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Tomato92

 

마블이나 DC가 코믹스 산업에서 두각을 드러낸 건 단순한 우연이 아니다. 그들의 엄청난 성공은 개성 있고 화려한 능력의 매력적인 캐릭터, 흥미로운 전개, 광활하고 조밀한 세계관 등이 독자의 마음을 이끄는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언맨, 캡틴 아메리카, 원더우먼, 슈퍼맨 등 영화화까지 크게 히트하며 막대한 인기를 누리고 있는 슈퍼히어로가 있는가 하면 애초에 왜 만들어진 건지 알 수 없는 캐릭터들도 정말 많이 등장했다 사라졌다. 개성만 있지 전력에는 전혀 도움 안 되는 하찮음으로 코믹스 팬덤을 당황시킨 황당한 능력의 히어로들을 소개한다.

 

 

 

1. 진 지니

이미지: Marvel Comics

 

진 지니는 세계를 구한다는 이타적인 목표보다 부자나 유명인이 되는 것에 사로잡힌 슈퍼히어로 집단 ‘X-Statix’의 멤버 중 한 명으로, 지진의 파동을 생성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지진파’라는 강력해 보이는 능력의 진 지니가 리스트에 있는 이유는 매우 제한적인 상황에서만 능력이 발현되기 때문이다. 지진파는 취한 상태에서만 쓸 수 있으며, 강도 또한 일정하지 않고 혈중 알코올 농도에 비례한다.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라는 스파이더맨의 명대사가 무색하게, 진 지니는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한 상태에서 지진파를 사용하며 종종 같은 팀원을 맞히는 실수를 저지르기도 한다. 이런 치명적인 약점이 팀의 전력에 도움이 될 리 없다. 결국 미션을 수행하다 사망하는 비극적인 최후를 맞는다.

 

 

 

2. 도어맨

이미지: Marvel Comics

 

자신의 몸을 문으로 만들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슈퍼히어로. 도어맨은 ‘Great Lakes Avengers’의 구성원으로 ‘어벤져스 코스트’에 처음 등장했고, 몸이 고형 물체에 닿으면 ‘다크포스 디멘션’을 활용한 통로로 변하는 능력을 갖고 있다. 도라에몽의 ‘어디로든 문’을 연상케 하는 이 능력의 문제점은 바로 옆에 붙은 공간으로만 이동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의 능력이 유용한 상황이 가뭄에 콩 나듯 드물게 생기기는 하지만, 이미 같은 세계관에 훨씬 효율적인 순간 이동 능력과 벽쯤이야 간단히 무너뜨릴 수 있는 완력의 슈퍼히어로들이 차고 넘치기 때문에 손가락만 빨고 있을 때가 훨씬 더 많다. 이처럼 하찮은 취급을 당하는 그를 안타까워한 창작자의 연민이 작용한 건지 몰라도 ‘문 변신’ 외에 스키로 비행할 수 있는 능력을 추가로 얻기는 하나 상황 개선에 큰 도움을 주지는 못했다.

 

 

 

3. 스톤 보이

이미지: DC Comics

 

우주의 평화를 위해 각 행성에서 선발된 히어로 군단 ‘리전 오브 슈퍼히어로즈’의 멤버십을 얻지 못한 ‘리전 오브 대체 히어로즈’의 멤버 중 하나. 이 ‘대체 히어로’들의 능력은 대부분 형편없는데, 스톤 보이는 그중에서도 유달리 튄다. 그는 ‘Zwen’ 출신의 외계인으로, 이 행성의 주민들은 6개월의 긴 겨울을 나기 위해 몸을 돌로 변화시키는 능력을 갖고 있다. 스톤 보이의 능력이 두드러진다고 한 이유는 돌이 된 상태에서는 꼼짝도 못 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혼자서는 전투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팀원의 도움을 받아 투척 무기나 주의를 돌리는데 주로 쓰인다. 이후 최면 요법의 도움으로 석화 상태에서도 정신을 유지한 채 움직이는 게 가능해졌지만, 개그 캐릭터의 굴레에서는 벗어나지 못했다.

 

 

 

4. 바운싱 보이

이미지: DC Comics

 

찰스 포스터 테인, 그는 히어로가 되기 전에 그저 과학자를 위해 잔심부름을 하는 평범한 사람이었다. 어느 날, 찰스는 과학자로부터 ‘슈퍼-플라스틱 용액’ 배달을 부탁받고 과학 회의장으로 향하던 중 ‘로봇 대결 토너먼트’ 경기장을 발견하고 홀린 듯 안으로 들어간다. 경기에 한창 정신이 팔린 나머지 용액을 음료수로 착각해 마셔버리는 실수를 저지르고, 그로 인해 몸을 부풀려 통통 튀게 하는 능력을 얻게 된다. 비록 쉽게 다치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기는 하지만, 슈퍼히어로들이 거대한 볼링핀의 습격을 받지 않는 이상 쓸모라고는 도저히 찾을 수 없는 능력이다. 어찌어찌 슈퍼히어로 딱지를 붙인 찰스는 앞서 언급한 ‘리전 오브 슈퍼히어로즈’에 들어가기 위한 오디션에 도전하고, 수차례 거절당한 이후 결국 입단에 성공한다.

 

 

 

5. NFL 슈퍼프로

이미지: Marvel Comics

 

90년대 당시에는 실로 왜 생긴 건지 의문인 캐릭터들이 끊임없이 등장했다. 지금 소개할 NFL 슈퍼프로도 그중 하나다. 이 시리즈는 무릎 부상으로 미식축구 선수를 포기하고 리포터가 된 필 그레이필드라는 남성의 이야기를 다룬다. 그레이필드는 정말 ‘우연히도’ 파괴 불가능한 미식축구 유니폼을 개발한 화학자를 인터뷰하다 도둑들을 만나 의자에 묶이는 신세가 된다. 도둑들은 연구소에 불을 지르고, 그레이필드는 열기와 화학 물질이 만나 일어난 화학반응으로 초능력을 얻는다. 말이 초능력이지 빠른 속도, 강력한 힘, 탁월한 맨손 격투 정도가 능력의 전부다. 또한 이 시리즈는 개연성이 없기로도 유명한데,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이러한 단점이 계속 부각되어 독자의 마음을 얻지 못했다. 후에 작가 파비안 니시에사는 한 인터뷰에서 ‘NFL 슈퍼프로를 쓴 유일한 이유는 NFL 경기 티켓을 공짜로 얻기 위해서였다’라고 말하며 시리즈 기원의 추악한 진실을 밝혔다.

 

 

 

6. 매곳

이미지: Marvel Comics

 

이 엑스맨은 코믹스 독자 사이에서 그의 독특한 능력과 이상한 성격으로 유명하다. 남아프리카 출생의 괴짜 뮤턴트는 특이한 소화 시스템을 갖고 있다. 그의 어깨에 있는 두 마리의 민달팽이는 무엇이든 먹어 치울 수 있고, 배를 채우고 돌아오면 그들의 에너지를 숙주에게 제공한다. 이 과정에서 매곳의 덩치는 커지고 스피드와 체력이 상승하며, 피부는 파랗게, 눈은 빨갛게 변한다. 이렇게만 말하면 꽤 괜찮은 능력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능력치 상승을 위해서는 비대해진 민달팽이를 먹어서 배안으로 집어넣어야 한다는 조건이 있다. 이처럼 번거로운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적과의 싸움에서 제때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고, 민달팽이를 먹는다는 그로테스크한 설정과 더불어 인기를 끌지 못하는 주요 원인이 됐다.

 

 

 

7. 하인드사이트 래드

이미지: Marvel Comics

 

하인드사이트 래드(칼튼 라프로이지)는 80년대 후반에 등장한 10대 슈피히어로 집단인 ‘뉴 워리어즈’의 멤버 중 한 명이다. 비호감 슈퍼히어로의 전형으로 평가받는 그는 이미 ‘실패한 미션’이 어떻게 하면 더 잘 풀릴 수 있었을지 분석하는 듣기만 해도 짜증 나는 능력을 갖고 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라는 속담을 떠올리게 하는 그는 이미 손쓰기에 너무 늦은 일을 훈수하며 주위 사람들의 심기를 건드린다. 또한 칼튼은 워리어즈 팀에 들어가기 위해 로비 볼드윈(스피드볼)의 정체를 밝히겠다고 협박한 전과가 있으며, 새 코스튬을 사고 싶은 마음에 어벤져스 기금을 빼돌려 세탁하는 파렴치한 범행을 저지르기도 한다. 영웅 일에서 은퇴한 뒤에는 워리어즈 팀의 안티 사이트인 ‘http://DestroyAllWarriors.com’를 만들었고, 이곳에서 그들의 비밀 신상을 폭로하며 비호감 캐릭터의 끝판왕으로 자리 잡았다.

 

 

 

8. 올마이티 달러

이미지: Marvel Comics

 

이름부터 돈과 연관되어 있을 것 같은 올마이티 달러는 손목으로 잔돈을 쏘는 능력의 슈퍼히어로다. ‘J. 페닝턴 페니페커’라는 급조한 듯한 본명의 그는 ‘NFL 슈퍼프로’ 10호에 처음 등장한다. 평범한 공인 회계사로 일하던 중, 친구들과 함께 ‘자존감 회복 캠프’에 참가했다가 미친 과학자에 의해 강제로 능력을 부여받고 슈퍼히어로 활동을 시작한다. 하지만 ‘잔돈 쏘기’라는 능력은 90년대의 기준으로 봐도 도저히 용납 못 할 수준이었고, 동전을 맞고 고통스러워하는 빌런의 모습은 대중에게도 좋은 반응을 얻지 못했다. 마블 측에서도 대중들의 이런 비판적인 반응을 인지한 것인지 첫 출연 이후 영원히 종적을 감추었다.

 

 

 

9. 엘 구아포

이미지: Marvel Comics

 

처음에 소개한 진 지니와 같은 ‘X-Statix’ 소속의 엘 구아포(로비 로드리게즈)는 함께 공생하는 스케이트보드를 무기로 쓰는 인물이다. 공생이란 말을 한 이유는 그가 스케이트보드와 떨어져 있으면 힘이 약해지고 결국에는 죽음에 이르는 끔찍한 일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심지어 이 스케이트보드는 엘 구아포의 도덕 선생님 같은 역할을 해서 그가 여자친구와 바람을 피우는 부도덕한 짓을 할 때마다 그에게 폭력으로 응징을 내린다. 자만심이 하늘을 찌르는 사고뭉치와 도덕 선생님의 건강치 못한 조합은 극이 진행되어 감에 따라 두드러지고, 엘 구아포는 결국 스케이드보드에 찔려 죽는 참담한 결말을 맞이한다.

 

 

 

10. 타입페이스

이미지: Marvel Comics

 

고든 토마스라는 이름으로 평범한 삶을 살았던 타입페이스는 전쟁에서 형제를 잃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가족에게도 버림받는다. 두 가지 사건으로 큰 충격을 받은 뒤, 한 회사에 들어가 표지판을 만드는 일을 하며 마음의 평정을 되찾지만 외압에 의해 강제로 회사를 그만두게 된다. 세상에 대한 불만이 쌓인 그는 이후 자신에게 ‘타입페이스’라는 이름을 붙여 빌런으로 활동하기 시작한다. 이름에서 대강 짐작할 수 있듯, 그는 말 그대로 몸에 주렁주렁 매단 글자를 던져 상대에게 피해를 입힌다. 타입페이스가 그나마 덜 한심한 취급을 받는 이유는 뛰어난 두뇌와 미군에 있었던 경험에서 비롯된 기본적인 전투 기술을 갖추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마에 응징(Retribution)의 이니셜인 ‘R’을 새길 정도로 증오심이 가득했던 그는 스파이더맨을 만나면서 슈퍼히어로의 길로 방향을 선회하고, 이후 ‘시크릿 어벤져스’에 소속되어 활동한다.

 

 

 

11. 컬러 키드

이미지: DC Comics

 

킬러 키드는 스톤 보이와 마찬가지로 리전 오브 슈퍼히어로즈에 오디션을 봤다가 거절당하고 리전 오브 대체 히어로즈에 입단한다. ‘루프라’ 행성에서 태어난 그는 연구실에서 일을 하다 다른 차원에서 넘어온 형형색색의 빔을 맞은 후 사물의 크기에 상관없이 색을 변형할 수 있는 능력을 얻는다. 딱 봐도 별 볼 일 없는 능력이지만 염치없는 ‘하인드사이트 래드’와 달리 나름 다른 히어로들을 돕기 위한 최소한의 노력은 하는 캐릭터이다. 가끔씩 대상의 색을 바꾸는 능력을 쓰다가 화학 구조까지 바꾸는 일이 생기기도 하는데, 이게 슈퍼보이와 슈퍼걸을 치명적인 크립토나이트 구름에서 구하는데 도움을 주기도 했다. 하지만 아무래도 색 변형 능력의 쓰임새는 극히 제한적이기 때문에 그가 존재감을 드러내는 일은 드물었다.

 

 

 

12. 암-폴-오프 보이

이미지: DC Comics

 

여태까지 스톤 보이, 바운싱 보이 등 이름으로 능력을 유추할 수 있는 슈퍼히어로를 몇 명 소개했지만, 암-폴-오프 보이(Arm-fall-off boy)처럼 직접적으로 설명하는 캐릭터는 흔치 않을 것이다. 그는 반중력 금속인 ‘엘리먼트 152’라는 물체를 부주의하게 다루다 손을 탈부착하여 몽둥이로 쓸 수 있는 능력을 얻게 된다. 암-폴-오프 보이를 창조한 작가들의 말에 따르면, 이 히어로는 ‘리전 오브 슈퍼히어로즈’ 입단 테스트에 가장 먼저 도전하고 가장 먼저 떨어트리기 위해 의도적으로 우스꽝스럽게 만들어진 캐릭터라고 한다. 단발성 캐릭터로 쓰고 퇴장시킬 예정이었는지 이름조차 없었지만 후에 ‘플로이드 벨킨’이라는 공식 본명이 생겼고, 첫 등장 이후 꽤 여러 번 코믹스에 등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