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히 극적이거나 흥미로운 일들에 “영화 같은 사건”이란 표현을 쓴다. 영화로 만들면 정말 재미있겠다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한 사건을 실제로 영화로 만드는 건 재미있는 사건을 2시간 영화의 기승전결에 맞게 다시 쓰는 작업 이상이다. 창작자는 실제 사건의 내용, 사건을 둘러싼 맥락, 사건에 다양한 정도로 관련된 인물 등 다양한 요소를 의도에 맞게 배치해 극적 재미를 극대화하면서 주제를 전달해야 한다.

[레드 씨 다이빙 리조트]도 실제 사건을 영화화했다. 1980년대 초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가 기근과 학살의 위험에 처한 에티오피아계 유대인들을 구조한 “영화 같은 활약”을 그린다. 모사드는 에티오피아계 유대인 탈출 작전 수행을 위해 수단 해변의 버려진 리조트를 사들인다. 아리 레빈슨(크리스 에반스)과 몇몇 요원들은 실제 호텔을 운영하며 수단 군인들의 감시를 피해 난민 수십, 수백 명을 탈출시킨다. 수단 군인들이 리조트의 실제 목적과 아리 및 동료들의 정체를 의심하자, 이들은 가능한 방법을 모두 동원해 난민 수백 명과 함께 그곳을 떠난다.

이미지: 넷플릭스

모사드가, 호텔을 운영하면서, 난민을 수만 명을 탈출시킨 믿기지 않을 만큼 극적인 이야기가 실화라니! 마블이나 DC의 코믹스 슈퍼히어로가 아닌 실제 영웅들의 진짜 영웅담이다. 실력이 검증된 창작자에게 각본과 연출을 맡기고 연기 잘하는 유명 배우를 출연 시켜 ‘잘 만들면’ 좋은 영화가 될 것이다. 아마도 영화를 만드는 이들은 그렇게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레드 씨 다이빙 리조트]는 결국 최악의 결과물이 됐다.

[레드 씨 다이빙 리조트]는 액션 스릴러 영화다. 다양한 인물이 연루된 다면적, 다층적 사건을 모사드 현장 요원을 중심으로 정리했다. 정의를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수많은 사람을 도운 영웅담에 일촉즉발의 순간을 집어넣고 액션이란 양념을 쳤다. 하지만 캐릭터는 영화 속 스펙터클의 수준만큼 발전하지 못했다. 요원들은 마치 로봇처럼 각자 맡은 역할 이상을 벗어나지 않으며 작전이 얼마나 어려운지, 얼마나 중요한지 이야기한다. 단편적이고 호감 가지 않는 캐릭터는 입을 열어봤자 지루함만 유발한다.

이미지: 넷플릭스

액션 영화가 되면서 눈에서 사라진 캐릭터도 있다. 에티오피아계 유대인들은 종교, 민족 탄압을 피해 이스라엘로 향하고자 위험천만한 여정을 시작한다. 이들은 중간에 가족과 생이별할 수도 있고, 생활 환경 때문에 질병과 고통에 시달릴 수 있고, 예루살렘에 닿기 전까지 언제든 죽을 거란 공포에 사로잡힐 수도 있다. 난민의 이야기도 충분히 흥미로웠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에는 이들의 목소리가 담기지 않으며, 그저 작전의 일부로 그려진다. 난민들을 통솔하여 아리와 접선하는 카데베(마이클 K. 윌리엄스)는 난민들을 대변하지만, 비중이 크지 않으며 인솔자 이상의 활약도 없다.

영화는 결국 백인 요원들이 흑인 난민을 구한다는 이야기가 됐다. 창작자와 제작자의 의도와 관계없이 ‘백인 구원자’ 비유를 되살린 셈이다. 소수자의 목소리를 강조하고 다양성을 외치는 2019년 시대정신에 뒤떨어져 있다. 캐릭터와 스토리도 다양하고 복잡한 요즘 이야기와 비교하면 [레드 씨 다이빙 리조트]의 많은 면은 구식이다.

이미지: 넷플릭스

그러면 정치적 올바름을 위해 실화를 뒤틀고 역사를 왜곡하라는 것이냐? 그런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하지만, 이야기엔 다양한 인물이 있으며 각자의 시각에 따라 관점과 기술의 방식이 다르다. 난민들을 약속의 땅에 데려가기 위해 목숨을 걸었던 카데베가 중심일 수도 있고, 난민 소년의 관점에서 영웅들의 이야기를 그릴 수도 있다. ‘백인 영웅’이 아닌 다른 방향으로 접근했다면 탈출 사건의 끔찍함을 생생히 전달할 수 있고, 요즘 시대에 걸맞은 영웅담이 탄생할 수도 있다.

감동도 재미도 잡는 데 실패한 [레드 씨 다이빙 리조트]는 결국 넷플릭스를 통해 ‘조용히’ 공개됐다. A급 스타와 실력 있는 제작진으로도 영화의 퀄리티를 높이진 못했다. ‘캡틴 아메리카’ 크리스 에반스의 새 영화라 감상을 할 마음이 생긴다면 다시 생각하길 바란다. 크리스 에반스는 유니폼을 입었을 때보다 더 멋진 몸매를 드러내지만, 공감 빵점 영웅 캐릭터에 실망할 수 있으니까.