가, 그리고 주지훈, 류승룡, 배두나 등 화려한 캐스팅과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좀비 사극이라는 점에서 제작 단계부터 화제를 모았다. 게다가 시즌 1이 공개되기 전에 시즌 2를 확정하는 넷플릭스의 자신감이 기대감을 더욱 고조시켰다. 다만, [킹덤]을 마냥 즐거운 마음으로 기다리기에는 좀비물에 누적된 피로도를 지울 수 없었다. 인기 미드 [워킹 데드]는 자충수를 두며 내리막길을 걷고 있고, 지난가을 야심 차게 개봉한 [창궐]은 반쪽짜리 좀비물로 큰 실망감을 안겼다. ‘언데드’의 존재감은 매력적인 소재임은 분명하나 결국 또 뻔한 작품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도 들었던 게 사실이다.

 

단도직입적으로 [킹덤]을 말하자면, 다행히 미심쩍은 불안감을 훌륭하게 걷어낸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아쉬운 부분도 없지 않으나 ‘식욕만 남은 좀비가 슬퍼 보였다’라고 계기를 밝힌 김은희 작가의 야심이 작품 전반에 뚜렷하게 자리한다. [워킹 데드]나 [창궐]에서 좀비가 인간 세계의 갈등에 무기력하게 이용당하거나 들러리로 전락하면서 장르물의 매력을 전하지 못한 것에 비해 [킹덤]은 탐욕과 배고픔이 만들어낸 좀비의 괴물 같은 존재감을 전달하는데 충실하다. 소재를 볼거리로 낭비하지 않고 서사에 긴밀하게 밀착하는 영리함을 발휘하며, 잔인한 좀비물임에도 애잔한 정서를 전한다.

 

[킹덤]의 가장 큰 매력은 다른 좀비물이 대체로 수수께끼로 남겨둔 미지의 영역에 발을 들인다는 것이다. [킹덤]에서 좀비는 어느 날 갑자기 출몰한 존재가 아니다. 도화선은 백성을 돌보지 못한 채 허수아비로 전락한 왕권의 부재다. [창궐] 역시 왕권 찬탈의 무대가 된 부실한 왕권에 좀비물을 결합했지만, 외부 세계에서 온 좀비는 내부의 이야기에 긴밀하게 녹아들지 못해 실패한 이야기가 되었다. 반면 [킹덤]은 좀비의 탄생 배경을 보다 복합적으로 구현한다. 1차적으로는 죽은 왕을 되살린 야심가 조학주의 비뚤어진 탐욕, 이후에는 굶주림에 시달린 백성의 생존 본능이 무시무시하게 위협적인 재앙을 초래한다. 좀비가 부패한 인간세계의 갈등을 풀어나가는 장치임은 부인할 수 없지만, 보다 근원적으로 탄생 기원을 다루는 신선한 접근으로 피로도가 누적된 좀비물에 새로운 활력을 부여한다.

 

이미지: 넷플릭스

 

6부작의 짧은 이야기는 캐릭터의 매력을 온전히 드러내기에는 부족해 보인다. 작품 속 대부분의 캐릭터는 기존 서사에서 반복되어온 기시감을 지울 수 없지만, 관계 구축을 통해 흥미로운 지점을 드러낸다. [킹덤]에서 악의 축이라 할 수 있는 조학주와 중전의 관계는 단연 인상적이다. 만약 조학주에게 중전이 없었다면, 왕권을 노리는 조학주의 야심은 무섭기보다 피로와 짜증을 유발했을지 모른다. 다행히 드라마는 조학주의 야망으로 극을 끌어가는 누를 범하지 않고, 아버지 못지않은 야심가 중전을 배치해 미지의 갈등이 잠재된 팽팽한 긴장을 조성한다. 특히 시즌 1 마지막 에피소드에서 밝혀지는 중전의 비밀은 앞으로 본격적으로 시작될 왕권 대립에 어떤 역할을 할지 기대감을 부른다. 조학주에 대해 한 마디 덧붙이면, 탐욕만 앞세운 인물에 그치지 않고 교활한 책략가의 면모를 충분히 보여준다는 점도 인물을 보다 입체적으로 보이게 한다. (적어도 ‘창궐’에서 제 발에 걸려 자멸한 김자준의 뒤를 잇지는 않을 것 같다)

 

반역자로 몰린 왕세자 이창은 매번 백성의 편에서 움직이나 그의 정의감에는 개인적 욕망이 결부됐다. 처음부터 완벽하지 않고 욕망과 정의감이 상충한다는 점에서 그를 흥미롭게 한다. 이창은 가장 가까이에서 백성의 고통을 지켜보고 위험한 상황에 처할 때마다 그들을 버리지 않겠다고 다짐하듯 말하지만, 순수한 정의감으로 읽기에는 그의 심리는 복잡다단하게 얽혀있다. 후궁에게서 태어난 출신 성분, 이미 죽은 거나 마찬가지인 왕의 존재감, 조학주를 향한 증오, 권력층에 대한 실망과 반발 등 내재되어 있다.

 

 

이미지: 넷플릭스

 

의상, 미술, 촬영, 액션 등 뛰어나게 구현한 영상미도 [킹덤]을 보는 즐거움을 배가한다. 빠르고 잔혹한 공격자 좀비와 선명하게 대비되는 아름다운 색채와 정적인 구도가 강조된 영상미는 기존 좀비 서사(특히 해외) 작품에서 흔치 않은 광경이다. 이 불균질한 요소가 더욱더 매혹적인 좀비물로 보이게 한다. 이창이 멀리서 불에 휩싸인 마을을 지켜보거나 부감으로 잡아낸 강녕전 주검을 옮기는 장면, 연못에 가라앉은 시신 등이 암울한 상황임에도 거부할 수 없는 기이하게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어낸다. 반면 잠에서 깨어난 좀비가 살육을 위해 내달리는 장면은 그와 반대로 역동성을 강조하는 동시에 빛에서 어둠으로 전환되는 절묘한 상황을 공포감을 유발하는 섬뜩하고 스산한 분위기로 조성한다.

 

이번엔 아쉬움을 말해볼 차례다. 좀비 사극답게 몸을 아끼지 않는 좀비 배우들의 노고는 인상적이지만, 기성 배우들의 연기는 몇몇 장면에서 아쉬움을 남긴다. 지나치게 힘이 들어가거나 튀는 억양이 종종 걸림돌로 작용한다. 국내 사극에서 감초처럼 들어가는 유머러스한 장면도 굳이 꼭 필요했는지 의문스러운데, 다분히 풍자를 노리고 설정한 동래 부사 조범팔은 그 혼자만 너무 이질적인 캐릭터가 된 듯하다. 넷플릭스라는 플랫폼을 활용한 잔혹한 장면은 기존 사극에서 보던 풍경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점도 아쉽다. 하다못해 [워킹 데드]에서 그 무섭지 않은 좀비가 사람을 공격하고 먹어치울 때는 꽤나 고어한 장면이 나오는데 말이다. 또한 역사고증은 차치하더라도 말이 운송수단인 조선시대에서 조학주의 시간은 유독 빠르게 흘러가는듯하다. 나만 그렇게 느낀 걸까?

 

전반적으로 도입부의 성격을 띤 시즌 1은 몇몇 인물들의 비밀을 숨긴 채 떡밥을 남겨놓았다. 현재 이창의 우군인 안현대감이 비밀은 시즌 2의 가장 큰 열쇠가 될 것으로 보인다. 조학주가 자신 있게 말한 안현대감이 역모에 나설 수 없는 이유, 착호군 출신 영신의 고향마을 수망촌과의 관계(아마도 조학주가 역병의 전염을 막고자 성문을 닫았듯 안현대감도 비슷한 과오를 저지른 걸로 보인다)가 시즌 2에서 야심가 조학주와 다른 갈등을 불러오지 않을까. 안현대감이 이창에게만 알려준 내부 배신자가 누구인지도, 드디어 발견한 생사초가 역병을 잠재울 수 있을지도, 마지막에 밝혀진 좀비의 새로운 특징이 문경새재를 넘어 역병을 전국적으로 확산시킬지도 궁금하다. 북으로 올라갈수록 추워지는 날씨는 온도에 반응하는 좀비를 빠르게 확산하는 기폭제가 되지 않을까. (그럼 여름은???, 조학주의 자신감은 무엇?)

 

곧 촬영이 시작되는 [킹덤] 시즌 2에서는 미흡했던 부분이 개선되고 떡밥으로 남겼던 이야기를 속 시원하게 풀어주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