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가 포함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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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고백하겠다. [아스달 연대기]를 보기 전, 기대치는 ‘0’에 가까웠다. ‘글을 써야 하니, 한 번 보기나 하자’ 싶은 마음에 시작한 파트 1 <예언의 아이들>의 첫 두 에피소드를 본 이후에도 마찬가지였다. 글을 쓰겠다고 말한 내 입이 원망스러웠다.

그로부터 두 달여가 지났고, 파트 2 <뒤집히는 하늘, 일어나는 땅>의 마지막 에피소드까지 달렸다. 에디터는 분노와 실망으로 가득한 마음을 어떻게 글로 풀어낼지 고민하며 모니터 앞에 앉아있을까? 아쉽게도(?) 아니다. [아스달 연대기] 감상평을 완벽하게 설명하는 문장이 있는데, 한창 비트코인이 유행이었을 때 하나의 밈(meme)처럼 떠돌았던 ‘존버는 승리한다’이다. 서론이 길었다. [아스달 연대기]를 보며 느꼈던 점들을 하나씩 짚어보기에 앞서, 간략히 드라마에 대한 소개를 해보고자 한다.

[아스달 연대기]는 한국 드라마계의 대표 작가 콤비 김영현, 박상연([선덕여왕], [뿌리깊은 나무] 등), 마찬가지로 톱클래스 PD로 꼽히는 김원석([미생], [시그널], [성균관 스캔들] 등)이 제작한 상고시대 배경의 판타지 사극이다. 드라마의 주제는 이상적인 국가의 탄생,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그리고 사랑에 대한 신화적 영웅담이며 환웅 신화에서 모티브를 따왔다고 한다.

언급했다시피 [아스달 연대기]의 장르는 판타지 사극/시대극이다. 초점을 ‘판타지’에 두느냐, ‘사극’에 두느냐에 따라 작품을 본 첫인상이 굉장히 달라질 텐데, 명품 사극을 여럿 탄생시킨 김영현과 박상연 작가 때문에 후자에 기대를 건 시청자들이 많았을 것이다. 에디터처럼 별 신경을 쓰지 않고 본 사람도 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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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왕사신기] 정도의 판타지 사극을 기대한 시청자들이라면, [아스달 연대기]를 보며 적잖이 당황했을 것이다. 아니, ‘실제로 상고시대를 다룬 사극’(제작보고회 당시 이렇게 말했다)이라기에 봤더니 뇌안탈, 이그트, 새녘족 등의 생소한 종족과 부족 이름들은 무엇이며, 사람과 인간은 다르고, 또 푸른 피에 보랏빛 입술이라고? 정통 사극은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알려진 설화에 상상력을 섞었으리라 여겼을 시청자라면 뒤통수를 맞은 기분일 듯하다. 개인적으로 꼽는 시청자 이탈 포인트 No. 1.

어찌어찌 쌓은 몰입감을 와장창 깨부수는 몇몇 배우들의 연기력도 아쉬웠다.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많은 정보를 주입당하느라 지치고, 기대와 달라 실망스러운 작품일지라도 일단 배우들의 연기가 좋으면 꾹 참고 볼만한 힘이 생긴다. 대부분의 출연진이 제 몫을 해내기는 했으나, 몇몇 때문에 넷플릭스를 끄고 싶었던 순간이 두어 차례 있었다.

시청차 이탈 포인트 No. 3. 초반부는 정말 말이 많다. 영화와 달리 호흡이 긴 TV 시리즈는 초반에 힘을 확 실어서 어필하는 것이 보통인데, 이 작품은 도무지 그럴 생각이 없어 보였다. 물론 다룬 적이 없고 방대한 가상의 세계관인만큼, 배경 설명이 상당히 중요한 부분은 인정한다. 그런데 캐릭터의 입을 빌리는 것도 모자라 쿠키 영상(넷플릭스에서는 시청할 수도 없다)까지 동원해서 설명하려 하다니… 아이고야, 보고 듣다가 지친다.

*[아스달 연대기]는 tvN 정규 방송 후 넷플릭스에 공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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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만 보면 [아스달 연대기]는 흔히 말하는 ‘망작’ 반열에 들 만한 작품이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다시피 이 작품은 볼거리가 넘치는 새벽 시간대의 프리미어리그 빅매치처럼 ‘끝까지 본 사람이 승자’인 작품이다. 단지 극악의 초반부만 견디면 된다. 물론 여기까지 버티느냐 마느냐도 결국 시청자의 손에 달린 것이고, 애초에 잘했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지만 적어도 지금까지 본 입장으로서는 충분히 마지막 시즌을 기다릴 만한 가치가 있다고 본다.

우선 우직하게 끌고 나가는 스토리가 가장 큰 역할을 했다. [왕좌의 게임]처럼 주요 인물이 눈 깜짝할 새 목숨을 잃는 전개가 아닌 만큼, 사실 [아스달 연대기]의 큰 흐름과 결말은 충분히 예측이 가능하다. 은섬(송중기)이 왕이 되겠지 뭐. 다만 이야기가 거듭될수록 방향성을 잃고 결국 산으로 갔던 여러 드라마와 달리, [아스달 연대기]는 뻔하지 않은 전개와 반전으로 탄력을 받아 오히려 뒤로 갈수록 보는 재미가 붙는다. 얼마든지 예측 가능한 결말이지만, 그 과정이 파란만장하다는 의미다.

여기에 세계관과 인물 설명하느라 시간을 전부 투자했던 초반부와 달리, 갈수록 캐릭터 개개인과 세력의 욕망, 거기에서 비롯된 갈등을 섬세하고 치밀하게 묘사하는 것이 인상적이다. 특히 파트 2부터는 정치 스릴러를 본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갈등과 암투가 부각이 되어서 보는 재미를 더했는데, 예상치 못했던 사야가 권력 싸움에 끼어들면서 만들어낸 긍정적인 결과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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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달 연대기]의 캐릭터, 그리고 이들을 연기한 배우들도 빼놓을 수 없다. 조금 전에는 어색한 연기 때문에 몰입이 깨진다 해놓고 왜 이제 말을 바꾸느냐고? 그 배우들이 이젠 없거나 캐릭터에 제대로 몰입했기 때문이다. 타곤 역의 장동건? 솔직히 초반부 해골 뒤집어쓴 장면에서 눈을 가리고 싶었다. 김옥빈과 김지원, 아무리 판타지라지만 시대극에는 맞지 않는 말투를 사용했다. 중2병을 연상케 했던 어린 타곤 역의 정제원과 국어책을 읽었던 은섬 & 사야의 어머니 아사 혼을 연기한 추자현은 더 이상 시리즈에 출연하지 않는다(그나마 추자현은 마지막에서라도 멋진 연기를 보여줬으니 다행이지만 정제원은 끝까지 아쉬웠다).

에피소드가 거듭될수록 배우들이 캐릭터에 빠르게 적응한다는 것이 느껴졌고, 지금은 ‘이 배우가 아니면 누가 이런 캐릭터를 소화할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캐릭터와 하나가 됐다. 그저 이런 판타지 세계관과 캐릭터에 익숙하지 않았기에 초반에 다소 부진한 모습을 보였던 것이다. 조연급 캐릭터들의 활용과 배우들의 연기도 갈수록 좋아지면서 쓸데없이 소모되는 캐릭터도 없으니 이야기가 다채로워지고 풍성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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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인상적인 배우들을 꼽으라면 단연 송중기와 박해준이다. 두 사람의 퍼포먼스는 위태로웠던 드라마 초반부도 견딜 수 있게 한 버팀목이 되었는데, 우선 1인 2역을 해낸 송중기의 퍼포먼스는 은섬이 각성하고 사야가 속내를 점차 드러내는 파트 2 후반으로 갈수록 빛이 난다.

박해준이 연기한 무백은 사실 [아스달 연대기]에서 주연급 캐릭터는 아니다. 그러나 이 캐릭터와 배우가 유독 마음에 남는 이유는, 항상 객관적인 시선에서 사건과 흐름을 파악하려는 무백에 시청자들이 가장 감정이입을 할 수 있기 때문이고 또 몰입이 가능하게끔 캐릭터를 잘 살린 박해준의 연기력 때문이 아닌가 싶다(천 과장님 사랑합니다!!! 그런데 제대로 된 공식 스틸조차 없는 것은 좀 슬프다…)

[아스달 연대기]의 시작은 분명 좋지 못했다. [왕좌의 게임] 표절 의혹 때문에 ‘마늘과 쑥의 노래’라는 조롱 섞인 별명이 붙고, 생소한 이름 때문에 ‘아스날 연대기’가 실시간 검색어에 오를 때도 있었다. 거기에 방영 후 초반 반응까지 좋지 못하니 정말 시작부터 심하게 휘청였다.

그러나 [아스달 연대기] 파트 2까지 끝까지 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아쉬움을 극복하고 꽤나 흥미로운 드라마로 거듭났다는 사실을 말이다. 시리즈의 마지막 파트 3 <아스, 그 모든 전설의 서곡>은 방영까지 약 한 달 반이 남았다. 드라마 초반의 비판과 혹평 때문에 시도조차 안 해본 이들이라면 방영 전까지 [아스달 연대기]에 도전해보는 것은 어떨까? 더도 말고 딱 두 에피소드만 견디자. 참는 자에게 복이 오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