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필과 장르 마니아를 위한 이번주 개봉작 리뷰

 

 

1. 롱 샷(Long Shot) – 궁극의 판타지 로맨스?

이미지: TCO(주)더콘텐츠온

에디터 혜란: 유력한 대선 후보 외무 장관과 백수 기자가 1%의 가능성을 극복하고 사랑을 이룬다. 현실 정치를 풍자하는 블랙 코미디가 있지만, [롱 샷]은 결국 두 남녀의 로맨스가 중심이다. 영화의 구성 자체가 ‘판타지’라는 말이 많았다. 세상에 다시없을 특별한 여자(무려 샤를리즈 테론이다)가 세상 평범한 남자(그래도 세스 로건이다)를 선택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고 볼 수 있다. 누군가는 둘을 보며 아무리 못나도 좋은 짝을 만날 가능성이 있다고 희망을 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샬럿과 프랭크의 로맨스는 표면 아래를 봐야 한다. 샬럿은 프랭크를 만나 완벽한 표면 아래 불완전한 자신을 채웠고, 프랭크는 샬럿을 통해 타협 없는 삶의 태도를 바꿔야 할 순간이 있음을 깨닫는다. 두 사람은 각자의 불완전함을 채우며 행복한 미래를 꿈꾼다. 세상에 나만을 위한 누군가가 있고, 그 사람을 만나 열렬히 사랑하며 행복하게 사는 것. 그게 바로 궁극의 판타지 로맨스다.

 

 

2. 나랏말싸미(THE KING’S LETTERS) – 평이하게 흘러가는 영화, 역사 왜곡은 글쎄…

이미지: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에디터 원희: 신하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과 신미 스님의 숨겨진 이야기를 그린다. 소헌왕후의 열렬한 지지를 받은 세종대왕은 모든 국민이 읽고 쓸 수 있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 새로운 우리 글자를 만들려 한다. 그 과정에서 신미를 비롯한 여러 스님들이 중심축이 되는데, 여기서 우려스러운 장면이 등장한다. 영화적 각색으로 인물들의 성격을 극적으로 그릴 순 있겠지만, 한글 창제에 세종대왕이 기여한 바가 거의 없는 것처럼 그려지거나 가장 독창적인 글자인 한글이 사실은 산스크리트어에서 대부분 힌트를 얻어 만든 것처럼 그려지는 부분은 걱정이 앞선다. 배우들의 열연과 더불어 실제 문화유산에서 촬영해 만든 아름다운 영상미와 이에 잘 어울리는 사운드트랙은 인상적이다. 그러나 가장 신빙성이 적은 설을 실제 사건인 것처럼 보여주어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점은 우려스럽다.

 

 

3. 주전장(Shusenjo: The Main Battleground Of The Comfort Women Issue) – 위안부 문제의 핵심은 인권이다

이미지: (주)시네마달

에디터 혜란: 일본계 미국인 미키 데자키 감독이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논쟁의 장에서 상반된 주장을 분석하고 이슈의 본질을 찾아가는 다큐멘터리. 감독은 제3자의 입장에서 위안부 문제를 바라보며, 이성적 관점으로 다양한 자료를 제시하며 각 진영이 내세운 논리 속 부조리를 발견한다. 정보가 많지만 편집의 템포가 빨라 지치거나 지루하지 않으며, 객관적 시각으로 문제에 접근하며 양측의 주장 모두 균형 있게 다룬다. 한국인으로서 위안부 문제를 이성적으로 사고하는 것은 힘들다. 영화에서 본 일본 우익의 의견은 말도 안 되는 헛소리 같다. 그렇기 때문에 [주전장]의 주장은 더욱 중요하다. 위안부 문제는 결국 인권의 문제이며, 위안부 문제 반대주의자들은 성차별적, 인종차별적, 국가주의적 입장에서 과거의 영광을 되찾으려는 의도가 있다는 점 말이다.

 

 

4. 그녀들을 도와줘(Support the Girls) – 부당함 속에서 더욱 단단해지는 시스터후드

이미지: (주)영화사 오원

에디터 영준: 스포츠 바에서 벌어지는 부조리에 맞선 종업원들의 이야기를 그렸다. 성차별, 부당 해고 등의 심각한 주제를 위트 있게 풀어냈는데, 앤드류 부잘스키가 그린 ‘일과 일상의 압박감을 버티며 살아가는 모습’은 여성뿐 아니라 누구나 공감할 수 있을 정도로 현실적이라는 게 인상적이다. 그가 직접 쓴 각본 덕도 있겠으나 배우들의 좋은 연기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정도로 이들, 특히 리사 역의 레지나 홀과 마시를 연기한 헤일리 루 리차드슨의 존재감이 완성도에 큰 부분을 차지한다. 큰 기대 없이 보러 갔다가 도리어 도움을 받고 온 기분이 들었던 만큼, 지친 일상을 보내는 이들에게 이 힐링 영화를 추천하고 싶다.

 

 

5. 굿바이 썸머(Goodbye Summer) – 순정만화를 보듯 살랑거리는 마음

이미지: (주)인디스토리

에디터 현정: 순정만화를 보듯 싱그럽고 순수한 이미지로 채색된 영화. 삶의 나날이 얼마 남지 않은 열아홉 고교생 현재와 주변 친구들의 이야기를 큰 갈등 구조 없이 담담하게 묘사한다. 시한부를 소재로 하지만, 비극을 부풀리고 슬픔에 호소하는 대신 그 시절의 반짝이는 순간의 감정에 충실하다. 이름처럼 오늘만 있는 현재가 텅 빈 교실에 몰래 들어가 짐을 챙기는 모습에선 외로움이 배어나고, 느닷없는 고백을 거절한 수민이 혼란스러운 감정을 토로하는 모습에선 풋풋함이 전해진다. 로맨스보다는 성장물에 가깝고, 무언가 콕 집어 말하기에 서사의 깊이와 풍성함은 부족하지만, ‘그땐 그랬지’라는 생각이 들 만큼 지나온 학창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농도 짙은 순수함에 아련한 여운이 남는다.

 

 

6. 명탐정 코난: 감청의 권(Detective Conan: The Fist of Blue Sapphire) – 각자의 최애를 응원하는 마음으로

이미지: CJ 엔터테인먼트

에디터 현정: ‘명탐정 코난’ 팬들을 위해 매년 찾아오는 이벤트 무비. 이번에는 극장판 시리즈 처음으로 여성 감독이 연출을 맡고 해외로 나가 싱가포르를 배경으로 두 개의 미스터리를 교차하며 전개한다. 그동안 신출귀몰 화려한 범죄로 인기를 모았던 괴도 키드와 극장판에서 처음으로 주연급으로 등장한 (소노코의 든든한 남친) 마코토가 위기에 빠지는 이야기가 흥미롭게 펼쳐진다. 볼거리에 집중하는 극장판 특성상 추리의 힘은 약하지만, 신이치로 변신한 괴도 키드 때문에 어쩔 줄 모르며 질투하는 코난(신이치와 란은 공식 커플이 됐다)의 모습과 늘 완벽해 보였던 괴도 키드의 인간적인 허점을 볼 수 있는 등 아기자기한 재미가 쏠쏠하다. ‘명탐정 코난’ 팬이라면 알고 있겠지만, 내년 극장판을 예고하는 쿠키 영상도 등장하니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까지 지켜보자.

 

7. 돈 워리(Don’t Worry, He Won’t Get Far on Foot) – 자신을 용서하는 방법에 대하여

이미지: 그린나래미디어㈜, 다날엔터테인먼트

에디터 영준: 만화가 존 캘러한의 삶을 들여다보는 전기 영화. 개인적으로 호아킨 피닉스의 팬인 것을 떠나 정말 감명 깊게 본 작품이다. 치유와 극복, 용서가 ‘뚝딱’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한 계단씩 거치는 과정을 견뎌야만 이루어진다는 당연한 이치를 잊고 살았던 우리에게 ‘괜찮아, 다 잘 될 거야’라며 등을 토닥여주는 듯한 기분이 들어 영화를 보는 동안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호아킨 피닉스와 루니 마라는 매 작품 인생 연기를 보여주었기에 놀랄 것도 없었지만, 이번 작품으로 조나 힐을 다시 보게 됐다. 코미디 배우로 익숙했던 그가 이런 연기까지 능숙하게 하다니! 그가 연출한 [미드 90]에 대한 기대감도 한껏 불어났다.

 

 

8. 매니페스토(Manifesto) – 케이트 블란쳇의, 케이트 블란쳇에 의한 영화

이미지: 찬란

에디터 원희: 오로지 케이트 블란쳇이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것을 보여준다. 보면 볼수록 이게 뭐지 싶다가도 케이트 블란쳇의 연기 하나로 눈을 뗄 수 없다. 혼자서 13가지 다양한 역할을 보여주는데, 한 번에 이해하기 어려운 대사들을 그저 나열하듯이 독백으로 끝없이 읊조리면서 흘러간다. 굉장히 난해하고 어렵지만, 그만큼 케이트 블란쳇의 역량을 보여주는 영화라는 생각도 든다. 서로 전혀 다른 이미지의 13가지 캐릭터를 완벽하게 소화해내며 다양한 예술상을 드러내는데, 역할마다 각자의 색채가 뚜렷한 비주얼부터 연기까지 케이트 블란쳇이 보여주는 모든 것이 놀랍다. 케이트가 앞으로도 보여줄 새로운 역할과 연기를 기대하게 만드는 영화다.

 

 

9. 캘리포니아 타이프라이터(California Typewriter) – 쓸쓸함보다 따뜻한 옛 것에 대한 보고서

이미지: 찬란

에디터 홍선: 컴퓨터의 등장으로 사라진 아날로그 타자기에 관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엮은 다큐멘터리. 아직도 타자기를 판매하는 가게부터 타자기를 사랑하는 사람들 그리고 톰 행크스, 존 메이어 등 유명인이 나와 타자기의 매력을 말한다. 그동안 몰랐던 타자기의 역사와 특유의 기계음을 연결해 노래를 만드는 밴드의 독특한 모습이 흥미를 끈다. 영화의 미덕은 옛 것을 그리워하면서도 흘러간 것에만 얽매이는 지금을 비난하지 않는다. 오히려 추억과 함께한 시간을 소중하게 여기며 쓸쓸함보다는 따뜻함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