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를 필두로 왓챠플레이, 유튜브 프리미엄, 그리고 곧 출시 예정인 디즈니 플러스까지. 현재 영상 콘텐츠의 대세는 스트리밍 서비스다. 앞으로 더 많은 기업이 새로운 서비스를 출시할 예정이기에 주도권을 둘러싼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스트리밍 전쟁에서 애니메이션계의 거장 제프리 카젠버그는 차별화된 새로운 형태의 스트리밍 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이다. 이를 알아보기에 앞서 카젠버그가 누구인지부터 살펴보도록 하자.

이미지: CJ 엔터테인먼트

제프리 카젠버그는 1994년, 전설적인 영화감독 스티븐 스필버그와 음반사 CEO 데이빗 게펜과 함께 드림웍스를 설립했다. 디즈니 소속이었던 카젠버그는 [인어공주], [미녀와 야수], [알라딘], [라이온 킹] 등을 제작하며 일명 ‘디즈니 르네상스’를 이끌었다. 또한 픽사가 디즈니에 들어갈 기회를 마련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카젠버그는 디즈니 소속일 당시, 내부에서 커져가는 그의 입지를 탐탁지 않게 여긴 임원들에게 돌연 해고를 당한다. 이를 계기로 카젠버그는 드림웍스를 설립했다. 최근 드림웍스는 [미니언즈], [씽], [마이펫의 이중생활]의 제작사 일루미네이션이 속한 유니버설에 인수됐고, 카젠버그는 드림웍스를 떠났다. 그리고 현재, 차별화된 스트리밍 서비스 ‘퀴비(Quibi)’를 설립하고 새로운 도전을 준비하고 있다.

이미지: Quibi

퀴비는 영화와 드라마를 짧은 분량의 클립으로 나뉘어 매일 공개하는 모바일 스트리밍 서비스다. 예를 들어 2시간 반짜리 영화는 약 8분에서 10분 분량의 챕터 형식으로 하루에 한편씩 업데이트된다. 카젠버그가 25~35세의 젊은 시청자의 영상 소비패턴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기획됐는데, 카페에서 음료를 마시거나 이동할 때 등 자투리 시간에 시청할 수 있는 스트리밍 서비스라 할 수 있다.

매일 공개되는 챕터는 이후 언제든지 유저들이 원할 때 시청 가능하다. 영상을 하루하루 챙겨보는 재미와 몰아보는 재미가 공존하는 셈이다. 예외도 있는데,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제작하는 공포 시리즈 같은 경우 오직 밤에만 볼 수 있다. 퀴비는 영화와 드라마, 다큐, 예능, 스포츠, 그리고 뉴스까지 다양한 장르의 영상 콘텐츠를 서비스할 예정이다. 이미 22개의 프로젝트가 확정됐으며, 출시 1년 안에 약 7000편의 챕터를 공개할 계획이라 밝혔다.

이미지: 소니픽처스코리아, (주)팝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두터운 신뢰를 받는 카젠버그의 퀴비는 정식 출시 전부터 다양한 곳에서 투자를 받고 있을 뿐 아니라 여러 유명 감독과 배우가 합류해 눈길을 끈다. [스파이더맨] 시리즈의 샘 레이미 감독은 호러 시리즈를 제작하고, 안나 켄드릭은 남자친구의 리얼돌에 대한 코미디 영화에 출연한다. [셰이프 오브 워터]로 아카데미 작품상과 감독상을 수상한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과 배우 돈 치들, 리암 헴스워스, 이드리스 엘바, 모델 타이라 뱅크스, NBA 스타 스테판 커리 등이 퀴비 프로젝트에 참여한다.

다양한 A급 창작자를 끌어들인 데는 카젠버그의 명성도 한몫했지만, 창작자를 배려한 계약조건도 있다. 계약에 따르면 제작된 영상물은 퀴비에서 7년간 스트리밍이 보장된다. 또한 스트리밍 되고 2년이 지나면, 따로 제작자가 장편 영화 등으로 재편집해서 새롭게 발표할 수 있다. 즉 창작자에게 프로젝트의 소유권을 주는 것이다.

퀴비가 많은 기대를 받고 있는 것이 사실이나 비즈니스 모델에 대한 우려도 있다. 업계 관계자는 퀴비의 이용요금에 의문을 제기했다. 광고가 포함된 요금은 한 달에 $4.99(한화 약 5900원)이며, 광고가 없는 사용권은 $7.99(한화 약 9500원)이다. 하지만 주 타겟층인 젊은 유저가 무료 콘텐츠에 익숙한 세대라는 점을 감안하면 퀴비의 가격 정책은 불안요소가 될 수 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매일 새로운 챕터를 공개하는 퀴비의 계획이 무의미해질 위험성이 있다고 지적한다. 대부분의 유저가 영상을 몰아서 본다면, 기존의 스트리밍 서비스와 차별성이 퇴색되기 때문이다. 콘텐츠 제작비를 아끼지 않을 퀴비가 이를 유지할 수 있을지도 의문스럽다. 영상을 새롭게 편집해 발표할 수 있는 시점이 2년 후이기 때문에 화제성이 떨어질 가능성도 있다. 이외에도 챕터를 한 편씩 시청할 때와 전체적으로 이어봤을 때의 재미와 완성도를 모두 충족시켜야 하는 것도 풀어야 할 숙제다.

이미지: SXSW 2019

퀴비의 콘텐츠는 전적으로 카젠버그가 맡지만, 회사의 운영과 관리는 CEO로 임명된 메그 휘트맨이 책임진다. 휘트맨은 카젠버그와 디즈니에서부터 드림웍스까지 오랫동안 함께 한 동료로, 이베이와 휴렛 팩커드의 CEO로 재직하며 상당한 성과를 거둔 인물이다. 이베이 CEO 재직 기간(1998~2008)에는 기업 가치를 570만 달러에서 80억 달러로 성장시키며 신화적 인물로 주목받았고, 휴렛 패커드 CEO 재직(2011~2015) 당시에는 HP와 휴랫 패커드 엔터프라이즈로 분사를 지휘했다.

할리우드와 실리콘밸리의 거물 카젠버그와 휘트맨은 퀴비가 지닌 장점과 콘셉트를 어떻게 구현해낼 것이며, 항간의 우려 섞인 시선에 어떻게 대처해나갈까. 짧지만 높은 완성도의 영상을 즐길 수 있는 퀴비는 2020년 4월 북미에서 출시될 예정이다.

글. 배상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