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예하
요즘 미디어 시장엔 엄마들 얘기가 강세다. 애도 안 낳아봤는데 엄마들 얘기가 뭐가 재밌냐고? 미친 여자들이 잔뜩 나오기 때문이다.

얼마 전 세계 넷플릭스 톱 화면에 캐나다 신작이 등장했다. [워킹맘 다이어리]는 코미디계에서 배우 겸 제작자로 활약하는 캐서린 라이트먼이 주연과 제작을 맡은 크지 않은 규모의 코미디 쇼다. (제이슨 라이트먼과 같은 라이트먼 맞다. 남매다.)
아기를 출산한 케이트는 사내 전설과도 같은 마케터였다. 워커홀릭 버릇은 어디 가질 않아서 얼마간 무리하게 복직했더니 블라우스 위로 젖이 축축하게 새고, 그사이에 자기 자리를 반쯤 꿰찬 젊은 남자 직원은 시도 때도 없이 애 보러 가야 하지 않냐고 도발한다. 신생아를 둔 엄마들 모임에 가도 딱히 좋은 일은 없는데, 반은 일하는 엄마를 경멸하고 케이트도 딱히 살가운 스타일이 못 된다.
나머지 엄마들도 정상적이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다. 일단 온몸이 화로 가득 찬 정신과 의사 앤은 둘째를 낳자마자 셋째를 임신해서 분노로 부들부들 떨고 있다. 기본적으로 아이와 잘 지내는 성격이 아닌데, 초등학생 첫째 딸은 학교에서 남자애들에게 팬티를 보여주거나 반쯤 헐벗은 아리아나 그란데 차림을 하고 돌아다니며 성적인 도발을 일삼는다. 감당할 수 없어서 못된 젊은 애를 보모로 고용했더니 걔를 더 엄마처럼 따라서 그것도 열 받아 미칠 것 같다. 그럴 때마다 여자들이 서로 소리를 지르고 머리를 뜯는 리얼리티쇼를 보면서 폭주 기관차처럼 샌드위치를 씹거나, 아니면 도끼를 던지러 간다(말 그대로).
프랭키는 레즈비언 파트너와 결혼해 살면서 아이를 낳았다. 하지만 결혼생활은 안 풀리고 우울증이 깊다. 공인중개사 프랭키는 고객들에게 집을 보여줘 놓고 종종 풀장에 들어가서 죽으려고 한다. 애초에 서로를 알아보고 헐겁게 연대한 세 엄마와 반목하던 제니도 끝내 친구가 되는데, 복직 후 새로 온 매니저의 나무꾼 같은 팔뚝에 홀려 몹시 문란했던 과거의 기술을 자꾸 발휘하게 된다.

[워킹맘 다이어리]는 [렛 다운]과 아주 닮았다. 비슷한 규모의 이 호주 드라마 또한 갓 태어난 아기를 상대하는 서툰 엄마들 얘기다. 공원에 차를 세워놓고 애를 재우다 마약상에게 젖 물리는 방법이 틀렸다고 지적받고, 엄마들 모임에 가선 얼떨결에 남들의 출산을 모욕해버린다. 원래 친구들과 어울려보려다 애를 데리고 클럽에 가고, 모임에서 알게 된 다른 엄마 회사에 취직했다 커피 심부름부터 욕받이까지 온갖 고초를 겪는다. 역시 앨리슨 벨과 사라 쉘러, 두 여성이 호주에서 소규모로 제작했다.

한편 [굿 걸스]의 애들은 좀 커서, 유축기를 돌리거나 유모차를 펴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이 엄마들은 모여서 슈퍼마켓을 털기로 한다. 앞의 두 편에 비하면 규모도 꽤 큰 편이다. [팍스 앤 레크리에이션]의 도나였던 레타, [매드 맨]의 그 배우 크리스티나 헨드릭스와 [어레스티드 디벨롭먼트], [페어런트후드]로 인기를 끈 메이 휘트먼이 주인공을 맡았다. 역시 여성 제작자 제나 반스가 만들었다. 아들에게 잔소리를 듣고 보살핌을 받는 어리고 철없는 싱글맘, 바람이나 피우는 비열한 남편을 둔 멀끔한 중산층 엄마, 그리고 아픈 딸을 둔 살림 빠듯한 엄마가 모여 각자의 사정으로 모여 복면을 쓰고 범죄를 저지른다. 일단 귀여운 강도로 시작해서 갱단과 FBI까지 너도나도 모여든다.
이 세계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남편들은 바람을 피우거나 게을러서 다정할 순 있어도 매일매일 혼이 빠지도록 바쁜 이 삶에 도움이 안 된다. 부모도 전혀 도움이 안 된다. 공격적으로 혹은 수동공격적으로 이 부실한 엄마들을 고문할 뿐이다. 갓 출산한 엄마들은 새내기 엄마 모임에, 애들을 학교에 보낸 엄마들은 학부모 총회에 참석하지만 거긴 대체로 미친 여자들 뿐이다. 우리 주인공들도 다 미친 여자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다 코미디다.
그런데 결국 엄마들은 연대한다. 이 사람들이 다른 서사에 나오는 인물들보다 훨씬 미친 여자 같은 이유는 회사 화장실에서 유축기를 돌리고, 시도 때도 없이 아기를 어디다 놓고 오고, 남편은 바람을 피우고, 월세도 빠듯한 살림에 애를 위해 더 비싼 약을 써달라고 의사에게 애원해야 하는 이 부산스러운 삶에 사회성을 덧칠할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항상 지치고 예민하고 짜증 나 있는 이 서사 속의 여자들에게 막상 천사 같은 아기보다 더 큰 구원을 주는 건 그렇게 꼴 보기 싫었던 동료 미친 여자들뿐이다. 이 여자들은 모여서 애를 키우고, 일하고, 웃고 욕하고 울고 범죄를 저지른다. 실제로 풀리는 일은 없지만 남을 신경 쓸 겨를이 없어서 자기 성질 다 드러내고 사는 이상한 여자들의 얼굴을 우리는 생각보다 많이 본 적이 없다. 아기 얼굴도 제대로 나오지 않는 아기 키우는 이야기가, 아기 안 낳아본 사람들에게도 웃기고 슬프고 무엇보다도 스릴 넘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