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1년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나, 벌써 두 번째로 참석하게 된 전주국제영화제. 다양한 영화를 관람하고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영화제에 참석한다는 것은 언제나 즐겁지만, 이번에는 좀 더 감회가 새로웠다. 그 이유는 바로 이번 아카이브 특별전의 주제가 ‘스타워즈’이기 때문이다.

온갖 시리즈의 우주를 사랑하던 나는 결국 스타워즈와도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좋아한 역사가 그리 길지 않지만 아무리 빨리 좋아했다고 해도 영화관의 큰 스크린으로 모든 스타워즈 시리즈를 볼 수 없다는 점이 늘 못내 아쉬웠다. 이번 전주국제영화제에서는 스핀오프 시리즈를 제외한 스타워즈 시리즈를 전부 상영하며, 오케스트라 공연과 각종 전시, 여러 상품을 파는 부스까지 팬들의 마음을 설레게 할 이벤트가 가득했다. 스타워즈로 가득한 영화제를 즐길 생각을 하니, 전주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의 시간이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전주에서 머물렀던 2박 3일 동안 총 8편의 영화를 관람했다. 스타워즈 시리즈는 물론이고 1순위로 보고 싶었던 영화들부터 차선책이었던 영화들까지, 관람한 모든 영화의 감상을 간단하게 정리해 보았다.

 

 

 

1. 그녀들을 도와줘(Support the Girls)

이미지: 전주국제영화제

앤드류 부잘스키 감독, 레지나 홀, 헤일리 루 리차드슨, 셰이나 맥헤일 주연. 주로 남성 손님들을 맞이하는 술집을 배경으로 매니저인 리사와 여성 직원들의 연대를 현실적으로 그린 영화다.

자기 일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으며 함께 일하는 여성들을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하는 리사는 힘든 상황에 처해 있으면서도 그들을 돕는다. 그들을 향한 애정은 때론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처럼 보일지라도, 결국엔 여성들의 연대로 나아가 다시금 웃으며 살아갈 힘을 준다.

현실적인 서사와 사실적인 연기가 영화의 매력을 더해주며, 헤일리 루 리차드슨의 통통 튀는 발랄한 연기가 어두운 분위기를 환기시킨다.

 

 

 

2. 스타워즈 에피소드 3: 시스의 복수(Star Wars: Episode III – Revenge Of The Sith)

이미지: 전주국제영화제

헤이든 크리스텐슨, 이완 맥그리거, 나탈리 포트먼이 주연으로, 아나킨 스카이워커가 다스 베이더가 되는 여정의 마지막 장이다.

비록 인물 사이의 감정 묘사를 제대로 그려내지 못했다는 평을 받지만 스타워즈 오리지널과 프리퀄 시리즈를 통틀어 가장 뛰어난 액션씬을 구사하며, 이 점은 큰 스크린에서 더욱 극적으로 비춰진다. 팬으로서 가장 전율이 이는 장면은 팰퍼틴이 끔찍한 상처를 입은 아나킨을 데려와 다스 베이더 갑주를 입히는 장면일 것이다. 다스 베이더 가면이 씌워지고, 특유의 숨소리가 울려 퍼지는 순간을 큰 스크린으로 마주하던 때의 기분은 절대 잊지 못할 것 같다.

 

 

 

3. 애칭(Pet Names)

이미지: 전주국제영화제

캐럴 브랜트 감독의 네 번째 연출작이며 배우이자 작가인 메레디스 존스턴이 각본, 주연을 맡은 작품이다.

대학원을 그만두고 아픈 엄마를 간병하며 의욕 없는 삶을 보내던 리는 어렸을 적 행복한 시간을 보냈던 캠핑을 하러 떠난다. 현실의 도피처로 삼은 캠핑에서 충동적으로 전 연인과 함께 지내게 된 리는 자신이 가진 상처를 마주하며 억눌러왔던 내면의 소리를 점차 드러낸다.

과거의 행복했던 추억이 가득한 숲속에서 잔잔하며 따뜻함을 풍기는 영상미를 통해 비추는 상처를 치유하고 조금씩 성장하는 리의 모습이 마음을 따뜻하게 한다. 허스키한 음색을 가진 매력적인 배우를 발견하게 해준 시간이었다.

 

 

 

4. 서른(Thirty)

이미지: 전주국제영화제

시모나 코스토바 감독의 장편 데뷔작으로, 서른이 된 생일을 맞이하는 외뵌크와 친구들의 하루를 비춘다. 우정과 사랑, 인간관계, 사회적 성취 등 막 서른을 맞이한 베를린의 청년들이 가진 각각의 관계와 고뇌를 롱테이크를 통해 굉장히 날 것 그대로 담아내었다.

한 공간에서 인물이 느끼는 감정을 집요하리만치 길게 촬영했는데, 인물의 감정을 그려내면서도 그 인물의 감정에 동화하기보다 그저 바로 옆에서 지켜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관찰하는 대상이 자연스럽게 넘어가며 인물 간에 얽힌 감정의 변화를 읽을 수 있다. 이 영화를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군중 속의 고독’이다. 다만 보는 관객도 고독해질 수 있다는 점.

 

 

 

5. 스타워즈 에피소드 5: 제국의 역습(Star Wars Episode V: The Empire Strikes Back)

이미지: 전주국제영화제

스타워즈를 몰라도 대부분이 사람들이 알고 있는 대사를 꼽으라면 단연 ‘I am your father’일 것이다. 이 대사 하나만으로도 스타워즈 시리즈에서 무조건 봐야 하는 영화인 [스타워즈 에피소드 5: 제국의 역습]은 전주 돔에서 오케스트라 공연과 함께 상영했다.

스타워즈 시리즈의 장면들과 여러 캐릭터의 테마곡이 오케스트라의 연주로 돔 안에 울려 펴졌다. 약 30분의 공연 후, 돔의 커다란 스크린으로 영화를 관람했는데, 그 당시 가장 놀라운 반전이었을 이야기를 야외석으로 보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영화 사운드는 돔 안에서 웅웅 울리고, 외부 행사장에서 울려 펴지는 소음이 계속해서 들려왔지만 이 영화를 스크린으로 볼 수 있었다는 점에 의의를 두었다.

 

 

 

6. 페트라(Petra)

이미지: 전주국제영화제

보고 싶었던 영화 예매에 실패하고 유일하게 차선책으로 고른 영화. 스페인 영화로 제이미 로살레스 감독의 장편 드라마 영화이며 흥미로운 방식과 서사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아버지가 누군지 모른 채 자랐던 페트라가 자신의 뿌리의 절반을 찾기 위해 겪는 여정을 그리는데, 결론적으로 말하면 스페인식 막장드라마다. 출생의 비밀을 다루는 것에 익숙한 한국인 관람객이라면 누구나 예상 가능할 법한 이야기가 전개되는데, 그 전개 방식이 독특하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서사가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특정 사건을 중심으로 에피소드처럼 나누어 현재-과거-현재 방식으로 배치해 결과-원인-이후의 이야기를 보여주어 더욱 흥미를 유발하고 영화에 집중하게 한다.

 

 

 

7. 포르투갈 여인(The Portuguese Woman)

이미지: 전주국제영화제

로베르트 무질의 소설에 기반한 시대극으로, 북이탈리아의 영주와 결혼한 이름 없는 포르투갈 여인의 이야기를 그린다.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남편은 전쟁으로 오랫동안 성을 비우고, 자신을 이방인으로 여기는 성에서 여인은 젊은 사람들과 예술 작품 창작에 매진한다.

카메라의 이동이나 인물들의 움직임이 그리 많지 않고 정적이면서 인물들의 배치와 카메라의 구도를 통해 마치 유럽의 명화를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영상미는 아름다웠지만, 과도하게 정적인 영상과 건조하게 흘러가는 대사들로 인해 지루함을 떨치기 힘들었다.

 

 

 

8. 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Star Wars: The Last Jedi)

이미지: 전주국제영화제

운 좋게 극장에서 만나 스타워즈라는 장르를 알게 해준 고마운 영화. 이미 극장에서 여러 번 봤지만, 다시 한번 큰 스크린으로 전하는 감동을 느끼고 싶어서 관람한 작품이다.

[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의 묘미는 이 영화는 과거의 팬들의 아닌 앞으로의 팬들을 위한 영화라는 것이다. 스타워즈 시리즈가 오리지널, 프리퀄을 통해 차곡차곡 쌓아왔던 관념들을 모조리 깨부순다. 또한 오리지널의 등장인물들의 서사를 마무리하고 저항의 정신을 이어받는 새 캐릭터들이 등장해 미래의 스타워즈 팬들을 반긴다. 변화하는 시대상에 발맞추어 함께 앞으로 나아가는 스타워즈를 볼 수 있다는 점이 즐겁다.

공주에서 장군이 된 레아를 연기하는 캐리 피셔의 마지막이라는 점도 눈물을 쏟게 만드는 점 중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