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 추석, 여름휴가, 연말’ 보통 극장가 최대 성수기라 불리는 시즌에는 국내외를 막론하고 대규모 자본이 투입된 영화가 흥행을 노리고 개봉한다. 조금이라도 흥행에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고자 개봉일을 잡는 것부터 눈치 싸움을 벌인다. 물론 호기롭게 개봉일을 못 박는 경우도 있지만, 막판까지도 개봉일을 조율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2억 관객 시대를 맞아 주요 굵직한 배급사들은 보통 때보다 많은 관객이 몰리는 성수기 시즌에 자사의 대표작을 선보이지만, 모든 작품들이 그들의 바람대로 흥행에 성공하지 않는다. 알다시피 작년 추석과 연말에 100억대의 영화가 손익분기점을 돌파하지 못하고 씁쓸하게 퇴장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나마 [안시성]이 가까스로 손익분기점을 돌파했지만, 이는 해외 판매 실적이 포함된 성적이었다. 2018년을 마무리하면서 기대에 못 미친 한국 영화를 두고 위기론이 불거지기도 했는데, 사실 찾아보면 흥행에 실패한 영화는 박스오피스 역사에 언제나 있었다. 다음은 2011년 이후 개봉한 작품 중에서 다분히 성수기(설, 추석, 연말) 호재를 기대했지만, 관객들의 관심을 받는데 실패한 영화 목록이다.
평양성

개봉일 2011.01.27 / 누적 관객 1,717,566명
2003년 중박을 터뜨렸던 [황산벌]의 후속작 [평양성]은 2월 2일부터 시작되는 설날 연휴를 한 주 앞두고 개봉했다. [황산벌]이 비수기 시즌인 10월에 개봉했던 걸 감안하면 의도가 다분했다. 게다가 이준익 감독은 2005년 [왕의 남자] 이후 선보인 작품들이 연이어 만족스러운 성적을 거두지 못했던 터라 제작보고회에서 영화가 망하면 은퇴하겠다는 발언도 불사했다. 총 제작비 80억을 들여 절치부심 준비한 [평양성]은 아쉽게도 기대에 못 미치는 성적을 거두었다. 영화는 부정적인 반응을 얻으며 170만 관객을 동원하는데 그쳤다. 결국 이준익 감독은 트위터에 상업영화 은퇴를 선언했는데,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이후에 은퇴를 번복하고 작품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평양성]의 손익분기점은 260만이었으며, 당시 관객들은 [조선명탐정 : 각시투구꽃의 비밀]을 선택했다. [평양성]보다 한 주 먼저 개봉했던 강우석 감독의 야구 영화 [글러브] 역시 흥행에 실패했다.
마이웨이

개봉일 2011.12.21 / 누적 관객 2,142,670명
강제규 감독은 2004년 천만 영화의 신화를 썼던 [태극기 휘날리며]를 재현하고 싶었던 것 같다. 2차 세계대전으로 무대를 확장한 [마이웨이]>는 노르망디 상륙작전 당시 독일군 포로로 발견된 동양인의 사진에 영감을 얻었다. 장동건, 오다기리 죠, 판빙빙을 캐스팅하고,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국적을 초월한 인간애를 담아낸 휴먼 전쟁 드라마로 만들어냈다. 제작비 280억 원을 들여 세계 각국에서 발생한 전투를 재현하는데 공을 들이고 대대적인 홍보를 펼쳤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크리스마스 연휴를 앞두고 개봉했음에도 실망스러운 반응을 얻으며 개봉 첫날 11만 관객을 동원하는데 그쳤다. 한 주 먼저 개봉한 미션임파서블:고스트프로토콜]이 승승장구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손익분기점 천만 관객에 훨씬 못 미치는 200만을 조금 넘긴 성적으로 퇴장했다. [마이웨이]와 같은 날 개봉한 [퍼펙트 게임]도 완성도에 대한 호평에도 150만 관객에 그쳐 동시에 출격한 한국 영화는 쓸쓸한 연말을 보냈다.
간첩

개봉일 2012.09.20 / 누적 관객 1,310,895명
[광해, 왕이 된 남자]가 승승장구하던 2012년 9월 추석 연휴를 앞두고, 생계형 첩보극을 표방한 영화 [간첩]이 개봉했다. 드라마에 이어 영화에서도 성공적인 행보를 이어가며 연기 본좌로 불리는 김명민이 주연을 맡아 앞서 개봉한 이병헌과의 대결로도 관심을 모았다. 더군다나 김명민은 여름 시즌에 개봉한 [연가시]가 450만 관객을 돌파하는 성공을 거두기도 했다. 유해진, 염정아, 변희봉, 정겨운 등 출연진도 든든해 보였다. 추석 연휴 부담 없이 볼 수 있는 종합선물세트 같은 영화가 되길 바랐지만, 아쉽게도 관객에게 통하지 못했다. 실망스러운 평과 함께 [광해, 왕이 된 남자]에 완전히 밀렸다. 개봉 첫날 겨우 6만 관객을 동원하는데 그치며, 손익분기점 230만 명에 도달하지 못하고 130만 성적으로 마감했다.
가문의 영광5 – 가문의 귀환

개봉일 2012.12.19 / 누적 관객 1,160,021명
2000년대 조폭 코미디의 인기를 견인했던 [가문의 영광] 다섯 번째 시리즈가 2012년 연말 흥행에 도전했다. 전작들이 추석 연휴가 있는 9월에 개봉한 걸 감안하면 이례적인 선택이다. 그런데 시기 선택이 패착이었을까? 아니면 이제 뻔히 수가 읽히는 조폭 코미디가 식상했기 때문일까? [가문의 영광] 10년 후의 이야기를 그린 [가문의 영광5 – 가문의 귀환]은 원년 멤버 정준호와 유동근이 복귀하고 김민정이 새롭게 합류했지만, 이미 쇠락한 시리즈를 살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손익분기점이 250만 명이었지만, 110만 명을 모으는데 그치며 시리즈 최저 성적을 기록했다. [가문의 귀환]이 개봉했던 12월 연말에는 [호빗: 뜻밖의 여정], [레미제라블], [반창꼬], [타워]가 관객의 선택을 받았다. 2017년 [가문의 영광] 여섯 번째 시리즈 아이디어 공모전을 개최했으나 현재까지 별다른 소식은 전해지지 않는다.
남쪽으로 튀어

개봉일 2013.02.06 / 누적 관객 832,894명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의 임순례 감독, [도둑들]로 천만 배우에 등극한 김윤석의 조합은 신뢰하기 충분했다. 국내에도 잘 알려진 오쿠다 히데오의 소설을 각색한 [남쪽으로 튀어]는 시사회 이후 작품에 대한 평가는 호의적이었으나 복병은 먼저 개봉한 한국 영화 두 편과 개봉 전부터 불거진 논란이었다. [7번방의 선물]과 [베를린]이 쌍끌이 흥행을 이어가던 상황에서 촬영장 무단이탈 및 불화설, 특정 장면 삭제 요구 등의 논란이 불거지면서 피로도를 낳았다. 순제작비 40억, 손익분기점 150만 명의 [남쪽으로 튀어]는 설 연휴에 맞춰 개봉했음에도 100만 관객조차 달성하지 못했다.
조선미녀삼총사

개봉일 2014.01.29 / 누적 관객 480,361명
요란하게 망한 영화를 거론할 때 꼭 언급되는 [조선미녀삼총사]는 [겨울왕국]과 [수상한 그녀]가 박스오피스를 집어삼켰던 2014년 1월 설 연휴 바로 전날에 개봉했다. 한때 영화와 드라마에서 믿고 보는 배우로 통했던 하지원이 주연을 맡아 당시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던 [기황후]가 방영되던 시기에 개봉했으나 결과는 참담했다. 손익분기점이 200만 명이었지만, 48만 명이라는 초라한 성적을 거두었다. 먼저 개봉한 영화가 관객들의 입소문을 얻으며 쌍끌이 흥행을 주도했던데 반해 [조선미녀삼총사]는 완성도에서도 혹평에 시달렸다. 하지원은 2011년 [7광구]와 [코리아]에 이어 또다시 흥행 참패를 기록했다.
상의원

개봉일 2014.12.24 / 누적 관객 790,370명
한석규표 사극에 피로감이 쌓인 걸까? 한동안 부진을 거듭하던 한석규는 2011년 [뿌리깊은 나무]로 성공적으로 부활한 뒤 [상의원]이 개봉한 같은 해 하반기 사극 [비밀의 문]에 출연했었다. [상의원]은 [기술자들]과 같은 날 개봉해 왕실 의복이라는 참신한 소재로 눈길을 끌었지만, 화려하고 아름다운 볼거리를 받쳐주지 못한 미흡한 연출로 관객의 외면을 받았다. 개봉 당시 평소 화보 촬영이나 인터뷰를 안 하기로 유명한 한석규가 이례적으로 [뉴스룸]에도 출연하며 대중에게 보다 가깝게 다가갔던 터라 더욱 아쉬운 결과다. 순제작비 100억 원이 투입됐지만, 개봉 첫날 [기술자들]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성적을 기록했다. 더군다나 먼저 개봉한 [국제시장]이 천만 꽃길을 향해 승승장구하던 때였다. 결국 300만 손익분기점 달성은 멀어지고, 79만이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고 퇴장했다.
서부전선

개봉일 2015.09.24 / 누적 관객 609,063명
[서부전선]은 충무로 기대주로 부상한 여진구와 티켓 파워를 갖춘 연기파 배우 설경구의 만남으로 캐스팅 단계부터 주목을 받았다. 기존 전쟁 영화와 차별화를 두고 전쟁의 희로애락을 웃음과 눈물을 곁들여 전하고자 했지만, 뻔하다는 지적을 받으며 관객을 사로잡는데 실패했다. 먼저 개봉한 [사도], [메이즈 러너: 스코치 트라이얼]은 물론 같은 날 개봉한 [탐정 : 더 비기닝]과 [인턴]에 밀려 박스오피스 5위로 데뷔, 제대로 힘써보지도 못한 채 손익분기점 근처에도 이르지 못했다. 총 제작비 73억 원, 손익분기점 250만 명이었지만, 60만 관객을 모으는데 그쳤다.
조선마술사

개봉일 2015.12.30 / 누적 관객 628,568명
[번지점프를 하다]의 김대승 감독이 연출을 맡고, 국민동생으로 불리던 유승호의 전역 후 복귀작으로 기대를 모았던 작품이다. 마술과 로맨스를 결합한 신선한 시도도 눈길을 끌었다. 문제는 참신한 설정과 세련된 영상미를 살리지 못한 빈약한 스토리와 미흡한 완성도였다. 박스오피스 2위로 기분 좋게 데뷔했지만, 혹평에 시달리며 개봉 9일 만에 12위로 밀려났다. 바로 뒷날 개봉한 [내부자들: 디 오리지널]이 180분 분량의 감독판임에도 20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모을 때, [조선마술사]는 62만 명이라는 처참한 결과를 받아들여야 했다. 영화의 손익분기점은 300만이었다. 2015년 연말을 쓸쓸하게 보낸 작품은 [조선마술사]만 있는 게 아니었다. [신세계]의 박훈정 감독과 최민식이 다시 의기투합한 [대호] 역시 손익분기점 550만에 못 미치는 170만 성적표를 받았다.
고산자, 대동여지도

개봉일 2016.09.07 / 누적 관객 974,262명
2016년 가을 극장가에 한국 역사를 배경으로 하는 시대극 두 편이 동시에 출격했다.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을 스파이물로 그려낸 [밀정]과 지도를 만들기 위해 조선 팔도를 누볐던 김정호의 이야기를 담아낸 [고산자, 대동여지도]가 주인공이다. 김지운과 강우석이라는 걸출한 감독이 연출을 맡은 두 작품은 쌍끌이 흥행을 기대했으나 결과는 [밀정]의 압승이었다. [고산자, 대동여지도]는 상영관 확보부터 밀리면서 출발선이 다르긴 했지만, 식상한 개그와 진부하고 투박한 연출이 관객들의 외면을 받아 반등하는데 실패했다. 제작비 100억 원이 투입된 영화의 손익분기점은 320만 명이었으나 97만이라는 초라한 성적으로 마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