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 타는 일드? 호불호 좀 갈리면 어때!

– 정주행 마력 돋는 일드 추천 –

 

흔히 ‘일드’는 취향에 맞지 않으면 보기 힘들다고 한다. 병맛이라고 하기엔 손발이 없어지는 유치함을 동반하거나 비현실적인 과도한 설정이 몰입을 방해하고, 늘 막바지에 이르면 교훈적인 결말을 끌어내려고 애쓴다. 게다가 젠더 감수성이 거슬릴 때도 많다. 그럼에도 한드(혹은 미드나 영드)처럼 복잡하거나 심각하지 않는 전개, 독특한 캐릭터, 소재의 다양성 등 여러 이유로 꾸준히 찾게 되는 매력이 있다. 계속해서 보다 보면 일드 특유의 유치한 개그는 귀엽기도 하다. 일드에 관심이 있어 입문해보고 싶다면 여기 소개한 드라마를 찾아보자. 왓챠플레이와 도라마코리아에서 서비스 중인 일드 10편을 소개한다.

 

 

 

 1. 과보호의 카호코 (NTV, 10부작, 2017)

 

첫인상은 솔직히 당황스럽다. 대학 졸업을 앞둔 취업준비생이 아직도 엄마의 과잉보호 아래 있다니. 게다가 순수한 건지 순진한 건지 헷갈리는 3인칭 화법의 바보 같은 언행까지, 7살쯤에서 (정신적) 성장이 멈춘 듯한 카호코는 첫인상을 물음표와 느낌표로 가득 채운다. 그뿐이랴. 다 큰 딸을 통제하려는 엄마도 이상하고, 그것이 문제임을 알면서도 ‘감히’ 중재하지 못하는 아빠도 답답하다. 그런데 정말 이상하게 보면 볼수록 세상 물정 모르고 아무것도 할 줄 몰랐던 카호코에게 정이 간다. 우연히 미대생 하지메(타케우치 료마)를 알게 된 후, 비로소 울타리 밖으로 나와 진짜 현실을 인식하고 변화해가는 모습이 자꾸만 사랑스럽다. 가족 드라마에 방점을 찍은 탓에 카호코가 처한 현실이 실제로는 완벽하지 않았던 가족에 그친 점은 아쉽기도 하지만, 속도는 더디고 방식은 서툴러도 과보호의 그늘에서 벗어나려고 애쓰는 모습에 응원의 마음이 생긴다. 무엇보다 자칫 비호감으로 남을 수 있는 과장된 캐릭터인 카호코를 위화감 없이 보여주는 타카하타 미츠키의 섬세한 연기에 푹 빠져 끝까지 질주하게 된다. 호시노 겐이 부른 귀여운 엔딩곡 ‘Family Song’도 놓치지 말자. 작년 가을, 이후의 이야기를 담은 1부작 스페셜 드라마 [과보호의 카호코2018 ~러브&드림~]이 방영됐다. (왓챠)

 

 

 

 2. 수수하지만 굉장해! 교열걸 코노 에츠코 (NTV, 10부작, 2016)

 

지금 당장 꿈꾸던 일을 하지 못한다 해도 좌절하고 포기하지 말자. 오랫동안 꿈꿔왔던 패션잡지 에디터 대신 교열부 직원이 된 된 코노 에츠코의 이야기는 꿈 대신 현실을 선택하거나 혹은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맡은 바 소임을 다하는 이들을 응원하고 위안과 용기를 전한다. 교열부 직원 코노 에츠코는 에디터의 꿈을 위해 오직 한 곳 ‘경범사’의 공개채용만 응시할 정도로 직진형 인물이다. 마침내 합격통보를 받았을 때, ‘랏시’가 아닌 듣기만 해도 생소한 ‘교열부’에 배정받았음을 알고 낙담도 하지만 특유의 긍정 마인드로 극복한다. 언젠가 랏시 편집자가 될 거라는 희망을 품고, 당장의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기로 한다. 이시하라 사토미의 화려한 패션 센스와 생기 넘치는 매력도 드라마를 보는 즐거움을 배가 한다. 로맨스 분량이 다소 아쉽다면, 1년 후의 이야기를 담은 스페셜 드라마 [수수하지만 굉장해! DX 교열걸 코노 에츠코]도 챙겨보자. (왓챠)

 

 

 

 3. 도망치는 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 (TBS, 10부작, 2016)

 

계약결혼으로 자신을 고용해달라? 구직시장에서 번번이 좌절한 대학원 졸업생 미쿠리는 아버지의 소개로 자칭 ‘프로독신남’ 히라마사의 집에서 가사도우미 알바를 시작한다. 원하던 일은 아니었지만, 나름의 즐거움을 발견하고 고용주에게 인정도 받는다. 하지만 순조롭게 흘러가던 일상이 부모님의 이사 선언으로 위기에 봉착하자 다급해진 미쿠리는 히라마사에게 풀타임 근무 ‘계약결혼’을 제시한다. 드라마는 각자의 이유로 계약결혼을 맺은 두 사람이 점차 가까워지는 로맨스 서사에 청년 세대의 고용불안, 가사노동의 가치, 여성의 사회적 지위, 동성애 등의 현실 문제를 유연한 솜씨로 포개어 놓는다. 깊이는 부족하더라도 사회적 문제를 담아내면서, 로맨틱 코미디의 풋풋한 즐거움을 주는 드라마는 정말이지 사랑스럽다. 아라가키 유이와 호시노 겐의 귀여운 케미도 빼놓을 수 없다. 엔딩곡에 흐르는 코이 댄스도 놓치지 말자. (왓챠)

 

 

 

 4. 컨피던스 맨 JP (후지 TV, 10부작, 2018)

 

여기 나쁜 사람들을 시원하게 혼내주는 사기꾼들이 있다. 과거를 숨기고 가명으로 살아가는 다코, 보쿠짱, 리차드는 돈과 욕망에 휘둘려 성실한 사람들에게 상처를 입히고 부당하게 이득을 취하는 나쁜 사람들을 기상천외한 방법을 동원해 통쾌하게 응징한다. 사기극의 스케일은 상상을 초월한다. 하나의 작전을 위해 수개월을 공들이며, 상대를 속이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되고 무엇이든 준비한다. 나가사와 마사미는 계획을 주도하고 뻔뻔스럽게 밀어붙이는 다코 역을 맡아 얼굴 근육을 아낌없이 사용하고, 얼마 전 영화 [아사코]에서 안타까움을 유발했던 히가시데 마사히로는 매번 다코에게 속아 넘어가는 선량한 성격의 사기꾼 보쿠짱으로 분해 귀여움을 유발한다. 백전노장 사기꾼 리차드를 연기한 코히나타 후미요는 만화처럼 경쾌하게 흘러가는 드라마에 무게감을 덧입히는 역할로 적역이다. 마지막까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속임수는 이제 곧 영화 버전 개봉을 앞두고 있고, ‘한드’로 제작될 예정이라고 한다. (도라마)

 

 

 

 5. 망각의 사치코 (도쿄 TV, 12부작, 2018)

 

결혼식 당일, 사랑하는 남자가 말도 없이 사라진다. 홀로 남겨진 여자의 마음이 무사할 리 없다. 일상에서 늘 완벽함을 추구했던, 어찌 보면 기계적인 여자 사치코는 예상치 못한 급습(?)에 큰 충격을 받는다. 딱히 감정을 드러내는 성격은 아니지만, 틈만 나면 사라진 연인 슌고가 떠올라 당황스럽고 괴롭다. 그때 맛있는 음식이 괴로운 사치코의 마음을 위로한다. 음식을 음미하고 즐기는 순간만큼은 슌고가 생각나지 않는다. 사치코는 슌고를 잊기 위해서, 때로는 열심히 일한 자신에게 상을 주기 위해서 맛있는 음식을 찾아 나선다. 30분 분량으로 가볍게 볼 수 있으며, 타카하타 미츠키의 먹방 연기는 단연 일품이다. (도라마)

 

 

 

 6. 와카코와 술 (BS JAPAN, 2015~)

 

안주의 맛과 다양성을 소중하게 여기는 애주가를 솔깃하게 할 본격 주당 드라마. 겉보기엔 평범한 회사원이지만, 술맛을 아는 비범한 혀를 가진 와카코는 매일 밤 혼술을 즐기며 셀프 힐링으로 하루를 마무리한다. 퇴근 후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술과 안주가 맛있는 술집이 즐비하고, 집에는 언제든 술상을 차릴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다. 와카코에게 술은 취하는 음식이 아니라 그날 하루를 돌아보고 일상의 소소한 행복을 발견하는 계기가 된다. 만든 이의 정성과 손길이 느껴지는 정갈한 안주는 소박한 외양에도 먹음직스럽다. 방송이 끝날 무렵에는 실제 촬영 장소가 된 술집을 소개하니 일본 여행을 계획 중이라면 메모하는 것도 좋겠다. (왓챠 ‘시즌 2’)

 

 

 

 7. 이노센스 ~원죄변호사~ (NTV, 10부작, 2019)

 

국내에도 인기 있는 일본 배우 사카구치 켄타로가 힘없는 약자의 편에선 변호사로 변신했다. [이노센스 ~원죄변호사~]는 모순적인 일본 사법제도에 의구심을 던지며 억울하게 죄를 뒤집어쓴 피해자들의 사건을 파헤친다. 형사사건의 대부분이 유죄로 판결되는 상황에서 젊은 검사 쿠로카와 타쿠는 한쪽의 시선으로 매도된 사건의 진실에 다가서고자 한다. 그 방법은 조금 독특하다. 이공계 출신 검사라는 배경을 이용해 각종 과학 실험으로 의심스러운 사건의 진실을 규명한다. 여기에는 100% 유죄를 만들어내기 위한 일본 경찰의 강압적인 수사 방식과 권위를 앞세우는 검찰의 부조리한 모습이 녹아들어 있다. 너드미 넘치는 사카구치 켄타로가 합리적인 의심을 제기하고 사건을 검증하는 이야기는 긴장감은 다소 부족하지만 가볍게 즐기기에 부족하지 않다. (왓챠)

 

 

 

 8. 언내추럴 (TBS, 10부작, 2018)

 

법의학은 미래를 위한 학문이다! [언내추럴]은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듯 부자연스러운 죽음을 다룬다. 실력 있는 법의학자 미스미 미코토를 중심으로 매회 다양한 죽음 뒤로 가려진 진실을 규명한다. [중쇄를 찍자], [도망치는 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를 쓴 작가 노기 아키코가 각본을 맡아 단순히 법의학 수사물에 그치지 않고, 다양한 사회적 시선을 녹여내며 법의학이 지닌 가치를 실현하고 죽음을 통해 삶의 의미를 돌아본다. 특히 아픈 과거에 매몰되지 않고 사명감으로 정진하는 미스미는 그동안 과하거나 왜곡된 시선으로 그려진 여성 캐릭터에서 벗어나 신선함을 안긴다. 일본 드라마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작가상, 여우주연상, 남우조연상, 주제가상을 수상하며 일본 내에서도 완성도를 인정받았다. (왓챠)

 

 

 

 9. 보더 (아사히 TV, 9부작, 2014)

 

오구리 슌을 분명 다시 보게 될 드라마. [보더]는 머리에 총상을 입고 기적적으로 살아난 형사가 죽은 자와 대화를 하면서 사건을 해결해가는 이야기를 그린다. 오구리 슌이 뇌에 탄환이 박힌 후 죽은 자를 볼 수 있게 된 형사 이시카와 안고를 맡아 예민하면서도 절제된 연기로 극을 긴장감 있게 끌고 나간다. 죽은 자와 교감하는 이야기가 새롭다고 할 수 없지만, [보더]는 억울하게 죽은 피해자만 내세우지 않고 가해자의 목소리를 들려주며 신선함을 꾀한다. 기존 수사물과 달리 범인 혹은 사건의 실체를 먼저 드러내고, 이를 입증하기 위해 불법도 저지르는 모습을 보여주며 선과 악의 경계를 교묘하게 무너뜨린다. 크게 모험을 감행하지 않는 일드의 전형적인 마무리에서 벗어난 결말은 충격적이면서도 차곡차곡 쌓아온 서사 덕분에 인물의 심리가 충분히 이해되기도 한다. 2017년, 이후의 이야기를 담은 스페셜 드라마 [보더 2: 속죄]와 검시관 히가 미카의 프리퀄격 드라마 [보더: 충동]이 나왔다. (왓챠)

 

 

 

 10. 메종 드 폴리스 (TBS, 10부작, 2019)

 

일드에서 경험 많은 중년 남성과 새내기 젊은 여성이 파트너를 이루는 수사물은 흔하다. [메종 드 폴리스]도 그런 수사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메종 드 폴리스]는 카토 미아키의 소설을 원작으로, 신입 형사가 은퇴한 경찰들이 모여 사는 쉐어하우스에 방문한 이후 인연이 되어 각종 사건을 해결해가는 이야기를 다룬다. 여기서 특이점은 이런 설정의 수사물에서 마냥 휘둘리거나 엉뚱하게 행동하는 신입 형사가 아니라는 점이다. 각 캐릭터는 배경에 상관없이 동등한 선상에서 움직이고 교류해 보기 불편하거나 거슬리는 장면이 딱히 없다. 게다가 넘치지 않는 선한 인물들의 유쾌한 호흡도 밝고 가벼운 수사물의 즐거움을 전하기에 충분하다. 나름 신선한 소재를 택해도 구성 방식은 익숙한 드라마가 뻔하지 않게 다가오는 이유다. 사건을 해결해가는 긴장감은 부족할지라도 가볍고 보기 편한 수사물을 원한다면 타카하타 미츠키가 처음으로 형사 역에 도전한 [메종 드 폴리스]를 보자. (도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