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브컬처 팬들의 축제로 시작한 코믹콘 인터내셔널 샌디에이고(이하 SDCC)는 이제 영화와 TV 드라마의 제작진, 출연진이 팬들을 직접 만나는 만남의 장이자 가장 강력한 홍보 창구로 발전했다. 올해도 경향은 이어졌지만, 거대한 폭풍이 뉴스 사이클을 집어삼켰다. 20일 토요일(현지시각) 열린 마블 스튜디오의 H홀 행사에선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이하 MCU) 페이즈 4의 계획이 발표됐다. 영화 5편, TV 시리즈 5편이 앞으로 2년 간 공개될 예정이다. 팬들이 사랑하는 캐릭터의 새 모험부터 코믹스 팬이 아니면 낯설 세계까지, 마블은 과연 어떤 미래를 그리고 있을까?

MCU 페이즈 4

이미지: Marvel Studios

2020~2021년 동안 선보일 마블 영화 및 드라마 10편은 신구의 적절한 조화를 보여준다. 마블 영화팬들의 숙원이었던 [블랙 위도우]와 [팔콘 앤 윈터 솔저], [완다비전], [로키], [호크아이] 등은 ‘인피니티 사가’에서 활약한 캐릭터들의 이야기를 확장한다. [이터널스]와 [닥터 스트레인지: 광기의 멀티버스]는 MCU의 영역을 신화와 멀티버스로 확대한다. [닥터 스트레인지 2] 감독 스콧 데릭슨은 MCU 최초의 ‘무서운 영화’를 만들 것이라 공언했다.

페이즈 4에 접어들며 마블 히어로의 모습도 더 다양해진다. [토르: 사랑과 천둥]은 [토르] 1, 2편에서 제인 포스터로 등장했던 나탈리 포트만이 새로운 토르, ‘마이티 토르’가 된다. 불멸의 존재들의 모험을 그리는 [이터널스]는 최초의 청각장애인 슈퍼히어로 등 인종, 성적 지향성, 연령 등이 다양할 것으로 보인다. 최초의 아시아계 타이틀롤이 된 ‘상치’는 마블 코믹스 내 대표적 악당 세력 ‘텐 링즈’와 맞대결을 펼친다. [블랙 위도우]와 [호크아이] 또한 세대 교체를 예고했다.

이번 페이즈에는 유일하게 [어벤져스]가 없다. [블랙 팬서],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캡틴 마블] 등 인기 시리즈의 속편은 모두 페이즈 5 프로젝트다. 20세기 폭스를 인수하며 권리를 되찾은 [판타스틱 4]와 [뮤턴츠]는 다음 페이즈에서 리부트된다. 이날 행사 말미에 [블레이드]가 리부트되며 주연이 마허샬라 알리로 확정됐음이 공개됐고, 팬들의 반응은 정말 뜨거웠다.

영화와 미디어를 넘나들다

이미지: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마블 스튜디오는 하반기 론칭할 디즈니의 스트리밍 서비스, 디즈니+를 통해 MCU 세계관을 TV 시리즈로 옮긴다. 일련의 ‘이벤트 시리즈’는 영화에선 시간적 제약 때문에 깊게 다루지 못한 히어로들의 이야기를 풀어간다. [팔콘 앤 윈터 솔저]에선 [어벤져스: 엔드게임] 이후 캡틴 아메리카가 된 샘 윌슨이 버키 반즈와 함께 지모 남작에 맞선다. [로키]는 [어벤져스: 엔드게임]에서 테서렉트와 사라진 로키의 모험을 따라간다. [완다비전], [호크아이] 모두 영화 이후 캐릭터들이 겪을 다양한 사건에 집중한다.

MCU가 영화와 TV 등 매체를 옮겨가는 스토리텔링을 시도한 게 처음은 아니다. [에이전트 오브 쉴드]는 [어벤져스]에 등장한 필 콜슨 요원을 중심으로 영화 세계관에 바탕해 독자적 스토리를 이어나갔다. [데어데블] 등 넷플릭스-마블 히어로 드라마도 [어벤져스] 속 외계인 침공 이후 달라진 뉴욕을 배경으로 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나온 TV 시리즈 모두 영화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진 못했다. 기업 내 분열로 마블 스튜디오는 영화를, 마블 텔레비전은 TV 시리즈를 전담하며 콘텐츠 간 연결 고리는 점점 약해졌다.

마블 스튜디오가 제작하는 TV 시리즈는 MCU의 서사와 세계관이 완전히 얽히는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 사례가 될 것이다. 여러 콘텐츠가 MCU 세계관은 깊이를 더하고, 한 매체의 스토리는 다른 매체에 직접적 영향을 미친다는 의미다. 미니시리즈 네 편 모두 [어벤져스: 엔드게임] 이후 달라진 환경을 배경으로 하며 영화 스토리텔링의 영향을 받는다. 그리고 이번에는 반대 방향으로도 영향을 미친다. 비전과 스칼렛 위치의 삶을 그릴 [완다비전]에서 완다 막시모프(엘리자베스 올슨)가 겪을 사건은 [닥터 스트레인지: 광기의 멀티버스]와 직접 연관된다.

마블 이벤트 시리즈는 모두 디즈니+에서 독점 서비스된다. 페이즈 4의 시리즈는 겨우 시작이며, 페이즈 5에서도 다양한 시리즈가 제작될 것이다. 디즈니는 오랜 역사만큼 방대한 라이브러리를 갖췄지만 가장 많은 이용자를 유입할 콘텐츠는 마블 이벤트 시리즈다. 최소한 2년 간 마블 시리즈는 디즈니가 스트리밍 서비스 시장에 안착할 수 있도록 강력한 동력을 제공할 것으로 예상한다.

세상은 디즈니 천하

이미지: Marvel Studios

2년 만에 다시 SDCC에 나타난 마블 스튜디오가 H홀을 채운 팬 몇천 명에게 원대한 계획을 하나씩 풀어놓으며 영화 관련 뉴스 사이클을 점령했다. 긱 컬처를 넘어 하나의 문화 현상이 된 마블 영화의 위치를 증명한 셈이다. 마블 영화 관련 루머 하나만으로 예측 기사 수십 편이 나오고 팬들이 며칠간 인터넷 상에서 설왕설래하는데, 이번에 작품 10편을 한꺼번에 발표하며 지금까지 버즈가 좀처럼 가라앉지 않는다. 한국 영화 팬들도 마동석이 한국인 최초의 마블 ‘히어로’ 배우로 MCU에 합류했다는 사실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관심도는 소셜 미디어 상 콘텐츠의 양이 증명한다. 리슨퍼스트 미디어의 조사에 따르면 SDCC가 열린 7월 17일부터 21일까지 5일간 트위터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영화는 [토르: 사랑과 천둥], TV 시리즈는 [로키]였다. 많이 언급된 작품 1~10위에서 마블 영화와 관련 없는 타이틀은 TV 시리즈 [슈퍼내추럴] 뿐이었다. [그것: 두 번째 이야기]나 [터미네이터: 다크 페이트] 등 하반기 개봉할 대작은 2021년 개봉 영화보다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데 실패했다.

새 영역을 개척하는 마블 스튜디오의 시도가 반가운 만큼 걱정도 있다. MCU가 캐릭터와 배경, 이야기를 다양화하는 시도는 늦었기에 더 좋은 성과를 거두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으로 영화 외의 미디어 소비를 촉진하는 전략은 콘텐츠이자 미디어 기업으로서 영리한 행보로 보인다. 다만 독점은 소비자에게 다양한 선택지를 제공하지 못하기에, 전 세계 사람들의 취향이 마블 영화 아래 하나로 통일된다는 우려와 비판이 나오는 것도 당연하다. 당장 정보 전파력에서 한계를 보이는 영화들이 마블, 픽사 등 다른 디즈니 영화만큼 관객을 만날 기회를 얻을 수 있을까? 모든 것을 장악하는 디즈니의 행보를 무거운 마음으로 바라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